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경위에게 좀 더 설명을 요구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에게 나 좀 살려달라는
다급한 전화 한 통화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한숨 잘 자고 살포시 눈감고 있는데 일반 전화벨이 울렸다.
경찰 지구대로부터 내게 걸려온 전화였다.
몇 차례 나에게 휴대폰으로 연락하려 했지만 받지 않아 어렵게
일반 전화번호 찾아 연락한다는 것이다.
사라진 그에 대하여 뭣 좀 아는 게 없느냐는
제원 지구대로부터의 전화였다.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 아직 산에 있을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얼마나 있으면 돌아올 수 있느냐?
빠르면 시간 반, 늦으면 두 시간을 넘겨야 될 것 같다는 내 말에
훈제 오리고기 먹으려하니 가능한 빨리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대산에 도착했을 때 술판이 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아래 사는 완규동생, 사무실은 경리에게 맡기고 시간만 나면 이곳 농장에
와 살다시피 하는 세무사와 그리고 아내, 그 가운데 그가 끼어있었다.
평소에 발걸음 없든 그가 어쩌다 끼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안주 좋겠다 넷 모두가 술기운 올라 얼굴들이 붉어져 있었다.
끼니 거른 채 산에서 막 내려온 나는 허기진 배 채우려 밥 수저든 손놀림이 급했다.
그런 나에게 그가 탁배기 잔을 내밀었다.
사양했다.
그는 한사코 권했다.
언제 이렇게 술 권한 적 있느냐는 말로 한 잔 받으라는 것이었다.
딱 한잔, 술은 그 것으로 끝, 나는 밥과 고기로 배를 채웠다.
그는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주는 입장에 어쩌다 한 번씩 입을 열어 묻는 정도였다.
술기운에 치기가 동했는지 그가 젊은 한 때 사업성공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정육점을 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정육점은 잘 됐다고 했다.
당신들 10억 현찰로 본 적 있어?
난 본 게 아니라 안방에 쌓아놓고 만져 보았어.
만원짜리 다발 차곡차곡 쌓으니 이 정도 크기가 되더먼.
그는 반쯤 일어나 양손을 벌려 돈 10억 쌓은 크기를 우리 앞에서 보이려했다.
그 즈음에서 나는 일어섰다.
어머님의 병환으로 얼마 전부터 용화 집에서 생활하기에 아내와 함께 출발했다.
전화 수화기를 내리고 나서 않되겠다 싶었다.
아내를 깨웠다.
이렇다는 말 같은 거 없이 잠 덜 깬 아내를 데리고 대산으로 향했다.
대산 들녘에 이르렀을 때 분위기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사람이 없어졌고 그가 다급하게 구조를 기다린다는데 너무 조용했다.
그가 어딘가에 있을 대산 들판은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세워져있는 방범등만 적막한 어둠 속에서 희뿌연 빛을 뿌리고 있었다.
봉장과 맞붙은 완규동생 집도 불이 꺼져 있었다.
아내가 완규를 깨웠다.
부스스 일어난 완규는 왠지 심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인사불성 직전에 이르도록 마신 술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지구대로 전화를 했다.
아직 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그의 수색을 손 놓고 있단 말인가?
내가 지금 대산에 나와 있다는 말과 함께
누구라도 이곳으로 와 같이 그를 찾아보자 했다.
야간 사냥용 서치라이트와 렌턴을 준비하고 겨울 점퍼까지 차에 실었다.
20여분 기다렸는데도 기다리는 경찰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큰길로 나갔다.
5분 기다렸을까?
경광등 켠 경찰차가 멀리 보이더니 느리게 우리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 경찰차, 우리로부터 200m가량 앞에서 멈추더니 한동안 지체를 하는 것이었다.
다가온 경찰차 안에 그가 있었다.
조금 전 멈추었든 곳에서 그가 도로가로 나와 오줌을 누고 있어 태웠다는 것이다.
일단 지구대로 갔다.
지구대에는 그의 마누라와 아들이 있었다.
그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그 마누라는 나를 보자마자 대들며 따지고 들었다.
왜 자기 남편한테 술을 퍼먹였느냐는 것이다.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나이가 몇인데 술을 먹이고 말고를 한단 말인가!
그는 나보다 한참 위였다.
오경위가 보기가 민망했는지 한마디 했다.
이 양반은 술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까 총 입고하러 왔을 때도 술 냄새 전혀 풍기지 않던데요.
이어 완규동생을 가지고 내게 대들었다.
사람이 왜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남편 걱정안고 경찰관과 함께 찾아갔더니 자는 척 하면서 문도 열어주지 않더란 것이다.
일어났으면서 사람이 찾아 왔는데 불도 밝혀주지 않더란 것이다.
사람이 없어져 죽을 지경인 자신에게 도리어 화를 내며 내 알바 아니란
태도를 보이고 성질을 부리더란 것이다.
함께 갔든 경찰관도 그의 마누라 말을 거들었다.
그 양반 왜 그렇대요? 괜히 화를 내며 우릴 쫒아내려 하던데요.
이런 시비가 이어지고 나서 그가 차에서 내렸다.
밝은데서 보게 된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맨발에 바지는 논구렁에 뒹굴었는지 흙투성이였고 상의는 벗겨져나가
메리야스만 걸치고 있었다.
