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한때
池 存
참으로 오랜만에 대구에 와본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근무지가 동촌 K2 비행장이었으니, 정확히 38년 만인 셈이다. 금년 봄, 딸네집이 사위의 직장을 따라 옮겨온 뒤 처음 방문길이다. 도심지를 벗어나 신천(新川) 팔달교를 지나는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광들 속에서, 젊은 시절 한때의 내 모습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매사에 패기가 넘쳤던 당년 25세의 청년장교였다. 사관학교라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규제되었던 금기사항의 빗장이 봇물처럼 풀리던 때였다. 처음 받아보는 봉급과 수당으로 주머니는 두툼했고, 별로 잘 생기기지는 않았지만, 매끈한 얼굴에 헌출한 모습의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른 푸른 제복의 사나이는 어디를 가나 인기였다. 매일 일과가 끝나는 저녁이면 독신자 숙소 앞 정류장에서 외출버스를 탔고, 번화가인 향촌동(鄕村洞)과 동성로(東城路)를 그야말로 주름잡았다.
시작은 언제나 단골 ‘목화’ 다방에서부터였다. 육중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하늘거리는 모시한복 자락을 돌려 잡은 맵시에, 나름대로 제법 멋을 부린 마담이, 쪼르르 다가와 반겼고, 옆자리에 앉아서 코티 분 냄새를 풍기며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터키필터 청자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고 한 개비를 뽑아 물면, 어느새 마담은 지포라이터에 불을 댕겼고, 여느 때같이 위티(;위스키와 홍차)를 주문하고는 자기 몫으로 쌍화차 한잔을 더 얹었다.
이 무렵, 우연한 기회에 미군 클럽 영화관에서 에드먼드 퍼돔과 앤 블리스가 주연한 ‘황태자의 첫사랑’을 보게 되었다. 프러시아 칼즈버그 왕국의 계승자 칼의 약혼 연회장에서, 하우슨 왕국의 조나 공주와 함께 추는 왈츠 장면에 매혹된 나는, 동촌(東村) 유원지 건너편의 무도 연습장을 찾아 사교댄스를 배웠다. 체육대회 응원 치어리더 출신으로 박자 개념은 익히 습득되어 있었고, 유형별로 리듬에 맞추어 스텝을 놓는 동작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도가 빨라서 단 두 달의 교습기간으로 고난도(高亂道)인 탱고와 왈츠의 응용동작을 제법 멋 부리면서 수료하였다.
당시 사회 환경은, 남정네들은 월남 전쟁터와 사우디 산업현장에서 피와 구슬땀을 쏟고 있던 시절이었다. 분에 넘친 걸맞지 않은 외화 송금 통장을 손에 쥔 아낙네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찾아드는 곳이 카바레였다. 황당한 스캔들은 주간지(週刊紙)의 단골 메뉴였고, 귀국하여 벌어지는 가정 파탄의 스토리가 사회 문제화 되었던 시기였다. 따라서 카바레에 드나드는 춤 족(族)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의식이 팽배하던 때였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품격있는 파티장의 우아한 크리스털 산데리아 불빛 아래서, 한 쌍의 백조처럼 경쾌하게 돌아가는 스케이팅 왈츠를 추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춤은 젊음을 보내는 나에게 습득되어야할 필연의 예술 학습이었다.
위티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어둠이 내려 앉으면, 다음 코스는 S 관광호텔의 지하에 있는 댄스 카바레였다. 보통 카바레에 들어서면, 온통 어둠침침한 조명인듯하여도, 밴드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무대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양분되어 있다. 밝은 프로어는 춤을 예술로 전이(轉移)하려는 무도인들의 마당이고, 한편은 무료한 시간을 엔조이하려는 춤꾼들의 자리이다. 휘장에 가려진 희미한 꽃 등불 아래서는 끈끈한 템포의 지루박, 트로트, 부르스가 돌아가고, 서로 밀착되어 외로움을 달래는 기러기들을 노리는 꽃뱀과 강남 제비들이 득실거린다. 반면에 무대 주위는 날렵한 동작에 아름다운 춤 예술을 창조하는 댄서들이 상대 파트너와 엄격한 룰을 유지하는 격조를 갖추는 무도 연습장이다.
