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학 산악부 OB 회는
제작년부터 1년에 한 차례나마 지방에 근무하는 OB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모임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첫 번째 행사는 충남 대전에서 계룡산을, 작년에는 10월에 경남경찰청 OB 주관으로 창원 정병산을 올랐었다.
올해는 전북경찰청에서 근무하는 동문이 주관하기로 하였고,
마침 산악부 창설 주장으로 진안에 사는 1기 박승용 님이 마이산 산행을 제안하고 자택을 숙소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일정 10월 22~23일
장소 진안 마이산(숙박 진안 연장리-천주교 진안성당 한들 공소 교육관)
참석 20명
01기 박승용(전북 진안)
02기 함현배(전북 전주)
04기 나성수(서울)
07기 최성규(전북 무주)
08기 이무근과 부인(경북)
10기 박휴성(전북) 임민철(전남 광주)
11기 변민선과 아들(서울)
14기 장요한(서울)
15기 이민화와 부인, 딸(경북)
17기 김남수(부산)
31기 조동호(부산) 이진희(전북)
32기 박상재(서울) 라연우(전북) 조새롬(서울)
내가 다녀본 전북 지역의 산은 대둔산과 덕유산 한두 차례다.
그리고 지난 칠월에 신도리코 열린캠프 가족들과 다녀온 천태산, 또 오래전 무주 스키장에 몇 차례 다녔던 기억뿐이다.
진안과 마이산은 이번이 초행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전주까지는 고속버스로, 전주에서 진안까지는 시외버스로 왔다.
전주행 고속버스는 십 분 간격으로, 전주에서 진안행 시외버스도 거의 15분 간격으로 계속 이어진다.
진안까지는 네 시간 조금 더 걸렸나 보다. 박승용 님이 버스터미널까지 농부 트럭을 몰고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박승용 님은 경찰대학교 1기생으로 3학년 때인 1983년에 산악부 동아리를 만들며 나와 인연을 맺은 산 친구다.
2년 전, 고향인 진안에서 경찰서장 임기를 마치고 일찍 퇴직하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마디로 귀촌이다.
두 해 동안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젠 어엿한 농부티가 난다.
밭을 육천 평가량 임대하여 수박과 고구마 농사를 짓는 데 워낙 열공하며 일한 탓에 정착이 꽤 빨랐다.
서장으로 일할 때 덕을 많이 쌓은 덕분도 있지만 타고난 근면 성실함으로 주민들께도 칭찬이 많은 모양이다.
사는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참 예쁘다.
천주교 진안성당 한들 공소 사제관을 빌려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진안 인근에서 가장 예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들 공소는 1922년에 터를 잡아 오늘에 이른 성당이다. (1922년 12월 22일 신축, 1959년 7월20일 재신축, 1985년부터 공소로 관리)
삼십여 년 전부터 공소로 비워둔 것인데 작년에 우연히 승용 님께 차지가 돌아왔단다.
부부가 손수 페인팅하며 고쳐서 멋진 집을 꾸미고 텃밭까지 만들어 두었다.
도우려고 오신 이웃 지인께서는 바비큐 그릴에 숯불을 피우고 승용 님 부인과 함께 벌써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다.
다섯 시가 넘어서자 주관 팀인 전북경찰청 팀이 도착한다. 뒤이어 서울팀이 오고…
우선 잘 구워진 흑돼지 바비큐 안주와 복분자 술로 만남을 축하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전국 각지로 흩어져 일하고 그동안은 선후배의 만남 행사도 없었던 터였다.
학교에서 기숙하며 청년 시절을 동아리로 어울렸던 선후배가 세속의 바쁜 삶에 휩쓸려 몇 년을 잊고 살다 이루어진 깜짝 만남이다.
늦은 저녁까지 스무여 명이 모였다. (20기부터 30기까지만 전멸이다. )
야외 식탁에 마련한 차림 상이 호화롭다.
집주인이 마련한 흑돼지 바비큐 외에 함현배 님이 대하와 전어를 준비하였고 무주서장으로 일하는 최성규 님은 송이를 가져왔다.
박승용 님이 봄부터 산에서 직겁 채취했다는 드릅과 고사리, 텃밭에 가꾼 상추와 고수 외에 묵은지까지 상에 올라 젓가락을 분주하게 한다.
삼십여 년의 나이 차이가 있는 만남에도 산과 등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덕분인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
먼 나이의 선후배는 서로를 소개하고 가까운 기수끼리 학창시절 등반 추억을 얘기하는 동안 밤이 깊어간다.
우리끼리만 아는 산 노래 합창으로 함께 온 가족에게 산악 동아리 긍지도 자랑하고…
구름 덮은 밤이라 별빛을 볼 수 없었던 게 조금 안타까웠다.
2기 함현배 님 술버릇은 참 칭찬할 만하다. ㅎㅎ...
술이 조금 과하다 싶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잠들어 버린다.
다른 이들도 어울린 기쁨에 모두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셨는데 아마 자연과 어울렸기에 견디었던 것 같다.
자정쯤까지 어울리고 상을 치웠다.
