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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목) |
28(금) |
299(토) |
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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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세면 | |
7:00 |
아침식사(2조) |
아침식사(5조) | |
8:00 |
자유시간 |
1. 해수욕 2. 낚시 3. 섬일주 | |
9:00 | |||
10:00 |
이동(교회-태안) |
고대도교회이야기 박원열목사 | |
11:00 |
폐회예배 | ||
12:00 |
점심식사(백화산) |
점심식사(3조) |
점심식사(여전도회) |
1:00 |
이동(태안-영목) |
1. 해수욕 2. 낚시 3. 섬일주 4.조개잡기 |
이동준비 |
2:00 |
승선/이동/차량승차 | ||
3:00 |
승선/이동/도착 |
영목-교회 | |
4:00 |
짐정리/개회예배 | ||
5:00 |
휴식 | ||
6:00 |
저녁식사(1조) |
저녁식사(4조) |
집으로 |
7:00-8:30 |
찬양 / 저녁집회 임석용목사 | ||
8:30-9:00 |
선교기도합주회 인도 바나바선교사 |
치유기도합주회 인도 이은주목사 | |
10:00 |
휴식/갯벌준비 | ||
11-12:00 |
조개채취/샤워/취침 |
※ 위 일정표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우천시에는 영화상영(다량의 영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과 게임시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7. 담당자
총 지 도 : 임석용목사
진행담당 : 2남전도회(진행되는 모든 사항을 담당합니다.)
재정담당 : 송형석집사(모든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담당합니다.)
식품담당 : 1여전도회(식단, 부식재료, 간식을 담당합니다.)
의료담당 : 박상규집사, 김정자권사
(치료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부분을 담당합니다.)
촬영담당 : 이재문권찰(행사전체를 촬영합니다.)
8. 차량배정(교회-영목, 영목-교회)
차량명 |
운전 |
승차 |
스 타 렉 스 (교 회 차) |
이희수성도 |
윤일균, 바나바, 김정자, 오정희, 최명화, 최승현, 최승주, 진성희, 은비할머니, 임남선, 김태유 |
그 레 이 스 (은혜교회차) |
송형석집사 |
이은주, 임선희, 설재준, 설재건, 지예은, 박상규, 신현주, 송호진, 송지원, 주바라기, 김점용, 윤송자, |
엑스트렉스 (이희수성도차) |
박근희집사 |
김진숙, 오명화, 송복순, 김희수, 김상윤, 김영은 |
트 럭 (현원식성도차) |
현원식성도 |
임석용, 모든짐 |
28일 자가용 |
이재문권찰 |
강효순, 이현, 이준, |
9. 조배정(식사준비, 게임시에 적용 됩니다)
조 |
조장 |
조원 |
아동 |
유아 |
1조 |
최명화 |
김정자, 오정희, 은비할머니, (임석용) |
박주바리기 |
승현, 승주 |
2조 |
이희수 |
박근희, 이은주, 윤송자, 윤일균, |
김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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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 |
박상규 |
송복순, 진성희, 김태유, (강효순) |
설재건 |
이현, 이준 |
4조 |
송형석 |
오명화, 김진숙, 신현주, (이재문) |
김상윤 |
호진, 지원, |
5조 |
임남선 |
김희수, 바나바, 김점용, 임선희 |
설재준 |
예은 |
10. 방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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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밤 |
28일 밤 |
지하 큰방 |
여전도회 전체 및 어린이 | |
지하 작은 방 |
새소망회 | |
옛 건물 |
남전도회 전체 |
- |
1층 본당 |
다른 교회가 사용합니다. |
남전도회가 자유스럽게 사용합니다. |
2층 주방, 도서실 |
※ 방사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강메모 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Ψ
주제 : 고대도교회 이야기(고대도 교회와 귀즐라프 선교사),
강사 : 박원열목사(고대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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ΨΨΨΨΨΨΨ 교재1.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ΨΨΨΨΨΨΨ
(찬송 411, 성경 : 요일 3:1 ,)
우리는 ( )으로 태어났다. 하나님은 가족을 원하시고 우리가 가족이 되도록 만드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갖고 계시는 목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영원히 그분과 함께 통치할 하나님의 가족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관계를 소중히 여기신다. 삼위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족으로 즉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으로 표현하신다. 삼위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존재해 오셨기에 외롭지 않으시지만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셔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로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자녀가 된다. 또한 모든 믿는 사람들은 형제와 자매가 되고 교회는 ( )이 된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방법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 뿐이다. 조건은 오직 믿음이다.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 때문에 ( )보다 중요하다. 혈육 관계의 가족도 멋진 선물이지만 이혼, 먼 거리, 죽음 등으로 깨어진다. 그러나 영적인 가족의 관계는 ( )하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빌 4:19>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가족의 재산을 나누어 소유하게 된다. 우리가 받을 유산은
1) 우리는 영원히 ( )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완전히 변화하여 ( )처럼 될 것이다.
