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대첩기념관-팔랑포-옥포항-대우조선해양소-장승포버스터미널
20210810
(남파랑길 19코스 두 번째)
옥포대첩기념관 관람으로 기분이 상기되었다. 그렇지만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하여 더 빨리 걸어야 했다. 장등산 자락 체육공원쉼터에서 기념관 입구 임도로 내려오는 길에서 남파랑길과 반가이 재회하였다. 이제는 팔랑포마을로 향하여 내려간다.
이곳에서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는 남파랑길 19코스의 주요지점은 팔랑포와 옥포항, 옥포수변공원, 이은상의 옥포대첩 시비일 것이다. 그리고 옥포만의 대우조선해양을 빙 에둘러 장승포 고개를 넘어서 장승포로 들어가서는 두모고개의 배 조형물, 거제문화원, 1963년 산사태로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는 추모비일 것이다.
비가 내릴 듯 내릴 듯하다가 빗방울이 듣는다. 그러나 곧 그치고 날씨는 잔뜩 흐리다. 장승포항으로 이어지는 옥포해변 둘레길에서 마음이 풀어진다. 옥포만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건조선들, 옥포만바다 안으로 길게 뻗친 팔랑포방파제와 느태방파제, 그곳에 앙증맞게 세워진 홍등대와 백등대, 전망대에서 뱀쥐섬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한 아낙네, 그 풍경 속에서 나도 그 여인 옆에 앉아 길게 명상하고 싶었다.
옥포항으로 이어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만나러 가는 길'에 세워진 옥포대첩의 여러 명장들의 안내판은 명상을 깨우더니 호국의 현실적 정신을 일깨웠다. 옥포항 수변공원에 강태공들이 여름 오후를 낚시하고 있다. 바다에는 건조하는 거선들이 떠있는데 한편에서는 한껏 세월을 낚는 그들의 한없는 여유가 부러웠지만 남파랑길을 걷는 일 또한 부러움의 대상일 터이다. 수변공원에 세워진 임진왜란해전 첫승전지碑는 이 모든 것들의 개념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듯했다. 그 모은 힘이 수변공원 뒤쪽 옥포대첩공원이라 부르고 싶은 곳에 세워진 이은상의 '옥포대첩' 시비에서 하늘로 비상한다. "한 바다 외로운 섬/ 玉浦야 작은 마을/ 苦難의 역사 위에 네 이름 빛나도다/ 우리 님 첫 번 승첩이 바로 여기더니라"
옥포항을 벗어나 옥포만을 차지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울타리를 돌아간다. 대한민국 중공업 중흥의 조선소가 울산과 거제도에서 건설되어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이 되고 거제도와 울산 시민들의 富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끌었다. 그 빛나는 영광 속에 노동자들의 고통과 이주민들의 비애가 숨어 있다. 그 고통과 비애를 넘어서 서로가 화합하는 모습이 평화일 것이다. 옥포만 해안과 매립지 대우조선해양을 연결하는 열정의 다리 열정교 명칭에 질문과 해답이 모두 들어있다.
서문, 북문이라고 불러야 할 남문, 정문, 동문의 대우조선해양을 돌아간다. 검은 구름 일어나는 옥녀봉은 북쪽에서 옥포만을 굽어보고 있다. 뜨거운 열기는 잠시 구름 속에서 쉼을 찾아야 하는 것, 거제 경제의 열기도, 내닫는 내 발걸음의 분주함도 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길손은 시간에 쫓겨 쉴 수 없다. 대우조선해양 동문을 거쳐 장승포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오른다. 고개를 넘으면 장승포, 이제 목적지는 지척이라 할 수 있다.
'맛과 멋의 도시 장승포'라고 새겨진 무지개문이 길손을 반긴다. 맛과 멋의 도시 무지개문을 통과하여 두모고개로 오른다. 오래 묵은 푸른 잎의 거목과 '만사대길' 목장승과 '소원성취' 목장승 한 쌍을 태운 배 한 척이 두모언덕을 오르고 있다. 길손 또한 힘을 내서 그 배를 앞질러 고개로 올랐다. 10여분이면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다. 제한시각 5시 10분에 충분히 이를 수 있는 4시 45분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산악회버스가 두모고개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럴 수가? 길손은 종착지에 도착하여야 하는데 길을 중단시키는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강자의 폭력을 약자에게 휘둘러댄 나쁜 사람들이었다. 종착지에 도착하지 못한 한 길손을 기다리지 않은 채 제한시각을 20분이나 남겨두고 종착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 사회 다수 권력의 한 모습인가? 소수 약자의 쓸데없는 앙탈일까? 제한시각을 넘겼다면 앙탈일 수 있겠지만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다수 강자들의 폭력에 해당된다. 분노를 가라앉히며 버스에 올랐다.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체육공원쉼터에서 5분 거리 400m 아래에 있는 임도의 이정목. 체육공원쉼터에서 옥포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을 관람하여 돌아왔기에 약 40분이 걸렸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나무계단으로 내려간다.
