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인을 처음 본 것은
한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캄보디아 학생 세레밧의
둘째 남동생 결혼식에서 였다.
그녀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의식을 주도 하고 있었다.
세레밧이 내게 다가와
그녀에 대해 살짝 귀뜸해 주었다.
그녀는 남자라고....
설마~
믿을 수 없었고 믿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옷을 벗겨 확인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나를 놀라게 한것은
그녀의 행동과 말투였다.
내가 보기엔 분명 여자였다.
세레밧에게 물었다.
그녀는 이번 결혼식의 의식을 위해 초대 되었느냐고....
초대된 사람은 아니며
신부측의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결혼식 내내
말도 통하지 않는 나에게
가끔씩 장난도 치고 맥주잔이 비워지면 정성껏 잔을 채워 주기도 했다.
세레밧도
이곳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 여인이라 했다.
이틀 간의 결혼식이 모두 끝나고
세레밧의 고향 "바탐방"으로 돌아간다고 했을때
그녀도 함께 가겠다고 짐을 꾸렸고
세레밧 아버님도 세레밧도
함께 온 일행 처럼
모두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를 대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갑자기
어렸을적 유년시절이 떠 올랐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때
여수에서 아주머니가 생선을 머리에 이고
산골동네 아니 집집마다 다니며 생선을 팔던
그때 그 시절
아주머니는 전혀 연고도 없는 우리 시골 초가집에서
하루씩 묵고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고
그 댓가로 생선 몇 마리를 지불하고
집을 떠나던 그때 그 모습이었다.
그랬다.
지금 캄보디아는
처음 본 사돈댁의 친척을
아무 부담없이 자기집까지 동행했고
잘 아는 이웃 집 사람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했다.
내가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결혼식에 참석하다보니
나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 듯
이제는 역으로
이 여인과 세레밧 가족이
나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결혼식이 열렸던 "깜뽕짬"에서
세레밧집까지는 자동차로 8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긴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농담과 담소를 나누며 이동을 했다.
함께 이동할 때에는
세레밧아버님의 승용차에
세레밧아버님,세레밧,여동생 둘,그 여인
그리고 남동생과 나 그렇게 7명이 탔다.
나는 운전석 옆 좌석에 타서 비좁고 힘든지 몰랐지만
좌석의 뒷쪽은 포개고 포개서
오랜시간 이동을 했음에도
그들은 목적지까지 가는 도 중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날 밤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많은 친인척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웃음과 담소로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 여인은 결혼식장에서 처럼
분위기를 주도했고
그녀의 말이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세레밧 아버님이 바나나 농장에서
바나나를 작은 수레로 가득 따 오셨는데
한국에서는 먹어 볼 수 없는
어른 가운데 손가락 크기의 잘 익은 바나나를
그녀는 나에게 골라 주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세레밧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 여인은
챙겨온 가방에서 무엇을 꺼냈고
향을 피웠다.
세레밧에게 물었다.
"세레밧~"
"지금 무엇 하는거야?"
"아주머니들이 왜 자꾸 와 ...."
"아~ 점 보려고요."
"점?"
"네~"
"그녀는 점쟁이에요."
"엥?"
"점쟁이?"
"네~"
"아주머니들이 우리집에 점을 치러 온거에요."
옆에서 지켜보다가
알아들을 수 도 없고
혹
점치는데 방해가 될까 봐
세레밧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세레밧이 사는 동네가 궁금하기도 했고
근처에 뭐가 있나 싶기도 했다.
세레밧이 안내하는 오토바이 뒤에타고
정미소를 운영하는 친적 분 집에도 들르고
결혼식장에서 끔찍하게도 챙겨주었던
"웡위"집에도 들렀다.
역시 "웡위"는 반갑게 맞이했고
자기 가족을 나에게 소개했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마당 한켠에 심어진
잘 익은 야자수를 따서 내게 건네 주기도 했다.
칼을 얻어
직접 야자수를 잘라도 보았다.
역시 모든 일은
옆에서 보기와는 다르다.
아무리 내려쳐도 생각처럼 잘 잘리지 않는다.
그날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해질무렵 세레밧집에 돌아 왔지만
그때까지 그 여인은 점을 치고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계속해서 드나들었다.