3) 우리는 모든 아픔, 죽음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 )질 것이다.
4) 우리는 ( )을 받을 것이고 섬김의 자리에 재배정될 것이다.
5)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함께 ( )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유산인가? 우리의 영원한 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으며 순결하고 영원하며 보호되고 있다.
건강한 가족은 가족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구성원들이 그 가족의 일원으로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선포하는 의식이 바로 ( )이다. 세례는 우리의 ( )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 )하심에 함께 동참함으로 옛 삶이 죽었음을 나타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의식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례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세례는 결혼반지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내면적인 헌신의 가시(可視)적 표시일 뿐이다.
초대교회에 핍박이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 속에 있는 확고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영광이고 특권이다. 그 어떤 것도 이에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중요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며 불안하다고 느낄 때는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가족인지를 기억하라. 우리는 크리스챤(Christian)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의 가족이다.
ΨΨΨΨΨΨΨΨΨΨΨΨΨ 교재2. 가장 중요한 것 ΨΨΨΨΨΨΨΨΨΨΨΨ
(찬송 : 414, 성경 : 고전 13:3)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배우기를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 )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분의 모든 명령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갈 5:14>
이기심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본성에 정반대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평생 동안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하되 특별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요 13:35>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 )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을 연습하는 것이다.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 삶에서 하나의 좋은 부분이 아니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랑은 우리의 최우선 순위여야 하고 최고 목표여야 하며 가장 큰 야망이어야 한다.<고전 14:1>
사랑없는 삶은 ( )가 없다. <고전 13:3>
십계명 중에 후반부 6개는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고 요약하셨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 )”다. 그러나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겐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다. 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사랑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은 ( )하기 때문이다. 생애가 끝날 때 우리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사랑하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이 전부였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좀 더 빨리 깨닫는 것이 현명하다.
세 번째 이유는 영원한 나라에서 ( )받을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도를 측정하실 때 인간관계로 하신다. 주님은 직업, 취미, 성취도, 입금계좌 등을 묻지 않으신다. 사람에 대해 물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마 25:40>
이제 우리가 사랑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시간 사용으로 결정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시간을 누군가에게 주면 한정된 내 삶을 그에게 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간을 줌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고 이 희생이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가 사랑하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왜냐하면 그 기회가 언제까지나 있을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갈 6:10>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 시간은 오늘, 바로 지금이다.
ΨΨΨΨΨΨΨΨΨΨΨ 교재3. 우리가 있어야 할 곳 ΨΨΨΨΨΨΨΨΨΨΨ
(찬송 : 245, 성경 : 엡2:19)
우리는 믿어야 할 뿐 아니라 어느 곳에 ( )야 한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창 2:18)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다른 믿는 사람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원히 서로에게 속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잘린 손가락, 발가락은 몸에서 가치가 없다. 우리가 교회에서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인 삶은 시들기 시작하고 결국 영적인 모습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영적으로 침체되는 사람의 첫 번째 ( )은 교회를 ( )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어둠의 권세가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교회는 파괴될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셨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지칭할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를 의미했다. 즉 신약성경은 신자가 교회에 속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만일 신자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는 경우는 범죄로 인하여 처벌(치리)받고 있는 사람들 뿐이었다. 교회가 없는 신자는 무리를 떠난 ( )이며 가족이 없는 ( )이다.
