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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4-7회 : 육십령-구시봉-영취산-무룡고개
20220403
1.산죽 초록빛 물결과 논개생가지
지난 2월 20일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어 추운 날 함양군 서상면 방향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남덕유산으로 북진하였었다. 4월 3일 화창한 봄날 다시 육십령에 왔다. 이번에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방향의 육십령에서 영취산을 향하여 남진한다. 일행들이 모두 출발한 뒤 맨 뒤에서 출발하였다. 일행은 복원된 백두대간 마루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진한다. 그렇다면 백두대간 육십령 마루금을 놓치게 되는 것, 나는 지난번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서 올라왔던 백두대간 마루금 지점까지 들렀다가 되돌아오기로 하였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백두대간을 세 번 종주하는 산객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백두대간 산줄기를 잇는 것이 백두대간 탐방객의 의무처럼 느껴진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산행 기분은 좋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비켜가는 첫 우회로가 나온다. 육십령-구시봉 가는 능선에서 세 차례 마루금 산봉을 비켜나 우회하는 탐방로가 생겨났다. 실제의 마루금 산행은 그 산봉을 올라서 산줄기를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방금 품었던 백두대간 탐방객의 의무감을 저버리고 탐방객들이 대체로 다니는 우회로를 따라 진행하였다. 맨 뒤쪽에서 출발하여 앞서간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우회로로 진행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린다.
생강나무 노란 꽃이 알싸한 향기를 은은히 날리고 절정을 지난 올괴불나무 아름다운 꽃술들은 이미 시들었다. 깃대봉 아래 깃대봉 샘터에 이르렀다. 표지판에 적힌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글이 탐방객의 마음을 흔든다.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납니다.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의 그리움, 한 모금의 약수물을 마시며 산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여유로운 벗임을 인식하자는 내용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두 바가지의 물을 들이마셨다. 산은 나의 영원한 벗이요 구원자임을 마음 깊이 들이마셨다.
깃대봉을 거쳐 구시봉으로 갈까 하다가 곧바로 왼쪽 깃대봉과 구시봉의 안부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안부에서 구시봉은 지척이다. 해발 1014m 구시봉 정상에 올랐다. 북동쪽으로는 바로 앞 깃대봉과 2월 20일 걸었던 할미봉과 장수덕유산, 남덕유산 능선이 조망되었다. 2월 20일 상고대 활짝 피어난 장수덕유와 남덕유의 풍경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북쪽으로는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육십령터널로 향하고 남쪽으로는 육십령터널을 빠져나온 고속도로가 산청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오늘 산행할 영취산이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 왼쪽에 살그머니 솟아잇고, 그 남쪽에 3월 20일 영취산-백운산-중치 산행 때 올랐던 백운산이 파란 하늘 흰구름 속에 뾰족하게 솟아 있다.
구시봉 정상표석 뒷면에 새겨진 글의 내용을 살핀다.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기를 꽂았다 하여 깃대봉이라 불렸었으나 옛날 한 풍수가 이 산에 올라 이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2008년 1월 6일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이 봉우리의 동쪽은 추상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서쪽은 장계천을 통해 금강으로 물이 흐릅니다."
이 설명을 읽으면 깃대봉이 구시봉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깃대봉과 구시봉은 서로 다른 봉우리라고 한다. 깃대봉은 현 구시봉 동북쪽에 있는 산봉으로 이 산 아래 주둔하고 있던 신라와 백제의 군사들이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여 승전 때마다 정상에 깃대를 꽂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돼지 등 가축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시를 닮아 구시봉이라 이르는 산봉이 현 구시봉이라고 한다.
구시봉을 내려서 봄볕이 따스해져 지열이 솟아오르는 산길을 홀로 걸으며 무념무상이 된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터널 위를 통과하여 철쭉 군락지 위쪽 민령,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와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이곳에서 북쪽 장수군 대곡리 대곡호로 내려가면 논개생가지로 갈 수 있다. 소나무숲을 지나 오르면 위태롭게 솟은 북바위, 북바위에서의 조망이 좋다. 대곡호와 논개생가지가 바로 아래에 조망되고 동쪽의 남덕유산 능선이 멋지게 들어온다. 그렇지만 북바위에서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추락의 위험이 있다.
