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설교(37)
누룩의 비유 ...
본문 : 마13:33 (신 22) (눅13:21)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 된 한 소년이
지정헌금을 했습니다.
그가 한 헌금의 액수는 1페니였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꼭 신약 성서를 사서
인도에 보내달라고 지정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5살 된 소년의 뜻을 소중히 여겨
그 교회 목사님이 돈을 약간 보태
조그마한 신약성서를 사서
그 소년의 사인을 받아가지고
인도 선교사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이 소년도 잊었고
목사님도 잊었습니다.
20년 후 이 목사님이 인도에 들어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참으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까?”하고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때 뜻밖에도 한 선교사가 이 마을을 찾아와서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넨 것이.....
그 마을의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 떨어지고 남루한
조그마한 신양성경 한 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성경을 보는 순간 그 목사님은
심장이 멎는 듯 했습니다.
그 성경은 바로 20년 전
자기 교회의 어린 소년이 헌금을 해서 보낸
바로 그 성경책이었던 것입니다.
그 책의 마지막 표지에
그 소년의 싸인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는 .......
트럼펫을 울리는 거창한 선전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천국을 설명한 천국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와 내용이
비슷하다고 해서 ‘쌍둥이 비유’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 겨자씨의 비유에서는 지극히 작은
하나의 씨가 크게 자라났다고 하는 것이고....
- 누룩의 비유에서는 지극히 작은 누룩으로
반죽했는데 크게 부풀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의 가치와 놀라운
성장의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 겨자씨의 비유가
외적인 성장(변화)이라면 ....
- 누룩의 비유는 내적인 성장(변화)을
나타내는 비유라는 점입니다.
- 겨자씨는 다른 무엇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
그 자체가 성장한 반면,.....
- 누룩은 다른 것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 즉 겨자씨의 비유가 작은 것이 얼마나 ...
크게 자라는가에 관심이 있다면 ....
- 누룩의 비유는 한 작은 것이
다른 것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누룩의 양면성>....
그렇습니다.
누룩은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빵을 부풀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즉 엄청난 전염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누룩의 특성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는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누룩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
눅12:1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5:6에서 음행을 책망하면서
공동체에서 물리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누룩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 적은 누룩이 온덩이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이 누룩의 비유를 사용 하셨습니다.
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즉 천국은 변화 받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누룩과 같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임을 각인시켜주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 한 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 한 사람의 거듭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지를 ....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변화가
썩어져 가는 영국을
피의 혁명으로부터 구원했습니다.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일깨웠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사를 보면
한 사람의 거듭남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에 홍의 마을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1897년 즈음입니다.
교산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마을의 서당 훈장을 통해 전도들 받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홍의 마을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면서 개명하기로 했습니다
(한 형제라는 뜻으로 끝자를 일자로 -
박능일, 권신일, 종순일, 김경일, 권은일, 권혜일, 권충일).
단순히 교회 안에서 부르는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호적과 족보까지 새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같은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가 같은 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예외가 없었습니다.
“육적으로 부모, 숙질간이지만
영적으로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가?”......
이처럼 파격적으로 이름을 바꾼
교인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절도, 촌수도 모르는 상것들”이라며
‘검정개’(그때 교인들은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개명교인들은 이름을 바꾼 만큼
신앙에서도 철저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종순일입니다.
그는 이름뿐 아니라 자신의 성도 바꾸었습니다.
바로 종순일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종’이라 해서
자신의 성을 ‘종’씨로 바꾼 것입니다.
이 분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그의 행한 일에 있습니다.
종순일은 예수 믿기 전에 ‘마을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물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이름을 바꾼 후
교회 속장이 되어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루는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나오는
비유말씀을 읽은 종순일은 ......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자신에게 돈을 빌려간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오늘 내가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은 것은
일천만 냥 빚을 탕감 받은 것보다 크거늘,....
여러분에게 일백 냥, 일천 냥을 빌려주고
그걸 받으려 한다면 이는 성경말씀에 나오는
악한 종이라 할 것이요,
이 시간 후로 여러분이 갚을 빚은 없소”....라며........
그는 빚 문서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 없앴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며 감격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1900년 4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의 마을의 복음화는
급속하게 이뤄졌습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종순일은 ‘부자 청년’에
대해 하신 말씀(마19:16~30)을 읽은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처분해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을 교회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교통이 불편한 섬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고 목회를 했습니다.
1917년 종순일은 감리교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
강화 주문도 진촌교회(현 서도중앙교회)에 ...
부임해서 또 같은 탕감사건을 계기로.......
주문도 사람들 주민의 75%가 교인이 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변화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한신대 정태기 교수의 간증입니다.
1920년대 전라남도 신안군의
중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그 섬의 한 부자 집에 본토에서 한 여자가
시집을 왔는데....., 부모끼리 정해준 혼인 인지라 ...
그 남편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번도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시집에 얹혀 죽지 못해 살다가.....
시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 섬을 떠나 목포로 이사를 했습니다.
거기서 전도를 받아 북교동교회에 출석하게 됐는데 .......
그곳의 담임목사가 바로 부흥사로 유명하던
이성봉 목사님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이 ....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시집살이 하느라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소작살이 하느라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양반 상놈 차별에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설교하는 것을 듣고,
“예수가 누군데”하며 사흘을 울었답니다.
결국 그 길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예수를 더 잘 알고자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친정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고
시집이 있는 그 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몇 년 전 소박을 맞은 그 여자가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여인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궁금해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 섬을 떠난 여인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여인은 주눅이 잔뜩 들어 두려움과
겁먹은 얼굴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기쁨에 가득차서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당당하게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 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
변화된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그 여인을 좋아하고
줄줄 따라 다녔는데
그 가운데 자기도 끼어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 가운데에서
김준곤 목사, 이만신 목사 등이 끼어 있었고,.......
그 조그마한 섬에서
무려 68명의 목사가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섬에 돌아와 갖은 핍박을 견디며
복음을 전하여 신안군 일대의 섬들에 ....
약 100여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녀는 결국 1950년 공산군에 의해 총을 맞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아니하여
지금 신안군 일대의 90%가 복음화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한국의 바울’이라 일컫는
문준경 전도사입니다.
종순일과 문준경,
이 사람들의 변화는 그 지역을 구원하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이와 같이 한 사람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거듭남이 중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변화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저는 오늘 누룩의 비유를 통하여
또 한 가지 귀중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예, 바로 누룩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금도 마찬가지).
누룩은 밀가루 반죽에 섞여 들어가야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접촉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끼리 교회 안에서
“할렐루야, 아멘”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회와 성도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부딪히고 만나고 나누어지고 ....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야 거기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로 손해를 볼 때도 있고,
고통당하고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누룩은 어떻게 밀가루를 변화시킵니까?
“소리 없이 변화시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교훈해 줍니다.
결코 말로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방해만 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
세상 속에 들어가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것이 바로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이 번져갑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바로 천국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성도님들을
‘누룩’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속한 자리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말이 행동을 사랑을 실천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
이 시대의 선한 ‘누룩’으로 겸손히 쓰임 받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주님! 나의 삶이 내 가족과
내 친척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내 생애가, 내 직업을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오 하나님!
누룩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애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