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문화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일본,
그 이유는 단 하나 일본이 목탑의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불타 없어진 목탑이
그곳에는 있으니...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달려간
법륭사는
입구 건물 지붕밑 파도를 탄
토끼장식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두분의 금강 역사상이 지키고 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목탑과 금당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석등,석탑,금당
순서로 일직선상에 배열되어 있는데
여기 법륭사는 목탑과 금당이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주변으로 긴 회랑이 늘어서 있고 금당 뒤로는
청등이 있고 그 뒤로 강당이 있다.
금당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사방 기둥에 용이 휘감고
있다.
안에는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나
지금은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다.
그저 그물 사이로 들어야 볼
뿐이다.
주변 벽면을 장식했던 담징의 벽화는 화재로
불타버렸으나
다행히 사진촬영해 놓은 것이 있어 복원했다고
한다.
금당옆 목탑은 오층탑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이다.
목탑 내부에는 동서남북으로 여러 상이 조각되어
있다.
동쪽엔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문답장면,
북쪽엔 부처님의 열반모습,
서쪽엔 부처님 열반후 사리 분배모습,
남쪽엔 미륵보살이 용화수 아래에서의
설법장면이 조성되어 있었다.
관람객이 많아서인지 일정에 쫓기는 탓인지 차분한
맘으로 바라볼 시간도 정신도 없다.
설명 듣기도
바쁘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목탑이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오래된 탓인지,
그때의 정열이 식어버린 탓인지 별 감흥이
없다.
마치 목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 어떤 감동도 느낄수가
없다.
강당엔 약사여래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우리는 부처님 뒤에 탱화가 있지만
그들의 부처님 뒤엔 조각된 광배가 있다.
우리는 사천왕이 사천왕문이나 탱화속에 모셔져
있지만 일본은 법당안에 들어와 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의 영향이 크단다.
각각이 따로 모실수 없기 때문에
탱화속에 한꺼번에 모셨다고.....
외롭진
않으시겠다.
모두
모여 있으니......*^^*
답답한 마음으로 들어간곳이
대보장원
법륭사에서 나온 문화재를 모아놓은 대보장원에서
담징의 천인상과 복사본인듯한 아미타 정토도를
봤다.
담징스님은 사불화를 비롯한 천인상등를 그렸다고
한다.
위 사진은 백제
관음상이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울정도로 큰키의
관음상은
늘씬한 키에 섬세한 손동작이
일품이다.
뒤에 있는 광배마저도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예불을
올렸다.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
지견향~~
이 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절을
세웠다는 성덕태자(쇼토쿠)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성덕태자는 일본 불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란다.
구세관음의 화현이라고도 해서 그에 대한 불상이
몽전에 따로 모셔져 있다.
일본 법당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우울하고
답답했다.
아무리 신비주의를 좋아한다지만 들어가는 입구부터
휘장이 처져 있고 조명마저도 극장에 온듯했다.
얼마나 어두운지 특별히 눈이 어두운 나는
부처님 얼굴 모습조차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이다.
저 안에 계시는
부처님은 마음의 눈으로 우릴 바라보시겠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들의 법당을 둘러보면서 우리 법당이
그리웠다.
감출것 없이 다 내보여 주는 우리의
법당이....
첫댓글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