봄볕 좋은 길을 걷다가 올해 처음으로 노랑제비꽃을 만났다. 윤기 있는 노란빛이 산길 옆 풀밭에서 고혹적으로 반짝인다. 노랑제비꽃은 예전에도 이 구간에서 만난 추억이 있는데 다시 만나니 지난 시절이 추억되며 그 시절의 함께했던 얼굴들이 명멸한다. 육십령-영취산 구간에서 풍경 조망의 전망지 첫 지점이 나온다. 동으로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 서쪽으로 영취산과 백운산, 백두대간 산줄기를 조망하고 북쪽 논개생가지와 대곡저수지는 탁 트여 가슴을 열어준다. 그러나 최고의 전망지는 1차 산죽밭을 지난 암봉에서이다. 이곳에서는 사방이 활짝 열려 지금끼지 걸어온 백두대간 동쪽 산줄기와 앞으로 걸어갈 서쪽 산줄기가 모두 조망되어 백두대간 탐방객의 의지를 북돋워 준다.
내려보이는 논개생가지는 새로이 조성된 곳이며 실제의 논개생가지인 주촌마을은 대곡저수지 건설로 수몰되었다.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전투(1593.7.20~7.27)에서 최경회 장군은 왜군에 항전하다가 진주 남강에 투신하여 죽는다. 진주 촉석루에서 왜군들이 승전 잔치를 벌일 때 최경회 장군의 후실인 주논개는 기생으로 변장하여 바위에 앉아서 왜장을 유인하여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다. 주논개가 남강에 투신한 곳의 바위는 뒷날 의암(義巖)으로 명명되었다. 그 주논개를 기리는 논개생가지가 바로 아래서 탐방객의 마음을 구슬프게 한다.
이번 구간에서는 전망바위를 전후하여 산죽밭이 펼쳐지는데 거의 2km에 가깝다. 푸른 산죽밭에 하얀 눈이 덮인 지난 3월 20일의 백설의 산죽밭 풍경은 추위 속에서 고난을 이겨내는 산죽의 의지로 보였는데, 봄빛에 반짝이는 푸르른 산죽잎들의 물결은 오직 삶의 희열만으로 출렁거리는 모습이다. 이 산죽밭에 비가 방울져 떨어지면 이 산죽잎 빗방울 소리는 삶의 수심을 자아낼 것이다. 키 높게 솟은 산죽군락이 터널을 이루기도 하고, 산비탈에 낮게 펼쳐지기도 하고, 산길 양쪽에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푸른 산죽들이 싱싱하게 길손을 맞이하고 길손을 환송한다. 영취산이 그 앞에서 길손에게 손을 흔든다
영취산은 가까운 듯 멀었다. 마지막 두 개의 산비탈길이 힘들게 한다. 그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영취산 정상에 올라섰다. 2주만에 다시 올라온 영취산, 그때는 흰눈이 쌓여 있었지만 오늘은 봄볕이 내리쬐고 있다. 해발 1075.6m 영취산 정상표석 뒷면에 "산세가 신령스럽고 빼어나다는 뜻의 영취산(靈鷲山)은 불교의 성지 고대 인도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에 있는 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호남과 충남의 산줄기를 이어주는 금남호남정맥의 출발지이자 섬진강,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으로 행정구역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이다." 설명글이 새겨져 있다.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왕사성에 있는 영취산과 산 모양이 닮았다고 하여 영취산이라고 명명된다고 한다. 영취산은 산세가 신령스럽고 빼어나다는 뜻으로, 위키백과에서는 "영취산(靈鷲山)은 인도 비하르 주 라즈기르 시 근처에 위치한 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한 산으로 유명하다. 《법화경》에 그 장면이 묘사된다. 특히 《반야심경》도 이곳에서 설법되었다고 전해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취산은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한 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백두대간 영취산은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이다. 금남호남정맥은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무룡고개-장안산으로 이어져 수분령과 신무산(뜬봉샘, 금강 발원지), 팔공산, 천상데미(데미샘, 섬진강 발원지),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을 거쳐 주화산에서 끝난다. 그리고 주화산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갈라진다. 영취산에서 백운산을 바라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금남호남정맥 산줄기를 따라 무룡고개로 내려간다. 징안산은 앞쪽에서 의젓하게 솟아 있다. 봄날의 백두대간 산행이 짧은 듯 긴 여운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2.산행 과정
전북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에서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방향. 도로 위에 백두대간 마루금 육십령 생태축이 복원되었다.
