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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仁川港]
인천 중구에 있는 항구로 항내수면적(港內水面積) 276만㎡이며 항만법상 1종항이고 수도 서울의 관문인 동시에 중부지방을 세력권으로 하는 서해안 최대의 상항(商港)이다. 인천항으로 하여금 근대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기 위하여 항만 건설에 착수한 것은 1906년이었다. 항내수면적(港內水面積) 276만㎡으로 항만법상 1종항이다. 수도 서울의 관문인 동시에 중부지방을 세력권으로 하는 서해안 최대의 상항(商港)이다. 인천항으로 하여금 근대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기 위하여 항만 건설에 착수한 것은 1906년이었다. 그러나 상업항으로서의 개항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종지부를 찍은 이후인 1883년(고종 20) 1월 1일이었다. 부산 ·원산항에 이어 한국에서는 3번째로 개항을 보게 된 인천항은 조선 전기에는 제물포(濟物浦)라고 호칭되면서 한국 유일의 군항(軍港)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884~1911년까지 민자(民資) 또는 정부 투자로 인천항 개발사업을 시행하였으나 설비만으로는 조석간만의 극심한 차로 하역작업을 하기가 곤란하여 전천후(全天候) 하역작업이 가능한 항만시설이 요구되었으므로 다시 1911년부터 10개년계획 사업으로 제1독[船渠]이 축조되었다.
그후 1974년도에 총공사비 149억 원을 투입, 월미도(月尾島)와 소(小)월미도 사이에 갑거(閘渠)를 축조하고 구항로(舊航路)를 없애어 기존 제1독을 포함한 인천내항 전체를 선거화(船渠化)한 공사가 완공되었다. 5만t급 1기, 1만t 급 1기의 초현대식 갑문이 건설됨으로써 5만t 급을 비롯하여 대형선박 30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게 되어 연간 하역능력은 972만 8000t으로 증가하였다. 주요시설로는 접안시설인 안벽(岸壁) 5,910m, 물량장 1,010m, 잔교 9기가 있고, 외곽시설로서 방파제 1,073m, 호안 3,139m가 있다. 인천항에는 제4부두에 컨테이너 취급 전용부두, 제7부두에 양곡전용 부두가 있어 연간 컨테이너 230만t, 양곡 200만t을 각각 처리한다. 500t급 이하의 소형선박의 접안시설로서 연안부두가 축조되어 수산물 양륙시설과 여객 터미널 기타 특수목적의 잔교가 설치되었다. 주요 해상화물은 연간 총 2,400만t인데 이 중 양곡 ·유류 ·유지류 ·무연탄 ·유연탄 ·목재 ·염류 ·인광석 ·기계류 ·철재 등이 1,600만t 가량 수입되고, 시멘트 ·목재 ·철재 기타 광석 등이 230만t, 나머지는 연안화물(沿岸貨物)로서 600만t 가량이 취급된다.
인천항 - 세계로 나아가는 인천 바닷길의 시작
인천은 바다와 함께 성장하였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도시를 살찌웠고, 바다를 통해 주변 나라들과 교류하며 발전하였다. 그 중심인 인천항은 항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천의 많은 이야기들이 인천항을 통해 시작되고 귀결될 만큼 우리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인천항에 접안한 대형선박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교류한다. 연안부두, 북성포구, 화수부두, 만석포구처럼 인천항과 연계된 포구에서는 인천사람들의 삶과 생명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인천항은 1883년 부산, 원산항에 이어 한국에서는 세 번째로 개항하였다. 개항 당시는 제물포라는 한적한 어촌포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항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와 통상을 개시하면서 정치, 외교, 군사,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개화의 물결을 통해 국제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18년에 이르러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제1선거가 건설되어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하게 되었고, 1974년 갑문선거가 완공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인 내항 4부두가 개장하게 된다. 현재 인천항은 서해안 최대 규모의 항구로 항내수면적만 276만m2에 이르고, 황해권 무역의 중심축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TIP
인천항과 연안부두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서해의 100여 개 섬과 연결된 인천연안여객터미널과 중국 여러 도시로 출항하는 국제여객터미널 일대가 연안부두이다. 연안부두에는 여객터미널 뿐만 아니라 해양광장, 종합어시장, 횟집거리, 유람선선착장, 남항 부두 등이 모여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다. 매년 10월이면 연안부두대축제가 개최된다.
(인천관광 100선, 2016. 11.)
