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환기재단 공모 작가 기획전
점點으로부터, 점點으로
전시 장소 : 환기미술관 본관/ 별관 및 야외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1길 23.
전시 기간 : 2007. 4. 13 (금) ~ 2007. 6. 3 (일) 매주 월요일 휴관
오프닝 행사 : 2007. 4. 13 (금) 5:00pm
참여 작가 : 2006 환기재단 ‘점...’ 공모 당선 작가
김남용, 김주환, 김지연, 김진아, 안종연, 이상희, 이재효, 이정배, 황지선
문 의 처 : 환기미술관 학예실 TEL 391-7701/2 FAX 391-7703
www.webhard.co.kr ID:whanki PW: 1234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 가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 주는 것일까.
그렇다. 내 점의 세계…….
나는 새로운 창을 하나 열어 주었는데
거기 새로운 세계는 안 보이는가 보다.
오호라…….
김환기, 1970. 1. 8 일기 중
환기미술관은 2007년 봄 전시로 김남용, 김주환, 김지연, 김진아, 안종연, 이상희, 이재효, 이정배, 황지선 작가의 <점으로부터, 점으로>展을 연다. 김환기는 산월, 달과 항아리 등 한국적 소재를 즐겨 그리다가 뉴욕시대에 이르러 점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는 ‘전면 점화 全面 點畵’작업에 몰입하게 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잘 알려진 김환기의 점화는 1970년대 작가가 뉴욕에 거주하며 ‘점’을 모티브로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작업세계를 대표한다. 고향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상념에 잠겨, 혹은 긴 호흡 끝 무념의 상태에서 한 점, 한 점 찍어나간 그의 ‘점’은 조형의 시작이자 끝인 동시에 그의 예술세계를 응축한 결정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환기가 남긴 ‘점화’는 그의 작가적 기질이자 예술 정신, 한국 추상미술에 대한 무언의 진중한 방향제시라 할 수 있다. 이에 환기미술관은 2006년 가을, ‘점’을 주제로 혹은 소재로 모든 장르에서 진지한 조형 연구와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를 공모하였고, 100여명의 공모 작가들 중 9명을 선별하여 <점으로부터, 점으로>전을 준비하였다.
철학에서의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며 언어에 있어서 점은 침묵과 언어를 잇는 연결고리이다. 기하학에서 점은 조형의 기본 단위이며 물리에서는 힘의 출발점이고 자연 안에서는 모든 생명의 발원이다. 이러한 점은 몇 가지 고유한 특성을 보이는데, 칸딘스키가 ‘자기 집중적인 긴장감’과 그로인한 ‘울림’이라 한 점의 의미에서 우리는 그 긴장과 울림에 외부의 힘이 가해질 경우 생겨나는 움직임의 가능성을 ‘시작의 가능성’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점은 만물의 시작 - ‘점으로부터’ 이자, 끝 - ‘점으로’ 라고 이해할 수 있다.
김진아의 작업에 있어서 점은 단순한 기호나 표시로서의 맹목적 의미는 아니다. 그는 각자의 색을 지니면서 캔버스 위에 무수히 쌓이고 덮인 그의 점들에 대해 ‘자립적으로 움직이는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농밀하고 반복적인 점의 패턴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는 점을 집합하고 중첩하는 작업 과정 내내 일종의 강박증을 보이고 있다. 작가의 강박이 깊을수록 점의 긴장감은 높아지는데, 이 점의 긴장은 결과적으로 작가로 하여금 더욱 내면으로 집중하게 만들어 심연에 이르게 한다. 작가는 내면의 주장과 고집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캔버스를 때리는 점들 즉, 붓 터치의 반복을 통해 부단히 외친다. 그리하여 캔버스를 부단히 때리던 점들은 각자의 울림을 집적하여 커다란 울림으로 폭발하고 작가는 이러한 강박적 반복 작업을 통해 자기소멸의 페르소나를 경험한다. 이때 화면에 드러난 이미지로서의 김진아의 점화點畵는 지극히 ‘점點스러워’ 산만하게 분산되지 않은 집중되고 통일된 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울림은 실제보다 큰 여운을 남긴다.
