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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최종분석
체르노빌(Chernobyl) 원전 구 소련(현재는 우크라이나)의 키에프(Kiev)시 북쪽 100 km 지점에 위치하며, 사고 당시 4기의 RBMK-1000(전기출력 1,000 MWe급) 원자로가 가동 중이었다. 1986년 4월 26일 원자력안전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사고가 발생한 원자로는 그 중에서 가장 늦게 건설된(1983년 12월 전기 생산, 1984년 4월 상업 운전) 4호기였다. 체르노빌 원자로는 흑연감속 비등경수로(LWGR)(2.2.3절 참조)로서, RBMK는 러시아어로 '고출력 압력관형 원자로'를 의미한다. 이 원자로형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이라 할 수 있는 5 MWe급 Obninsk APS 원전(1954년 가동되어 지금까지 운전 중임)에서 비롯되었다. 100 MWe급, 200 MWe급 등으로 용량이 점차적으로 격상되다가, 1973년부터는 1000 MWe급이 중점적으로 건설·운전되었으며, 1,500 MWe급도 1984년부터 가동되었다. 그림 1, 2는 RBMK-1000 발전소의 모양을 보여 준다. 원자로는 직경 12 m, 높이 7 m인 원통형이며, 감속재인 흑연 블록들로 채워진 사이를 1661개의 수직 압력관이 관통하고 있다. 압력관 내에는 핵연료(농축도 1.8-2.0% 이하), 냉각재(비등 경수) 및 제어봉들이 위치한다.
원자로 냉각재 회로는 2 개로서, 각 회로가 1/2 노심을 담당한다. 각 회로마다 4기의 펌프(3기는 사용, 1기는 대기)와 2기의 증기 드럼(Steam Drum)을 갖는다. 냉각재는 운전 압력이 7.2 MPa이며, 원자로에서 비등하여 약 14%의 건도(물-증기 혼합 유동에서 전체 유량에 대한 증기 유량의 비율)로 나와 증기 드럼으로 가서 물(액체)과 증기(기체)로 분리된다. 분리된 증기는 터빈을 구동시켜 전기를 생산한 후 응축되어 되돌아와서, 증기 드럼에서 분리된 물과 함께 원자로 압력관 하부로 다시 들어간다. 냉각재 펌프 출구에 밸브(Throttle Valve)가 있어서 원자로 출력에 따라 냉각재 유량을 조절한다. 또한 각 압력관(즉, 핵연료 채널) 입구에도 유량 조절 밸브가 위치하여 냉각재 유량이 출력 분포에 따라 이상적으로 분포하도록 한다. RBMK-1000은 원자로 냉각재에서 수증기가 직접 생성되어 터빈을 구동시키는 직접 사이클 발전소이다. 그런데 출력에 관계없이 단일 터빈-발전기가 사용되는 다른 노형과는 달리, 2기의 500 MWe급 터빈-발전기가 사용되고 있다.
[그림1. RBMK-1000 원전의 기본구성]
[그림2. 체르노빌 원전 건물의 내부모습]
1 - 원자로 노심(Reactor Core), 2 - 증기/물 배관 (Steam/Water Piping), 3 - 증기드럼 및 분리기(SteamDrum/Separator), 4 - 냉각재 펌프(Main Coolant Pump), 6 - 냉각재 입구 배관 (Water Inlet Piping), 7 - 상부 차폐체(Upper Shield), 8 - 핵연료 교환기기 (Refueling Machine)
원자로 반응도의 제어는 [표1]과 같이 총 211 개의 B4C 제어봉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압경수로에 비해 제어봉의 종류가 세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제어봉(원자로 정지용 제어봉을 제외하면 총 187개 중에서 163개)이 수동 조작에 의존함을 알 수 있다.
