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재회
동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 보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다리를 절고 있으므로 회사의 정식사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울 테고, 그렇다고 남의 집 종업원은 더욱더 불구자라는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았다. 그러면 결국 경수에게 말한 것처럼 포장마차를 한다든지 하는 자영업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선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기 시작 할 것이다.
서면일대로 나와 뒷골목을 거닐며 벽에나 전주에 붙은 구인광고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하나 같이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눈 질끈 감고 전화라도 해볼까도 싶었지만 마지막 자존심이 결국은 허락하지 않는다. 간혹 길가를 가다가도 다리를 절룩거리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처지와 같아 마음이 암울해진다.
거리를 헤매다 복개천가의 포장마차에 들렀다. 점심때도 되었고 하여 국수를 시켜먹고 막걸리도 두 사발이나 마셨다. 다리를 다친 이후로 처음 마셔보는 술이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술은 이 기분에 마신다고 생각해 본다.
막걸리 두 잔이라도 안 먹다가 먹으니 얼굴이 발개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용기를 내어 박씨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박은영 씨 좀 바꾸어 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동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 만에 목소리를 들어보게 되었는가? 아마도 8개월쯤은 된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동수.”
“아 얼마만이야. 거기 어디야?“
“응! 시낸데 옆에 사람들 눈치 안채게 이야기 해.”
“알았어. 그런데 언제 온 거야?“
“조금 되었어.”
“왔으면 빨리 연락해 줘야지. 왜 그래?“
“일이 좀 있어서 그래 미안 해.”
“저녁에 볼 수 있어?“
“저녁에?...그럼 여덟시에 배타기 전에 만났던 집 거기서 볼까?”
“알았어. 그때 봐.“
동수는 그녀와 만날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집으로 돌아가 기다렸다가 다시 오기로 하였다. 집으로 돌아 온 동수는 낮잠이나 자둘까 해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는다.
그녀를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를 할까? 육 개월 동안 승선하였던 일들, 다리를 다친 이야기도 해야 할 텐데 그녀는 다리를 다친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난감한 이야기지만 다리를 다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녀와 계속해서 만난다면 언젠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희는 일곱 시쯤에 가게를 나와 친정에서 성원을 데리고 집으로 온다. 동수는 연희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집을 나섰다. 서면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뒷골목을 걸어가고 있다. 퇴근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8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약속한 장소로 갔다. 10여분쯤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달려왔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국엔 언제 왔어?‘
“사실은 한 달쯤 됐어.“
“그런데 왜 이제 연락 하는 거야?”
“응! 문제가 좀 있어.“
“무슨 문제인데?”
“우선 술이나 하자. 잔 받아.“
동수는 여인에게 소주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동수의 얼굴을 살펴보며 잔을 받아든다. 연거푸 두 잔씩의 술을 마신 뒤 동수가 마지못한 듯 말을 꺼낸다.
“사실은...배에서 사고가 났어.”
“무 무슨 사고?“
“닻에 걸려서 다리뼈가 부러졌어.”
“그래? 많이 다쳤어?“
“조금...걸으면 표시가 나.”
“휴우 난 또...그래도 다행이네.“
“어째든 불구자가 됐잖아.”
“배사고 나서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랑 같이 걸으면 창피할 텐데.“
“말도 아닌 소리 하지마라. 그래서 이제야 만난다고...정말 너무한다.”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동안 병원에도 있고, 집에서 못나왔어.“
“아무튼 다른 생각하지 마라. 난 자기가 더 험한 모습이라도 안 헤어질 거니까.‘
“고마워.“
“고맙긴...자 술잔 받아.”
술잔이 오가고 있으나 분위기는 별로 밝지가 못하였다. 동수는 자신도 모르게 자책하는 말투가 나왔고, 여인은 동수를 다독거리고 있다.
양손을 이마에 짚은 동수의 얼굴은 고뇌에 찬 모습이었다. 여인은 동수의 손을 잡아 탁자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누님은 어떻게 지내.“
“요즘도 그저 그래.”
“아저씨하고 화해 안했어?“
“화해랄 것도 없어. 그냥 사는 게 그런데 뭘...”
“애들은 잘 크고.“
“응! 그런데 자기 배 탄다고 고생 많이 했지?’
