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신세계갤러리 / 2005_0823 ▶ 2005_0829 인천 남구 관교동 15번지 인천신세계백화점 1층 Tel. 032_430_1157
갤러리인데코 / 2005_0831 ▶ 2005_0906 서울 강남구 신사동 615-4번지 Tel. 02_511_0032 www.galleryindeco.com
부재의 현존성(現存性) 혹은 우수(憂愁)에 찬 욕망의 각인(刻印)들 ● 1. 환영의 실재화, 그 영원한 각인 ○ 나는 김유정의 회화작품을 대하면서 작품 속에 고여 있는 어떤 우수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프레스코화라는 기법에서 결과된 화면질감, 그리고 화면 속에 침윤된 색채에서 연유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보다는 김유정이라는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에 관한 시선' 때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파고든다.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의 그물망에는 식물의 줄기, 나뭇가지, 숲, 바람소리, 흙벽, 사물의 실루엣, 원시 토기와 도자기....등이 부서질 듯이 애틋한 표정으로 걸려 있다. 이러한 소재들은 어딘지 공허하고 실존의 강 건너에 존재하는 환영의 옷깃을 연상하게 한다. 혹은 허무함이 남기는 가늘고 긴 여운들이거나.... 아직 따뜻한 생명은 남아있지만, 그러나 무언가 그 끈을 놓아버리려고 하는 슬픔의 정서가 배어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김유정의 작품에서 '존재론적 사유(Ontological thought)'를 떠올리게 된다. ● 김유정의 회화적 영토는 본질적으로 재현의 제국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현실세계 혹은 자연의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회화 자체를 '정지된 하나의 세계'로 그려내려는 것에 있다. 이 정지된 세계는 찰나의 그림자들일 뿐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 기거하는 심상(心象)의 그림자들이다. 그러나 정지되어 있지만 끝없이 유동하는 사물의 움직임 혹은 자연의 현상을 포착하려는 강한 의도가 담겨 있다. 모든 회화가 그렇듯이, 2차원의 화면에 3차원적 공간을 재현하려 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있는 사물의 찰나적 존재를 고착화시키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면회화는 본질적으로 그것이 재현이던 추상이던 간에 '환영의 실재화'이다. ● 김유정은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 혹은 객체들을 화면 속에 주체적 위치로 전이시키고 있다. 이 전이(轉移)의 지평에서 그녀가 그린 이미지들은 어떤 메시지의 전달자로 위치한다. 스산함, 적막함, 움직임, 어떤 역사적 시간을 지나온 퇴색의 흔적들이 나부끼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존재론적 자각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무상한 시간 속에 사물이 던져주는 나즈막한 소리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깊이, 공간의 넓이만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욕망의 작은 몸짓들을 환기시킨다. 그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하는 역사적 사건이 이미 있었음을. 그 욕망으로 비롯된 삶의 의미들, 지층들, 흔적들을 새기고, 추적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그림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퇴색된 벽 혹은 퇴적된 지층을 타고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의 잎 혹은 뿌리 같은 이미지들은 2003년도 개인전 작품들인 「회상」, 「회고」, 「잔상」, 「남겨진 흔적」등과 같은 작품제목들과 연결되면서 그녀의 창작동기를 싹틔우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_비워내기_130.3×162cm_프레스코_2005
김유정_담을 수 없는 푸르름_130.3×162cm_프레스코_2005
김유정_머물다 간다_130.3×324cm_프레스코_2005
