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요 : 광주시 구동 광주공원과 사동 사이
에 위풍있게 도사리고 있는 한무리 의 한식 기와집의 군락이 유서깊은 광주향교이다. 원래 1398년 무등산 장원봉 아래 세워졌으나 호환이 잦 다고 하여 광주 동문 밖(지금의 동 명동)으로 이전 했는데, 1488년 홍 수로 수해를 입게 되어, 광주 현감 권수평이 지금의 구동 자리에 세웠 다. 그뒤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 해 불타버렸는데, 다행히도 대성전 안 위패는, 권일제가 화를 피해 안 전한 곳에 보존하고 있다가 건물을 재건한 뒤에 다시 봉안하였다. 당시의 향교 이건 사적은 성종때의 문신 성현이 자세히 써서 남겼는데, 역사가 벌어지자 서민들이 마치 아버지 일을 돕는 아들들처럼 서둘러 불과 수 개 월에 일을 마쳤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완성된 향교가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사마제, 동 서제, 전사청 등 현재의 규모와 거의 비슷한것이었다. 여러 건물의 쓰임새를 성현의 글 [신 증동국여지승람 광산현 학교조(新增東國與地勝覽 光山縣 學校條)]를 통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전(대성전)을 지어 오성과 십철을 안치하고 또 앞에는 명륜당을 두어 강학하는곳 으로 삼고 또 동서쪽에 협실이 있으니 동쪽에 있는것은 교관이 앉는 곳이고, 서쪽에 있는것 은 이름을 사마제라 하여 이고을의 상사가 우거하면서 학업을 닦는 곳이다. 또 동서제가 있 으니 곧 윤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며, 서제 뒤에 전사청이 있고, 동제뒤에는 교관의 사무실이 있다. 이에 신과 사람이 모두 평안하고 스승과 학생이 집이있으며 당과 창고와 부엌과 목욕 탕이 각각 있을 곳에 있어 무려 60여칸이나 되었다...]
향교는 공자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성인의 초상, 위패를 모셔둠)와 성인의 가르침을 교육하는 학교 오늘날의 각 건물의 현황을 살펴보면 ①대 성 전 - 정면 3간(間), 측면 3간, 맞배지붕이며, 전면 1간은 퇴간(退間)으로 개방했다. 다듬은 돌로 높게 쌓은 축대 위에 다시 기단을 돌리고 막 돌로 초석을 놓았다. 공포는 주심포계 초익공양식이다. 건평은 27.1 평이다. ②명 륜 당 - 정면 8간, 측면 2간 맞배지붕의 단층 강당, 정면 1간, 측면 2간은 온 돌방으로 꾸미었고, 나머지는 넓은 대청으로 구성되어져있다. 건평은 37.6평이다. ③동, 서무 - 동무와 서무는 각각 정면2간, 측면 1間半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 반 간을 퇴간으로 개방했다. 건평은 동, 서무 각 8.7평이다. ④동, 서제 - 東齊는 정면 3간, 西齊는 정면 4간이고 측면은 모두 1간 반씩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동,서제 모두 전면 반칸폭은 툇마루이며, 그 안 쪽에 온돌방을 꾸몄다. 건평은 동제 9.8평, 서제 12.3평이다. ⑤내 3 문 - 정면 3간, 측면 1간의 맞배지붕의 평대문이다. 막돌초석 위에 단주를 세운 3량가의 2익공 양식이다. 건평 3.9평이다. ⑥외 3 문 - 정면 3간, 측면 1간의 반대문이며 다듬은 단형 초석위에 단주를 세웠 다. 건평은 3.3평이다. ⑦외 3 문 -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집. 화강암 바른측 쌓기의 기단 위에 다듬 은 원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단주를 세운 5양가의 이익공 양식이다. 처마는 겹처마, 천장은 종량위로만 우물천장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연 등 천장으로 꾸몄다. 건평은 48평이다. ⑧양 사 제 - ㄱ자형으로된 팔작집으로 양식은 초익공식이다. 건평은 45평이다. 광 주향교는 그밖의 전(田) 489㎡, 답(沓) 45,879㎡, 임야(林野)8,954㎡ 등의 부동산이 있어 운영을 위한 기본 재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향 일은 춘추 2회이며, 음력2월 상정일과 8월 상정일에 여러임원들과 관 내 기관장들이 모여 엄숙히 집전한다.
광주향교(광주시 지정 문화재 제9호; 남구 구동 22-3)는 광주공원의 정남쪽에 있다. 광주공원이 옛지명(聖龜崗)대로 ‘성스러운 거북 언덕’이라면 이곳은 거북의 왼쪽 뒷발쯤 된다.
향교는 처음엔 무등산 장원봉아래 세워졌으나 대인동 자리를 거쳐 현재의 곳으로 온 것이 1488년, 그 후 정유재란(1597년)과 1901년 화재 등 수차례 재건축 후 오늘에 이르렀다. 유학(儒學)을 가르치고 성현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지방문화 센터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외삼문(外三門)을 거쳐 향교안으로 들어서자 논어를 따라 읽는 목소리들이 청아하게 울린다. 8칸이나 되는 가장 긴 건물 명륜당(明倫堂). 원래 교생들을 모아놓고 문답식 수업을 하던 곳이다. 가만히 문을 열어보니 당을 꽉 채운 50여명의 학생들이 머리가 하얀 스승의 강독을 열심히 따라 하고 있다. 한문강좌 고급반, 주부들이 80%다. 칠판 위 왼쪽에는 공자의 초상화, 오른쪽엔 ‘溫故知新’(온고지신)이란 서예글씨가 붙어있다.
요즘 한문 붐이 일어 만원사례란다. 명륜당 정면 좌우편에 양반자제들의 기숙사였던 동재(東齋)와 평민자제들이 묵었던 서재(西齋)가 마주보고 자리 잡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문회재(文會齋)다. 옛날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지금은 초급반 사자소학(四字小學)을 가르친다. 그 아래 쪽 으로는 선비를 양성하는 양사재(養士齋), 조선시대에는 영재 40명을 선발하여 과거시험을 준비시켰던 일종의 영재학원이었다. 지금은 서예강습실로 쓰인다.
양사재와 문회재 사이를 지나면 지난해 30억 원을 들여 지은 ‘충효예 체험교육관’이다. 연 건평 375평, 기와지붕의 옛 멋을 살린 2층 건물이다. 1층은 전시 영상관람실, 2층은 체험교육장이다.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大聖殿)은 북쪽 가장 높은 터에 내삼문(內三門)으로 둘렀다. 공자, 맹자 등 5성(聖)과 문정공(文正公) 송준길(宋浚吉),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 등 20현(賢)을 모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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