RBMK 원자 중요한 특성은 각 출력 수준에서의 출력 반응도계수(출력 변화가 반응도 변화에 미치는 영향)가 냉각재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점이다. RBMK에서 경수 냉각재는 반응도와 관련하여 중성자 감속 효과보다는 흡수 효과가 더 크다. 따라서 기포의 증가로 냉각재 밀도가 낮아질 경우에는 중성자 흡수의 감소로 인해 반응도가 증가한다. 높은 출력 수준에서는 출력 증가시 핵연료의 도플러 효과에 의한 반응도 감소 효과가 기포 증가(냉각재 밀도 감소)에 의한 반응도 증가 효과보다 크므로, 출력 급상승이 스스로 억제된다(Self-Limiting). 그러나 20% 이하의 출력에서는 출력 상승에 따른 기포의 증가가 반응도에 미치는 영향이 도플러 효과에 의한 영향보다 커져서 출력 급상승 사고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반응도 제어가 훨씬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RBMK-1000 원자로에는 가압경수로와 같은 튼튼한 격납용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표1. RBMK-1000의 제업봉]
구 분 |
개수 |
기 능 |
수동 제어 |
139 |
출력 분포 제어를 위해 운전원이 수동으로 작동; 4개 그룹으로 구분 |
국부 자동 제어 |
12 |
4개의 측면 이온함(Ion Chamber) 신호를 이용하여 출력 분포 유지 |
자동 출력 제어 |
12 |
원자로 총출력 제어에 사용되며, 제어봉 4개씩 3개의 세트로 이루어짐 |
원자로 정지 (안전) |
24 |
원자로 밖에서 위치하고 있다가 정지 신호에 의해 삽입되어 원자로를 긴급 정지시킴 |
짧은 흡수봉 |
24 |
원자로 하부로부터 수동으로 인입되며, 축방향 출력 분포를 조절 |
체르노빌 4호기 사고 전까지 구 소련에서 가장 좋은 운전 실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정기적인 유지 보수를 위해 1986년 4월 25일 정지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원자로 정지 후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터빈이 짧은 시간 동안(비상 디젤 발전기가 작동할 때까지)이나마 비상 전력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라는 지시가 갑자기 내려졌다. 이러한 시험은 그 전에도 두 차례나 수행되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반복하고자 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시험은 발전소의 비원자력 부문에만 관계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시험을 수행하는 그룹과 원자로 운전 및 안전을 담당하는 그룹간에 정보 교환과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시험 계획에 대한 안전 예방조치가 적절히 취해지지 않았고, 운전원들은 예정된 시험이 원자로 안전에 주는 영향이나 잠재적인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하였다.
원래 계획된 실험 순서
1) 원자로 출력을 정격 출력의 22-32%(열출력 700-1000 MWt)로 낮추고, 두 터빈-발전기 중 하나를
정지시킨다.
2) 시험 도중 비상노심냉각계통(ECCS)이 잘못 작동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ECCS를 계통과 차단시킨다.
3) 각 냉각재 회로에 있는 4기의 펌프 중에서 2기는 외부 전력망으로부터, 나머지 2기는 터빈 발전기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도록 전력 공급선을 전환한다. (이는 외부 전원으로 작동되는 2기의 펌프에 의해 노심 냉각에 필요한 유량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음)
4) 터빈으로의 증기 공급을 차단하고, 전기가 생산되는 시간을 측정한다.
그러나 실제 진행은 위와 같이 되지 않았다.
1986년 4월 25일 오전 1시경 일상적인 원자로 정지 절차를 시작하여 13시 경 50% 출력에 도달함에 따라 하나의 터빈-발전기를 정지시켰다. 이 때 전력망에 대한 지속적인 전력 공급이 요청되었으므로, 원자로 정지 절차는 일단 중단되고, 23시까지 50% 출력 상태가 유지되었다. 그 사이 ECCS는 시험 계획에 따라 계통으로부터 차단되었다. 23시에 출력을 다시 낮추기 시작한 후 운전원의 실수로 인해 열출력이 갑자기 30 MWt 수준으로 지나치게 떨어졌다. 운전원은 모든 자동 장치를 차단하고 수동 조작에 의해 출력을 700-1000 MWt로 높이려고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아 26일 1시에 이르러서도 200 MWt에 머물렀다.
운전 지침 최소한 30 개의 제어봉이 원자로 제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었으나, 시험에서는 6-8 개의 제어봉만 사용되고, 대부분의 제어봉이 원자로 밖에 인출되어 있었다(이는 노심에 축적된 크세논(Xenon)에 의한 중성자 흡수 효과를 상쇄하기 위한 것이었음). 이는 갑작스런 출력 상승이 일어났을 때 제어봉을 삽입시켜 원자로를 정지시키는데 약 20초가 걸림을 의미한다.
시험 후의 충분한 노심 냉각을 위해 운전원들은 8기의 냉각재 펌프가 모두 작동하도록 하였는데, 이로 인해 냉각재 유량의 증가 및 증기 압력의 감소가 유발되었다. 이 때 원자로 자동 정지계통이 작동 가능한 상태였다면 낮은 증기압으로 인해 원자로가 자동적으로 정지되었겠지만, 이 기능은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냉각재 유량 증가로 인한 증기 체적의 감소는 반응도의 감소를 가져왔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제어봉들을 노심 밖으로 인출해야 했다. 원자로는 매우 불안정해졌으며,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전원들은 매순간마다 제어봉들을 조정해야 했다. 이 때 운전원들은 증기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급수 유량을 줄였으며, 터빈에 의해 전기가 공급되는 원자로 냉각재펌프가 제공하는 유량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냉각 기능의 저하에 따라 핵연료 채널에서의 기포 생성이 증가되면서 원자로는 더욱 불안정해졌고, 기포 체적 증가에 의한 반응도 삽입 효과에 의해 출력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림 3은 체르노빌 원자로의 출력 변화를 보여 준다.
