항저우(杭州)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저장성(浙江省) 이우(義烏).
인구 70만명에 불과한 작은 소도시 이우가 세계 최대의 도매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은 불과 10여년만이다.
이우시내에서는 안경과 속옷,양말,가방,우산,화장품,완구,소형가전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상품들로 넘쳐난다. 한마디로 ‘소상품의 바다‘다. 전자제품을 제외하고 중국에서 수출되는 소상품(일용잡화 및 완구)의 70%가 이우산(義烏産)이다. 전 세계 소상품의 30%는 중국 이우에서 유통된 것이다.
"이우에 없으면 세계에 없다"
이우가 취급하는 상품은 30만여종이 넘는다. 시장에서 찾지 못하면 즉석에서 제작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이우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항구와 공항을 끼고 있는 연해도시도 아니고 자원과 인력이 풍부하지도 않은 저장성 내륙의 한 작은 도시에 불과한 이우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세계시장'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우를 찾은 것은 2000년에 이어 두 번째. 질주하는 중국경제보다 더 빠른 변화의 속도를 이우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우마차와 수레가 담당하던 물류는 화물차들이 대신했고 시가지 역시 돈벼락을 맞은 졸부처럼 화려한 외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시장규모도 3배이상 확장됐다.
중국소상품성(中國小商品城)과 삔왕시장(賓王市場) 등으로 구성돼있던 도매시장은 국제상무성 1기와 2기가 완공되면서 시 전체가 시장으로 변했다. 이우시정부는 아예 대로변의 1층은 상가로 조성하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당은 2층으로 올라갔다.
이우에서는 돈이 굴러다닌다. 그래선지 이 작은 도시에서 BMW와 벤츠,아우디 등 고급차량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BMW 1천여대, 벤츠 1천8백대가 이 작은 도시를 질주한다. 인구비율로 보면 중국에서 고급차량이 가장 많은 도시가 이우일 정도로 이우성공신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는 중국경제. 이우시장은 그 두배인 18~20%씩 성장한다. '이우드림' 혹은 '이우현상'이라고 불리는 이우에서의 성공신화는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오늘도 전세계 상인들이 이우로 몰려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우에는 특화된 산업이 없다. 시장외에는 산업이 없다. 이우의 최대산업이 시장이다. 이우 소상품성의 교역액은 229억위안(2003년). 단일시장으로는 중국 최대규모다.
국제상무성1,2기가 개관하면서 시장규모가 5배이상 확대된 2005년 말 현재 이우시의 전체교역액은 3천억위안에 이른다.
토질이 좋지 않고 물이 부족, 농사를 짓기가 어려워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던 작은 농촌도시 이우가 세계적인 시장도시로 거듭나게 된 데는 개혁개방이후 저장성정부의 특별한 지원대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우사람들에게는 ‘?毛?糖’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요령을 울리면서 사탕을 주고 대신 닭털을 수집, 닭털로 만든 먼지털이개를 만들어 내다 파는 등 장사수완이 뛰어났다는 뜻이다.
자연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손재주만은 남달랐던 이우사람들. 그들은 집집마다 가내수공업으로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커지게 됐다.
이들 이우상인에 의해 1982년 도매시장이 자리잡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이우시장은 제대로 된 시장건물도 없었고 노천시장과 천막시장 등 난전과 다를바 없었다. 92년 시정부와 저장성정부의 도매시장 육성정책에 의해 이우시장은 새롭게 변모되기 시작했다. 한국상인을 비롯한 외국상인들이 이우에 들어와 제3국 수출의 길을 열어준 것도 이때다. 점차 이우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개혁개방이후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야 했던 저장성정부는 이우시를 면세구역으로 조성했다. 각종 상품에 부가되는 18%의 부가세를 면제해 줬다. 상품 원가가 18%나 낮아지면서 이우산 상품은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자 공장이 몰려들었고 해외상인들이 가세했다. 여전히 이우시장의 최대매력은 가격이다. 이우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싼 가격에 원하는 상품을 구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이우는 시장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규모 국제상업타운을 조성, ‘소상품박람회’ 등 연중 전시회를 개최, 전세계 상인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이우 최대의 박람회인 국제소상품 박람회가 열린다.
그러나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이우시장의 투자유인책은 달라지고 있다.
외국상인들에 대한 중국당국의 규제가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상무성에 조성된 한국상인관의 김웅(金雄)사무국장은 “한마디로 좋은 시절은 끝났다”고 말했다.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감독권한 등이 지방정부로 이관되면서 투명한 세금정책을 펴는 등 각종 규제가 늘어나고 있다. 그는 “이제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무역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아직도 과거의 관행을 못잊어하는 한국상인들이 적지않다”고 지적했다.
이우에서 8년째 액서사리를 취급하고 있는 정덕성씨는 “여전히 이우는 매력이 있는 시장”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원자재가 급등한 요즘 들어서는 기존 가격으로는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아예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한국도금기술자를 초빙,중국도금업체 인수에 나섰다. 가격보다 질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실 이우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 상품의 품질이다. 이우산(義烏産)은 가격이 싸지만 품질은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지못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을 휩쓸고 있는 이우산 소상품은 '싸구려중국산'의 대명사라는 인식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이우한국상회의 유병진 사무차장은 “질은 가격에 비례한다고 하지않느냐”면서 “퀄러티quality는 생산자가 제품에 프로정신을 가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중국사람들은 이런 자세를 갖고 있지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난감의 경우, 이우시장 스스로 검사항목수를 늘리고 자체검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우도 생존을 위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우시장의 또다른 과제는 분쟁해결장치가 없다는 것이라고 상인들은 지적한다. 납기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상품의 품질까지 들쭉날쭉이기 때문에 바이어가 일일이 제품을 검사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클레임이 걸리기 일쑤다. “이같은 관행에 대비, 가급적 미리 자기방어하는게 현명하다”는 것이 한국상인들의 조언이다.
짝퉁제품 또한 이우현상중의 하나다. 얼마전 이우의 한 5성급 호텔에서조차 버버리 등 해외유명브랜드의 짝퉁제품을 판매하다가 중국당국에 적발됐다. 이우에서 짝퉁은 흔하다. 특히 악세사리 등 한국에서 유행하는 제품의 경우 곧바로 이곳에서 제작,유통될 정도로 '이미테이션'은 이우시장의 또다른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