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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이폴리토 핀데몬테의 <엔리코 8세 또는 안나 볼레나>
알렉산드로 페폴리의 <안나 볼레나>
대본 펠리체 로마니
초연 1830년 밀라노 카르카노 극장
배경 1536년 런던의 윈저 성과 런던탑의 감옥
<2011년 4월 빈 국립오페라극장 공연 / 194분 / 한글자막>
빈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에벨리노 피도 지휘 / 에릭 제노베제 연출
엔리코 8세................영국의 헨리 8세......................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바리톤)
안나 볼레나...............엔리코의 왕비. 앤 불린............안나 네트렙코(소프라노)
조반나 세이모어.........안나의 시녀. 후에 왕비가 됨.....엘리나 가랑차(메조소프라노)
로체포르트 경............안나의 오빠...........................댄 폴 드미트레스쿠(베이스)
리카르도 페르시 경.....안나의 과거 연인....................프란체스코 멜리(테너)
스메톤......................안나의 시종 겸 악사................엘리자베스 쿨만(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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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배경과 줄거리 === <불멸의 오페라 1, 박종호> 389쪽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는 왕권을 강화하고 영국 르네상스를 주도했으며 영국 국교의 주창, 즉 자신을 영국 교회의 우두머리로 자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여섯 명의 아내와 결혼한 것으로도 화제가 된다. 헨리의 여섯 부인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아라곤의 캐서린, 앤 불린, 제인 시모어, 클레브스의 앤,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파 등이다.
그는 형이 죽자 그를 대신하여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뿐만 아니라 정략적 목적으로 미망인인 형수 캐서린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캐서린은 메리 공주를 낳고는 더 이상 왕자를 낳지 못했으며, 궁정의 모든 이들이 메리의 왕위계승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헨리는 내연의 관계였던 스무살의 시녀를 왕비로 맞으려 했는데, 바로 앤 불린이다.
그러나 스페인과 교황청의 비호를 받는 캐서린과의 이혼은 쉽지 않았고, 결국 형수와의 결혼을 무효(이혼이 아닌)로 하는 데는 6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앤 불린과의 힘든 결혼과정이 바로 헨리에게 종교개혁에 앞장서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이렇게 앤은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만, 이미 그 6년 동안 지쳐버린 헨리는 새로운 애인을 만들었으니 그녀가 제인 시모어다. 왕비가 된 앤에게서 헨리의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아들을 낳고 싶은 욕심에 앤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딸(엘리자베스 1세)만 하나 낳은 앤이 유산과 사산을 거듭하자, 왕은 제인을 왕비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여기서부터가 오페라의 내용이다.
그리하여 헨리는 앤이 여러 남자들(오빠와의 근친상간을 포함하여)과 간통했다는 죄목으로 그녀를 투옥했고, 재판에서 그녀는 사형을 언도받는다. 단두형을 당할 때 그녀의 나이는 29세였다.
실제로 역사가들은 앤의 간통을 무혐의로 보고 있으며, 그녀를 제거하고 싶어했던 크롬웰 등 정파에 의하여 희생되었다는 설이 우세하다.
=== 공연평 === <영상물 내지 해설 / 2011년 9월 마누엘 브루그 / 박제성 번역>
왕비의 길
2002년 7월 천부적인 재능을 갖추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기획한 돈 죠반니에 등장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 날 이후 9년 동안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예술가로 꾸준하게 성장해 나간 네트렙코는, 2011년 4월에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의 새로운 프로덕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제적인 커리어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단계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른 나이의 성악가의 삶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지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한다. 안나 네트렙코의 목소리는 점점 어둡고 무거워져 드라마틱한 역할에서 기인하는 무게감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가 된 만큼, 이제 그녀는 새로운 레퍼토리가 무엇이든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그녀가 맡은 역과 작품은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기억으로 추앙받고 있는, 튜더 왕가의 왕비가 주인공인 <안나 볼레나>다. 이 작품은 도니체티가 1830년에 작곡한 오페라로서, 30대에 접어든 작곡가가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작품일 뿐만 아니라 빈 국립 오페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에릭 제노베제(연출)의 정적이면서도 기능적인 프로덕션의 마지막 부분에 이를 때까지 네트렙코는 고개를 높이 치켜세우고 자신의 왕도를 걷지만, 예상대로 그녀의 머리는 기요틴(단두대)처럼 열고 닫히는 많은 문들 가운데 하나의 아래에 놓이는 처지가 된다. 텅 비어 있는 무대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의상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어디까지나 긴장감 넘치는 벨칸토 오페라의 저 비상하려는 성악의 광채를 만족시켜야만 한다. 이 작품은 스타급 연주자가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성악적 곡예를 자랑하는 빈 수레의 요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에는 자신들의 고통과 사랑을 위해 서로 치열하게 분투하는 다섯 명의 성악가들이 등장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이들은 빈 국립 오페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자신들을 훌륭하게 도와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에 따른 음색 변화와 뉘앙스의 극한치를 이끌어내 줄 수 있는 지휘자인 에벨리노 피도와 함께 했다.
