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화상
越山和尙 初參雪峰 未染玄旨 後因閩王 請於淸風樓上 赴齋 坐久 擧目 忽覩日光 豁然大悟 而有頌曰
월산화상이 처음에 설봉을 참배하되 玄旨에 물들지 못했더니 뒤에 민왕이 청풍루에 초청함을 인하여 齊에 갔다가 앉아서 조금만에 눈을 들어 문득 햇빛이 찬란한 것을 보고 활연히 크게 깨닫고 게송을 하였다.
淸風樓上赴官齋 此日平生眼豁開
方信普通年遠事 不從嶺付將來
청풍루 위에서 관재에 나아갔더니
이 날에 평생의 눈이 활짝 열리었네
普通해의 멀고 먼일이 믿어지니
총령으로부터 온 것만은 아니네
(如玄沙和尙 云 彼處虛空 此處虛空 我身 無有 痛自何來 休休 達摩 不來東土 二祖 不往西天)
(현사화상이 “저곳의 허공과 이곳의 허공에 내 몸이 있지 않거니 통증이 어디로부터 왔느냐? 그만두고 그만두어라. 달마가 동토에 온것도 아니며 2조가 서천에 간것도 아니다”라고 말한것과 같다)
강해: 설봉은 운문종 계통의 종사이다. 월산사네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가서 친견하고 설봉스님을 시봉하고 있었지만 玄旨는 몰랐다는 것이다. 현지란 조사의 깊은 종지를 말한다.
그것을 깨우치지 못한 것을 未染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절에 있어도 중물이 들지 않고 속심그대로 속가의 모습 그대로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미념이다. 그와같이 조사의 선법에 제대로 물들지 않는것이니 미념이라고 말한 것이다.
민황은 서촉 민땅의 지방장관이다. 그분이 월산화상에게 남루와 같이 청풍루란 누각위에서 공양을 올린 것이다. 제라고 하는 것은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월산스님이 민왕이 초청한 제에 갔다가 햇빛이 찬란한 것을 보고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普通은 양무제 때의 연호이다. 양무제때 달마대사가 왔는데 뒤에 인연이 다해서 葱嶺으로 가셨다. 이런말이 있다.
釋迦世尊 摩竭掩關之時節
석가께서 마갈다국에서 관문을 닫았던 시절이고
達摩大師 少林面壁之家風
달마께서 소림사에서 면벽한 가풍이라
泥蓮河側 槨示雙趺
그렇기 때문에 니연강가에서 널속에 두 다리를 내어 보이시고
蔥嶺途中 手携隻履
총영의 길에서 손에 외짝신을 끌고 가셨다.
석가모니도 도를 깨친 다음에 설법을 할까 말까 7일 동안 망설였다.
‘내가 깨친 진리가 너무 깊어서 설법해봤자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망설일때 마갈다에서 문을 닫고 게셨고 달마 대사도 소림굴에서 9년간을 면벽하였다
가섭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7일후에 도착하여 석가부처님 모셔진 관에 절을 하니까 부처님께서 두발을 곽 밖으로 보이셨으니 그것이 삼처전심의 마지막이다.
달마가 중국에서 혜가에게 법을 전하신 후 광통율사와 보리유지가 달마를 모함하여 나라에서 사약을 내리어 달마대사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3년뒤에 송운이 인도에 갔다가 오는데 총령고개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다.
달마대사께서 가죽신 한짝을 메고 가시면서 “나는 중국에 인연이 다해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송운이 그 말을 듣고 “좀더 있다 가시지 왜 벌써 가십니까?"
송운이 중국에 돌아와서 달마대사와 만났던 일을 이야기 하였다. 그랬더니 달마대사는 사약 받고 돌아가셔서 웅이 산에 장사지낸 지가 3년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겨서 달마대사의 무덤을 파보니까 빈 관안에 아무것도 없고 가죽신만 한 짝이 있는 것이다. 한 짝은 놓아두고 한 짝은 짊어지고 가셨다.
그 달마대사가 총령으로 가신 그 사실을 여기서 가리킨 것이다.