육십령 표석, 충영탑, 육십령 설명안내판, 백두대간 안내판, 백두대간 연결 나무계단 뎈(deck)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육십령휴게소 매점, 육십령루(오른쪽)
출입문에 '장정 60명이 함께 갈 때 안전하게 지날 수 있는 고개'라는 문구와 30여 명의 장정들이 그려져 있다.
육십령 광장과 백두대간 능선을 이어주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육십령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한 경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고개이다. 남덕유산(1507m)와 백운산(1279m) 안부에 걸쳐서 동쪽은 낙동강, 서쪽은 금강으로 물이 갈라진다. 이곳은 굽이굽이 돌아넘는 높은 산세만큼이나 산짐승과 도둑들이 들끓어 60여 명이 모여야 재를 넘을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용했던 고개로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으며 오늘날 이 고개는 영남과 호남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로 전주-대구간 국도가 지난다.
백두대간은 우리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쳬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길이는 약1440km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이다.
백두대간이란?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면서 국토의 골격을 형성하는 큰 산줄기로 총 길이가 약 1400km에 이릅니다. 백두대간은 1대간 1정간 13정맥 체계로 구성
-백두대간은 지형, 기후, 수계 등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 그리고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1.인문지리 : 백두대간, 정간, 정맥 모두를 산계(山界)의 연속으로 인식하여 우리 국토에 대한 일체감을 갖게 하며 유역을 가르는 분수계로 생활영역과 문화양식의 기반이 됩니다.
2.자연생태 : 생물종이 다양한 핵심 생태축이며, 한강, 낙동강, 금강 등의 발원지로 생명력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입니다.
3.산업 :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림지대로 농림업, 등산, 휴양관광 등 산업의 이용기회를 제공합니다.
4.역사문화 : 백두대간은 민족정기의 상징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 육십령(六十嶺)은?
-육십령은 높이 734m로 육십현(六十峴),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합니다.
-남북으로 지리산과 덕유산, 동서로 호남과 영남을 이어주며, 옛날에는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이루는 요충지였습니다.
-육십령은 그 굽이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안의감영과 장수감영에서 각 60리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
2.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닿을 수 있다는 설
3.옛날에 산적이 많아 산 아래 주막에서 60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떼를 지어 넘어야 화를 피했다는 설
1950년 6.25사변 직후 국군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지구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영령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1954년 6월 16일 장계남산공원에 육군 7839 부대장 대령 김동혁이 세웠으나 백화여고 설립으로 1991년에 덕유산과 인접한 이곳 육십령에 이전하게 되었다. 당시 비문에는 "육군 소령 신창식 이하 55명은 덕유산지구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고이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본 충영탑을 2003년 12월 8일 현충시설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인 충영탑 뒤쪽 백두대간 능선으로 오른다.
1950년 6.25사변 직후 국군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지구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영령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1954년 6월 16일 장계 남산공원에 육군 7839 부대장 대령 김동혁이 세웠으나 백화여고 설립으로 1991년에 덕유산과 인접한 이곳 육십령에 이전하게 되었다. 당시 비문에는 "육군 소령 신창식 이하 55명은 덕유산지구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고이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많은 군민이 이곳을 찾아 참배하고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으며, 후세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다. 2003년 11월 4일 장수 군수
1925년경 도로개설로 단절되고 지형과 경관이 훼손된 백두대간 육십령 마루금을 원래상태에 가깝게 복원하였다고 한다.
지난 번 육십령에서 남덕유산 구간을 산행할 때 경남 함양군 서상면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 육십령 능선 북쪽 지점에서 백두대간산행을 북진하였기에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산행을 그 지점까지 가서 남진하려고 육십령 북쪽 지점으로 간다.