팔미도(八尾島)
2009년 1월부터 일반 관광객에게 등대와 섬이 개방됐다. 진입로, 산책로, 화장실, 전망대 등의 시설이 설치돼 있어 여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전망대에서는 영종도 등 주변 섬과 인천항을 오가는 외항선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를 보려면 인천광역시 남구와 무의도 중간에 떠 있는 팔미도를 찾아가야 한다. 남북으로 2개의 섬이 모래톱으로 인해 연결되어 있다. 인천연안부두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이다. 팔미도선착장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등대 직원 숙소와 전망대가 나타난다. 해발 58m의 최고 지점에 팔미도등대 2기가 세워져 있다. 작은 등대가 1903년 6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다. 한국전쟁중에는 UN의 인천상륙작전을 도왔다. 지금은 2003년 12월 22일에 새로 세워진 등대가 뱃길을 밝혀주고 있다. 팔미도등대는 일본이 러일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석유를 사용해 불을 밝혔다. 건립 100주년인 2003년 퇴역하고 위성항법시스템까지 갖춰진 새등대에 임무를 넘겼다.
출처:(대한민국 여행사전)
인천대교 [仁川大橋, Incheon Bridge
1. 다리의 정의
인천대교는 인천시 연수구 송도 신도시와 중구 영종도 해안 도로를 잇는 총연장 12,300m의 왕복 6차로 도로다. 인천국제공항과 영종도 하늘신도시의 진출입이 용이하도록 제2, 제3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고속도로로서, 수도권 남부에서 발생하는 교통량을 수용해 공항 이용자와 산업 물동량의 수송을 원활히 하고 영종도 주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자 건설됐다. 특히 인천대교는 계획 단계부터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에 부합하는 교량의 미관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항로부는 사장교로, 보조 항로부와 접속부에는 콘크리트 상자형교의 FCM(Free Cantilever Method) 공법과 FSLM(Full Span Launching Method) 공법 등 3가지의 형식으로 구성했다. ① 사장교 : 1,480m(80+260+800+260+80) ② 접속교 : 1,778m(FCM 공법 : 82+5×145+82, 동・서측 2개소)
③ 고가교 : 8,400m(FSLM 공법 : 동측 49×50=2,450m, 서측 119×50=5,950m) 교량의 경간장 구성은 항로의 기능과 경관성을 고려해 주경간장을 800m로 계획하고 동 · 서 방향으로 경간장을 줄여가면서 전체적인 안정감을 도모했으며, 운전자의 시야 확보와 조망권 확보를 위해 바다를 투시할 수 있도록 개방형 철제 난간을 설치했다.
인천대교의 사장교는 항로 폭을 확보하기 위해 장경간으로 계획했는데, 케이블의 부담을 줄이고자 중량이 가벼운 강재 상자형 거더를 적용했다. 또한 사장교의 동 · 서측에 설치되는 접속 교량은 최대 9.3m의 조위차와 빠른 조류속으로 인한 공사 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업비의 경제성을 고려해 콘크리트 상자형 거더를 적용했다.2. 다리의
건설 배경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의 개항, 영종도와 송도신도시 개발로 인해 기존의 영종대교로는 장래 늘어날 물류 수송과 이용객으로 인한 교통량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도권 남부 지역의 신공항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건설됐다. 또한 유사 시 영종대교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대체 교량의 필요성도 고려됐다. 인천대교를 통해 서울의 강남 지역부터 충청권까지 교통량을 제2 · 제3경인고속도로, 제2외곽순환도로와 연계시킴으로써 영종대교의 교통량을 분산 수용하고 장래 송도신도시의 완공에 따른 교통량의 증가에도 대비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인천대교는 IMF 구제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사회 간접 자본 시설의 해외 자본 유치라는 성과를 이루어냈고 영국의 건설 전문지 <컨스트럭션 뉴스>로부터 ‘세계 10대 경이로운 건설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공사비는 총 1조 3,000억 원이 투입됐으며, 공사 기간은 52개월이 소요됐고, 26만 명의 고용 창출을 이루어 총 생산 유발액은 26조 원에 이른다.