나는 항상 밝은 플로어에서 선수 무희(舞姬)를 부킹하여 빠른 스텝의 난해한 탱고와 스케이팅 왈츠만을 고집하였다. 그리고는 천장에 장식된 거울에 비치는 나와 파트너의 원(圓)의 도형 같은 실선을 바라보면서, ‘황태자의 첫사랑’의 장면을 연상하고는 하였다. 두 마리의 나비가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돌아 들때에 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은, 댄서의 드레스를 부풀려 휘감았다. 한 쌍의 아름다운 가늠선의 궤적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빙빙 천장과 플로어를 넘나들었다.
시쳇말로 물이 좋은 카바레는 건전한 제비(;남자 댄서)의 확보가 관건이다. 한 번 주간지의 스캔들에 휘말리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나와 같은 신분이 보증되는 젊은이는 인기가 대단하였다. 더군다나 춤 실력과 매너가 수준급의 경지로 뜨고 보니, 좁은 바닥에 퍼진 소문으로 여기저기 초빙이 쇄도하였다. 나는 매일 저녁, 골덴 세루 조끼 양복에 분홍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서, 이 고장 몇 군데의 카바레를 훨훨 날아다녔다.
그렇게 보내기를 두해쯤 되던 어느 늦은 저녁, 카바레 현관에서 수개월 전에 월남 사이공으로 참전한 아는 분의 아주머니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민망하고 당황스러워서 서로가 모른척하고 비켜서 지나갔지만, 그 날 이후 카바레에 드나든다는 소문이 부대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춤 예술의 승화를 지향하는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나갔다. 급기야는 객관적인 신분의 위상을 유지하라는 가까운 선배의 충고가 있었고, 나는 그 세계에서 발을 끊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다양한 분위기의 파티 장소에 참석했었다. 가끔 맞이하는 춤이 있는 사교 모임에서도 나는 스스럼없이 여유로울 수 있었고, 엄격한 룰을 유지하는 무도인의 정도(正道)를 견지할 수도 있었다. 이는 오로지 이곳에서 익혔던 올바른 정예의 학습효과 덕분이 아니었는가 싶다. 아마도 춤은 꼭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나온 내 인생 여정에 분명히 보탬이 되었으리라.
옆자리의 아내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몰히 하기에,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느냐고 어깨를 흔든다. 지난 시절의 단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내 무릎위에는, 귀여운 손녀가 할아버지 얼굴에 보드라운 볼을 비비면서 연신 조잘거린다. 어느새 차는 딸네 집 아파트 골목으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한바탕 봄꿈을 꾼 듯, 지난날의 잔영(殘影)이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겹쳐지는 차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가슴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허우룩한지 모르겠다.
(2008년 9월)
첫댓글 누구나 隨筆을 시작하면서 한번은 이런 제목으로 쓴다드군요. 그래서 저도 '그 시절 한때' 입니다. 수려하신 수필 作家님들 계시는데 내용에 개의치 않고 용기를 냈습니다. 신변잡기로 시작하는 習作인 줄 압니다. 선배님들의 기탄 없는 쓴소리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지존님과 친하려면 촘도 배워야겠네요. 이 글 솜씨는 '그옛날 한 때'의 춤 솜씨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못하시는게 뭡니까? 노래도 잘 부르시고, 일도 잘하시고, 춤도 잘 추시고, 남의 인생도 풀어주시고 ,게다가 수필까지? 너무 여러가지로 기죽이지 맙시다요. 건넌방 방장님.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제대로 하는 것은 한가지도 없습니다. 한우물을 파지 못해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고상한 수필 Cafe에 이런글 올려도 돼나 망설망설하다가 또한번 더 저희 건넌방 방장님 봄비님 빽 믿고 등재하여 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흥겨운 무도회장! 그래도 절도있는 그 시절의 한 때! 그래서 오늘의 허우룩함이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문장의 흐름과 표현에 경탄을 마지 않습니다. 또 일을 저지르셨네요.
'미소님' 걸맞지 않는 과찬이심을 제가 아옵니다. 저는 아직 수필의 현주소를 모르는 천방지축입니다. 오늘 아침 어느 知人이 R.M. 릴케의 詩를 보내왔군요. ".....나뭇잎이 떨어집니다/아슬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가까이 닥아오는 가을이 쓸쓸합니다. 또 한해가 기우는 군요.