“아직 젊은 데 뭘...누님 많이 보고 싶더라.“
“나도 그랬어. 외국에서도 전화는 할 수 있을 텐데 전화도 안 해 주고.“
“그냥 참았다. 보고 싶어도.”
“칫! 그게 뭐 잘한 짓이라고. 남은 속 타는 줄 모르고.“
“많이 보고 싶었어?”
“꼭 말로 해야 아나?“
“이젠 봐 줄 게. 내가 시간도 많은 데.”
“그러자. 우리.“
동수는 그녀와의 만남은 언제나 마음이 편했다. 정말 누님 같이 다정하기도 하고, 때론 어머니처럼 포근하기도 하고 아니면 애인처럼 달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로가 이미 선을 넘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각자의 가정이 있으므로 그녀를 위해주고 마지막 보루인 그녀의 가정을 깨지 않도록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라고 동수는 다짐해 오고 있다.
술잔이 오가는 횟수가 늘자 서로의 얼굴은 달아오르고 있다. 동수는 불그스레한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띄어나게 아름다운 얼굴은 분명하게 아니지만 여인은 둥그런 이마며, 짙은 눈썹과 맑은 눈망울 밑에 제법 우뚝 솟은 코, 도톰한 입술 등 전체적으로 윤기 흐르고 건강한 여인의 모습은 바라보는 동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동수도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뜨거운 열기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녀도 동수의 얼굴을 쳐다본다. 동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술집을 나와 가로등 길을 피해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걷던 그들의 발걸음은 어느 새 여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긴 입맞춤과 격렬한 포옹의 순간이 끝났다.
“누님! 나 만난 거 후회 안 해?“
“말도 아닌 소리 하지마라.”
“우리 7개월 만이다. 그지?“
“응!”
“밤에 나 생각 많이 났어?“
“그걸 말이라고 해. 자기는?”
“나도 그렇더라. 근데 다른 남자들이 사귀자고 안 해?“
“그런 사람들도 있는 데 자기만큼 마음이 안 편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배 탈 때도 난 한 번도 다른 여자하고 시간 안 보냈다.”
“그래? 힘들 텐데. 고마워. 그리고 애기 엄마한테 잘 해주라.“
“질투 안 할 거야?”
“질투는? 그게 우리사이 오래 지속하는 길이야.“
“그렇구나! 누님 안아보니 7개월 전일 생각난다.”
“무슨 생각?“
“7개월 전에 누님 처음 안아 보던 일과 누님이 한말.”
“무슨 말?.“
“난 6개월 동안 배타면서 매일 그날 밤 생각했는데.”
“.....“
“누님은 내 것이라는 말. 지금도 그래?’
“음. 그래. 안 믿겨져?“
“아니 믿어. 고마워.”
“절대 집에서는 눈치 안채게 해야 해.“
“들키면 같이 살면 되지 뭐.”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누님 나 사랑한다면서 같이 살면 안 돼?”
“그런 걸 생각해면 복잡해져 그냥 지금 이대로 한 번씩 만나는 걸로 하자. 내가 자기가 안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알았어. 해 본 소리야. 그런데 정말 서로가 오갈 데 없으면 같이 사는 거지?‘
“그거야 그렇지.“
“알았어.”
그날이후 동수는 사흘이 멀다 않고 그녀를 만나 같이 지내는 일이 지속되었다. 그녀가 직장을 쉬는 날이면 가까운 근교에 같이 다니기도 하고 뭔가 두 사람이 중심을 잃어 가는 것만 같았다. 연희는 그러한 동수가 걱정되고 원만스러웠지만 술을 먹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으로 일삼는 그에게 서운한 소리라도 하는 날이면 동수는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한탄을 하는 마당에 그저 술을 적게 마시고 집에 있었으면 하는 말만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동수 또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연희를 보면 안타깝고 자신의 행동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문득 문득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술을 가까이 하게 되고 박 여인에게 자신을 맡겨 마음의 위안을 갖고 싶은 마음뿐 이었다.
그녀도 이젠 회사에서 통상적으로 하고 있는 오후 여섯시부터 여덟시까지의 연장근무는 하지 않고 여섯시만 되면 동수를 만나기 위해 퇴근을 하는 것이 일수였다.