3. 다리의 특징
인천대교가 설치되는 항로에는 최대 10만DWT급 유조선의 운항이 예상됐기 때문에 선박 입 · 출항 시 안전성 확보를 위해 영국과 일본에서 실제 인천항 소속의 도선사가 모의 선박 운항 시뮬레이션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를 반영해 주항로부의 경간장을 800m, 교량 아래 여유 공간의 높이를 70m로 결정했다. 또한 인천 남항으로의 선박 입 · 출항이 용이하도록 남측으로 활처럼 휘어진 노선으로 계획했다. 이런 규모에 적용이 가능한 형식은 현수교와 사장교가 있으나 교량 기초가 지지되는 기반암의 깊이가 약 70m로 매우 깊다는 점과 경제성, 영종대교와의 경관 중첩성을 고려해 사장교 형식으로 건설했다. 인천대교의 건설에는 여러 가지 기념비적인 기술력과 사업 방식이 도입됐다. ① 계약 방식 : 총액 불변가(Fixed Lump Sum) ② 사업 수행 : 설계 · 시공 동시 진행(Fast Track) ③ 공사 내용 : 세계 최대 규모의 돌핀형 충돌 방지공(10만t급) 국내 최초 파일 벤트 형식의 교량 기초 세계 최대 양방향 프리텐션 콘크리트 상자형 거더 대부분의 공정은 제작장에서 프리캐스트로 제작해 해상 운반 후 설치 또한, 인천대교는 매미급 태풍(한계 풍속 72m/sec)과 고베 대지진(리히터 7)급과 같은 대형 자연 재해에도 저항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설계됐다. 63빌딩의 높이(245m)와 거의 같은 주탑은 인천국제공항의 관문으로 랜드마크 역할을 담당하게 되므로 전체 이미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조물들이 그렇듯이 조형미만으로 디자인을 결정할 수는 없다. 거더와의 조화, 시공성, 바람에 대한 안정성, 구조 역학적 안전성, 기초 크기, 경제성 등 모든 평가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디자인이 결정되어야 한다.
해상에 설치되는 높이 230.5m의 사장교 주탑은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띄기 때문에 영종도와 송도를 잇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주탑의 재료는 콘크리트를 사용했고 직선미를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도록 역Y형과 다이아몬드형을 조합한 형상으로 계획해 기초의 크기를 줄였다. 케이블이 정착되는 상단부는 바람에 의한 진동이 증폭되지 않도록 2개의 기둥을 폐합했으며 폐합부에 강재로 제작된 케이블 정착 블록을 설치하였다. 인천대교 주경간 아래에는 유조선, 화물선, 국내외 여객선 등이 운항하면서 끊임없이 항주파(선박이 운항하면서 발생시키는 파랑)를 발생시키는데다 조수 간만의 차는 9.27m, 심한 안개와 바람으로 인해 한 달 중 작업 가능 일수는 20일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대한 공사 기간이 짧고 공사비가 적은 공법으로 계획 및 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교량의 기초는 현장 타설 말뚝으로 계획해 최대한 해상에서의 공사량을 최소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현장 타설 말뚝으로 주탑 기초를 적용할 경우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물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길 수도 있다. 바로 대형 선박이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면서 충돌할 경우에는 교량의 붕괴까지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선박 충돌에 대한 보호 구조물을 별도로 설치하는 것으로 보완하고자 했다. 따라서 사장교의 기초는 직경 3m의 현장 타설 말뚝으로 24개소를 설치하고 그 위에 페데스탈(Pedestal)을 설치해 교량 기초를 완성하도록 설계 · 시공했다.
4. 다리의 시공
1) 기초
수심 측량 및 지반 조사 결과 주경간교가 가설되는 위치의 수심은 약 20m이며, 해저면에서 말뚝 기초를 지지시킬 수 있는 기반암까지는 약 45m~50m의 깊이여서 케이슨 공법을 적용하기에는 수압이 너무 세기 때문에 공사 중 안전성을 고려해 현장 타설 말뚝 공법을 적용했다. 현장 타설 말뚝 시공은 말뚝 설치 위치에 가이드 프레임을 설치해 말뚝이 수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 후 제작장에서 제작된 직경 3m의 강관 말뚝을 해상으로 운반해 말뚝의 수직도를 유지한 채지지 기반암까지 관입한 다음 강관 말뚝의 내부를 굴착하고 철근망을 근입시킨 후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설치된 말뚝을 이용해 P.C. House(제작장에서 콘크리트로 제작된 거푸집)를 거치한 후 해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수중 불분리 콘크리트를 타설한 다음 완전히 해수를 차단하고 철근 배근과 기초 콘크리트부를 시공했다.
2) 주탑
주경간교의 주탑은 1기당 두 개의 레그(Leg)로 구성되며, 레그의 시공은 자동 상승 거푸집(Auto Climbing Form)을 이용하여 시공했다. 일반적인 주탑과 달리 레그 시공 완료 후 양측 레그 사이의 가로보는 제작장에서 콘크리트로 미리 제작해 해상으로 운반한 후 3,000t 해상 크레인을 이용해 헤비 리프팅(Heavy Lifting) 공법으로 인양해 주탑 레그를 연결했다. 이를 통해 해상에서의 작업을 단순화해 시공 속도, 품질 및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3) 보강 거더
인천대교 건설 시 보강 거더를 설치하는 데 많은 제약 조건이 있었다. 선박이 운항하는 주항로부에는 선박의 운항 안전성을 고려하여 어떠한 시설물도 설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측경간은 가설 벤트(임시 지지 받침대)를 4개소에 설치해 대블록(동 · 서측 각 4개)으로 먼저 가설하고, 주경간부는 소블록(최대 250t)의 세그먼트(Segment) 총 51개를 데릭 크레인으로 점진 가설했다. 측경간을 먼저 설치하는 이유는 가설 중 바람의 영향을 받아 주탑이 회전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상향의 바람이 불 때 공사 중인 교량이 매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좌우측에서 소블록을 연결하면서 매 블록마다 케이블을 설치하고 최종적으로 중앙부의 키-세그먼트(Key-Segment)를 폐합하여 상부의 보강 거더 가설 공사를 완성했다.