현사화상이 산고개를 넘어가다가 발가락이 돌에 부딪혀서 발이 부어서 아팠다. 현사스님이 그때 통증을 느끼면서 “내 몸이 없는데 통증이 어디로부터 왔느냐?”고 자기 자신을 반성한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래서 현사스님이 “저쪽 허공이나 이쪽 허공에도 내 몸이 본래 없는데 발가락 아픈 고통이 어디로부터 왔느냐? 달마가 동토로 오신것도 아니고 혜가대사가 서천에 간것도 아니라”는 법문을 하셨다.
아픈 것이 본래 없는것이라는 것이다. 내몸이 없는데 아픈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월산화상의 오도송이나 현사스님의 법문이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보통년원사와 총령은 달마에 관련된 일인데 달마가 동토에 온 것도 아니고 2조혜가가 서역 천축국으로 간 것도 아니라는 그 말과 같다는 말이다.
백운화상이 그렇게 주를 내었다.
만공스님도 오도송에서 “달마가 서쪽에서 왜 왔는가?”라고 하셨다.
장사 경잠
長沙岑禪師 因見竺尙書 師喚尙書 書 應諾 沙云 不是尙書本命 書云 不可離却卽今祗對 別有个第二主人公也 沙云 喚尙書 作至尊得麽 書云 恁麽則緫不祗對 和尙 莫是弟子主人公不 師云 非但支對與不支對時 從無始劫來 是个生死根本 乃示偈曰
장사 경잠선사가 축 상서를 봄을 인하여 경잠선사가 상서를 부르거늘 상서가 곧 대답하니 장사선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상서의 본명은 아니도다”
상서가 말하기를 “지금 공손히 대답하는 것을 떠나서 제2의 주인공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장사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상서를 불러서 지존이라고 할수 있느냐?”
상서가 말하기를 “이와같은 즉 모두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화상께서는 제자의 주인공이 아닙니까?”
장사가 말씀하시기를 “다만 공경히 대답하는 것과 공경히 대답하지 않을때만이 아니라 시작이 없는 겁으로부터 옴으로 그것이 바로 생사의 근본이니라”
(강해) 축상서는 국방을 맡은 병부상서나 내무를 맡는 내무상서로 장관격이다.
장사스님이 상서야! 하고 부르니까 상서가 예! 하고 대답을 하니까 장사스님께서 대답하는 것은 상서의 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대혜서장에는 本命元辰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우리가 본래 타고난 그 자리를 본명이라고도 하고 원진이라고도 하고 합쳐서 본명원진이라고도 한다. 바로 본래의 주인공을 가리킨 것이다.
장사스님이 상서가 예!하고 대답하는 것은 본래주인공이 아니라고 했는데 상서는 대답하는 그 자체가 주인공이지 제2의 주인공이 따로 있지는 않다고 주장을 하였다.
그러니까 상서는 정승, 판서인데 판서를 나라임금인 至尊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존은 바로 주인공에 비유한 것이다.
대답한 것은 주인공의 그림자인데 주인공의 그림자인 제2,제3의 존재를 가지고 첫째가는 본명원진, 주인공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상서가 대답한 그것은 대답하고 대답을 못하는 그때만 허망한 존재가 아니라 끝없는 옛적부터 생사무명의 근본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도를 깨친 사람이 상서같이 말한다면 말이 될 수 있지만 도를 깨치지 못한 상서의 차원에서는 너무 외람되게 분수에 넘치는 말을 하니까 장사스님께서 끝까지 그것이 아니라고 뿌리를 뽑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來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강해: 이 게송이 전등록에 나온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짜 본래의 주인공을 모르고 헤매는 것은 識神을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식신이란 식의 마음이란 뜻으로 분별심을 말한다.
기신론의 제8아뢰야식이다. 그것이 바로 생사무명의 근본이고 그 자리가 바로 영혼이다. 외도에서는 그것을 神我라고 한다.
가짜 주인공이지 진짜 주인공은 아니다.
그런데 축 상서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윤회를 하는 근본이 본래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짜 마음이 부르면 대답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본래의 주인공의 그림자이다. 깨치지 못한 사람은 부르면 그것이 듣고 대답하는 것이다.
안.이.비.설.신.식인 전5식과 제6식이 혼합된 것이다. 그러니 진짜가 아니고 가짜이다. 주인공을 알기란 도를 깨치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다. 있어도 없는것과 같고 안보인다. 안보이니 착각을 하기 쉬운 것이다.