육십령은 영남 안의감영에서 육십리이자 호남 장수감영에서도 60리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과 고개를 넘기 위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해서 육십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 고개에 산적이 많아 60명이 모여야 비로소 넘었다는 얘기 등 다양한 전설이 깃든 곳이다. <동국여지승람>과 <경상도지리지>에는 육십현(六十峴), 산경표에는 육십치(六十峙), <대동여지도>에는 육복치(六卜峙)로 표기되고 있다.
백운산에서 남덕유산 구간은 봉화산부터 시작되어 백운산, 영취산, 구시봉, 육십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대한 흐름과 덕유산의 웅장한 산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두대간 마루금 주변으로 많은 채석장들이 위치한 곳이다.
2월 20일 저 지점에서 백두대간 산줄기를 이어 남덕유산으로 북진하였다.
걍님 힘양군 서상면 상남리 방향의 육십령에서 이곳으로 2월 20일 백두대간 마루금에 올라섰었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영취산을 향하여 남진한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육십령 광장 충영탑에서 올라오는 백두대간 육십령 마루금 남쪽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백두대간 육십령 마루금 남쪽 지점에서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육십령마을을 내려보았다. 맨 뒤 왼쪽에 남덕유산 산줄기가 살짝 보인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육십령 광장에서 백두대간 연결 나무계단으로 올라오는 곳이다. 무덤 4기가 봉안되어 있다.
백두대간 육십령-구시봉-영취산 구간을 산행하고 백두대간에서 하산하여 무룡고개로 내려간다. 11.5km 거리이다.
이번 구간에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지 않고 우회하는 산길이 많다. 산봉으로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우회지점의 이정목에 깃대봉 1.9km라고 적혀 있다. 깃대봉(중앙), 그 왼쪽에 구시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깃대봉1.4km 지점의 이정목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다시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500m를 우회하여 깃대봉 1km 지점에서 백두대간 마루금과 재회한다. 왼쪽으로 산삼자연휴양림 가는 길이라 표시되어 있다.
한창때를 지난 올괴불나무 아름다운 꽃들이 시들고 있다.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서부지방산림관리청 무주국유림관리소
깃대봉 0.5km 지점이다. 깃대봉을 거쳐 구시봉으로 가려면 오른쪽 방향이지만 곧바로 왼쪽 구시봉 방향으로 향한다.
깃대봉을 우회하며 구시봉을 올려보았다.
구시봉을 오르다 깃대봉을 뒤돌아보았다. 뒤쪽에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들어온다.
해발 1014m 구시봉의 정상표석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기를 꽂았다 하여 깃대봉이라 불렸었으나 옛날 한 풍수가 이 산에 올라 이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2008년 1월 6일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이 봉우리의 동쪽은 추상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서쪽은 장계천을 통해 금강으로 물이 흐릅니다."(정상표석 뒷면 설명글)
앞에 깃대봉, 오른쪽 맨 뒤에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 그 앞에 할미봉, 남덕유산-장수덕유산-할미봉-육십령-구시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조망된다.
중앙 오른쪽에 금남호남정맥의 장인신이 의젓하다. 장안산 왼쪽에 영취산 그 사이에 움푹 파인 곳이 무룡고개, 오늘 하산지점이다. 중앙 왼쪽에 백운산. 지난 3월 20일, 춘설이 내려 눈꽃과 서리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영취산-백운산-중치 산행이 추억된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육십령터널을 향한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북쪽에서 육십령터널을 빠져 나와서 남쪽으로 향한다. 왼쪽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에 논개 묘가 있다.
오른쪽에 우뚝 솟은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사, 그 왼쪽 움푹 파인 곳이 무룡고개, 그 왼쪽 산봉이 영취산으로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 그리고 중앙 왼쪽에 백운산이 보인다. 솔숲이 있는 곳이 대곡호 갈림목이고, 그 아래 움푹 들어간 곳이 민령인 듯. 북바위는 앞쪽 높은 두 산봉 아래 오른쪽으로 튀어나온 바위인 듯.
이 뒤 소나무 숲이 민령, 장수와 함양을 잇는 고개이다.