그래도 연희는 동수의 마음을 잡기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자기 술 마시는 것 이해 해 그런데 몸 생각해서 조금만 마시면 안 되나? 걱정돼서 그래.“
“나한테 신경 좀 쓰지 마라. 나도 내 자신을 감당 못해.”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가족인 데.“
“글쎄 좀 내버려 둬. 없는 셈 치고. 돈 땜에 그러면 내가 나가 벌 거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다가 정말...“
“미안하다. 제발 당분간 없는 셈 쳐라.”
“아〜어쩌면 좋아 이 일을...엄마도 맨 날 걱정한다.“
“미안 하다고 전해라. 못난 사위 놈이라고.”
‘돈은 아직 남았나?“
“아직 있다. 걱정마라.”
동수는 선박회사로부터 받은 월급과 자신이 다친 보상금을 자신의 통장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 쓰고 있었다. 연희는 그 돈으로 술을 먹고 다닌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계절은 초가을로 접어들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동수는 연희와 성원을 데리고 광안리 바닷가의 방파제로 나갔다. 성원인 이제 세 살이 되어 제법 자기 생각을 말하곤 한다. 동수는 녀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과감하게 자신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아빠! 여기가 어디야?“
“응! 광안리다.”
“광안리?“
“아니 광안리.”
“광안리! 여기가 광안리다 광안리.“
“성원아 여기가 좋아?”
“으 응 좋아. 광안리 좋다.“
“엄마하고 나란히 서 볼래. 사진 찍어 줄게.”
“알았어. 아빠는 사진 같이 안 찍어?“
“아빠는 너랑 엄마를 찍어야지.”
“성원아 엄마하고 먼저 찍고 아빠랑 너랑 찍어 줄게.“
“응 엄마. 찍어 줘. 아빠랑.”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나란히 선 모자, 그리고 부자간의 모습은 어쩌면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으로 보여 지는 건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가장인 동수의 갈등으로 인하여 상당한 회오리가 쳐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가족이라는 실체가 좌초할 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요즈음 동수는 처가에 가는 것이 뜸하다. 그리고 처가의 식구들이 동수의 집에 오는 것도 역시 드물다. 연희는 나름대로 불편한 인식을 안 하려고 애를 쓰지만 동수 자신이 스스로 벽을 쌓고 있는 것이었다.
연희도 일의 의욕을 잃은 데다 주변에 양장점이 들어서 경쟁이 심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수입도 시원찮은 데다 다른 곳으로 옮겨 볼까 생각하여 점포를 내어 놓아도 보려오는 사람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연희는 동수라도 제 정신을 차리고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주길 바랐으나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 말할 수 없이 클 뿐이다.
동수의 술 도벽과 여인과의 애정행각은 벌써 3개월이 넘어섰다. 이젠 두 사람 중 누구하나라도 없으면 못 살겠다는 듯이 하루를 멀다 않고 만나고 있다. 연희는 어름푸시 동수의 행동을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이야기를 하면 무슨 불상사가 발생할지를 몰라 모른 체 지켜보고만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수가 박 여인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데 느닷없이 그녀의 남편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으나 이미 각오를 하였다는 듯 담담하였다.
“이 놈의 인간들 너희들 오늘 잘 만났다.“
“왜 초면에 남한테 큰 소릴 치고 그래요?”
“아니 뭐 낀 놈이 성낸다고 남의 여편네와 놀아 난 놈이 어디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놀아나다니...”
“다 알고 왔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젊은 놈이.“
“아저씨! 아주머니 데리고 가면 그만이지 어디서 큰 소릴...”
“큰 소리라고. 어디 감옥가고 싶어?“
“감옥? 허허 이 아저씨가...어디 경찰 불러보시지.”
“동생! 참아 응? 당신은 어디 함부로 남에게...“
“이놈의 여편네가 누구 편을 들어.”
세 사람이 뒤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대자 작은 술집 안은 난장판이 되어갔고 이를 본 주인은 나가 달라고 소리친다.
“이 사람들이 남의 장사 망치려고 하나 어서 나가요. 나가서 싸우든지 말든지.“
“이봐요. 아저씨 나갑시다. 이 위에 공터에 갑시다.”
“공터는 당장 경찰서로 가야지.“
“아 그럼 경찰 불러요.”