알고보면 파도가 물이지만 파도칠적에는 고요한 물과는 성질이 다르다. 제2의 주인공은 파도와 같다.
그래서 본래 고요하고 밝은 주인공과는 성능을 달리 말할 수가 있다.
기신론에서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것을 아리야식이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알고보면 같으니까 非異이고 또 다르기 때문에 非一인 것이다. 파도가 물이기 때문에 다른것 이라고 볼수가 없다. 그러나 파도아닌 물과 파도를 구분지으면 똑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동일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것도 아닌 모호한 자리이다.
깨닫고 보면 그 것이 주인공이지만 깨닫기 전에는 생사윤회의 근본인 번뇌망상의 뿌리이다.
숭악 혜안
惠安國師 與北宗神秀 被武后召入禁中供養 因澡浴 以宮姬 給侍 唯師 怡然無他 后歎曰入水 始知有長人 頌云
秦苑仙娃白玉腮 薔薇行水迺寒灰
柴門草戶無開鑰 磊落金鎚擊不開
혜안국사가 북종의 신수스님과 더불어 무후가 궁중에서 공양하는 초청을 받아서 목욕을 시킬때 궁중의 미녀로 시중을 들게함으로 인하여 오직 혜안국사는 태연하여 다른 이상이 없거늘 무후가 탄복하면서 말하기를 “물에 들어감에 비로소 긴 사람이 있는 것을 알수 있도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진원의 선녀가 백옥같은 뺨에
장미손으로 물 뿌려도 차가운 재에 뿌리네
가시풀 문에 자물쇠가 없으나
거창한 금방망이로 두드려도 열리지 아니하네.
강해: 혜안국사는 5조홍인대사와 사형사제로 도가 높은 분이다. 북종신수는 5조홍인 대사의 제자이다.
6조스님은 남방에서 법을 폈다고 해서 남종이라고 하고, 신수대사는 북방에서 법을 폈다고 해서 북종이라고 하는데 차츰 닦는 漸宗이다.
무후는 당나라 측천무후를 가리킨다. 대단한 분인데 괴짜이다. 궁중에서 두 스님을 공양에 초청해놓고는 두 스님들의 법력을 시험해보려고 궁녀들을 시켜서 목욕을 시킨 것이다.
慧眼은 不動心하고 혜안은 마음이 동하지 않고
神秀는 動心이라 신수는 마음이 동했다.
가시나무문에 자물쇠가 없다는 것은 혜안국사를 말한 것이다. 혜안국사의 도가 문단속을 하지 않고 철통같이 닫아놓은 문이 아니고 허술하게 풀과 나무로 된 문에 빗장이나 자물쇠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安國師 因武后 問師甲子 師 對曰不記 后曰何不記耶 師云 生死之身 其若循還 還無起盡 焉用記爲 況此心 流注 中間無間 見漚起滅者 乃妄想耳 從初識 至動相滅時 亦只如此 何年月而可記乎 於是 武后 稽首信受
혜안국사께서 무후가 혜안국사의 나이를 묻는 것을 인하여 혜안국사가 대답하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무후가 말하기를 “어째서 기억을 못합니까?” 혜안국사가 이르기를 “나고 죽는 몸이 그 순환하는 것과 같아서 일어나거나 다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기억을 하리요? 하물며 이 마음은 흐르되 그 중간에 간단이 없나니 거품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이 망상이라. 처음 識으로부터 요동하는 모양이 다 없어질때까지 또한 그와같거니 어찌 연월을 기억하겠습니까?”
이에 무후가 머리를 조아리고 믿어 받았었다.
강해: 측천무후가 혜안국사의 나이를 물으니까 혜안국사는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도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나고 죽는 것이 지구가 늘 돌고 도는 것처럼 순환하고 있어서 언제 시작하고 언제 그칠지를 모른다.
그래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1찰나 동안에 900번을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생기고 또 사라진다고 한다. 마음이 그렇게 流注한다는 것이다. 마음자리는 우리가 알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미세하게 흐르고 있기때문에 微細流注라고 한다. 근본무명이 바로 미세유주이다. 물이 흐르면 거품이 생기듯이 마음이 유주하면 망상의 거품이 생기는 것이다.
혜안법사가 국사를 하고 난 다음에 신수대사 보적선사 남양혜충도 국사를 지내고 신수대사의 제자, 손자, 증손자까지 다 국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