2. 이미 부재한 과거의 잔상(殘像)들 ● 사실 그녀가 다루고 있는 프레스코(Fresco)화는 다른 회화양식과는 달리 주재료인 석회가 지니는 견고함으로 인해 수 천년동안 영속적인 존속이 가능하다. 이것은 곧 김유정이 회화작품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하나의 영속적 생명력 내지는 예술의 영원성으로 승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기법이자 재료이다. 김유정은 아이소핑크 위에 유리섬유인 화이버글라스(Fiber glass)로 덮으면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백시멘트와 모래가 섞인 모르타르를 바르고 초지와 모래, 백운석, 샤모트 등이 섞인 화지를 바른 후, 옮겨진 밑그림 위에 채색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석회가 마르기 전에 수성안료로 그림을 그리거나 때에 따라서는 포도즙과 석회의 화학적 반응을 이용한 표면처리를 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특히 이번 개인전 작품 중에는 재벌한 도자기 위에 프레스코화 방식을 시도하여 조각도로 요철을 주면서 특이한 화면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도자기를 바탕화면으로 사용함으로써 평면이 아닌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형태 위에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제작 과정은 프레스코화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만한 것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빚어진 도자기 프레스코화는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자신의 심상들을 표현하는 재미와 희열감을 동시에 심어준 듯하다. 작은 화면들에 담겨진 이미지들은 어떤 사소한 풍경들을 그린 듯이 보이지만 한편의 시처럼, 영화의 스틸 장면처럼 다가선다. 바다와 섬, 분절된 화면 속의 풍경들, 식물의 잎사귀, 나무줄기, 인체 속에 들어 있는 나뭇가지 등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조율되어 그려져 있다. 서정적이면서도 스산한 풍경들, 언젠가 보았던 듯한 보편적 기억 속의 잔상들이 날개를 털고 일어서며 슬픈 연가를 들려주는 듯하다. ● 이번 김유정이 천착한 프레스코화들은 실존의 잔상들, 욕망의 그림자에 관한 나르시즘(Narcism)적 독백이다. 주관적인 시선의 수평선에 걸린 심상의 편린(片鱗)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밤하늘의 별, 파도, 바람소리, 빗줄기 들을 동반하면서 다시금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그림자들과 함께 작은 떨림을 지속한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실상(實像)과 허상(虛像)의 관계성인 것이다. 실존과 부재 사이에서 그녀의 화면 속 이미지들은 공명(共鳴)한다. 옆으로 길게 누운 나뭇가지들은 그것이 나무의 실체인지, 그림자인지를 분간케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대비적으로 배치되면서 작가의 의도가 실존과 부재에 관한 사유를 드러내려 하였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바로선 나무와 거꾸로 선 나무를 대비적으로 표현한 그림에서는 이러한 사유가 더욱 극대화 되고 있다. 그림을 뒤집어 걸거나 물위에 투영된 나무만이 거꾸로 설수 있다. 이 실존과 가상의 경계선에 그녀의 그림은 비로소 새로운 발언을 준비한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 혹은 "진실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물음을 상기시킨다. 거짓이 진실을 대치하고 시뮬라크르(Simulacre)가 현실보다 더 실재적인 포스트모던 담론지향성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본질적 동류의식을 회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시뮬라크르의 한 표상일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은 의도된 진실의 대체방식으로 선택한 개념적 접근이 아니라 평면회화 속에서 탐구하는 실존의 그림자, 잔상들에 관한 회화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김유정_머물다 간다_130.3×324cm_프레스코_2005
김유정_쓸쓸한 연가_110×50cm_프레스코_2005
김유정_일상의 사색_가변설치_도자기에 프레스코_2005
다시 말하자면, 그녀의 평면 속에 그려진 실상과 가상, 실존과 부재에 관한 이미지들은 회화적 표상, 회화적 의미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잡을 수 없지만 잡을 수 있을 듯한 그림자 표현은 의미론적으로 '부재의 현존성(Present of absence)'이다. 과거의 사라진 사실을 현재화한다는 측면에서 부재의 현존성은 사진의 경우에 더 깊은 미학적 담론을 내포하고 있지만, 김유정에 있어서 부재의 현존성은 실체와 허상이라는 두 가지 다른 실체의 공시성(共時性)이 어떻게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흔들 수 있는가에 있는 듯하다. 그녀의 이러한 작품에서 나는 부재의 현존성의 문제를 「실체(Substance, Reality)=욕망(Desire)」으로, 「가상(Illusion, Virtual image)=사실(실체)이 남긴 사건의 흔적(Trail of historical event)」이라는 분석의 틀로 들여다보게 한다. 