사고의 진행 원자로 출력은 순간적으로 정상 출력의 100배 이상으로 폭주하였다. 급격한 열 생성에 의해 핵연료가 파손되었으며, 핵연료와 물과의 반응에 의한 증기 폭발(Steam Explosion)이 발생하여 노심이 파괴되었다. 2-3초 후 두 번째 폭발이 발생하여 원자로가 더욱 파괴되고, 원자로 건물의 지붕도 파괴되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두 번째 폭발은 수소에 의한 폭발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가 4월 26일 1시 23분이었다. 두 번의 폭발에 의해 고온의 방사성 파편 및 흑연조각들이 공기 중으로 흩날리고, 파손된 노심이 대기에 노출되었다. 노심 및 건물로부터의 연기, 방사성 핵분열 생성물, 파편 등이 공기 중으로 1 km 이상 솟아올랐다. 무거운 것들은 발전소 주변에 떨어졌지만, 가벼운 것들은 바람을 타고 북서쪽으로 퍼져 나갔다.이미 파손된 4호기 건물에서 일반 화재가 발생하여 발전소가 수증기 및 먼지들로 뒤덮이게 되었으며, 인접한 터빈 빌딩의 지붕을 파괴하고, 많은 가연성 물질들을 태웠다. 이에 따라 100 명이 넘는 소방수들이 동원되어 5시 경 화재를 진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방사선 피폭을 당했으며, 상당수가 생명을 잃었다.
일반 화재 잡혀갈 즈음, 감속재로 사용되던 흑연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강렬한 흑연 화재는 방사성 물질을 대기 중에 크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는데, 흑연 화재에 대한 확실한 대처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탄화붕소, 백운석, 납, 모래, 진흙 등 여러 물질들을 공중에서 투하하였으며, 5월 9일에야 소화가 완료되었다. 이 후 원자로 아래 쪽으로 터널을 뚫고 냉각 회로를 갖춘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을 설치하였으며, 원자로 건물을 콘크리트로 매장(석관이라 함)하였다.
사고가 발생하여 4호기가 파손된 상태에서도 나머지 1, 2, 3호기는 계속 운전되다가, 4호기와 접한 3호기는 5시경, 1, 2호기는 다음 날 2시 경에 정지되었다. 4월 27일과 28일에는 인접 도시들의 주민들이 소개되었다.
한편 스웨덴에서는 4월 28일 9시 30분경 높은 방사능이 측정됨에 따라 자국의 Forsmark 발전소를 정지하고 비상 조치를 취했다. 곧 소련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측하고 문의하였으나 퉁명스러운 대답만을 들었다 한다. 4월 29일에는 사고 사실이 키에프 지방신문 및 국제통신사에 보도되었고, 4월 30일에는 전국적인 신문들에도 보도되었다. 이후 추가적인 방사능 누출을 방지하고 오염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1, 2호기가, 1987년 11월에는 3호기가 재가동되었다.
사고 직후 체르노빌 원전 3,4호기의 모습과 석관에 의해 4호기가 매장된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4호기에서 발생한 참혹했던 사고에도 불구하고, 1,2호기는 물론 인접한 3호기도 현재 정상 운전 중이다.
사고의 결과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방사능에 가장 많이 피폭된 사람들은 발전소 운전 요원을 포함해 소방대원, 군인 등 사고 직후에 복구를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또한 1986~1990년 기간에 사고 복구 및 처리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60-80만명 중에서 약 20만명 정도의 정화 작업자들이 방사선 피폭률이 최고였던 1986~ 1987년에 체르노빌 지역에서 일했는데, 이들은 원자로 주위의 청소, 석관의 구축, 정화, 도로 건설, 그리고 오염된 빌딩과 숲 및 장비의 철거와 매장 등을 담당했었다.
방사선 피폭으로부터의 보호 1986년 4월 27일부터 8월 중순까지 약 116,000 명의 주민들이 체르노빌 발전소 주위의 거주지로부터 다른 곳으로 소개되었고, 최고 선량률을 나타내는 지역을 포함하는 "금지 구역"이 정해져서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대해 위에서 설명한 초기 대응이 이루어진 후 현재까지 사고의 영향을 경감시키기 위한 다양한 후속 조치들이 취해져 왔다. 또한 이 사고와 관련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원자력기구 (OECD- NEA)를 비롯한 여러 국제 기구들이 많은 역할을 했는데, 세계기상기구(WMO)의 통신망은 방사능 오염 피해 상황의 보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유엔과학위원회(UNSCEAR)는 전반적인 대중 보건 평가에,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보건 방호의 지침 규정과 체르노빌 피해 주민의 건강 추적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농산물과 식품 처리 분야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는 오염 지역에서 활동한 작업자의 방호 분야에서 각각 제몫을 다했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 이후로 각종 언론 매체들을 통해 발표된 사고의 영향에 관한 보고들은 사상자 수나 각종 질병의 발병률 등의 문제에서 큰 견해 차이를 보이며 계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므로, 이를 객관적이고 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절에서는 현재까지 밝혀진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성 물질 방출 및 침적과 선량 평가 결과, 인체와 환경 및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 남아있는 안전성 문제 등에 관해 기술한다.