마리아 칼라스는 1957년 밀라노 프로덕션 라이브 레코딩에서 잔인한 여성, 더 나아가 백성들로부터 등을 돌린 안나 볼레나를 표현해 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이 역에 있어서 현대 최고의 해석가로 일컬어지는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듯한 절묘한 표현력을 곁들여 콜로라투라 특유의 투명한 감정의 그물을 엮어냈다. 네트렙코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역사적으로 안나 볼레나(앤 불린)는 엔리코(헨리 8세)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도록 부추겼으며 이로 인해 영국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분리되는 계기를 마련한 만큼, 왕비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는 순결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안나 네트렙코는 캐릭터의 성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아무런 희망도 없이 상황을 지배하고자 하는 여인으로 바꾼 동시에 의회와 음모, 공감, 체념의 세계를 거치며 자신의 길을 더듬거리며 찾아가기에 공격과 존경 모두를 받는 인물로 만들어 나갔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하지만 점점 냉철하면서도 공격적으로 변해가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전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무대를 점령해 나갈 뿐만 아니라 - 이는 강력한 클라이맥스를 구축해 나가는 도니체티의 고무적인 능력에게도 상당 부분 감사해야 할 것이다 - 무대를 장악한 뒤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새로 태어났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쇄된 악보의 음표들이 성악적 표현력과 정신적 통찰력의 특별한 층위를 어떻게 요구하는지, 그리고 경험이 많은 가수가 새로운 분야에 들어서서 권위와 감동 모두를 충족시키며 처음 맡은 역에서조차 자신만의 해석을 당당히 주장하는 것처럼 한 소프라노가 어떻게 프리마 돈나로 성장하는지를 우리는 보고 들을 수 있다.
영국의 왕을 향한 애정전선에 있어서 안나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조반나 세이모르(제인 시모어)는 밝은 톤을 자랑하는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가 맡았는데, 네트렙코에 버금가는 노력을 기울인 그녀 역시 다이아몬드와 같은 빛을 발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이 두 명의 재능 있는 성악가들은 얼굴을 맞대면서 공격하기도 하고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도록 서로를 북돋아 준 결과, 그녀들의 다면적인 대립 곳곳에서 욕망과 야망이 이중적인 양상을 띠며 터져나온다. 한 쪽은 얼음같이 시린 푸른 눈의 블론드 여인이고, 다른 한 쪽은 연보라색 눈의 브루넷 여인이다. 오페라 대결에 있어서 전형적인 역할 반전을 보여주듯이 가랑차가 상성부를 노래부르기도 하고 네트렙코가 낮은 음역을 담당하기도 한다. 테너 프란체스코 멜리는 리카르도 페르시(리차드 퍼시) 경의 역할을 보잘 것 없는 제3자의 지위로부터 씩씩한 금속성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최고의 연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반면 엘리자베스 쿨만은 순박한 메조소프라노의 특성을 살려내어 숙명적으로 바보스러운 스메톤(스매튼)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엔리코 8세(헨리 8세) 역을 맡은 일데브란토 다르칸젤로는 역사적인 헨리의 허풍 섞인 호언장담을 표현하기 위해 멜로디를 강조하는 귀족스러움을 선호하는 듯하다.