마당 정자에서 비박을 했던 덕분에 오랜만에 새벽 아침 지저귀는 새 노래 소리로 잠이 깼다.
그 시간에 승용 님은 벌써 수확 끝낸 고구마밭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온다.
<나와 함께 바깥에서 잠 잔 4기 나성수 님, 술이 과했던지 아침에 조금 힘들어 했다.>
부인들의 수고 덕분에 올갱이(다슬기) 국으로 해장하고 마이산으로 향했다.
개인 일로 엊저녁에 못 온 멤버 두 분이 마이산 입구에서 합류한다.
대구에서 온 8기 이무근 님 부부와 서울에서 온 32기 조새롬 님이다.
마이산, 이곳도 조금씩 가을 물감이 번지고 있다.
박승용 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마이산을 조금씩 알아간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암, 수 마이산 중에 작년부터 등산로를 개방했다는 암마이산을 올랐다.
주차장 고도가 어느 정도 되고 그리 높은 산이 아니지만 경사가 급하고 정상까지 산행길이 모두 계단이다.
무릎이 고장 난 내겐 무척 벅찬 하이킹이다. 게다가 줄이어 오르는 뒤 분에게 폐가 될까 하여 쉬 멈추지도 못한다. 에고 힘들어라!
고원에 융기하여 솟은 봉우리라 주변 조망이 시원하다.
옆에 우뚝선 수마이산의 모습도 일품이다. (세계 최대의 남근 봉이라는 속설도 있다)
세 시간가량의 계단 오르내림으로 산행을 마쳤다.
<암마이산 정상에서>
<암마이산 오르는 중에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수마이산>
비가 몇 방울 떨어지는 듯했지만 그 정도로 그치고 적당한 바람에 해 가린 날씨도 큰 도움이었다.
비록 스톡에 의지하여 이를 악물고 오르내린 산행이지만 성취감은 언제나 뿌듯하다.
진안 읍내의 맛집 머우네에서 '어죽' 점심으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17기 김남수 님이 골든벨을 흔들어 총무 장요한 님을 기쁘게 했다.
돌아오는 길, 조새롬 님의 모닝에 편승하여 천안아산역까지, 그리고 전철로 서울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니 옆에 앉은 분이 반대편 빈자리로 옮겨가며 냄새난다고 투덜거린다. 까짓 그런 면박이야 오래전부터 철판이지만…
문득 이틀 산행 동안 후배들에게 손가락질당할 실수가 없었는지 걱정이 든다.
그들만의 모임에 주책없이 끼어든 것은 아닌지, 다른 이의 대화를 막고 혼자 떠들지나 않았는지, 나이 든 이로써 체통은 지켰는지…
아차…, 떠나올 때 이번 모임 뒷바라지로 가장 고생한 박승용 님 부인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리는 실례를 저질렀구나!
그래도 오랜 산 벗이라고, 등산학교 선생님이었다며 함께 놀자 불러준 후배 아우들이 고맙다.
자각하자. 입은 닫고 지갑만 열어야 할 나이다!
마이산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는 두 개의 바위봉우리로, 각각 수마이산과 암마이산이라고 한다.
봉우리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불렸고, 조선 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높이는 암마이산 685m, 수마이산 678m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礫岩)이다. 수마이산 중턱의 화암 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이기 때문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4월에는 진입로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 축제가 열린다. 수마이산은 오를 수 없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안갯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 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이산에 대해
“현의 남쪽 7리에 돌산이 하나 있는데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으므로 용출봉이라 이름하였다.
높이 솟은 봉우리 중에서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는데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 마치 깎아서 만든 것 같다.
그 높이는 1,000길이나 되고 꼭대기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사면이 준절(峻絶)하여 사람들이 오를 수 없고 오직 모봉(母峯)의 북쪽 언덕으로만 오를 수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동봉(東峯) 위에는 작은 못이 있고,
서봉(西峯)의 정상은 평평하고 샘이 있어서 적병을 피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날이 가물어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라고 실려 있다.
암마이봉 절벽 아래에는 100여 기의 돌탑을 쌓은 유명한 마이탑사가 있다.
이 탑사는 약 90년 전에 이갑용이라는 분이 수도하던 중에 신의 계시를 받아
전국 명산의 돌을 몇 개씩 날라, 이곳의 작은 바윗돌과 함께 쌓아 만든 탑이다.
탑은 거센 폭풍우에도 넘어가는 일이 없으며
겨울에 단 위에 놓인 정화 그릇에 물을 갈고 기도를 드리면 그릇 표면에서부터 10~15㎝의 고드름이 솟아오르는 신비를 보여주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탑사>
<앉아서>
<서서>
함께 어울린 시간들
<31, 32기>
<7, 8, 10기>
<7기와 8기>
<친절, 민중의 지팡이였던 이는 퇴직했어도 가끔 본 바탕이 옅보인다.>
<능소화 나무>
<소원 북 앞에서 인류 평화를 기원하며 산악부 모임이 늘 한결같기를 소원하는 2기 함현배 님>
<수 마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