이정배의 점은 우리에게 점의 외적 형태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전통적 관념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점의 형태는 작고 동그랗다. 그러나 크기와 모양에 대한 느낌이나 실제는 역시 상대적이다. 현대적 사고思考 속에서 점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전통적 관념속의 점 -작고 동그란- 형태의 점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점을 상징한다면 가상의 디지털 세계의 점은 ‘픽셀’의 형태로서 대표될 수 있다. 이정배의 점을 매체로 적용하는 작업의 주된 방법론은 픽셀의 개념을 도입한 정방형의 반복적 사용이다. 이때 픽셀은 복제나 다량성多量姓, 반복 또는 규격화 등의 상징을 형태로써 끌어내기 위한 선택이 된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픽셀은 모든 정보를 시각화 시키는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확실한 익명성이 있으며 이때 자신은 익명성과 그 익명성을 면제해줄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픽셀위에 고유한 이미지이면서도 새롭게 태어난 생명과 같은 휘영청한 달을 그려 넣음으로써 픽셀의 임의적 익명성에 아날로그적 개별성을 부여하는데 성공한다.
자연의 숨결을 그리는 이상희는 생명과 자연을 접하는 태도와 시야가 사뭇 각별하다. 그가 보는 생명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윤회적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과 자연을 보는 그의 시야와 관심은 거대한 고목의 껍질이라든지, 해조류, 조개껍질, 버섯, 돌멩이 등 매우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자연물의 일부로 드러난다. 그러나 작가가 그 안에서 발견하는 생명의 맥박과 숨결은 보다 근원적이고 내밀하며 그의 작품 속에서 붓끝으로 묘사되는 미세한 맥박, 숨소리, 세포들의 섬세함은 붓 끝에 찍어 응축된 힘이 뿜어 나오는 거대함으로 모아진다. 이상희의 붓질은 전통 수묵화를 그릴 때 바위나 나무줄기, 이끼나 작은 식물을 생략된 표현으로 그리는, 붓의 끝을 수직으로 내려서 찍어가는 점태(點苔) 기법을 연상케 한다. 붓과 일체가 되어 장지를 쓸어내려갔을 그의 작품에서 속도와 시간이 의미를 잃고 심연 속으로 몰입해 있을 작가의 내면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지연은 자신만의 물감이자 붓인 ‘오브제 Bowl’로 그림을 그린다. Bowl은 몰드로 만들어진 도자기로서 복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부분 캐스팅과 가마에서 소성되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효과를 통해 개별성을 지닌 독립체로 탄생된다. 그가 말하는 Bowl은 우리의 생각, 시간, 기억, 추억 등을 품고 있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 우주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세포이다. 김지연의 ‘오브제 Bowl’은 아프락사스(abraxas)를 연상케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언급되는 아프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이 결합된 상징적인 신의 이름이다. 아프락사스로 전달되는 메시지는 공식적으로 허용된 ‘밝은 세계’와 암묵적으로 외면되었던 ‘어두운 세계’는 결국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으며 세계의 참모습은 결국 선악의 대립이 아닌 선악 동체라는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절대 선善, 절대 신神에 대한 숭배로 지켜온 반쪽의 세상과 나머지 어두운 반쪽의 세상(순전히 상대적 입장에서)을 연결하여 긍정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국 다름을 인정해주는 지혜와 용기이겠다. 이는 새가 자신의 세계인 알을 깨고 나오는 결의와 같을 지언데 벽에 드로잉 하듯 설치된 김지연의 ‘오브제 Bowl’ 작품을 가만히 응시해보면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어린 새를 만나게 된다.