속으로 점 괘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서야
아주머니들의 발길이 끊겼다.
점 괘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아주머니들이 종일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 처럼
이곳 역시 점 보는것은 아주머니들이 대세였다.
세레밧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난 그녀의 옆에 앉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총각이
젊은이 답지 않게 점을 치고
점치는 것을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했다.
먼저
그 여인의 나이를 물으니 올 해 스물여섯이라 했다.
이름은 "리나"
젊은 친구가 점은 언제 배웠냐고 물었을때....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세레밧의 통역한 내용을 보면
이랬다.
"나는 환생한 사람입니다."
"나는 죽기전에"
"자식 둘을 가진 한 가정의 어머니였고 아내였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나는 그때에 점을 칠 수 있어 집에서 점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킬링필드"때"
"우리 가족은 지식인 가정으로 몰려"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나는 죽기전 전생에 점쟁이었기에"
"지금도 점을 칠 수 있고 점 치는것은 그때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전생에서 점은 언제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순간
내가 지금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있는 것인지
아니면
3류 소설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 속에 잠시 빠졌다.
지금 나에게
이 이야기를 믿으라고????
"그럼 그때의 일들을 어디까지 기억 하나요?"
"가족 모두가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배가 너무 고파 곤충을 잡아 먹었고"
"머리에 총을 맞아 죽었는데...."
놀랍게도 그 여인은
그 장소가 어디인지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죽은 후
가족 넷이서 손을 잡고
어느 오솔길을 가다가
갑자기 자신에게 일이 생겨
잠깐 다녀올테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했는데
거기까지 밖에 기억나지 않는단다.
그랬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국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곳에서 남편과 아이들 둘은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지금은 남자의 몸이지만
그곳에서 엄마와 사랑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여인으로 밖에 살아 갈 수 없단다.
다 좋다.
그 여인의 말대로 다 인정해 주고
다시 그 여인에게 물었다.
"그럼 그때"
"어느 곳에서 살았고 부모님은 누구인지"
"그것도 기억할수 있겠네요." 하니
그것은 전혀 기억에 없고
오로지 가족과 자신이 했던 점보는 일
그리고 일가족 함께 죽었던 지역의 명칭까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일가족이 지식인 가족으로 낙인이 찍혔을때
어디론지 몇 날 며칠을 끌려 갔는데
그곳이 온 가족이 총에 맞아 죽은 그 곳이라 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 였지만
그녀가 궁금했고 그럴듯한 이야기에
"그럼 내 점도 볼수있나요?" 하니
볼 수 있단다.
먼저 복채를 꺼내
그녀 앞에 내 밀었다.
그녀는 향을 피웠고
한국에서 처럼 나의 생년 월일도 묻지 않았다.
뭘 뽑으라며 나에게 건넸는데
난 아무 생각없이 그녀가 내밀었던
젓가락 같은 그 무엇을 뽑았다.
나에 점괘를 들려줬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신은 올 해에"
"캄보디아에 세번 옵니다."
"세번째는 당신 가족과 함께 옵니다."
"꿀벌을 가지고 옵니다."
그 여인과 나는
전혀 말도 통하지 않았다.
내가 꿀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도
그녀는 모른다.
그런데 꿀벌이야기 하길래
속으로 맞추기는 맞추네.
뭐 그 정도였고 다른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나는 그 여인의 말대로
캄보디아를 세번 방문했고
마지막 세번째에는 집 사람과 함께 꿀벌을 가지고 갔다.
그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녀가 내게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그때 일을
옆에 있는 집사람에게 해야하나?
그 이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위에 몇 분이서
점 보러 감보디아에 가자길래
일부러 점 보러
그곳까지 갈수는 없고
출장 갈 일이 있을때
주위 몇 분이서 함께 간 적이 있다.
지금
모 그룹에서 몸 담고 계신 분
그 분은
우연찮게 캄보디아 출장 중에 만난 분이었는데
그때 회사일이 너무 힘들어 사직서를 제출하고
부인과 함께 훌쩍 떠나왔다던 그 분
그분이 직접 쓰신 글이 있기에
이곳에 잠깐 옮긴다.
첫댓글 ㅎㅎ
저도 그 여인에게 가서 팔자를 한번 검토받아 봐야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