1996년 4월 유럽 연합(EC)과 IAEA 및 WHO 합동으로 개최했던 국제 회의인 "체르노빌 사고 후 10년 사고의 영향 요약"에서 전문가단들이 발표한 내용들과 1995년 11월에 방사선 방호 전문가들로 구성된 OECD/NEA 위원회가 UNSCEAR, FAO, WHO 및 EC 등의 최신 정보를 이용하여 보고한 방사선 방호 및 보건에 대한 영향 평가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방사성 핵종의 방출 및 침적
방출 사고시 방출된 모든 방사성 물질의 전체 방사능은 비활성 기체들에 의한 6-7x1018 Bq을 포함해 약 12x1018 Bq 정도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고 당시 비활성 기체의 100%, 휘발성 방사성 핵종의 20~60%, 그리고 원자로에서 사용 중이던 연료의 약 3~4%가 방출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결과는 구 소련 당국이 1986년에 보고한 방사능 평가량보다는 높은 수치를 나타내는데, 그 이유는 구 소련에 의한 방사능 평가가 구소련 지역 내에 침적된 방사성 물질들만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고시 방출된 물질의 핵종 구성은 복잡하였으며, 방사선 의학적으로는 요오드(I)와 세슘(Cs)이 특히 중요하다. 반감기가 짧은 요드는 단기간에 큰 방사선 의학적인 영향을 가지는 반면, 반감기가 수십년 수준인 세슘은 장기간에 걸친 방사선 의학적인 영향이 크다. 방출된 주요 핵종들의 방사능은 I131이 1.3~1.8x1018 Bq, Cs134가 ~0.05x1018 Bq, Cs137이 ~0.09x1018 Bq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값들은 사고 당시 원자로 노심에 있던 I131의 50~60%와 방사성 세슘 동위원소의 20~40%에 해당한다.
침적 대기 중에 방출된 물질들은 널리 확산되어 궁극적으로는 지표면에 침적되었다. 전 북반구를 대상으로 침적에 대한 측정이 실시되었는데 대부분의 물질들은 다양한 침적 밀도를 가지고 발전소 부지 주변 지역에 침적되었다. 벨라루시,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Cs137의 방사능 준위가 185 kBq/m2을 초과하는 것으로 측정된 지역의 면적은 각각 16,500 km2, 4,600 km2, 8,100 km2이며, 초기에는 방출량이 많은 I131과 Te132가 오염 농도를 지배하였고, 장기적으로는 반감기가 긴 Cs134 및 Cs137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사고 후 시간에 따라 방사성 물질이 북반구에서 퍼져나간 경과를 예시하고 있다.
선량평가 사고로 인한 주민의 피폭은 초기에는 방사성 요드와 텔레늄에 의한 내부 피폭, 장기적으로는 지표에 침적된 세슘에 의한 외부 피폭이 주를 이루었다. 1986~1987년에 사고 복구에 참여했던 20만명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00 mSv 수준의 선량을 받았다. 이들 중 약 10%는 250 mSv 수준의 선량을 받았고, 수 %의 사람들이 500 mSv를 초과하는 선량을 받았다. 반면에 사고의 초기에 대응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은 수천 mSv의 치사 가능성이 있는 선량을 받았다. 1986년에 금지 구역으로부터 소개되었던 116,000명 중에서 10% 미만의 사람들이 50 mSv 이상의 선량을 받았고, 5% 미만의 사람들이 100 mSv 이상의 선량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음식이나 오염된 우유의 섭취, 또는 초기 방사성 구름 아래에서의 호흡에 의해 사고로 방출된 방사성 요드가 흡수되어 갑상선에 축적되었다. 갑상선이 받은 선량은 다른 신체 장기들이 받은 선량들에 비해
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어린이들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였다. 주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및 러시아 연방에 거주하는 150,000명에 대해 보고된 수치를 기반으로 평가된 갑상선이 받은 등가 선량은 1986년 비엔나에서 열린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사고 후 검토 회의, 오염 지역에 계속 살고 있는 생물의 안전성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990년에 수행된 국제 체르노빌 프로젝트, 그리고 현재까지의 모든 다른 국제적인 평가들에 나와 있는 것처럼 수 Sv부터 그 이상까지의 수준이었다.