“빨리 여기서 좀 나가요. 원 시끄러워서.“
“아저씨! 일단 나가서 경찰을 부르든지 감옥을 보내든지 알아서 하시고, 여기선 시끄럽다니까...”
“좋다. 둘 다 도망만 가면 그냥 안 둔다.“
“도망은 왜가? 내가 죄 지었나.‘
“응 좋다. 나가자. 당신도 빨리 나와. 애 새끼는 팽개쳐두고...”
박 여인의 남편은 동수의 옷자락을 끌고 복개 천 위 공터로 올라갔다. 주변엔 집들이 없어 약간의 고함소리가 나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장소다.
동수는 일부러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자칫 잘못 대응하면 정말 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여인의 가정이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 아저씨 내말 들어봐요. 내가 아줌마하고 여관가는 거 보았어요?”
“꼭 봐야 아나? 안 갔다면 말이 아니지.“
“보지도 않고 무조건 갔을 거라고 짐작하고, 참 나 원...그리고 아저씨는 아줌마 사랑해요?”
“사랑이고 뭐 고가 뭐 중요 해? 부부간에.“
“아줌마가 당신 종이야? 난 아줌마 사랑 해. 알아요?”
“말이면 다야?“
“사랑하는 건 죄가 안돼요. 당신처럼 부인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게 잘 못이지.”
“그래서 어떡하겠다는 거야.“
“내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기왕에 말 나왔으니 이대로 우리 경찰서로 갑시다. 가서 나랑 당신 마누라 집어넣고 이혼하세요.”
“뭐? 이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간통죄로 고소하면 이혼 하는 거 몰라요? 누님! 이 양반하고 같이 살 거요?”
“동생...“
“거 봐요. 우리 둘이 징역살고 나서 같이 살면 되지 뭐. 한 2년 정도만 고생하면 되지 뭐.”
“애들은 어쩌고. 말도 아닌 소리.“
“애들은 당신이 키워야지. 감옥 간 사람보고 키우라고?”
“그 그런 게 아니고...“
“누님! 똑 바로 말해? 나 하고 안 살 거야?”
“그 그럴게.“
“거봐. 자 이젠 갑시다. 같이.“
“자 잠깐만...내가 경찰서 가자했나. 홧김에 그랬지.”
“당신이 분명 감옥가고 싶냐 고 그랬지 안 그래?“
“우리 이성적으로 이야기 합시다.”
“이성? 난 이성 같은 거 몰라. 나 전과자야 알아? 세상 살기 싫다고. 당신 마누라하고 살아 보는 게 소원이야 잘 됐네 이참에.”
“젊은 이! 내 내가 말을 잘 못했네.“
“아니 말 잘했어요. 누님! 갑시다. 경찰서로...”
“알았어. 가자! 나도 이참에 여기서 정리해야겠다.“
“당신까지 왜 그래? 애들은?”
“애들은 당신이 키우면 되잖아? 우리가 부부야?“
“내가 잘 못했다. 당신 맘대로 해. 이혼만 하지 말고.”
“이혼이고 뭐고 이젠 만정이 떨어졌다. 동생 가자!“
“여보! 이러지 마! 알았다. 내 아무 말 안 할게.”
“당신 같은 사람은 혼자 애들 키우며 살아봐야 돼.“
“누님! 어서 갑시다. 잘 됐네. 소원풀이 하겠네.”
“자 잠깐. 나 두 사람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거 이야기 안 할 테니 이혼은 절대 안 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로 마주친 그녀의 남편과의 담판에서 동수는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러나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녀를 좋아해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만약에 입장이 서로가 뒤바뀌어졌다면 얼마나 허무했겠는가?
아무튼 그녀의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물러설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수는 그녀의 남편에게 정말로 박 여인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도 어려서 부모 잃고 객지에 나와 갖은 고생을 하다 보니 처지가 비슷한 박 여인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둘이 술도 자주 마시게 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으니 안 만날 수는 없고 대신 가정을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니 이해를 해 다라고 하여 돌려보냈다.
그녀의 남편이 돌아가고 가까운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누님! 미안 해.
“아니다. 나도 속이 후련하다. 어차피 한번은 격어야 할 일이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이겼다. 기분은 별로지만.“
“저 양반이 어떻게 알고 왔지?”
