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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국가전략산업이 될 수 없다
국민에게 묻지 않은 국가전략
― 우리는 왜 원자력에 국가의 미래를 걸고 있는가
2025년 10월 29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주 앉았다. 세계의 관심은 한미 관세협상과 대미 투자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 그런데 회담장에서 전혀 다른 문제가 불쑥 튀어나왔다.
핵추진잠수함, 재처리, 농축이었다.
대통령실이 이날 공개한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공감을 표시했다. 핵잠수함 건조를 포함한 후속 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로부터 불과 16일 뒤인 11월 14일, 양국 정부가 공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연료 조달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국의 법적 요건을 전제로 한국의 평화적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까지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직접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주요 성과로 발표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성사 가능성은 둘째로 하더라도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이 거대한 국가전략은 어디에서 왔는가?
불과 두 달여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2025년 8월 13일 국정기획위원회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재명 정부의 향후 5년을 이끌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국민에게 발표했다. 국가비전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었다. 5대 국정목표, 23대 추진전략, 123대 국정과제가 제시됐고, 이 계획은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그런데 그 국가 청사진에서 핵추진잠수함,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묶은 거대한 원자력·안보전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원자력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25년 6월 24일 국정기획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는 장기가동 원전의 안전관리와 i-SMR 규제기반 구축이 등장했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과 농축·재처리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핵추진잠수함 한 척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해군이 새로운 잠수함을 도입한다는 뜻이 아니다. 핵연료 농축, 원자로 개발과 제작, 방사선 안전, 사용후핵연료 관리, 조선과 방산산업, 한미 원자력협정과 국제 핵비확산체제까지 연결된다. 수십 년에 걸쳐 막대한 국가재정과 외교·안보 역량이 투입되고 국방전략의 기틀까지 달라질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런 국가전략이 국민에게 제시한 국정계획에서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다가 불과 몇 주 뒤 정상외교의 핵심 의제로 등장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속도다.
2026년 5월 26일 정부는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를 열고 핵추진잠수함 사업을 아예 ‘장보고-N사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2030년대 중반 1번함을 진수하고 2030년대 후반 이후 전력화하는 국가 차원의 핵심 전력 획득사업으로 공식화했다. 국방부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 역량을 결집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에서 공식 제안한 지 불과 7개월 만이었다.
원자력은 발전소를 넘어 국가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핵잠수함 하나가 아니다.
지난 몇 년의 정책을 한 장에 펼쳐놓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탈원전 정책 폐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계속운전 확대, 원전 생태계 복원, 원전수출과 i-SMR 개발이 추진됐다. 2024년 10월 신한울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서 정부는 출범 이후 원전 일감 발주액이 8조7천억 원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2025년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대형원전 2기와 0.7GW 규모 SMR도 반영됐다.
그래서 나는 정권이 바뀌면 이 국가적 투자 방향에 대해 적어도 한 번은 종합적인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전개는 달랐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결정된 원전정책을 단순히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자력의 영역 자체를 한술 더 떠서 오히려 더욱 확장하고 있다.
2026년 3월에는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R&D에 머물던 SMR이 산업육성을 위한 제도적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적·경제적 성공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단계에서 법률과 재정지원, 산업생태계가 먼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어 6월 17일 한국수력원자력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경북 영덕에 총 2.8GW 규모의 대형원전 2기, 부산 기장에 0.7GW SMR 1기를 건설하기 위한 후보부지를 선정했다. SMR은 2035년, 대형원전은 2037~2038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 특히 아직 상용운전 실적이 없는 i-SMR을 별도의 실증로 운전 경험 없이 상용발전 대상으로 추진하면서 부산·울산이라는 대규모 인구밀집권과 맞닿은 기장을 후보부지로 선정했다는 점은 더욱 신중한 안전성 검증을 요구한다.