북반구 여러 국가 대해 평균 선량을 포함하여 사고의 결과로 주민들이 받게 될 장기간 선량이 UNSCEAR에 의해 평가되었다. 이 보고에 따르면 개인 선량이 가장 높았던 국가에서의 첫해 평균 선량은 0.8 mSv였고, 개인 선량이 가장 높은 유럽 지역에서 2056년까지 70년동안 받을 평균 선량은 1.2 mSv이다. 또한 국제 체르노빌 프로젝트에서는 1986년부터 2056년까지 70년동안 가장 오염이 심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받게될 최대 선량은 160 mSv 수준일 것으로 평가하였다. 최근에 수행된 보다 상세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데, 1996년부터 2056년까지의 기간동안 오염 농도가 185~555 kBq/m2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받을 선량은 일반적으로 5~20 mSv 수준이고, 오염 농도가 555~1,480 kBq/m2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받을 선량은 주로 외부 피폭에 의해 20~50 mSv 수준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토양으로부터 식량으로의 방사성 핵종 전이율이 높은 지역의 주민들은 70년동안 내부 피폭만으로도 50 mSv를 초과하는 선량을 받을 수도 있다.
인체에 미친 영향
급성 방사선 영향 사고 초기 복구에 참여했던 작업자 중에서 237명이 방사선 피폭의 영향으로 보이는 임상학적 증후군들을 나타내어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중 143명이 급성 방사선 증후군(Acute Radiation Syndrome, ARS)으로 진단되었고, 이들 중 28명이 첫 3개월 이내에 방사선 상해의 결과로 사망하였다. 결과적으로, 기타 사망자 3명(1명은 폭발로, 1명은 관상동맥혈전증으로, 1명은 일반 화상으로 사망)을 합하여 31명이 초기에 사망하였다. 10 Gy 이상의 선량을 받았던 11명의 환자들에게서는 발병 초기에 점막이 마르고 부어 궤양이 생기면서 호흡과 음식물 섭취에 심한 고통이 있었고, 사망자 28명 중에서 26명은 열과 β-선에 의하여 총 신체 표면적 50% 이상의 피부 상해를 입었다. 지난 10년 동안 추가로 14명의 환자가 급성 단계 이후에 사망했으나, 그들의 사망이 급성 방사선 증후군에서 보이는 초기의 심각한 증상들과는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방사선 피폭에 의한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으며,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이 확실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의 환자들이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경험 많은 병원에서 그 때의 지식으로 가능했던 최선의 치료를 받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당시 추천됐던 골수 이식 요법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향후에는 이러한 골수 손상을 조혈(Haemopoietic) 증식 인자를 즉각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치료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최적의 조합과 선량 일정이 결정되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방사선에 의한 다른 손상들에 대해서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고 각 개인에 맞는 치료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진단 도구들이 개발되어 왔다.
현재 정신적 스트레스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을 합병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신의 치료 방법과 대책이 필요한 상태이다. 이런 환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건강 상태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고, 앞으로 20~30년 동안에 걸쳐 관찰되어야 한다. 또한 발견된 질병 패턴들 중에서 방사선 피폭에 의한 것들과 환자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들을 구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지발성 방사선 영향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만성 영향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 것은 사고 당시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갑상선암 발병률 증가이다. 1995년말까지 보고된 갑상선암 환자의 수는 진단 당시 15살미만의 어린이들 중에서 약 800명이었고, 이들 중 400명 이상이 벨라루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나머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연방에서도 나타났다. 감상선암 발병률의 증가는 사고 전·후로 6개월 이내에 태어난 어린이들에게서 주로 관찰되었으며, 사고 6개월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의 발병률은 피폭되지 않은 사람들의 발병률 수준으로 현저하게 낮았다. 또한 갑상선암 발생의 대부분은 사고 결과로 방사선에 오염되었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시간적·지질학적인 분포를 통해 발병률의 증가와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선 피폭과의 관계를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더욱이 환자들의 갑상선 요드 농도가 높은 점으로 보아 요드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어린이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을 증가시킨 확실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피폭시의 연령별 분석 통해 나이가 어린 어린이들이 가장 위험했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아동의 경우 갑상선암의 잠복기가 20년 이상까지도 연장되므로 피폭된 어린이들의 갑상선암 발병률 증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앞으로도 방사선 영향을 받은 집단 내에서 갑상선암이 만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재원이 필요하다. 