“그거야 우리가 하루 이틀 만나나 어디.“
“꼴에 남편이라고 자기 마누라 지킨다고...”
“심정은 이해하겠는 데. 나도 누님 안 만날 수 없고.“
“앞으로 어쩔 건 데?”
“누님은 나 안 만나도 돼?“
“아니 그런 건...”
“만나지 말까?“
“왜 말을 그렇게 해? 이제 와서 나더러 어쩌라고?”
“그냥 해본 소리다. 지금처럼 같이 만나면 되지?“
“알았다. 지금처럼 하자.”
“지금처럼 하면 집에서 문제없겠나?“
“조금 전에 꼬리 내리는 거 못 봤나.”
“그래도 집에 가면 당하는 거 아니야?“
“절대 안 진다. 저 인간에게는.”
“일이 이렇게 되어서 안 됐지만 사는 대로 살자.“
“걱정할 거 없다. 내 몸 내알아 한다. 너나 집에 잘해라.’”
동수는 이 여인도 작심하고 일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집에서 나와 여관에 들러서도 그녀는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동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동수의 탈선한 행동이 겨우 내내 계속되어져 동수가 가진 돈을 거의 다 탕진하게 되었고, 연희의 가계도 수입이 줄어들어 가계에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하였다. 그날그날의 생활이야 꾸려 나갈 수 있을지라도 장래에 대한 투자는 할 엄두가 없었다.
봄이 되어서 동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도 부탁을 해보고 일거리를 찾아 직접 거리를 헤매본다. 그러나 동수의 마음은 이미 피폐해져 조그만 것에도 감정을 상할 수 있을 지경에 이러러 도무지 자신에게 접합한 일자리라곤 눈에 뜨이지를 않았다.
동수의 나이 스믈 일곱 정상적인 경우라면 세상의 그 무엇도 겁날 것이 없건만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 동수로서는 세상 그 어느 일이라도 쉬운 것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덧없이 흘러갔다. 그래도 동수가 조금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돌아보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이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동수는 산으로 바닷가로 나다니며 머리를 감사 쥐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걸 초월해야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동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무언가 기술이 필요한 것이었다. 동수도 그러한 것을 느끼고 있지만 마음이 조급하고 막막하여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연희에게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하겠다고 이야기 하였다. 연희는 당장 급한 일은 술을 적게 마시고 마음을 잡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고뇌를 거듭하던 동수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평소 주변에서 생각해 보았던 일이었다.
그는 그날 밤 근무를 마친 박 여인을 서면에 있는 다방으로 불러내었다.
평소 술집에서 만나왔던 동수가 다방으로 오라고 하자 의아해 하며 자리에 앉는다.
“자기가 다방에 다 오고 웬일이야?“
“응 의논할 일이 좀 있어서.”
“뭔데 그래?“
“좀 생각을 해 보았는데...자기 지금 회사 다니기 어때?‘
“갑자기 왜 그래? 잘 알면서.“
“우리 같이 뭘 좀 해보면 어떨까 해서.”
“무얼...“
“포장마차 어때?”
“포장마차?...자기하고 나하고?“
“음. 보기보단 수입이 괜찮다던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생각을 좀 해보고...“
“자기가 회사를 잠시 쉰다 해도 생계엔 지장 없나?”
“먹고야 살지. 애 아빠가 다니니.“
“당장 여기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고 조금 생각을 해봐. 내가 잘 못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그럴 께. 나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 이야기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하려 나갈까?”
“그러자.“
술을 가볍게 마시고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동수는 여인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여인이 입을 먼저 열었다.
“자기 나하고 장사하면 안 불편하겠어?”
“당연히 불편하지 손님들이 자기한테 붙을 텐데.“
“그래서 내가 꼬이면 어쩔래?”
“그러면 일 난다. 나한테 맞아죽을 생각부터 하고 있네. 그런데 그 건 걱정 마라 내가 남편이라고 하면 되지 뭐.”
“결국 나보고 얼굴마담 하란 말이야?“
“그런가? 포장마찬데 뭘.’”
“애기 엄마가 허락하겠나?“
“그건 걱정 마! 지금 보다야 안 낫겠어?”