하지만 원자력의 외연은 발전소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2026년 5월 27일 출범한 ‘K-문샷 추진단’의 12대 국가미션에는 ‘한국형 핵융합 소형 실증로 개발·전력 실증’이 들어갔다. 정부의 국가전략기술 추진실적에는 핵융합뿐 아니라 ‘원자력 추진 선박’도 민관협업 핵심미션으로 제시됐다.
이제 조각들을 하나로 맞춰보자.
| 분야 | 윤석열 정부 | 이재명 정부에서 나타난 변화 |
| 대형원전 | 건설재개·신규 확대 | 기존 확대정책 계승·부지선정 단계 진행 |
| SMR | i-SMR R&D 중심 | 특별법 → 실증부지·비용지원 → 공동출자회사 → 특구까지 제도화 |
| 차세대 SMR | 연구개발 | MSR·MMR 등 후속 개발전략 확대 |
| 원자력 추진선 | 초기 기술개발 | SMR 추진선 민관합작 대형 프로젝트 |
| 핵융합 | 장기 R&D | K-문샷 → 소형실증로 → 2035년 준공 → SPC 추진 |
| 핵추진잠수함 | 사실상 공개정책화 못함 | 국가 핵심전력 → 장보고 N사업 → 2030년대 전력화 |
| 농축·재처리 | 한미 협력 문제 | 핵잠연료와 함께 대미 협상의 전략적 현안으로 부상 |
대형원전, 계속운전, 원전수출, i-SMR, 차세대 원자로, 핵융합, 원자력 추진선박, 핵추진잠수함,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까지.
이 정도라면 더 이상 ‘원전정책’이라고만 부르기 어렵다.
원자력을 에너지·산업·과학기술·조선·방산·외교·안보에 걸친 국가전략산업으로 재편하려는 거대한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질문은 시작된다.
기술을 연구하는 것과 국가의 미래를 거는 것은 다르다
나는 원자력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40년 동안 원전 설계와 검사, 안전 분야에서 일하면서 누구보다 이 기술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원자력에는 분명 연구해야 할 분야가 있고, 의료·산업·우주·재료·방사선 이용 등 발전 이외의 분야에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기술도 많다.
그러나 한 기술을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과 그 기술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정해 수십 년의 국가재정과 산업정책을 집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전략산업이라면 무엇보다 냉정한 검증이 필요하다.
대형원전 수출은 정말 국가에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남기는가. 막대한 건설비와 금융비용을 감당하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가. 웨스팅하우스 AP1000 같은 경쟁 원전이 미국 정부의 강력한 생태계구축 지원으로 재등장하면 한국 원전의 독자적 경쟁력은 얼마나 살아남는가.
SMR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수많은 SMR이 아직 경제성을 상업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는데 한국은 왜 실증과 검증보다 산업화와 부지선정부터 서두르는가.
핵융합은 과연 언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그 전기는 얼마짜리인가. 순전력 생산, 삼중수소 자급, 재료수명, 열회수, 정비성, 가동률과 경제성 등 발전소로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2035년 전력 실증이라는 국가목표를 제시할 만큼 기술적 근거는 있는가.
핵추진잠수함에는 더 어려운 질문이 따른다. 연료는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국 국내법, 국제 핵비확산체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용후핵연료와 폐기물은 누가 관리할 것인가. 수십조 원을 투입할 경우 같은 국방비로 확보할 수 있는 다른 전력과의 비용·편익 비교는 이루어졌는가. 외교적 해결없이 먼저 선체부터 짓자는 건 대체 무슨 발상인가.
그리고 원자력이 확대될수록 결국 남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어디에 둘 것인가. 재처리를 한다고 고준위폐기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폐액과 각종 방사성폐기물은 어떻게 처리·저장·처분할 것인가. 시설의 건설과 운영뿐 아니라 해체와 오염제거에 들어갈 장기 비용까지 계산했는가. 세계 각국의 경험을 볼 때 천문학적인 환경·관리 비용이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을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 국토에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질문에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미래산업’, ‘첨단기술’, ‘수출산업’, ‘에너지안보’, ‘자주국방’이라는 수식어만으로 국가의 미래를 걸어서는 안 된다.
