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글판 2023년 겨울편 : 이것은 사랑의 노래
20231205
발꿈치를 들어요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
-이원 시인의 ‘이것은 사랑의 노래' 중에서
1.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가을에 세종대로 네거리에 온 뒤 계절이 바뀌고서야 다시 이곳에 왔다. 겨울 오후의 햇빛이 세종대로 네거리를 퍼져가고 사람의 물결도 햇빛을 따라서 흘러간다.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의 문구를 읽으며 발꿈치를 살짝 들어 보았다.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햇빛이 차지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문구를 덩달아 읽고 디자인을 따라 눈구덩이를 지나가듯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원 시인의 작품 ‘이것은 사랑의 노래’를 읽었다. 사랑의 노래를 낮게 부르며 따뜻한 심장의 사람들과 함께 행진한다. 심장의 박동이 흰 눈길에 흘러 넘친다.
따뜻한 심장의 그들과 함께 능동적, 적극적 자세로 눈길을 걷는다. 그 길은 언제나 미지의 길처럼 가슴 설레게 하고 첫 출발의 의미처럼 새롭다. 올겨울이 희망의 눈으로 내린다.
언덕을 따라 걸었어요 언덕은 없는데 언덕을 걸었어요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양말은 주머니에 넣고 왔어요 발목에 곱게 접어줄 거예요 흰 새여 울지 말아요
바람이에요 처음 보는 청색이에요 뒤덮었어요 언덕은 아직 그곳에 있어요
가느다랗게 소리를 내요 실금이 돼요 한 번 들어간 빛은 되돌아 나오지 않아요
노래 불러요 음이 생겨요 오른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어요 행렬이 돼요
목소리 없이 노래 불러요 허공으로 입술을 만들어요 언덕을 올라요 언덕은 없어요
주머니에 손을 넣어요 새의 발이 가득해요 발꿈치를 들어요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
흰 천을 열어 주세요 뿔이 많이 자랐어요 무등을 태울 수 있어요
무거워진 심장을 데리고 와요
-이원 시인의 ‘이것은 사랑의 노래' 전문
2.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가서 도심을 구경하고 교보문고에서 시집도 한 권 오랜만에 구매했다. 잘 죽어야 한다고 하지만 잘 살지 않고 어찌 잘 죽을 수 있는가? 그런데 어찌해야 잘 살 수 있는가?
나는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여 내 모든 것을 흔적 없이 없애고, 내 주검도 태워 뿌려 달라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미 얘기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 사랑하는 국토를 조금이라도 더 밟아보고 싶어 헤매돈다.
<사랑은 탄생하라> 시집의 구절들 각각이 이해되지 않지만 감각으로 느낀다. 우리는 서로 뜨거운 심장으로 사랑하고, 여기에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심장들과 만나 박동해야 한다. 이원 시인의 뜨거운 심장이 내 심장에 꽂힌다.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람은 절망하라. 시인의 외침이 가슴을 휘젓고 후빈다. 사람은 늘 새롭게 탄생해야 하고, 언제나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해야 하고 사랑도 새롭게 탄생해야 한다. 너와 나의 뜨거운 심장이 사랑의 세상을 창조한다.
발꿈치를 들어요/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