낭만에 대하여...그 시절의 위티와 마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아하게 춤을 추시는 한쌍의 백조를 상상하면서 뭔가 관능적인 기운이 몸안에 퍼지는 것을 느낍니다. 흐름도 유연하고, 뛰는 맥박과 숨결이 느껴지는 빼어난 글 입니다. 월요일 아침 좋은 글 한편으로 기분이 UP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글 쓰면서 줄곳 머리에는 그 옛날 다방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최백호의 탱고 리듬 '낭만에 대하여'를 흥얼거렸습니다. 李작가님이 저의 마음을 꽤뚫어 보심인지, 아니면 제가 심오하신 수필 작가님 생각으로 한치라도 닥아가고 있음인지.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저의 바램은 부족한 지적이온데. 기대하겠습니다.
창 밖에는 비가 예쁘게 내리고, 까페의 배경음악이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선생님의 글을 읽습니다. 영화 '카사불랑카'의 장면도 겹쳐지고요... 화려했던 그 시절을 담담하면서 솔직하게 풀어내려 무난하면서도 여운이 있습니다. 저도 '무도인의 정도'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선생님만이 쓸 수 있는 글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몸치라 더욱 부럽네요. 선생님의 무대를 언제 볼 수 있으려나??!!
ㅎㅎㅎ 일단 이미지 사진부터 보시라우요. 흥겨운 모임에서 움직이는 제스쳐가 느껴질 것입니다.
길이 아닌 곳에는 발을 놓지 않으시는 정확한 성품의 Maya님께서 담은 좋은 코멘트, 용기를 주시고자 하심인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 시절의 한때, 젊음을 만끽한 지존님이 부럽습니다. 그 즈음 저도 동촌에서 근무했지만, 겨울에는 동촌강에서 스케이트를, 여름이면 팔공산 동화사며 명산대천을 찾았는데... . 유연한 필치로 흥미로운 추억의 한 자락을 살짝 보여주신 글솜씨가 돋보입니다.
ㅋㅋㅋ, 그러니까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계시면서, 한 분은 교과서적이셨고, 다른 분은 참고서 쪽이었네요. 재미 있어라. 저는 참고서도 교과서도 다 좋아했는데 주머니가 비어서 둘다 제대로 못 했습니다. 흑 흑 흑,,,
흔히들 얘기하는 정도(正道) 와 외도(外道)의 차이가 아닐가요. 엄지=정도, 지존=외도
봄 비= (정도+외도), 들미소와 한별은??? 궁금하네.
들미소=(정도+정도+외도)-정도
갑자기 정도냐 외도냐로 끌고 가시네요. 저는 어려서 뭘 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존님도 무도의 정도를 고집하셨는데... .
소인이 아는 엄지님은 η = (2α x 2γ)² - 4(α²+ γ²) [정의; η=엄지, α=정도, γ=외도] 입니다.
ㅎㅎㅎ저도 방정식으로 풀고 싶었는데 컴에 미숙해서 기호들을 어떻게 입력하는지 몰라서... 저는 ctri F10 밖에 활용할 줄 모르거든요. 지존님, 방법 좀 가르쳐 주셔요. 음표 입력도...^*^
방정식대로라면 그런대로 숫적으로는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지만, 기호의 의미부여에서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본전도 찾지 못할 수도... .
엄지+ 지존+ 들미소+ 봄비 = 알파(Α)+오메가(Ω)=해바라기 꽃피는 마을 ---이렇게 마무리할까요?
그럼, 엄지+지존= 알파(α), 들미소+봄비= 오메가(Ω) 라는 등식이 성립되네요.... 요즈음 '오메가 쓰리'가 좋다고 많이들 드시더군요... 추석 효도 선물로
그시절이 영화처럼그려집니다. 팔방미인이셨네요. 글도 재미있고 구성도 잘된것 같습니다..하와이대학생(백수의 1단계 )도 분발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록의 바다님, 읽으시고 코멘트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띄웠죠? 그렇게 살다보니 끝을 본것은 하나도 없답니다. 그저 흘러흐러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와! 정말 그 시절 떠올리면 흥겹고 멋있겠어요. 동촌 비행장은 서울ㅡ부산 고속도로 우편에 있지요? 쌔앵하고 팬텀기가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면 참 멋있던데....그 옆엔 금호강이 흐르고 저도 춤을 못추다보니 춤 잘추고 싶어질 때가 있더라구요. 사실 그것도 사교문화의 큰 부분인데..언제 배우나???