오늘날은 독립적인 개인주의 문화가 되었다. 한 지역교회에 대한 소속감 없이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면서도 좋은 성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신다.
( )가 성도에게 왜 필요한가?
- 교회가족은 우리가 진정한 ( )임을 증명해 준다.
- 교회가족은 우리를 ( ) 고립에서 건져 준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교실이다. 성경적인 교제는 예수님에게 뿐 아니라 서로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요일 3:16>
- 교회가족은 우리가 영적으로 ( )하도록 도와준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신약에는 “서로”라는 말이 ( )번 이상 등장한다.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고 짐을 나누어지고 권고하고 문안하며 존경하고 용서하고 복종하며 헌신하는 것 등을 제안한다.
-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를 ( )로 한다. 하나님은 가족 안에서 독특한 역할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은사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며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 세계 전역에 걸쳐서 그리스도의 일에 ( )하게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육신의 몸으로 일하셨지만 오늘날에는 영적인 몸을 사용하신다. 교회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장, 손, 발, 눈, 귀가 되어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한다.
- 교회 가족은 타락의 ( )에서 지켜준다. 그 누구도 유혹에 대한 면역이 없다. 상황이 되면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서로 책임을 점검하게 하셨다. <히 3:13>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이 기족 안에서 공급받고 보살핌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거듭나면서 바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 )이고 ( )으로 헌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듯 지역교회에 속하여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ΨΨΨΨΨΨΨΨΨΨΨΨ 교재4. 삶을 함께 경험하기 ΨΨΨΨΨΨΨΨΨΨΨ
(찬송 : 369, 성경 : 시133:1)
삶은 ( )하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삶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성경은 이것을 "교제"라고 부른다. 오늘날 “교제”는 성경적인 의미를 거의 상실했다. 교제는 가볍게 대화하며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제는 함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발견되는 ‘( )’에 대한 명령들이 교제 안에 포함되어 있다.
교제는 작은 그룹에서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더 많은 제자들을 택할 수 있었지만 소수를 두고 사역하셨다. 주님은 소그룹을 두고 약속하셨다. <마 18:20>
그러나 소그룹에 속했다고 저절로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교제와 그렇지 못한 교제의 차이는 무엇일까?
1. 진정한 교제에서는 사람들이 ( )을 기대한다.
진실한 교제를 위해서는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 가능해진다.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고 실패를 고백하고 약점을 깨달으며 기도를 부탁한다.
어떤 그룹에서는 인간적이고 진실한 분위기 대신 가식적인 모습으로 얕은 대화만을 나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한 대화를 나눌 때 진정한 교제를 경험한다. <요일 1:7-8>
2.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 )한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디자인하신 모습은 교회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된다. 몸에서 모든 부분은 서로에게 의존한다. 신약에서‘서로에게’ 또 ‘서로를 위해’ 살라는 명령이 ( )번 이상 등장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노력해야 한다.
3.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 )한다.
공감한다는 것은 고통에 동참하고 나누는 것이다. “네가 겪고 있는 것을 나는 안다. 네가 느끼는 것을 잘못이 아니야.” 하는 것이다. 이 공감을 통해서 이해받고 감정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교제에는 단계가 있다. 기초적인 나눔의 교제는 말씀을 함께 공부하는 교제이다. 보다 깊은 섬김의 교제는 선교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동참하는 교제이다. 가장 깊은 친밀한 교제의 단계는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갈 6:2>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할 때는 심각한 위기와 깊은 슬픔을 지날 때이다. 상황이 악화되어 우리 믿음이 무너지려고 할 그 때 믿음의 친구를 필요로 한다고 욥은 울부짖는다.<욥 6:14>
4.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 )를 경험한다.