그 동안 황지선의 작품세계는 인간의 삶이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와 사회 속에서 가치상실, 무기력과 소외 등으로 무시되고 방치된 모습을 다양한 군상 작업을 통해 조망하는데 주력해왔다. 재료에 있어서도 산업적 소재인 알루미늄 합금 등을 이용해 포장용 상자나 의자와 같은 대량 생산물을 만들고 거기에 인간의 신체 파편들을 반복적으로 병렬 배치함으로써 몰개성, 단절과 고립으로 치닫는 인간사를 풍자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황지선의 작품 또한 인간성 상실, 사회 고립이란 주제 면에서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켄타우로스(Kentauros)가 폭력성, 야만성의 상징이라면 말馬은 인간의 정신성, 문명의 상징이다. 그리스 도기화에서 말을 탄 헤라클래스가 켄타우로스를 죽이는 장면은 야만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 자연에 대한 인간 문명의 극복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황지선이 차용하는 말馬의 이미지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황지선은 온전한 말이 아닌 반쪽의 말을 삼방으로 설치함으로써 인간 이성의 상실과 정신성에 대한 의구심을 신화적 모티브를 통해 은유하였다. 작가는 말의 이미지를 통해 인류의 고대문명과 유목문화를 동시에 암시하고 있는데 말이나 식물적 이미지를 구성하기위해 표면을 뒤덮은 자개 조각은 생명체와 문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세포, 기초적 단위로서의 점이다. 수 만, 수 억 개의 자개 조각을 붙여가며 황지선은 자신의 예술 세계가 추구하는 근원에 대한 집중된 연구로 말과 소나무, 사군자로 구현된 식물적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주제에 대한 지극한 집착과 진지함을 보여준다.
김남용의 ‘비워진 풍경’은 만나면 만날수록 정이 들고 예뻐 보이는 사람과 같다. 그는 한 눈에 번쩍 튀는 그림보다 보면 볼수록 그 맛이 깊어지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비워진 풍경’은 주물 작업으로 만든 원 안에 평온한 산과 들, 강의 풍경들이 정답게 담겨져 둥실 둥실 떠 있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전시장의 벽면에서 통 창으로 연결되어 배치되는데 유순한 원 속의 이미지들은 바닥에 놓여 지거나 벽에 걸려 지거나 혹은 천장에 매달려서 이미지 자신과 그에 투영된 그림자가 어우러져 소박한 풍경을 연출한다. 마치 평온한 수도원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노수사가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는 주위의 풍경과 같이 바라보는 자 역시 그 풍경의 일부가 된 듯 자연스러운 경지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그의 작품 안에 새로운 관점과 시도, 새로운 미학을 담아내고자 하는 ‘새로움’에 대한 열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부단한 고뇌와 노동을 쏟아 부었는데, 그러던 어느 순간 작가 앞에 나타난 그림은 너무나 많은 욕심으로 채워진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작가는 그림을 비우기 시작한 것일까. 김남용의 비워진 풍경 작업은 욕심을 비우고 비워서 순수해지고자하는 작가의 고해적 성격이 강하다. 비워진 풍경은 하얀 벽면을 드러내어 관람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고 의도된 그림자는 단순한 몇 개의 점과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이 차갑거나 외롭지 않도록 조형적 리듬을 만든다. 김남용이 이들 ‘비워진 풍경’ 작업을 통해 일관되게 추구하고자 한 것은 내용적으로는 창 밖 진경을 수많은 ‘비워진 풍경’의 만다라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그림 안에 쉼 공간을 제공하고자 함이며, 방법적으로는 각각 고유한 풍경을 담은 한 점으로서의 ‘비워진 풍경’들이 여러 개 모여 전시장의 벽면에 또 다른 풍경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안종연은 알루미늄 판 위에 강과 산 그리고 물이 있는 자연의 모습,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 인상印象을 새겨 넣는다. 절삭공구를 이용하여 형상을 파내는 그의 작업은 자연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 인상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여행과 같다. 그 중 그가 주력하는 이미지는 ‘물여울-물빛’이다. 계곡에서 내리쳐 흩날리는 포말이 되는 물방울들과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졌을 때의 물의 파장 그리고 이러한 찰라에 산란하는 물빛의 형상들을 놓치지 않고 새겨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새겨진 풍경에 색채를 상감함으로써 미묘한 물빛을 만들어내는데 이 합금에 새겨진 빛의 흔적들은 빛의 방향과 보는 각도에 따라 인상을 달리하니,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마치 물결, 물빛이 일렁이는 것 같은 환상을 보게 된다. 그의 물빛 작업은 새기는 풍경 뿐 아니라 커다란 구슬 작업에서도 연속된다. 구슬의 제작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기포는 빛의 투영을 받아 벽 위에 커다란 드로잉을 만들어 낸다. 구슬에 의해 만들어진 빛의 드로잉은 구슬 안에 고착된 기포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이미지이다. 물빛의 새김과 물방울을 연상시키는 구슬 작업들은 작가가 물의 이미지로부터 추구해온 점點에 대한 동양철학의 부단한 관심과 연구의 결과이다.