4) 케이블
인천대교 사장교에 설치되는 케이블은 총 208개로, 길이는 112~420m, 직경은 97~153mm이며, 상부 거더를 위로 당기기 위해 필요한 케이블의 작용력은 215~533t이다. 케이블의 배치 형상은 보강 거더의 좌우측에 배치되는 양면 팬 타입이며 보강 거더 세그먼트를 설치할 때마다 변화되는 구조물의 응력과 변형 상태에 따라 안전한 형상 유지를 위해 3차례에 걸쳐 긴장력을 도입하였다. 인천대교에 적용된 케이블은 5mm 직경의 고강도 소선 109~301개를 다발로 묶어 하나의 케이블로 가공한 후 현장으로 운반해 설치했다.
5) 선박 충돌 보호공
엔진 이상으로 표류하던 선박이 사장교 주탑에 충돌해 교량이 붕괴되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사장교와 접속 교량 일부 구간의 기초 주변으로 선박 충돌 보호공을 설치했다. 선박 충돌에 대한 설계 기준은 ‘10만DWT의 대형 선박이 10노트의 속도로 충돌했을 때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천항을 통항하는 다양한 종류의 선박으로부터 교량을 보호하기 위해 붕괴 확률을 1년에 1/100,000 이하로 제한하고 이에 따라 수 백 가지 경우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붕괴 모드를 분석하여 선박 충돌 보호공을 배치했다. 선박 충돌 보호공은 직경 20m 6기, 25m 16기, 총 22기를 동 · 서측에 각각 건설했다. 선박 충돌 보호공의 시공은 직경별 충돌 방지공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템플레이트라는 가시설 프레임을 이용했다. 먼저 폭 50cm의 맞물림 시트 파일(Interlocking Sheet Pile)을 한 장씩 끼워 제작장에서 조립하고 해상으로 운반해 템플레이트를 정위치에 시공한 다음 각 시트 파일을 해저면 아래로 8~13m 관입을 한 다음 쇄석을 채운다. 이후 측면에 프리캐스트 패널을 부착하고 상부 정판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완성했다. 바닷물에 노출되는 시트 파일에는 부식 방지를 위해 전기 방식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내구성을 향상시켰다.
5. 바다 위의 하이웨이
인천대교는 제2경인고속도로와 제3경인고속도로가 합류되는 송도신도시에서부터 영종도 해안 도로까지 인천항 항로를 횡단하는 설계 속도 100km/hr의 고속도로이자 국내 최장의 해상 교량이다. 10km가 넘는 바다 위의 하이웨이를 달리며 영종도의 자연과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다 보면 가슴 벅찬 미래를 누구라도 꿈꾸게 된다. 또한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과 근접해 있기 때문에 항공기의 이착륙에 따른 안전상의 이유로 야간 조명에 많은 제약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관 조명을 연출하고 있다.
▲인천대교의 경관 조명과 야경
출처:(세계 다리명 백과)
인천 연안부두의 현대 아일랜드 승선 매표소. 어른 22,000원 (왕복)
배를 타기전 잠깐 부두를 거닐어본다. 돌고래 분수광장
인천대교와 원목을 실은 화물선.
팔미도 갯바위의 가마우지와 뒤로는 영종도 인천공항
팔미도 천년의 광장에 있는 상징물...개방 106년을 기념하여 기둥도 106개이다.
인천 상륙작전을 기획한 맥아더 장군상과 팔미도 등대를 탈환한 KLO부대원들의 기념비
팔미도 옛등대와 신형 등대
등대의 내부
등대의 내부2
팔미도 등대에서 바라보는 무의도...실미도는 뒤로 가려져있다.
무의도에서 국사봉 산행을 하면서 바라보던 팔미도를 이제는 직접 들어온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인천 송도 신도시에 세워지는 마천루들
(연안부두 외항에서 바라본 풍경~인 천 대 교)
(작약도, 영종대교, 영종하늘도시)
(영종도~하늘도시)
(인천~송도국제도시)
▼(인천대교~영종,국제공항 방향)
▼(팔미도 : 八尾島)
2023-01-01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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