벗겨진 머리 위에 모양내며 씌워져 있든 모자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긁혀 상채기가 나 약간의 핏자국이 있었다.
나 당했어, 건장한 놈 셋이 나를 꼼짝 못하게 비틀어 어딘가에 쳐 박았는데
겨우 탈출했어. 아, 나 죽는 줄 알았어.
이 말을 들은 마누라 갑자기 그의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아, 지갑은 예있네.
그는 억지를 부리며 조서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경찰관 가운데 누구 한사람 조서란 말을 꺼내지도 않는데......
안정을 못하고 수선을 떠는 그를 보다못해 마누라와 아들에게 내가 말했다.
조서고 조사고 받을게 있으면 내일 날 밝고 술 깨면 그때 받아도 되고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양반 얼른 집으로 모시세요.
다음날
대산으로 향하다 그가 발견되었다는 곳에 차를 잠간 세웠다.
그가 뒹군 자리가 도롯가 둑방 아래 머잖은 곳에 확연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 크기의 벼논이 논 주인이 보게 된다면 눈 돌아갈 정도로 온통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내려가 그의 물건을 찾으려 했지만 앞서 누가 찾아갔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봉장 가까이 이르러 아내는 지난밤 완규의 짓이 잘못 됐다는 말을 꺼냈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속에 담고만 있었는데 아내가 말을
꺼낸 것이다.
내가 봉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작업복 갈아입고 개밥을 주는 동안 아내는
지난밤의 궁굼증을 풀려고 완규 집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한참 만에 올라온 아내는 식탁위에 물 끓여 커피 잔 놓더니 입을 열어
조금 전에 들은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떠난 뒤에도 셋의 술자리는 계속됐다.
술이 떨어졌다.
200m가량 떨어진 세무사네 컨테이너 거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두어병 막걸리를 더 마셨다.
모두 잔뜩 술에 취했다.
세무사를 뒤로하고 둘은 컨테이너를 나왔다.
그도 완규도 발걸음 옮기는 게 힘들었다.
몸을 붙여 서로 부축하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대산 그의 집으로 향했다.
자동차운전은 불가능한 상태라서 완규는 얼마라도 같이 걸어 바라다 주려
했든 것이다.
너무 취해 비틀거리다 시멘트 농로에 빠질 것 같아 넓은 길을 따라 걸었다.
걷기를 얼마, 둘은 둑방 아래로 이어진 포장된 농로로 접어들었다.
그때, 그가 갑자기 완규의 머리채를 잡아채는 것이었다.
완규의 머리는 꽁지머리로 여자 머리처럼 길어 잡기가 용이했다.
처음 완규는 장난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있는 힘 다해 양손으로 머리채를 감아쥐고는
마귀, 마귀, 이놈 마귀야 소리치는 것이었다.
뿌리치려했다.
어림도 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치는지 도저히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 왜이러십니까?
소리쳤지만 그의 귀에는 완규의 안타까운 절규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계속 마귀라는 말을 뇌이며 머리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20여분을 그렇게 당하다 어떻게 하여 벗어날 수 있었다.
그 20분이란게 짧다면 짧을지 모르지만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벼논에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당하는 동안 신발은 벗겨지고
반소매 옷에 팔둑이 긁혀 적잖이 상처를 입었다.
도망쳐 집에 돌아와 방에 쓰러져 누우니 마음 쓰리고 억울하고 분하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런 기분이었다.
막 잠들려는데 경찰차가 마당에 들어오더니 자신을 찾는 것이었다.
자는 척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었다.
그래도 자는 척 했다.
그런 가운데 신발을 신은 채 한발을 방에 들여놓고 불을 켜려고 수위치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경찰관이었다.
벌떡 일어났다.
당신들이 뭔데 남 잠자는데 들어와 맘대로 방문을 열고
신발 신은 발로 방안까지 들어 오는거요?
그의 마누라가 남편을 찾는다고 했다.
나 그런 사람 모릅니다.
나가세요.
밀쳐내고 문을 꽝 닫아 버렸다.
기가 막혔다.
그 후에 한참 지나 우리가 다녀갔다.
몸은 천근이나 되는지 무겁기만 하고 머리는 욱신거리지
애매하게 그에게 당한 분은 밤새 가라앉지 않았다.
뜬 눈으로 새웠다.
새벽, 어둠 가실 즈음 그런 상태에 막 잠이 들려는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방문 두두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였다.
어젯밤의 몰골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로 찾아온 것이다.
방문열자 그는 무릎을 팍 꿇었다
그런 자세로 자기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으니 용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꼴도 보기 싫었지만 도시 일어설 기미가 없어 시큰둥하게 알았다는 말로
그를 일으켜 세워 돌려보냈다.
돌아가면서 그가 다짐시키듯 완규에게 한 말,
이 일은 당신과 나만 알고 있자는 것,
세무사도 꿀집 아지매나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않된다 는 것이었다.
그는 사라졌다.
지금껏 그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일이 있고나서 완규는 머리를 확 밀어버렸다.
까까중머리로 한동안 지내다 지금은 약간 자라 깍두머리다..
첫댓글 소설같은 실화~~~
진인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암 과 육종 으로 투병하는데
건강하다는것이 얼마나 고귀한것인지 새삼~~
진인이의 쾌유를 기도합니다.
비록 육신은 병들어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지라도
마음은 평안하게 해달라 神께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를 위해 간원(懇願)의 기도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