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에 칼 소어란 인문지리학자는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식량 지도를 작성한 바가 있다. 플로리다 해협과 멕시코만을 거쳐 온두라스에 이르는 지대는 옥수수를, 남미의 안데스 산맥 지대는 감자를, 남미의 대서양 연변은 유카를 주식으로 살았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한 것이다. 옥수수는 안데스 지역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이곳 주민들은 주식을 감자로 삼았고 옥수수를 부식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멕시코에서 중미에 이르는 메소아메리카 지대의 주민들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고 산다. 밀가루 빵 문화가 확산된 도시에서도 주식의 절반은 여전히 옥수수다. 농촌 지방은 압도적으로 옥수수를 많이 먹는다. 옥수수로 만든 멕시코 음식은 다양하다. 토르티야, 타말, 아톨레, 포솔레는 멕시코 음식을 대표하는 단골 메뉴다. 토르티야에 다양한 고기, 야채를 담아 먹는 타코는 이미 국제적 성가를 누리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이 익은 음식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 멕시코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원주민들의 식량이 풍부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지극히 원시적인 농기구를 이용했지만 관개 농토에 옥수수를 파종했기에 소출이 대단히 많았다. 호반 도시 테노치티틀란(멕시코시) 사람들은 호수의 부식토양을 이용한 수경재배로 엄청난 소출을 올렸다. 게다가 옥수수 농사는 노동시간도 많지 않았다. 아마도 1인용 식량을 생산하는 데 투여된 시간은 1인당 100시간 미만이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추산한다. 포겔과 앵거먼은 미국 남부의 목화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들의 사례를 들어 옥수수 영농 시간을 추산한 바 있다. 계산 결과 흑인노예들이 주식을 확보하는 데 투여한 시간은 총노동 시간의 6%에 불과했다. 오늘날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테오티우아칸의 장엄한 피라미드, 테노치티틀란의 거대한 도시문명, 마야인들의 정교하고 섬세한 채색 벽화와 도기들은 바로 이 옥수수 영농의 산물인 것이다.
옥수수의 조상은 기원전 5천~6천년에 있었다는 테오신테(한 줄 옥수수)이다. 메소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이를 오랜 시간 동안 개량하여 오늘날의 옥수수처럼 알갱이가 여러 줄로 달린 개량종을 개발했던 것이다. 기원전 2천년에 옥수수 알갱이를 가루로 빻는 맷돌인 메타테를 개발한 것으로 보아 이 시절부터 토르티야는 원주민들의 주식으로 자리잡았던 모양이다. 관개영농은 기원전 900~200년쯤에 시작되었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원주민들은 신들이 개입하여 ‘신성한 주식’ 옥수수를 갖다 주었다고 믿는다. 아스테카(아즈텍)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신들은 테오테우아칸에서 모여 다섯번째 태양을 띄웠고, 이전 세대의 뼈와 켓살코아틀 신의 피를 섞어 인간을 탄생시켰다. 이 인간들은 붉은 개미들이 숨긴 옥수수 알갱이를 찾기 위해 검은 개미로 변신했고, 신들의 도움으로 옥수수 알갱이를 찾는다. 마야인들의 성서인 〈포폴 부〉에 따르면, 신들의 개입은 더욱 직접적이다. 세계를 창조한 신들은 파실과 카얄라 지역에서 나는 옥수수로 인간을 빚었고, 또 이 신성한 곡물을 인간들이 경작하여 먹고 살도록 노란 옥수수와 흰 옥수수를 전해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옥수수를 경작했고, 추수가 끝난 다음에는 한해의 농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들에게 경배하는 제사를 지냈다. 오늘날 메소아메리카의 대부분 축일도 옥수수 농사절기에 맞추어져 있다. 가톨릭 교회도 원주민들이 만든 농사절기의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