이 장엄한 오페라가 <안나 볼레나>라고 불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찬사를 받아 마땅한 빈 국립 오페라의 프로덕션을 통해 소프라노의 여왕으로 탄생한 안나 네트렙코는 또 다른 안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 작품해설 === <2012년 7월 23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
안나가 퍼시와의 사랑을 회상하는 '고향으로 나를 데려다 주세요'가 유명
1830년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인 초연.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와의 첫 작품
열여덟 살 때부터 약 20년간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로 활동했던 조아키노 로시니가 [빌헬름 텔](1828)을 끝으로 오페라 작곡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랑의 묘약](1832), [루크레치아 보르자](1833), [마리아 스투아르다](1835),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 [돈 파스콸레](1843) 같은 걸작 오페라로 유명한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의 첫 성공작은 1830년, 그의 나이 서른 셋에 밀라노 카르카노 극장에서 초연한 [안나 볼레나]였습니다. 이폴리토 핀데몬테의 [엔리코 8세 또는 안나 볼레나(Enrico Ⅷ ossia Anna Bolena)], 알레산드로 페폴리의 [안나 볼레나(Anna Bolena)] 등의 원작을 토대로 한 이 오페라는 벨리니에게 자극을 주어 [노르마](1831)를 탄생시키기도 했답니다.
[안나 볼레나]는 16세기 영국사의 실화를 기초로 한 본격 사극오페라입니다. 튜더 가의 군주였던 헨리 8세의 총애를 잃어버리고 참수형으로 죽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이야기죠. 1969년 [천일의 앤], 2008년 [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헨리 8세는 형이 세상을 떠난 뒤 형수 캐서린과 결혼했지만, 메리 공주만을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자 캐서린과 이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 이를 승인하지 않자 가톨릭 교회를 떠나 영국 국교회를 창립한 뒤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어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죠.
하지만 앤이 엘리자베스 공주(훗날의 엘리자베스 1세)를 낳은 뒤 아들을 사산하자, 이번에는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결혼하기 위해 앤을 불륜죄로 법정에 세웁니다. 이혼을 하면 목숨을 구해준다고 헨리 8세가 회유했으나 앤은 자기 딸의 지배권 상속을 위해 끝까지 이혼을 거부했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참수 당했습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는 바로 앤이 참수당한 1536년의 윈저 궁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천일의 앤'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사극 오페라
이 오페라의 대본은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쓰였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달라집니다. 앤은 안나 볼레나(소프라노), 헨리 8세는 엔리코(베이스), 제인 시모어는 조반나 세이무어(메조소프라노), 그리고 앤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리처드 퍼시 경(Lord Richard Percy. 테너)은 리카르도로 등장합니다.
1막은 윈저 궁의 홀에서 시작합니다. 시종과 시녀들이 왕비 안나와 함께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의 관심이 요즘 다른 여자에게 쏠려 있는 것 같아 안나는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왕의 여자가 자신이 총애하는 시녀인 조반나 세이무어라는 사실을 안나는 아직 모르고 있죠. 10대 소년인 시동 스메톤(메조소프라노, 바지역)은 안나를 위해 악기를 연주하며 지나간 첫사랑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왕이 은밀히 찾아오자 조반나는 이런 밀회를 끝내고 싶다고 말하죠. 왕비의 자리를 원하는 조반나의 뜻을 알아차린 엔리코 왕은 그녀에게 정식결혼을 약속합니다. 안나와 이혼하려는 것입니다.
안나의 오빠인 로쉬포르 경은 궁의 정원에서 안나의 옛 연인인 리카르도 퍼시를 만납니다. 엔리코 왕은 안나 때문에 추방했던 퍼시를 최근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했는데요, 안나와 퍼시가 다시 가까워지도록 한 다음, 불륜죄를 물어 안나와 이혼하려는 왕의 계략입니다.
한편, 왕비 안나를 흠모하는 시동 스메톤은 안나의 초상화가 든 메달을 간직하려고 가져갔다가 아무래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것 같아 몰래 방에 들어옵니다. 발소리를 들은 스메톤은 재빨리 몸을 숨긴 채, 안나와 퍼시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퍼시는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지만, 안나는 왕비의 자리를 잃게 될까봐 단호하게 거절하는데요, 절망한 퍼시가 자결하려고 칼을 뽑아들자 스메톤은 안나를 보호하려고 달려 나오고, 소란이 벌어지자 왕이 시종들을 거느리고 안나의 방에 나타납니다. 이때 스메톤이 품고 있던 왕비의 메달을 보게 된 왕은 불륜을 저지른 안나를 재판정에 세우겠다고 선언하고, 안나는 결백을 주장하며 왕에게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나 왕은 방에 있던 모두를 감옥으로 보냅니다.