“지금도 그런데 맨 날 둘이 붙어 지낼 텐 데.“
“그런 거 걱정 말고 장사가 되겠는가 생각이나 잘 해봐.”
“알았다. 이러다가 진짜 애기 엄마한테 머리 채 잡히겠다.“
“걱정마라. 그러면 나도 이혼 하면 되지 뭐.”
“이혼이 장땡이야.“
“그런가?”
막상 결심을 하고나니 막연한 공상에서는 벗어나지만 과연 앞으로 잘 되어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걱정이 앞선다. 우선 연희에게 의논을 하였다. 연희는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할 것인가에 대하여 물었고, 동수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장소에 누군가와 동업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야기를 하였다.
연희는 동수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대신 너무 일을 키우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이어서 동수는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했다. 장소는 어디로 할 것인가?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어야 하지만 포장마차를 이용할 만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은영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먼저 번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장사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회사직원들이 많이 이용을 하게 될 것이고, 그곳은 공장이 많아 아무래도 적당한 장소가 될 것 같았다.
다만 동수 자신은 이미 각오를 하였지만 은영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야 하는 부담과 회사근처에서 동수와 같이 장사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인가가 관점이었다.
그 다음은 리어카를 사야하는 데 포장마차용 리어카는 새로 제작을 하여도 좋겠지만 고물상 같은 데서 잘 고르면 먼저 하던 사람들이 쓰던 것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음식을 담는 플라스틱 그릇, 도마, 칼, 그리고 화덕, 그릇종류와 식자재 등을 구입하면 될 것이고 무엇을 주 메뉴로 할 것인가? 그리고 서비스 음식은 무엇으로 준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주 메뉴에 대한 재료구입에 관한 문제이다.
매일 새벽시장을 볼 것인지? 아니면 공급업자에게서 매일 공급을 받을 것인지가 중요한 데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는 매일 새벽시장을 보는 것이 좋긴 한데 포장마차라는 게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다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저녁시간이 되어 은영을 만났다. 그녀는 아직까지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제부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아무래도 애기 엄마보기도 그렇고...”
“알아서 선택 해. 애 엄마한테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는 했어. 누구하고 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안 했지만.”
“내 아는 사람도 포장마차를 하는 데 재미는 있다더라.“
“사람들이 생각 하는 것보다 수입은 짭짤하다던 데. 그런데 자기는 회사 그만두고 하려면 힘이 들지 몰라.”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인데...요즘 회사도 힘들어. 경쟁이 심해서 그런지 새로 바뀐 사장이 매일 우는 소리를 하고 다녀.”
“그래도 생산직들에게 직접 이야기는 못 하잖아?“
“안 그래. 일일이 제품 검사라고 천천히 일한다고 재촉하고...”
“예전 사장 있을 때가 봄날 이었구나.“
“다른 데도 마찬가지인가 봐. 요즘은.”
“세상이 살기가 힘들어져.“
“장사를 어디서 하려고?”
“음...생각해 봤는데...회사 근처는 어때?“
“우리 회사 근처에서?...”
“어차피 장산데 아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는 것도 좋고.“
“나랑 같이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안 여길까?”
‘그게 용기가 필요하거든. 어차피 살자고 하는 짓인데. 곰곰이 생각을 좀 해봐.“
“글 세...“
“시간은 충분하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
“그럴게.“
“남들은 어차피 남이야. 회사 직원들도...내가 사는 게 중요해.”
“......“
“남편하곤 어때?”
“그저 그렇지 뭐. 서로 사는 데 간섭 안하기로 했으니까. 자기 집은?”
“나도 그냥 무덤덤해. 내 눈치를 많이 봐.“
“너무 짜증 많이 내지 마! 가족들 힘들어.”
“알았어. 술이나 먹자.“
“그러자.“
이틀이 지난 후 토요일 오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요일에 가까운 야외라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동수는 그러자고 하면서 다음 날 9시에 부전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요일 아침. 동수는 가족들에게 친구들과 가까운 곳으로 야유회를 간다고 하면서 집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서면에서 내려 김밥과 계란, 빵과 소주도 조금 샀다. 여덟 시반경 부전역에 도착하여 기차표를 탔다.