교제의 장소, 은혜의 장소에서는 우리의 모든 실수가 드러나지 않고 덮어진다. 자비가 정의보다 강할 때 교제는 일어난다. 우리 모두에게 자비가 필요하다. 주님은 명령하신다. <골 3:13>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동기가 된다.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나의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자비를 베푸는 데 사용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는 없다.
ΨΨΨΨΨΨΨΨΨΨΨΨΨ 교재5. 공동체 가꾸기 ΨΨΨΨΨΨΨΨΨΨΨΨΨΨ
(찬송 : 249, 성경 : 행 2:42)
공동체는 ( )을 필요로 한다. 성령만이 성도의 진정한 교제를 가능케 하지만 한편 성령은 우리의 헌신을 사용해서 역사하신다. 즉 서로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우리가 진정한 공동체를 가꾸고 싶다면 몇 가지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한다.
1.공동체를 가꾸려면 ( )해야 한다.
우리는 문제를 덮어버리거나 모른척 하고 싶을 대로 사랑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한다. 많은 공동체가 바로 이런 이유로 와해되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한다. (엡 4:15) 바울을 말했다.<갈 6:1>
사람들은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문제를 덮어버리곤 하는데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갈등만 증폭되게 된다. 교회의 진정한 교제는 솔직함에 달려 있다. 내면에 깔려 있는 장벽들을 맞서고 허물 생각이 없다면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다.
그러나 솔직함이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례함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간과 방법이 있다. <잠 28:23>
2.공동체를 가꾸려면 ( )해야 한다.
독선적이고 교만한 것은 빠르게 공동체를 파괴한다. 교만은 사람 사이에 벽을 쌓는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벧전 5:5>
교만은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받고 치유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은혜를 가린다. 내가 교만할 때마다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다. <롬 12:16>
3.공동체를 가꾸려면 ( )해야 한다.
공손함은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며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을 인내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호텔의 Boy나 레스토랑의 Waiter가 될 것이다.
모든 교회, 모든 소그룹에는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어울리기 힘든 사람이 있다. 이들은 남을 화나게 하는 버릇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술이 부족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보내신 것은 우리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는 특이한 버릇이 있고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이것을 알면 공손해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4. 공동체를 가꾸려면 ( )을 지켜야 한다.
형제들이 죄를 지을 때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과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은 같지 않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그룹 안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구성원들만 알고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것에 대해 험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5. 공동체를 가꾸려면 ( )야 한다.<히 10:25>
우리는 자주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깊은 교제를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일 만났다. 우리는 모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모여야 한다.
ΨΨΨΨΨΨΨΨΨΨΨ 교재6. 깨어진 관계회복하기 ΨΨΨΨΨΨΨΨΨΨΨ
(찬송 : 543, 성경 : 행 5:18)
관계들은 항상 ( )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불화나 상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신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계 회복의 사역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고후 5:18) 그래서 신약의 상당 부분이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즉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우리의 능력은 영적인 성숙의 척도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이 우리가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마 5:9) 화평케 하는 것은 우리가 개발하여야하고 개발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이다. 그러면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
1.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 )께 이야기하라.
친구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신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또 관계들을 놓고 지속적으로 기도한다면 관계는 더욱 원만해질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분노와 상처, 불안의 감정을 모두 쏟아 놓으라.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당황해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눈을 먼저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나오는 우리를 반기신다.
2. 항상 ( ) 다가가라.
우리가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상관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대하신다. 상대방이 손 내밀기 기다리지 말라. 관계회복은 예배보다 우선되며 중요하다.
<마 5:23-24>
재빠르게 행동하면 영적 손실도 적어진다. 시간은 갈등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상처만 곪을 뿐이다. 회복을 위한 만남에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 피곤하거나 마음이 급하거나 방해받는 시간을 피해야 할 것이다.