방사선 피폭과 갑상선암 진단 사이의 최소 잠복기는, 외부 방사선의 급성 피폭과 관련한 과거 경험으로부터 예상된 잠복기보다는 다소 짧은 약 4년 정도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후 10여년 동안 3명의 어린이들만이 갑상선암으로 사망했다. 어린이들에게서 발병된 젖꼭지 모양의 갑상선암은 악성임에도 불구하고, 표준적인 치료 절차가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단지 단기간의 추적 조사 데이터만 있는 상태여서 최적 치료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환자들에 대해 완벽하고도 계속적인 추적 조사를 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어린이들의 L-티록신은 평생 동안 의무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체르노빌 사고 인한 미래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발병률 증가가 수십년간 지속되어 수천 명의 갑상선암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 대부분은 치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갑상선암이 조기에 진단되고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진다면 이로 인한 사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 일생을 통해 계속적으로 면밀히 감시되어야 한다. 사고 당시 어린이였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갑상선암의 수와 표준 갑상선 선량 측정을 바탕으로 예측된 암의 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일반적으로 표준 모델들 내에 고려되어 있지 않은 체르노빌 사고만의 특이했던 몇 가지 요소들 때문일 수도 있다. 갑상선 종양의 감지와 더불어 이러한 문제들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확인이 된 젊은이들의 갑상선암 발병률 증가 외에도 오염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정화 작업자들 사이에 다른 악성 질병들도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 이러한 증가율은 피폭된 주민들의 추적 조사에서의 차이와 체르노빌 사고 후의 강화된 규명 활동의 결과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정화 작업자들의 발병률이나 오염 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갑상선 암 발병률과 같은 장기간 영향의 크기를 전망할 수 있게 하거나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지역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위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 때 사고로 인해 발생된 불치의 암과 그렇지 않은 암의 발생 숫자에 대한 평가 결과는 평가에 사용된 여러 가정들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해석되어야 한다.
희귀병인 백혈병 방사선 피폭 후의 주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방사선 피폭으로 생긴 백혈병에 의한 사망은, 일본의 원자폭탄 폭발 또는 다른 원인들과 관련되어 생존한 사람들의 데이터에 기초한 예측 모델에 의하면 이론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백혈병으로 인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 총 초과 사망자 수는 오염 지역과 엄격한 통제 구역에 거주하는 7,100,000명중 470명 수준인데, 이를 약 25,000명 정도의 자연 발생적 백혈병 사망자와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86~1987년 동안에 일했던 200,000명의 정화 작업자들에 대해 예측된 백혈병에 의한 초과 사망자 수는 200명 수준(백혈병에 의한 자연 발생적 사망자 수는(약 800명)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초과 사망자 200명중 약 150명이 피폭 후 10년 안에 사망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실제 사망자의 수는 40명에 불과하였다. 요약하면, 지금까지 갑상선암을 제외하고는 백혈병 또는 악성 질병의 발병률에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인지할만한 증가는 관찰되지 않았다. 암 관련 예측 모델에 따르면, 오염 지역과 엄격한 통제 구역에 거주하는 7,100,000명 중에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향후 85년 동안 불치의 암이 발병할 경우의 수는 6,600명 수준으로 계산되는데, 이는 암에 의한 자연 발생적인 사망자수 870,000명의 0.8%이다. 이러한 암 발병률의 증가나 주민들에서의 유전적 영향은 광범위하면서도 잘 설계된 장기간의 역학 연구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판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리적 영향 체르노빌 사고의 사회적·심리적 영향들과 그 반응들에 대해서 몇 건의 중요한 연구와 프로그램들이 지난 10년 동안 수행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국제 체르노빌 프로젝트에서의 결론을 포함하여 체르노빌 사고로 영향을 입은 주민들 사이에 걱정과 우울증, 그리고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다양한 심리적 건강 질환과 증상들이 있다라는 이전의 발견들을 확증해 주었다. 