그녀와 함께 간절 곶 등대 근처 바닷가에 가서 따스한 가을 햇볕을 쏘이면서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아홉 시가 가까워지자 그녀가 나타났다. 동수가 이미 먹을 것을 샀는데도 그녀는 무엇인가를 잔뜩 싸가지고 왔다.
“그건 또 뭐야? 먹을 것 내가 샀는데.”
“그랬어? 다 먹어 치우지 뭐.“
“들어가자 표 탔다.”
“어릴 가려고?“
“응! 저기 일광위에 가면 서생역에서 내려 간절 곳 등대 쪽에 가려고.”
“집에는 뭐라고 하고 나왔어?“
“친구들하고 야외 놀러간다고 했지. 신경 쓰지 마!”
“우리 애들은 외가에 갔어. 늦게 와도 된다.“
“늦게 오는 게 아니라 아예 보내주지 말까?”
“그러면 난 좋지.“
“이 바람기 있는 아줌마 봐라. 큰일 나겠네.”
“큰일은 벌써 났지. 김동수 씨라는 사람하고...“
“아줌마 잘났다 정말.”
“그래 그렇다. 어쩔래?“
“자! 먼저 타라.”
‘응! 알았어.“
울산행 완행열차에 그들은 몸을 실었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다. 버스와는 달리 사람들은 기차를 타면 왠지 더 가슴이 설렌다.
기차는 도심의 낡은 건물 뒷부분을 보여주며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다. 해운대를 거쳐 나오자 멀리 시원한 동해의 바다가 가끔씩 보인다.
일요일이라 열차손님이 많다. 모두들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을 풍경을 감상하거나 열차 승강대에 매달려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가는 사람들도 많다.
기장을 지나 일광, 서생역에서 내렸다. 여기에서 목적지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제법 걸어가야 하는 데 괜찮지?“
“날씨도 좋은 데 걷는 것도 좋지! 옆에 든든한 사람도 있고.”
“나도 예쁘고 싱싱한 아줌마하고 걸으니 기분 좋네.“
“싱싱하기는 내가 어디 해물이가?”
“응! 포장마차에 놓고 팔까?“
“그래라. 나도 누구 보기 싫다.”
“정말이지?“
“몰라! 자기가 먼저 쓸데없는 이야기 꺼내 놓고.‘
“날씨 참 좋지?“
‘그러네. 아〜이런 날만 있었으면...“
등대가 멀리 보이는 한적한 곳, 햇볕이 따스한 바닷가 절벽 안쪽에 두 사람이 쉴만한 공간이 있었다. 발끝아래엔 동해의 푸른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살찐 고기를 잡으려는지 작은 어선들이 분주하게 항구를 오가고 있다.
돌을 고르고 가져간 음식도 정리를 했다. 등대주변엔 사람이 많지만 이곳은 그래도 인적이 드문 공간이다.
“여기 자리 좋다. 그지?“
“내가 자리 잡으려고 어제 밤에 왔다 갔다.”
“무슨 거짓말을 해도 적당히 해야지.“
“어째든 젊은 아줌마하고 단 둘이 있으니 기분 그만이네.”
“나도 싱싱한 유부남하고 있으니 좋네.“
“같은 값이면 총각 같은 유부남이라 해라.”
“총각 같기는. 불량 유부남이다.“
“이 아줌마가!”
“사실이 그렇다 아이가?”
“그럼 자기는 불량품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렇게 되나?”
“그건 그렇고 회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응! 우선 장사할 것부터 준비하는 봐 가면서 그만 두려고.”
“회사 옆에 해도 괜찮겠어?“
“직원들한테 슬쩍 이야기를 꺼냈더니 다들 괜찮을 거래.’”
“나하고 같이 한다고 이야기도 했어?“
“응!”
“그랬더니 뭐라고들 해?“
“어려운 사람들끼리 열심히 하라고.”
“다행이네. 하기 전에 부장님하고 한잔 해야겠네.“
“그러든지.”
“따뜻한데 한숨 잘까?”
“자고 싶으면 자라.”
“무릎 이리 내라. 베고 자게.“
동수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여기 저기 떠 다니고 있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햇살에 데워진 바위를 식혀주고 있다.
가끔씩 들려오는 배 엔진소리와 등대 주변의 관광객들 소리만을 제외하고는 밀려오는 파도소리만이 동수의 귓전을 스치고 있었다.
