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배우면 모르는 말
-신정숙
대입 재수생인 사촌동생이 신문을 읽다가 나한테 물었다.
"누나, 나흘이 4일이지요?"
순간, 나는 멍해졌다. 동생이 정말 몰라서 묻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너,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거 몰라?"
대답은 안 하고 쑥스러운 듯 웃더니,
"사흘까지는 알겠는데... 에이 그런 거 학교에서 안 배웠어요."
"뭐? 하하...,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자기가 모르면 안 배웠대."
내가 놀란 건, 이 아이가 수능 시험에서 영어, 수학 1등급을 받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언어영역(국어)은 2등급이라지만, 2점짜리 문제 두 개를 틀렸을 뿐이라 했다. 공부깨나 한다는 녀석이 초등학생이나 물을 법한 질문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5일은 닷새, 6일은 엿새, 7일은 이레, 8일은 여드레, 9일은 아흐레, 10일은 열흘, 11일은 열하루, 12일은 열이틀, 13일은 열사흘, 14일은 열나흘, 15일은 보름이야."
"우리말 진짜 어려워요. 맞춤법하고 띄어쓰기 그런 거... 영어로 쓰는 게 더 쉽다니까요."
"아휴, 그런 말 말아. 맞춤법이랑 띄어쓰기가 쉬운 것도 아니지만, 영어도 철자 어려운 단어 많아. 니가 우리말 어려워하는 건, 우리나라 국어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지 우리말 자체의 문제는 아닐 거야. 영어 공부를 얼마나 많이 시켰으면 국어보다 영어가 쉽다고 할까, 참... 니 탓만은 아니고, 우리 교육 탓이 크지만 아무튼 암울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름다운 고향>(이주홍 씀, 참비 펴냄)이라는 장편 동화를 읽었다. 글을 쓴 이주홍(1906~1987) 선생님이 100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라, 동화라지만 어른인 나한테도 낯선 말이 더러 나왔다. 그게 다 순 우리말이다. 재미난 표현들이라 아래 옮겨 본다.
동생에게 쉬운 우리 말도 모른다고 퉁을 놓았는데, 나도 그럴 처지가 아니다. 아무리 쉬운 말도 쓰지 않으면 어려운 말이 된다. 오늘도 쓰지 않아서 사라져 가는 우리 말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이 쓰는 말의 수가 적어지면 그만큼 생각의 폭도 좁아진다던데...
누가 나한테 새해 소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국어교과서가 우리말을 풍부하게 가르치는 교재가 되게 해달라고 하겠다.
발싸심
「명」「1」팔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비틀면서 비비적대는 짓. ¶성수는 본보기를 하듯이 모래 속에 발을 푹 밀어 넣고서 설렁설렁 발싸심을 하기 시작했다.≪김정한, 슬픈 해후≫ §「2」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들먹거리며 애를 쓰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웅보를 만나고 싶은 발싸심에 뒤꼍을 서성거리다가, 쌀분이 대신 갑리를 갚지 못해 팔려오다시피 한 끝례를 만났다.≪문순태, 타오르는 강≫/이번에는 제 남편이 옥에 갇혀 놓으니 그런 쪽의 낌새라면 가랑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안 놓치려 발싸심이었다.≪송기숙, 녹두 장군≫§
첫댓글 으흠 발싸심은 정말 처음 들어보네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눈방울이라니? 눈망울이 맞지 않나요? 글에서 '눈망울이 초롱초롱......'이라고 읽은 것 같은데 내 눈이 잘못 됐나?
눈-망울「명」「1」눈알 앞쪽의 도톰한 곳. 또는 눈동자가 있는 곳. ≒망울01〔3〕˙안주05(眼珠). 「2」=눈알. ¶맑은 눈망울/아이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꼭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갈수록 태산..우리말과 뜻을 이렇게 몰랐다니..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