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우리나라의 다섯번째 큰 섬으로(제주도 면적의 약 1/6), 호국 항쟁의 역사적인 섬이요 고려말 수도이다.
고려말 몽고 침략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수도를 옮겨 항쟁한 곳이고, 19세기 말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서구 침략에 맞서 싸운 최전방 호국의 섬이다.
1231년 몽골의 침략을 받은 고려는 1232년 수도를 강화로 옮기고 1270년 환도까지 6차례(11회)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39년 간 항쟁하였다.
(강화 천도의 길)
(팔만대장경 조판)
고려는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쳐 달라는 간곡한 염원을 담아 강화도 선원사에서 16년에 걸쳐 8만여 장의 대장경 목판을 완성하였다.
대장경은 조선 건국 후에는 한양으로, 현재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삼별초의 항몽)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항몽의 무력 기반이던 삼별초는 새로운 왕을 옹립하고 천여 척의 배를 이끌고 진도로 내려가 끝까지 항쟁하였다.
한 때 전라도 경상도 해안 지역을 장악하기도 했으나, 고려와 원의 연합군에 의해 1273년 제주도에서 진압되고 말았다.
강화도에는 5진 7보 53돈대가 있었다.
진, 보, 돈대는 모두 국토 수호의 진지인데, 그 규모와 책임 장수의 격에 따라 구분된 것이라고 한다.
호국의 영령들이 싸우고 잠들어있는 강화도의 여러 성지 가운데 대표적이라 할 '광성보'를 다녀와 사진을 올립니다.
광성보는 해안을 수비하기 위한 진지의 하나로 1658년에 만들었다.
1679년에 확장 축조한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총칭한 것이다.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군과 격전을 치른 현장인데 이때 어재연 장군과 350여명의 군사가 순국한 곳이다.
(안해루)
(광성돈대)
(광성돈대)
1679년 승군 8천명, 어영군 4천여명이 40일만에 완공한 돈대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과 59명의 순절비인 쌍충비)
(신미순의총에 아주 커다란 배롱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군요~~)
(신미순의총)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전투에서 최후의 1인까지 용감히 싸운 살신호국의 영령을 모신 곳
(신미양요 때 순국한 신원이 불명확한 51명의 군졸을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기리는 곳)
(광성돈대와 김포 사이의 강화해협)
(광성포대)
(손돌목의 유래)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임금의 안전한 피난을 위해 충성을 다한 손돌
(손돌목 돈대)
신미양요 때, 미 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
(신미양요 전투 장면)
우리는 근대적인 총 한 자루 갖지 못한 채 전투하였다.
미국 철선을 향해 대포를 쏘아도 튕겨나갔고, 미군 총은 1초에 7발을 쏘는데 우리는 1분에 4발 밖에 쏘지 못하는 아주 구식 총기였다. 결국 조선 병사가 300여명 전사했는데 미군은 겨우 3명이 전사하였다고 한다.
(신미양요 때 점령당한 손돌목 돈대. 그 당시의 사진)
(광성보전투 후 포로가 된 조선인. 그 당시의 사진)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군. 그 당시의 사진)
(용두돈대)
손돌목돈대에 속해 있는 외곽 초소 겸 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