그런데 체르노빌 사고의 심리적인 영향을 경제적 궁핍이나 구 소련 붕괴의 영향과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체르노빌 사고 심리적인 영향들은, 특히 사고 직후의 대중 정보의 부족, 스트레스, 이주의 충격, 사회적 결속의 붕괴, 그리고 방사선 피폭에 의해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고통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고 후 수년 동안 진상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공공기관의 설명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과거보다 증가된 것처럼 보이는 여러 종류의 질병들이 방사선에 의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방사선 위험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사람들에게 매우 해롭다. 사고 결과들에 대한 견해가 일치되지 않은 채 정치 문제화되어 다루어진 것이 주민들에게 심리적으로 나쁜 영향들을 미쳤고, 심각한 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어 왔다. 무력증이나 절망감을 포함한 심각한 심리적 영향들이 사회를 후퇴시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게 하였다. 경제적 곤궁과 같은 다른 요소들은 사고의 결과로 피폭된 다양한 집단들을 포함해 일반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에 두드러진 영향을 미친다. 피폭된 주민들에 대한 통계는 옛 소련 지방의 질병률과 사망률이 일반적으로 명백히 증가됐는지의 관점에서 조사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증가 추세가 체르노빌 사고 때문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방사선과는 무관한 과거의 다른 사고 경험들로부터도 심리적인 영향이 장기간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체르노빌 사고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증상들은 계속 전개되고 있다. 방사선 위험과 그 대응책들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어린이들에게서 갑상선암의 현저한 증가가 계속되는 한 이러한 증상들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체르노빌 사고의 심리적 영향을 평가할 때는 옛 소련 붕괴의 심리적 영향과 벨라루시, 러시아 연방 및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환경에 미친 영향 사고 후 몇 주 동안에는 원자로 부지 10 km 이내의 침엽수나 작은 포유동물 등 방사선에 민감한 동식물들이 죽는 단기적인 환경 영향이 있었다. 1986년 가을에 선량률은 10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고, 1989년까지 자연 환경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나 생태계에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심각한 영향들은 관찰되지 않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유전 영향들의 가능성 및 중대성이 연구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주민들에 대한 환경 오염의 의미는 그들의 피폭 경로에 따라 결정된다. 주요 피폭 경로는 땅에 침적된 방사성 물질로부터의 외부 피폭과 음식물의 오염에 따른 내부 피폭이 있다. 사고 후 몇 주 동안은 방사성 요드가 의학적으로 가장 큰 중요성을 가진 핵종이었다. 1987년 이후의 대부분의 방사선 선량은 Cs134와 Cs137에 의한 것이었고, Sr90에 의한 약간의 영향이 있었다. 반면에 Pu239에 의한 영향은 아주 작았다.
일상적인 식품들 중에서 몇 가지가 방사성 물질에 의해 오염되었다. WHO/FAO Codex Alimentarius Commission은 국제 무역을 통해 운송되는 식료품들에 대해, "이온화 방사선에 대한 방호와 방사선원의 안전성을 위한 국제 기본 안전 기준"에 의거해 최대 허용 오염 준위를 정하였는데, 사고 후 초기의 우유나 푸른 채소같은 주요 식료품들은 이 기준을 초과하였다. 사고 후 초기 단계에서 취해졌던 통제 수단들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대응책들이 외부 피폭을 줄이는 데는 비교적 비효율적이지만 방사성 물질의 내부 흡입을 줄이는 데는 매우 효율적일 수가 있다. 장기적으로 적절한 농업 대책들을 적용한다면 세슘이 식품으로 흡수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가장 적절한 대응책들과 그 효과는 토양 유형과 같은 지역적 조건들에 달려있는데, 예를 들면 땅에 침적된 세슘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지방이라 할지라도 세슘이 우유로 전이될 가능성은 높을 수 있다. 일부 농부들이 개인적으로 생산한 몇몇 식품들이 WHO/FAO Codex Alimentarius 기준을 초과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재 집단 농장에서 생산된 식품들 중에 이 기준을 초과하는 것은 없다. 관리 중인 농업 용지와 자연적인 환경의 중간 성격을 지닌 반자연적인 환경은 주민들이 미래에 받을 선량 준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토양으로부터 목초지에서 방목되는 소의 우유까지의 방사성 핵종 전이율은 토양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반자연적인 목초지나 숲, 산악 지역에서 방목된 동물들로부터 생산된 특정 식품들과 엽조·엽수류나 딸기류, 버섯과 같은 야생 식품들은 향후 수십년에 걸쳐 Codex Alimentarius의 기준을 초과하는 Cs-137 준위를 나타낼 것이고, 이러한 식품들이 미래에 주요한 내부 피폭 선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빌 부지에 매장된 방사성 물질에 의한 지역적인 선량률은 상당히 높을 수 있다. 게다가 사고로 생긴 방사성 잔해의 임시 저장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지역내 지하수의 장기적인 잠재적 오염이 고려되어야 한다.