김주환의 작업은 점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하나의 연속된 선의 형태를 만든다. 내적 긴장감으로 충만한 점은 외부의 힘이 가해질 경우 생겨나는 움직임의 연장, 즉 선으로의 확장을 이룬다. 작가의 작업은 점에서 출발하여 선으로 이동 그리고 선들의 촘촘한 중첩과 반복을 통해 자가 증식해 가며 종국엔 면으로의 완성을 이룬다. 선을 나선형으로 용접하여 이룬 면들은 하나 같이 기하학적인 파문을 이루는데, 작가는 이를 잔뜩 흐린 하늘을 비추는 연못에 빗방울이 떨어져 일어나는 파문, 파동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언어유희를 빌어 말한다. ‘백문白紋이 불여일견不餘一絹’. 작가에게 있어서 문紋은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현상, 빗방울이 떨어져 생기는 파문이며 견絹은 파문의 본체인 연못이며 동시에 이 연못의 파문을 담고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들의 순간을 포착하여 작품으로 구현한 후 전시공간에서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이재효는 나무나 철근, 못 등을 집적하여 커다란 볼륨을 형성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집적된 재료들을 구 형태나 원에서 발전된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깎아 내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원재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성을 찾아내어 발전시킨다. 거대하게 결합된 나무둥치들은 철근이나 콘크리트의 집합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나 거부감을 찾아볼 수 없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물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친근감과 따뜻함이 그 부피만큼 증폭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가의 다른 작업, 목재에 못을 박아 넣은 후 이를 휘어서 붙이고 탄화시킨 작업은 재료의 친환경적인 변이를 통해 역시나 원재료에서 사뭇 새로워진 질감과 조형미를 보여준다. 일상과 자연의 잠재적 형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변화시키는 작가의 미의식은 우리에게 즐거운 안복眼福을 제공한다. 작가는 우리 민족의 근원적 심성은 둥근 형태에 있다고 하며 이 둥근 형태 안에 자연의 물성을 그대로 살려 순수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로 조형 원소의 기본 단위인 점을 쌓아 구성한 전체로서의 원을 추구한다.
환기미술관의 2007년 봄 전시 <점으로부터, 점으로>는 이상과 같이 ‘점’을 주제로 혹은 소재로 다양한 장르에서 진지한 조형 연구 및 작품 제작 활동을 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함으로써 반세기 전 수화 김환기가 구현하고자 했던 고국산천과 지인을 향한 그리움, 생활의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예술을 향한 염원의 추구가 어떻게 예술적 이미지로 승화되었는가를 다시금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어떤 고민과 의지로, 어떤 작업과 연구로 수화 김환기의 조형의식과 예술정신을 되새기고 있는지 2007년 봄, 점이라는 화제畵題를 가지고 모인 9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살펴본다.
첫댓글 김 진아님 축하합니다. 전시기간 중에 가겠습니다. 오프닝 행사엔 못 갈듯합니다. 다른 일정이 정해져있어서요...
축하합니다...10 : 1 이넘는 경쟁률에서 선정 되셨군요... 자랑스럽습니다... 현대미술의 방향키를 제시 하는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