F-4 팬텀기, 동촌 K2 비행장,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금호강을 기억하시는 아쿠아님, 공군을 많이 아시는 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존님, 아니 우리 방장님 인기가 대단하십니다. 25세 청년 장교, 제복의 사나이.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셨을 그 한 때, 잘 읽었습니다. 얼마나 멋있었을까? 한 쌍의 백조처럼 경쾌하게 돌아가는 스케이팅 왈츠. 영화를 본 느낌입니다.
한선생님, 저는 房長으로써 아직 자격 미달입니다. 大 작가님들 사이에 끼어 제대로 숨도 못쉬고 있는데. 같은 방 쓰게 된것도 緣입니다. 제발 두 선배님들께서 제 글의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느분은 주제가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왜 약한지, 어디를 손데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어머 제가 100번째 손님입니다. 99에 들어와서 101까지 ㅎㅎㅎ 뭐 시상품 없나요? 주제가 약하다구요? 글세요 저는 주제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라 봅니다. 그 어떤 추억도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된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수필에 눈에 보이게 주제를 넣는 것도 저는 좀 싫어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주제를 파악하게 하는 수필이 더 좋거든요. 이 글 읽으며 저도 제 추억에 잠겼었습니다. 행복했지요. 수필에서 규범이나 도덕적인 삶에 지침같은 것을 느껴야 할까요?
감사합니다. 제 생각도 그런뜻을 함축하고 독자 스스로 각자의 추억에 젖으리라는 여운이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구태어 가슴 속을 열어서 전부를 보여주어야만 하는지? 지적하신 그분의 참뜻을 알고 싶습니다.
댓글 지각생입니다.동촌 K2 비행장ㅡ신천(新川) 팔달교ㅡ 향촌동(鄕村洞)과 동성로(東城路)ㅡ‘목화’ 다방ㅡ S 관광호텔//제가 태어나 자란 신천주변에서의 이야기 참 정겹게 읽었습니다. 가끔 어머니 따라 복잡한 동성로를 걷다보면 멋진 푸른 제복의 사나이들이 몰려 지나가기도 했던 기억이납니다.맥심,맥향다방도 생각나고,송죽,만경관,대구,아카데미,한일극장도...,녹향,하이마트음악감상실은 자주 가던곳이였지요.지존님 덕분에 새삼 기억을 들추며 미소를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이한재 선생님, 등단 축하 모임 사진에 이찬웅 작가님 오른쪽에 앉으신 분홍색 옷을 입은 분이 '천사님'이시죠? 세상을 꺼꾸로 사시는가 봐요. 저는 누군가 한참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하이마트 앞에 대구극장이 있었습니다. 극장에 불이 났을때 하이마트에서 음악에 취해 있던 저는 2층 창문을 넘어 지붕을 타고 탈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졸작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08:34
남녀 7세 부동석이라 저는 여자 손을 잡는데 부끄그럼에 내숭을 떨긴 해도 일단 스텝을 밟기하면 탱고 지리박 차차 등 은 박력있게 전진하였는데 요즘은 어느 누가 내 손 잡아줄꼬? 공군, 해군 장교와 춤! 정말 춤예술에 어울리는 이미지 가 선 합니다. 옛날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한 춤 하면 바람둥이 박인수 생각이 나네요.지존님은 정말 그 당시 춤 예술을 승화시키기 위하여 황진이 같은 동반자가 생겨 유혹이라도 있었으면 춤 예술가가 되었을 되었을까. 서화담이 되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여 봅니다.
어른님의 화려했던 시절의 여운을 남겨주셨군요. 그 시절 스텝을 박력있게 전진하시는 산방산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닉네임이 딱 어울리는 멋진 분이셨군요. 청년장교의 프라이버시와 건전한 제비, 안봐도 눈에 선한 풍경 그리고 꿈에서 깨는 말미도 멋진 신사의 마무리 답습니다. 쉽게 쓰신 습작 같고 깔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