해발 840m 민령이라고 이정목 기둥에 적혀 있다.
소나무가 멋지고 그 아래가 좋은 쉼터가 되는 듯.
장수와 함양을 잇는 고개로 민령으로 이어진다.
대곡호 방향으로 내려가서 논개 생가지로 갈 수 있다.
알싸한 향기가 은근하게 풍긴다.
장수덕유산, 남덕유산, 구시봉이 한눈에 조망된다.
맨 오른쪽의 장안산, 그 왼쪽의 영취산, 중앙 왼쪽의 백운산. 영취산-백운산의 백두대간 능선이 꿈틀거린다.
육십령 6.5km, 영취산 6.5km 지점으로 오늘 산행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 1km가 넘는 길게 펼쳐진 푸른 산죽밭을 통과하여 전망바위봉으로 향한다.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좌표가 되어 준다. 왼쪽의 저수지는 대곡호, 논개 생가지가 있는 주촌마을은 수몰되었다.
논개가 태어난 마을은 수몰되었고, 그 왼쪽으로 서쪽 지역 대곡리에 새로이 조성된 논개 생가지가 보인다.
왼쪽 앞의 덕운봉은 백두대간 능선에서 벗어나 있고, 중앙 맨 뒤쪽에 보이는 산은 백두대간의 백운산이다.
덕운봉이라 적혀 있는 이정목이 있는 산봉은 덕운봉이 아니고 덕운봉 갈림목 산봉이다.
왼쪽 산비탈로 이어지는 능선에 덕운봉이 있다. 종주대원 한 분이 다리에 쥐가 나서 후미대장님이 응급치료 중이다.
후미대장님의 응급치료를 받은 종주대원이 출발 준비를 한다.
영취산 1.4km 지점에 논개생가지 갈림목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4.6km 지점에 논개생가지가 있다.
산세가 신령스럽고 빼어나다는 뜻의 영취산은 불교의 성지 고대 인도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에 있는 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호남과 충남의 산줄기를 이어주는 금남호남정맥의 출발지이자 섬진강,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으로 행정구역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이다.
영취산(1076m)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인도의 영취산과 산 모양이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연유되었다.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맥을 뻗어 장안산과 영취산을 거치고, 백운산을 통해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위치에 있는 산이다. 이러한 연유로 <대동여지도>에서는 백운산보다 영취산이 더 뚜렷하고 중요하게 나타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취산이 장수의 진산으로 표기되고 있다.
영취산의 동쪽 사면은 완만한 구릉지와 분지가 발달하여 전답이 있고 마을과 면 소재지가 형성되었지만 서쪽 사면에는 규모가 작은 산촌만 군데군데 이루어져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골격의 틀 중에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된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4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약 684km이다.
이곳 영취산(1076m)은 좌측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하며 동쪽으로는 낙동강, 서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는 3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영취산-육십령 약 11km(7시간), 영취산-장안산 약 3.5km(2시간), 영취산-백운산 약 3.5km(2시간)
영취산-중치 8.2km는 지난 3월 20일에 산행을 마쳤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백운산이 보인다.
영취산에서 분기하는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이 서쪽으로 벋어 있다.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 산줄기를 이어 무룡고개로 내려간다.
무룡고개-영취산에 뎈길이 조성되었다. 영취산 마지막 오르는 길은 뎈길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
백두대간의 남부 구간에 위치한 영취산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에 솟아 있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갈리는 분기점으로 서쪽에 위치한 장안산과 이어지면서 낙동강, 금강,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남덕유산이, 남쪽으로 백운산이 조망된다.
백두대간은 우리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쳬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길이는 약1440km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이 신령스럽게 여겼던 무룡고개는 풍수지리상 입수라고 한다. 무룡고개의 무룡이란 용이 춤을 춘다라는 의미다. 도교적으로 산맥이 흐르는 형태가 마치 용이 춤듯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룡고개를 무룡궁이라 부르는 것은 풍수지리상 큰 명당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룡고개는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으로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분기되어 뻗어나온 금남호남정맥을 무룡봉과 장안산으로 연결시켜 주는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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