3. 그들의 감정에 ( )하라.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하라. 이해되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방해하지 말고 그냥 들으라. 감정이 격한 사람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처음부터 상대방이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충고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분노를 인내하며 들어주는 것은 희생이다. 특히나 그 분노가 근거없는 것일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갈보리의 주님을 생각하자. 그 분노와 모욕을 사랑으로 인내하신 그분을 생각하자.
4. 나에게도 ( )이 있음 ( )하라.
진정한 관계 회복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눈의 들보를 빼어야 형제의 눈의 티가 보일 것이다. 자기 시각으로 보지 못하던 것을 상대방의 눈으로 보게 된다.
5. ( )을 공격하지 말고 ( )를 공격하라.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리려고 너무 노력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말이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는다. 만일 공격적으로 말을 하면 듣는 사람도 방어적이 된다. <잠 15:1>
6. 할 수 있는 한 ( )하라.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때로는 자존심일 수도 있고 또 자기 중심성일 수도 있다. 교제를 위해서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춰야 한다.
7. 해결이 아닌 ( )를 강조하라.
해결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화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화해에 초점 맞추면 문제는 중요성을 잃어버린다. 그렇다고 문제데 대한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해는 문제 자체가 아닌 표면에 떠오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다.
ΨΨΨΨΨΨΨΨΨΨΨΨ 교재7. 교회를 보호하기 ΨΨΨΨΨΨΨΨΨΨΨΨΨ
(찬송 : 246, 성경 : 엡 4:3)
교회의 하나됨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교회의 하나됨이란 신약에서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얘기보다 더 많이 언급될 만큼 중요하다. 하나됨은 교제의 핵심이다. 하나됨이 파괴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심장이 찢겨져 나가는 것과 같다.
하나됨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신 것처럼 우리도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삼위일체는 희생적인 사랑, 겸손한 이타주의 그리고 완벽한 조화의 모범이시다.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아버지도 자녀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우리의 하나됨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셨다. (요 17:20-23)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교제를 나누는 곳, 속한 교회의 연합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성경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1. 서로의 차이를 ( )하라.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한분 주님, 한 몸, 한 목적, 한 아버지, 한 성령, 한 소망, 한 믿음, 한 세례, 한 사랑을 공유한다. 우리는 같은 구원, 같은 미래를 공유한다.
우리에게 다른 인격, 배경, 인종, 취향을 갖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차이를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즐겨야’ 한다. 하나님은 획일성이 아닌 하나됨을 원하신다.
2. ( )인 기대를 하라.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상적인 교제와 현실의 괴리를 발견한다. 이럴 때 절망하고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런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엡 4:2>
때로 다른 신자가 나를 실망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제를 파괴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구성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지상에서 완벽한 교회를 찾을 수 없다. 만일 완벽한 교회가 있다면 불완전한 우리는 그 모임에 갈 수 없을 것이다.
3. ( )하기보다는 ( )하라.
공동체에 기여하기보다는 비판하는 것이 쉽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성경은 사탄을 ‘형제를 고소하던 자’라고 부른다. 우리와 아무리 달라도 크리스찬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4. ( )을 귀담아 듣지 말라.
험담을 듣는 것은 훔친 물건을 선물받는 것이며 공범자가 된다. 누군가 험담을 하면 용기를 내어서 “저의 귀를 쓰레기통으로 취급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양 우리 속에서 늑대가 아닌 다른 양에게 공격받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성경은 이런 자를 경계했다. <잠 20:19>
5. 갈등을 해결하는 ( )을 익히라.
어제 배운 방법을 100% 활용하라.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제3자에게 불평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성경은 말한다.<마 18:15-17>
6. ( )와 ( )들을 지지해주라.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됨을 지킬 책임과 권위를 주셨다. 목사들은 갈등을 중재하는 유쾌하지 않은 일을 맡았다. 또 모두를 기쁘게 해야 하는 불가능한 일을 맡았다. 이것은 예수님도 하지 못한 일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히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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