바다 위의 뗏목배는 배 구성성품을 조립한다고 한다. 뗏목배 뒤쪽에 뱀쥐섬 앞에서 옥포해변둘레 덱(deck) 길이 시작된다. 중앙에 우뚝 솟은 옥녀봉에 봉수대가 있다고 한다. 이 봉수대는 강망산 봉수대와 교신하는 듯하다.
팔랑포방파제의 홍등대와 느태방파제의 백등대가 멋지다. 이곳에서 임진왜란 옥포해전이 벌어져 해전 첫 승리를 거두었다.
왼쪽 뒤 팔각정자 방향으로 진행
전망대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좀더 높이 세우거나 장애물을 없애야 전망대 역할을 할 수 있다.
녹도만호관 정운은 부산 몰운대에 묘소가 있다. 남파랑길 몰운대 구간에서 그를 만나고 다시 설명안판을 보니 반가웠다. 그는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윗길은 옥포항 지름길이고, 남파랑길은 왼쪽길로 내려가 해안 덱(deck) 길로 이어진다.
MSC가 뭐지? 찾아보니 이탈리아와 스위스 합작기업 지중해해운(MSC)의 영문표기라고 한다.
앞쪽에 솟은 산봉은 옥녀봉, 봉수대가 있다고 한다.
뒤쪽에 보이는 높은 빌딩은 대우조선해양 오션프라자이고 오른쪽은 대우조선해양복합업무지원단지 건물이다.
바다에 떠있는 뗏목에서는 배를 조립하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옥포해변둘레길 덱 구간을 거치지 않고 옥포항에 이르는 지름길이 산 위에서 내려온다.
끝에 옥포만의 팔랑포방파제와 느태방파제(오른쪽), 앞에 뱀쥐섬과 오른쪽에 지중해해운 MSC 건조선이 늠름하다.
玉浦大捷(옥포대첩) - 이은상(1903~1982)
한 바다 외로운 섬
玉浦(옥포)야 작은 마슬
苦難(고난)의 역사 위에 네 이름 빛나도다
우리 님 첫 번 승첩이 바로 여기더니라
창파 굽이굽이
나는 저 갈매기
勝戰鼓(승전고) 북소리에 상기도 춤을 추나
우리도 子孫萬代(자손만대)에 님을 기리오리라
남파랑길은 이 공원에서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옥포로로 나아가 대우조선해양 복합업무단지 앞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진행하지 않고 수변공원에서 직진하여 복합업무단지 뒤쪽에서 옥포만을 조망하였다.
이 풍경을 조망한 뒤 복합업무단지 건물 옆으로 빠져나가 거리로 나왔다.
길 건너 왼쪽에 거북선 조형물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위쪽 사거리에서 꺾어 현 위치로 이어지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른쪽 건물 복합업무단지 사이로 빠져 나왔다.
오션프라자 뒤에 복합업무단지 건물이 있다.
아주천 위에 세워진 열정교는 옥포매립지의 대우조선해양 출입구. 남파랑길은 옥포로를 따라 직진한다.
위치로 보면 북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대우조선은 대우조선과 거제가 지킨다', '대우조선 매각 반대' 등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 길은 끝에서 왼쪽으로 구부러져 대우조선해양 정문교차로로 이어진다.
대우조선소가 건립되면서 아양 1·2구와 아주동 탑곡, 장터, 용소 등 자연마을에서 이주한 주민들의 망향공원이 2010년 건립되었다. 망향공원 안의 높이 4m, 폭 1.5m의 망향비가 보인다.
오랜 거목과 한 쌍의 목장승(만사대길과 소원성취)을 태운 배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위쪽은 해성중고등학교 입구, 오른쪽 두모교차로 방향으로 진행
이곳에서 산악회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파랑길 19코스 종점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후 5시 10분 출발한다는 버스가 이곳으로 와서 기다린다. 다른 회원들이 모두 도착하여 출발했다는 것이다. 한 회원이 아직 도착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그 회원을 무시하고 미리 출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만약 출발시각을 어겼다면 그건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기다려 주는 것이 타인 배려의 마음이다. 15분이면 충분히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그것을 사전에 봉쇄해 버리는 꼴을 당했다. 몹시 불쾌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겨우 참고 버스에 올랐다. 그래서 8월 10일의 남파랑길 19코스는 이곳에서 중단되었다.
그날로부터 2주 뒤에 다시 두모고개로 왔다. 남은 남파랑길 19코스를 마친 뒤 20코스를 이어가기로 한다.
1963년 장마와 태풍 셜리의 영향으로 6월 25일 장승포동 474번지(속칭 굴세미골)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여 주민 61명과 경찰관 9명이 희생되었다. 1964년 거제고등학교에 세워진 추모비는 땅 속에 묻고, 자연재해의 희생자의 영령을 추모하는 새 추모비가 2011년 건립되었다.
남파랑길 19코스를 이 위쪽의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이곳에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