“잠 안와?”
여인은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눈을 감은 동수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주며 말한다.
“응! 잠이 올 것 같은데도 잘 안 오네.”
동수는 여인의 손을 잡아다 자신의 가슴위에 얹어본다. 따스한 그녀의 체온이 느껴진다. 눈을 뜨고 그녀를 올려다본다. 정말 정겹고 따스한 여인이다.
다시 두 팔을 벌려 그녀의 목을 감아 얼굴을 끌어내려 입술에다 키스를 한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보면 어때?”
“보면 안 되지.“
“내거 내가 보는 데 어때?”
“어디 내가 네 거고?“
“아이 구! 몇 십 번이나 그런 소리 해놓고선.”
“그런 일 없다.“
“그건 그렇고. 포장마차 언제부터 시작할까?”
“자기 마음대로.“
“그럼 내일부터 슬슬 시작한다. 내가 대략적으로 계획을 세워 놓은 것 있으니까 내일 만나서 의논하자.”
“오늘 가져오지.“
“이 좋은 날 데이트 안하고 골치 아픈 소릴 해야 해?”
“그래도 시간이 많잖아.“
“별거 없다. 내일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그러든지 알아서 해라.“
동수가 일어나 여인의 손을 잡고 물가로 내려갔다. 밀물에 물이 들었다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조그만 게들이 놀다가 재빠르게 바위틈으로 숨어버린다.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한 마리 잡아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어떻게나 빠른지 도무지 잡을 수가 없다.
약간 깊은 곳에는 담치가 빽빽하게 바위에 붙어 살아가고 있다. 날카로운 돌로 떼어내 보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싶지 않다. 물결이 잔잔한 쪽을 보니 물속에서 작은 고기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저 어린 물고기들도 언젠간 크게 자라서 너른 바다를 오가기도 하고 개중에는 자칫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들의 먹잇감으로 되는 운명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에 잠긴 여인의 하얀 종아리가 너무나 탐스럽게 느껴진다. 동수는 털이 날 듯 말 듯 한 통통한 여인의 다리를 만지며 그녀의 하체를 끌어안았다.
“미끄러질라. 밀지 마라.”
“이대로 물에 확 밀어 넣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건져도 뭐한데 밀어 넣어?”
“응 그러고 싶네.“
“놀부 심정이가 이 아저씨가.”
“자기 다리가 너무 멋있다. 다른 데도 예쁘지만.“
“아이 쑥스럽게 자꾸 다리를 만지고 그래.”
“아니 진짜로 좋다.“
“자기 물에다 밀어 버릴까?”
“안 그래도 기온만 높으면 물에 들어가 헤엄이라도 치고 싶다.“
“자기가 들어가면 고기들이 고래가 온줄 알고 다 도망갈걸.”
“에끼 여 보슈 서방님보고 고래라니.“
“그래도 사랑스런 고래.”
어느 듯 해가 하늘의 중간지점을 지나 서편으로 향하고 있다. 가을 햇살이라 이동속도가 빠른 것 같다.
“배고프다. 밥 먹을까?“
“그래 나가자.”
다시 바위틈에 위치한 자리로 왔다. 김밥과 계란 등 가져온 음식물들을 봉지에서 꺼내어 놓는다. 제법 푸짐하다.
삶은 계란과 김밥을 먹으며 은정이 말했다.
“포장마차 주 메뉴는 무엇으로 할 건데?“
“글쎄 산 낙지, 장어구이, 오뎅 국물, 우동, 돼지갈비, 담치 국물은 서비스로 하고...”
“요리는 내가 해야 해?“
“처음엔 그렇게 하고, 내가 익숙하면 자기는 도우미.”
“그럼 내가 손님들하고 합석하라고?“
“합석까지야. 그냥 안주 챙겨주고 그런 거지.”
“자기는 요리해봤나?“
“조금은 안다. 총각 때 자취실력도 있고.”
“모르는 사람이 우리관계 물으면?“
“뭐 꼭 물으면 남매라든지 아니면 부부?”
“부부? 좀 심하다.“
“뭐가 심해? 자기가 젊어 보여서 괜찮아.”
“모르겠다. 자기가 알아서 대답해라.“
두 사람은 오후 산그늘이 내려올 즈음 기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