금지 구역의 완전한 복구 주거 지역 근처의 고방사선 구역의 존재, 지하수의 지역적 방사능 오염 가능성, 석관 붕괴의 가능성과 관련된 위험, 그리고 일상의 음식물과 생활 유형에 가해진 심각한 제한들 때문에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 1990년부터 1995년말 사이에 당국은 우크라이나(약 53,000명), 벨라루시(약 107,000), 그리고 러시아(약 50,000명)에서 사람들을 추가로 이주시켰는데, 이러한 소개와 이주는 새로운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어려움과 연결되어 일련의 중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했다. 인구 통계학적 측면에서 오염 지역의 여러 척도들이 악화되었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노동 인력도 오염 지역에서 비오염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노동 인력과 전문 인력이 부족해지고 있다. 오염 지역에서의 방사선 피폭을 제한하기 위해 당국은 산업과 농업 활동에 제한을 가하였다. 또한 오염 지역의 생산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생산품의 판매와 수출이 어려워졌으며, 결과적으로 지역의 수입이 감소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오염 지역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보조금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운영 중인 보상 시스템을 보완하여 기금의 일부를 새로운 산업이나 농업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 지난 몇 년동안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의해 한층 악화되어 왔고, 생활과 공중 건강의 질 저하를 야기시켰으며, 사회 활동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의 상황은 사고 후의 결과들과 그 경감을 위해 취해진 조치들에 대한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대중 정보로 인해 더욱 복잡해져 있다. 그러므로 대중에게도 사고의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나 현재의 방사선 준위라든가 식품의 핵종 농도에 대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아있는 안전성 문제
RBMK 발전소 RBMK 원자로는 흑연 감속, 경수 냉각이라는 독특한 설계로 인해 고연소도, 저출력에서는 원자로 안전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특징이 있어서, 이것이 출력 폭주로 인한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원자로 긴급 정지를 위한 제어봉 삽입 시간이 서구의 가압경수로에 비해 매우 길어서 출력 급증시의 긴급 대응도 어려웠다. 체르노빌 사고는 이와 같은 원자로 및 정지계통 설계에 있어서의 심각한 결함과 더불어 안전 운전 절차의 위반이 동시에 작용하여 비롯되었다. 옛 소련에서 책임을 맡고 있던 조직들은 안전 문화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고 전에 이러한 설계 결함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개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의 원인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러한 특성들 외에도 소련의 RBMK 원자로의 설계는 (1) 제 1 세대 RBMK 원전의 노심 냉각 안전 계통의 불완전성, (2) 사고시 방사능 격납 능력의 미비, (3) 다수의 압력관 파열 영향에 대한 불충분한 고려, (4) 화재나 침수에 대한 방호의 부족, (5) 기기나 문서의 품질 관리 미흡 등과 같은 고유의 결함들을 지니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설계인 RBMK 원자로의 제 1 세대 원전은 현재의 안전 목표들에도 미달된다. 불완전한 격납용기와 같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결함들에도 주의를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가동 중인 RBMK형 원전들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많은 개선 대책들이 지난 십여 년에 걸쳐 취해져 왔다. 체르노빌 사고 후 즉각적으로 기술적·조직적 대응책들이 취해졌고, 이와 더불어 1987년부터 1991년 사이에 사고의 원인이 된 설계 결함들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안전성 향상 조치가 수행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1) 제어봉의 추가, 핵연료 농축도의 증가(2.4%) 등을 통한 반응도 기포계수 특성의 완화, (2) 제어봉 구동 장치의 개선 등을 통한 긴급 정지 시간의 단축 (2.5초), (3) 원자로 반응도 여유 계산 주기의 단축, 운전 절차 및 제한치의 개선 등 운영 체계의 강화, (4) 원격 정지 제어실 설치 등이다. 또한 발전소 관리, 훈련, 비파괴 시험이나 안전 해석과 같은 영역에서도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똑같은 사고 시나리오가 반복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당량의 방사성 물질 방출을 야기할 수 있는 다른 사고들의 발생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이전 기준에 맞춰 설계된 원자로들도 적절한 개선이 없다면 안전에 관한 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주기적인 안전성 검토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모든 RBMK 발전소들에 대해서는, 체르노빌 사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지 않은 RBMK 원자로의 설계 결함들을 개선하기 위해 추가의 안전성 향상 계획이 있지만 이런 계획들의 이행이 관련 국가들의 필요한 재원 부족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
석관 손상된 핵연료와 파손된 장비들을 격납하고 환경으로의 방사성 물질 방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원자로 주위에 건설되었던 석관에는, 현재 사용된 핵연료와 새 핵연료가 다른 물질들과 혼합되어 주로 먼지 등의 다양한 형태로 약 200톤 가량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물질의 총 방사능은 주로 장수명 방사성 핵종에 의한 것으로 700x1015
현재 석관은 임계 안전성 관점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물이 침투할 경우에 석관 내에서 임계 상태가 도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임계 상태가 발생하여 석관 내에 높은 방사선 준위가 야기되더라도 방사능의 대량 외부 방출은 예상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때 부지 내의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은 보다 명백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체르노빌 부지에 남아있는 발전소들과 석관의 안정성만이 해결되어야 할 주요 문제들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부지 내에 매장된 방사성 물질과 관련된 추가적인 문제점들이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을 위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석관 위에 2차적인 수용 시설을 건설하자는 제안 등이 이와 관련되어 있으며,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관련 조직들이 갖고 있는 지식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관의 생태학적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 개발을 통한 적절한 설계와 그에 따른 건설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비용-효율성의 측면 연구의 진전과 재정적 상황에 따라 적절한 단계들이 취해져야 하는데, 첫 번째 과제가 현존하는 석관을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석관의 붕괴 위험을 현저히 줄일 것이고, 이차 수용시설과 같은 추가의 대책들을 보다 신중하게 계획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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