2막은 안나가 갇힌 런던탑의 감방 앞에서 시작합니다. 왕의 시종무관 헤르베이는 ‘왕이 모든 시녀들에게 판사의 신문에 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조반나는 안나를 찾아와 왕을 사랑하게 된 죄를 고백하고, 안나는 분노하면서도 ‘너를 유혹한 왕이 나쁜 것일 뿐 너에게는 죄가 없다’라며 조반나를 용서합니다. 헤르베이가 다시 나타나 ‘스메톤이 왕비와의 간통을 인정했다’고 알립니다.
인정하면 왕비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왕의 꼬드김에 순진한 스메톤이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왕 앞에서 당당하게 ‘내게 죄가 있다면 왕비의 지위가 탐나 고귀한 성품을 지닌 본래의 연인을 버리고 왕과 결혼한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퍼시는 크게 기뻐하며 왕에게 ‘왕비는 원래 내 아내인데 왕이 빼앗아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반나는 왕 앞에 엎드려 안나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탄원하지만 왕은 말을 듣지 않죠. 헤르베이가 나타나 ‘안나의 불륜이 입증되었고 이 사건에 연루된 모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퍼시와 로쉬포르에게는 왕의 사면 명령이 전달되지만, 안나의 처형이 철회되지 않자 두 사람은 모두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고 죽음을 택하기로 합니다. 안나는 시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성한 모습을 보여 모두를 안타깝게 합니다. 밖에서는 요란하게 예포가 울려 벌써 왕과 조반나의 결혼을 알립니다. 안나는 ‘복수를 원하지는 않는다’며 마지막으로 격정적인 아리아를 부르고 사형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구조가 명료한 대본, 서정과 격정이 교차하는 음악
이 작품이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드라마틱한 격정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극적인 음악 덕분이었습니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유사한 ‘광란의 장면(mad scene)’이 20분간 계속되면서 오페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데요, 특히 이 장면에서 안나가 퍼시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부르는 '고향으로 나를 데려다 주세요'는 고요하면서도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입니다.
도니체티와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는 이 작품에서 여러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텍스트를 각기 다른 멜로디로 함께 노래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는데요, 특히 추방이 풀려 돌아온 퍼시가 왕과 왕비를 알현하는 5중창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특히 대본가의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도니체티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활동 초기의 희극 오페라 [엄마 만세!(Viva la Mamma!)](1827) 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고 이후 몇 차례 대본작업에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탁월한 대본작가 로마니와의 공동작업은 [안나 볼레나]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니는 명료한 구조의 대본을 만들었고, 불필요하거나 느슨한 장면을 전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요.
여주인공 안나는 처음부터 뚜렷하게 확정된 성격이 아니라, 극의 진행에 따라 성숙하고 완성되어가는 캐릭터로 설정되었는데요, 이 점이 이 오페라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로마니는 이후로 [사랑의 묘약], [루크레치아 보르자] 등의 걸작을 도니체티와 함께 작업했고, 벨리니의 주요 작품들 대본도 썼습니다.
[안나 볼레나]는 1830년 이탈리아의 성공적 초연 이후 1831년 런던, 1832년 마드리드, 1833년 빈, 베를린, 부다페스트, 1839년 뉴올리언즈 등지에서도 대성공을 거두면서 오페라 작곡가로서 도니체티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답니다.
추천 음반 및 DVD
[음반] 마리아 칼라스(안나 볼레나), 니콜라 로시 레메니(헨리 8세), 줄리에타 시미오나토(조반나 시모어), 잔니 라이몬디(리카르도 퍼시) 등, 잔안드레아 가바체니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7년 녹음
[음반]비벌리 실즈(안나 볼레나), 폴 플리슈카(헨리 8세), 셜리 버렛(조반나 시모어), 스튜어트 버로우즈(리카르도 퍼시) 등, 줄리어스 루델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존 올디스 합창단, 1972년 녹음
[DVD] 디미트라 테오도슈(안나 볼레나), 리카르도 차넬라토(헨리 8세), 소피아 솔로비(조반나 시모어), 잔 루카 파솔리니(리카르도 퍼시) 등, 파브리치오 마리아 카르미나티 지휘, 가에타노 도니체티 베르가모 음악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프란체스코 에스포지토 연출, 2006년 베르가모 도니체티 극장 공연 실황
[DVD] 안나 네트렙코(안나 볼레나),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헨리 8세), 엘리나 가랑차(조반나 시모어), 프란체스코 멜리(리카르도 퍼시) 등, 에벨리노 피도 지휘,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에릭 제노베제 연출, 2011년 빈 국립오페라극장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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