국민주권정부라면 더더욱 물어야 한다
그러나 기술과 경제성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누가 도대체 이 국가전략을 결정했는가?
2025년 8월 국민 앞에 제시한 국가비전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였다. 정부는 언제 어디서나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를 일상적으로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운영계획에서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던 핵추진잠수함과 농축·재처리는 언제 국가전략이 되었는가.
누가 처음 제안했는가. 국방부인가, 대통령실인가, 원자력계인가, 조선·방산업계인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인가.
어떤 전문가들이 검토했으며 비용과 편익, 실패 가능성, 다른 대안, 핵비확산과 외교적 비용은 평가했는가. 그리고 그 자료는 왜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는가.
정책 실패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는가.
나는 증거 없이 ‘민·군·산·연·핵 복합체가 밀실에서 국가정책을 결정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결정 과정은 공개되어야 한다.
원자력 산업계와 연구기관, 군과 방산업계, 관료와 정치권이 어떤 경로로 정책을 만들었고 누가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어떤 검증 절차를 거쳐 어떤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로 국가전략으로 채택됐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먼저 설명하고 선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전략을 만든 뒤 정상 간 합의를 통해 되돌리기 어려운 국가적 약속으로 만들고 이를 성과로 발표하는 방식이라면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국정비전으로 내건 정부가 말하는 국민주권의 원칙과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그래서 질문은 “원자력은 나쁜가?”가 아니다.
“원전을 모두 없애야 하는가?”를 주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이 묻고자 하는 것은 훨씬 현실적이고 무거운 질문이다.
대한민국은 왜 원자력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산업에 국가의 미래를 걸 만큼 안전성·경제성·기술성·수출경쟁력·핵폐기물·핵비확산 문제를 충분히 검증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은 어떤 방식으로 이 결정에 참여했는가?
앞으로 이 책에서 원전의 안전 문제부터 수출원전의 경제성, AP1000의 재등장과 한국 원전산업의 경쟁력, SMR의 기술적·경제적 한계, 핵융합의 현실성, 핵추진잠수함과 농축·재처리, 그리고 결국 우리가 떠안을 핵폐기물까지 하나씩 살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전략은 꿈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에 대한 기대만으로 정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특정 산업과 전문가 집단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와 같다고 전제해서도 안 된다.
국가의 미래를 건다는 것은 성공했을 때의 이익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계산한다는 뜻이다. 다른 분야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기회도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정책이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원전 건설비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나도, 수출사업이 손실을 남겨도, SMR이나 핵융합이 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해도, 핵추진잠수함과 농축·재처리 전략이 외교적·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와도 정책을 결정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재정의 부담이 되고, 전기요금이 되고, 처리하지 못한 핵폐기물이 되어 다음 세대에 남는다.
그렇다면 국가전략을 결정할 때는 성공 가능성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왜 지금까지 과거 70년간 성공하지 못했고, 지금은 앞으로 실패 가능성과 실패했을 때의 비용, 정책을 수정하거나 중단할 기준, 그리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수십 년 뒤 국민이 비용을 부담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정책이라면, 그것을 과연 책임 있는 국가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주권자 국민의 동의 없이 일부 산업게 이해관계자에 의해 제안된 정책으로 돈잔치 하고, 무책임하게 결국 주권자 국민에게 나중에 책임만 떠넘기는 정책이 어떻게 합리성을 가질 수 있나.
원자력은 이미 발전소 몇 기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에서 산업으로, 과학기술로, 외교와 안보로 그 경계를 넓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원자력을 중심으로 거대한 국가전략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왜 원자력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우리는 국가의 미래를 걸 만큼 충분히 검증했는가?
국민은 그 결정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실패했을 때, 과연 누가 책임지는가?
지금이라도 RE100이라는 재생에너지 정책 중심으로 회귀하고 잘못된 정책은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