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창립된 이후 1923년 세번째로 지어진 북제주군 애월의 금성장로교회 구교회 모습
금성장로교회 현재 보존된 구교회 모습
금성장로교회 현재 보존된 구교회 내부 모습 , 현재는 사용하지 않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강대상이 덮어져있다
옆에서 본 모습
종탑이 보이는 옆 모습
지붕위에 종탑이 있다
구 교회에서 50m 정도 위쪽으로 신축된 현재 교회가 있다
현 금성교회 마당쪽이다
제주 금성교회
북제주군 애월읍에 위치한 금성교회는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오기 전인 1907년 3월 독립운동을 하다 순교한 조봉호 전도사가 평양에서 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전도한 양석봉씨외 8명이 첫 예배를 드리므로 시작되었다. 8명중에는 제주 4.3 사건 때 순교한 이도종 목사 (제주 대정교회에 이도종 목사 순교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본 블러그 제주 대정교회 참조) 도 평신도로 있었다. 다음해인 1908년 봄 이기풍 목사가 제주지역 선교사로 정식으로 파송받아 (1907년 9월 조직된 조선야소교장로회 독노회에서 처음으로 안수받은 7명의 목사 중 한 사람인 이기풍 목사를 제주선교사로 파송) 순회예배를 드리던 첫번째 교회가 되었다. 처음 예배를 드리던 교회는 현재 다른 집터가 되었고 현재 보존되어있는 구교회는 3번째 교회 터로 1923년 세워져 계속 수리를 거듭하며 사용하였다. 모슬포교회가 1910년에 태동되었다면 금성교회는 제주지역의 첫번째 기도처가 되는것이다. 금성교회에는 현재 조봉호 전도사의 손자가 생존해있다. 현재의 신축교회는 1994년 부친때부터 교회를 섬겨오던 김동빈 권사(현재 미국 뉴욕 거주)가 고향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 대지 520평과 건축비 약 5억2천만원을 헌금하여 지워졌다. 김동빈 권사는 교회외에 지역 선교를 위해 노인회관도 건축해 주었다. 현재 금성교회는 1998년에 부임한 태종호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시다 (연락처 064-799-0004). 2008년은 제주 선교 역사로 볼 때 100주년이되는 해이다. 그러나 금성교회가 1907년3월부터 예배처소에서 예배를 드리던것을 볼 때에 미묘하면서도 예민하게 받아드리게 된다 (글 참조- 태종호 목사의 진술)
제주 지역 기독교 선교역사
제주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908년. 1907년 9월 조선야소교장로회 독로회(이하 독로회)가 조직되고, 7명의 한국인목사가 처음 탄생된지 1년만이었다. 독로회는 그해 겨울 평양출신 이기풍목사를 제주선교사로 파송하는데, 그가 도착한 것은 1908년 봄이었다. 당시 제주는 일명 ‘이재수의 난’으로 서양종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않은 때였다. 그는 제주성을 중심으로 금성 한림 모슬포 법환 조천 등지에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초창기 교인들은 대부분 개인 집을 기도처로 삼고 예배를 올렸는데, 그후 예배당은 초가나 창고를 개조한 목조 함석지붕에 돌집 형태였다. 금성교회는 이기풍 목사가 오기전 해인 1907년 독립운동으로 순교한 조봉호 전도사에 의해 복음을 받아드린 양석봉, 이도종씨 외 6명의 성도를 중심으로 첫 예배를 드리므로 시작하였다. 모슬포 교회는 1910년 태동하였고 1913년 대정읍 하모리 988번지 초가 예배당에서 예배를 보다, 1923년 하모리 1075번지 60여 평의 목조기와 예배당건물(현 모슬포 제일교회)을 지었고, 1959년 5월 현 교회당 옆 하모리 1218번지 애기무덤이 있는 대정면 소유의 공유지에 세번째 교회당을 건립했다. 교회의 분리로 불가피하게 대지 250평 건평 80평 규모의 새 성전을 지었다. 새 교회 목재는 구 교회건물의 일본 자재를 사용했다. 목재가 귀해 인근 모슬포 훈련소 소나무를 베어다 썼고, 발동기로 나무를 재제했다. 교회 건물은 일본 목수의 힘을 빌었다. 당시 근방엔 15평 정도의 건물이 고작이었고, 기둥이 없는 큰 건물을 지어본 경험있는 목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회건물은 현무암 벽체의 석조 슬레이트 지붕 형태로, 교회 앞면에 박공벽(측벽 부분에서 지붕의 형식에 따라 벽체가 삼각형으로 보이는 형태의 벽)에 포치를 두어 출입하고, 측벽부엔 버팀기둥을 두었다. 버팀 기둥은 바람에 견디기 위해 덧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 건물이 완공될 즈음, 그 해 9월 추석 전날 제주에 덮친 사라호 태풍으로 교회는 큰 피해를 입었다. 교회 지붕틀이 주저앉았고, 종각이 파손되어버렸다. 태풍피해를 본 교회는 4개월 뒤인 12월에야 준공됐다. 교회가 이곳에 세워진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 교회 지봉수 원로장로(79)는 김씨 땅이 많아 ‘짐개동산’으로 불렸던 이 교회부지엔 당초 대정중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당시 이 교회 조남수 목사는 교회분리로 인한 아픔이 있었지만, 학교가 들어설 경우 대정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교회부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또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은데다 공유지였던 점도 한 이유이었다. 주민들은 서쪽방향이 터지면 가난하다고 믿었는데, 바로 마을 서쪽이 교회 부지여서 반발이 없었던 것이다. 바람 세기로 유명한 한경면 고산리 2192번지 구 고산교회당. 제주도내 몇 곳 남지않은 현무암 벽체의 교회건물이다. 이곳은 1916년 인근 용수리 김기평의 전도를 받아 서관옥 추씨산옥 등이 예수를 믿는데서 교회가 태동했다. 첫 기도처는 고산초등교 뒷편 개인집이었다. 교회당이 건립된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1935년이었다. 추씨 할머니가 당시 290원 상당의 부지와 초가 3간을 기증함으로써 이뤄졌다. 고산리 2192번지 구 고산교회당은 이렇게 건립됐다. 추씨 할머니의 기증과 교인들이 힘을 보태 36평 목조 함석지붕의 첫 예배당과 사택 초가 15평이 세워진 것이다. 첫 예배당엔 현무암 기단위에 벽돌로 쌓은 종탑도 건립됐다. 교회 종은 줄을 메달아 쳤는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종탑은 건재하다. 두번째 교회가 세워진 것은 1964년 10월이다. 고국현(78) 은퇴장로는 제주성내교회의 모태인 서부교회를 모델로 목수일을 하는 강정교회의 한 장로의 도움으로 지어졌다고 말했다. 교회 건물은 현무암에 모래를 섞어 바른 벽돌건물(41평)이다. 교회 전면은 반듯지만, 벽체는 오각형 육각형 돌을 깨서 박고 시멘트를 쳐 넣었다. 이때 쓴 모래는 고산 수월봉 절벽 10m아래 ‘한장알’에서 교인들이 달구지에 실어온 검은 모래였다. 현무암 벽체는 안쏠림 기법을 썼는데, 바람에 건물이 견디도록 한 것이다. 함석지붕이 부식돼 슬레이트로 지붕을 교체했지만, 40여 년간 고산 교인들의 성소로 쓰였다. 현재 구 교회당 남쪽의 새 교회당은 2002년 부지를 매입하고, 구 교회부지를 개인에게 팔아서 2004년 9월 완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