이것은 이번 개인전에서 그녀가 표명하고 있는 그릇에 대한 의미들과 깊이 관련된다. 그릇은 우리의 삶의 필요충분한 일상의 도구이다. 이 일상의 도구는 인간이 지닌 욕망의 대리물인 것이다. 먹고 마시는 욕구의 충족은 물론 무엇을 담는다는 행위와 그것을 비우게 되는 행위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관한 코드가 잠재해 있다. 그것은 또한 선행(先行)의 동기와 후행(後行)의 결과 사이를 연결하는 중심기류 속에 놓여있는 '욕망'의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실체는 욕망의 그림자를 낳게 되고, 그림자는 욕망하는 것들의 흔적이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유추하게 되는 것이다. ● 김유정은 대체로 이러한 욕망의 문제를 대비적 관계성 속에서 구현하려 하고 있다. 실존과 부재, 과거와 현실, 실체와 그림자 등에 관한 그녀의 상반된 시선은 분절된 화면을 공존시키려는 태도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원시 빗살무늬토기와 무문토기를 대비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면, 사라질 듯이 희미한 회색조의 재현된 빗살무늬 토기 그림과 파손된 상태를 이어붙인 고고학적인 발굴유물로서 무문토기에는 조개껍질 오브제를 붙여 현존성을 강조한 두 작품을 병치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에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흔적이 조개껍질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현재화되는 즉, 통사적 조형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이 통사적 표현은 과거의 흔적이 현재라는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와 현존성을 갖게 되는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부조리한 사건의 풍경과 마주하게 한다. 김유정에 있어서 이러한 부조리한 사건의 풍경은 주둥이가 있는 도자기를 기울이는 그림에서 쏟아져 나오는 나뭇가지들, 수반과 같은 도자기의 표면에 비친 나무의 실루엣, 뒤집어진 도자기의 표면에 그려진 꽃잎 혹은 구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등에서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부조리한 현실과 비현실적 풍경은 불안함과 괴기스러운 정서를 동반하고 관객들의 시선을 향해 날아든다. 그러나 잠시, 우리는 그 음산한 풍경들 속에서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화면 속에 내재해 있는 저 먼 역사의 흙먼지에 깃든 전통의 소리, 이미 사라진 과거의 시간을 부르는 바람소리, 마음속에 갇혀있는 욕망의 긴 호흡.....과 같은 들리지 않는 소리의 파장들을.
김유정_욕망의 끝_가변설치_도자기에 프레스코_2005
김유정_소리없는 움직임_가변설치_도자기에 프레스코_2005
김유정_소리없는 움직임_가변설치_도자기에 프레스코_2005
3. 부유하는 풍경들 ● 김유정의 이번 개인전 작품들 중 주목하게 되는 것은 도자기에 그려진 많은 단편적 풍경들이다. 이것이 그의 첫 개인전에 비추어 집합적으로 부착될 가변적 설치작품들이다. 작가의 심상 속에 기거하는 많은 기억들이 도자기로 빚어진 형태 속에 표출된 것들이다. 어딘가에 존재할 가상의 바다, 섬, 파도가 있기도 하고 숲의 정령들이 살아있는 듯한 나무들, 식물들의 자태들,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듯한 자전적 독백 등이 파편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부유하는 풍경들은 김유정 특유의 감성의 바다에서 퍼 올린 이미지의 향연들이기도 하다. 다양한 형태 속에 고여 있는 이미지의 출렁임은 나무와 숲과 바다와 나뭇잎에 그려진 김유정의 기억들, 그 잔상들이다. 그것이 보편적 재현의 풍경을 넘어선 김유정만의 주관적 욕망의 반영이라면, 그 회화적 형식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깊은 감성과 마주하는 영혼의 통로를 발견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불변의 영토에 건축과 함께 존속하기를 꿈꾸었던 프레스코화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자연의 실체와 가상에 다가서려는 김유정의 꿈. 그 부조리한 풍경과 기억의 잔상들이 남긴 화면의 울림들은 우수에 찬 욕망의 바람소리처럼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나는 그러한 이유를 김유정의 독창적인 회화형식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욕망은 비워짐으로써 채워지려는 그릇의 미학 속에서, 그림자를 담고 있는 빛의 파장 속에서 우리의 삶을 늘 흔들리게 한다. 그 욕망의 흔들림을 담고 김유정의 새로운 개인전이 우리 앞에 새로운 아침이슬을 뿌리고 있다. 그것이 비록 너무나 허무한 우리 운명의 숲을 적실지라도. ■ 장동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