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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을 보셨다면 열두 번의 생명 혁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는 evolution 이라고 하고, 혁명은 Revolution이라고 한다.
진화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혹은 수억 년 조금씩 변하는 것이고, 혁명은 몇십 년, 몇 년 사이에 느닷없이 변하는 것이다.
인류는 20세기까지는 진화해왔다.
즉 생명 역사에 나타난 혁명가 열두 분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냈다.
다만 앞으로는 진화가 일어나는 대신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혁명이란 매우 빠른 진화다.
그것이 진화든 혁명이든 공통의 현상이 한 가지 있다. 진화 이전에 진화를 따라오지 못한 생명체들은 멸종되거나 낙오된다는 사실이다. 진화의 단계에서 오르지 못한 생명체는 그 종이 멸절되거나 혹은 그 종으로 고정되었다.
즉 하나의 진화, 하나의 혁명이 일어나면 그 이전의 생명체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대로 고정되어 존재하거나 둘 중의 하나 밖에는 할 수가 없다(더러 새로운 진화가 다른 방향으로 일어날 수는 있지만 인류처럼 진화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슬프고 무섭고 아픈 진실>이라고 적은 것은, 인류라는 개념으로만 놓고 봐도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고인류는 100%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숱한 명칭의 고인류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 죽어 없어진 것이다.
진화의 계단에서 미끄러지면 그대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천길 만길 벼랑에서 떨어져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비슷한 생명체조차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질 않는다. 진화를 할 때는 자연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고, 진화하지 못한 종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 그 이전 필름카메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화소 문제로 일부 생존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사라진다.
컴퓨터가 나오면서 타자기가 사라지고, 옵셋 인쇄가 나오면서 활자로 찍던 활판 인쇄가 사라진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1948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급격한 변화를 겪다가 채 적응하기도 전에 늙었다. 올해 기준 76세인데, 그들은 과거 천년 동안 일어난 변화보다 더 빠른 변화를 자신의 인생 안에서 겪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진화라고 하기에는 사실 혁명에 더 가깝다.
이 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혁명이나 다름 없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더 빠른 변화를 '당하면서' 늙어갈 것이다.
이제는 AI가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상상이 안되는 일이 마구 일어날 것이다.
사실 이런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엔비디아의 젠슨황 자신도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저 게임용 그래픽카드 만들다 보니 AI 덕에 대박이 났을 뿐이다.
계산의 양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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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진화가 아니라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가 밟고 지나온 것을 돌아보고, 그래서 뒤떨어져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옛 기술은 사라진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 당선되면 누군가는 떨어진다.
전에 밀리언셀러, 베스트셀러를 잇따라 낼 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시장이 그렇게 돌아갈 때 사실은 가까이 지내던 소설가들이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나 때문에 자기들 소설이 안팔리는 것처럼 나를 원망했다.
진화만 해도, 진화에 성공하지 못한 개체들은 죽거나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하물며 혁명은 말할 것도 없다. 혁명군이 치고들어와 모든 걸 빼앗고, 뒤집고, 엎어버린다.
지금 과학기술이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과학기술은 사람들 대부분에게 유익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그때문에 목숨을 잃고, 재산을 잃고, 병을 얻는 사람들이 생긴다.
30년 전, 0140 할머니가 이런 충고를 해주신 적이 있다.
남들이 나를 부러워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앞에서는 부러움만 표시하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는 저주를 할 거라고.
그래서 늘 자비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나 때문에 그림자 속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프고 배고프고 힘들고 지치고,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도 반드시 있다.
말을 더 참고, 몸을 더 낮춰야 한다.
오늘의 우리는 이긴 사람, 살아남은 사람의 후손들이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도태되거나 죽어나갔다.
그 모든 슬픔과 아픔을, 늘 이겨오기만 한 사람들의 후손들인 우리가 감당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또 다시 우리는 누군가를 뒤떨어뜨리고, 누군가를 밀어내는 진화와 혁명의 전쟁터로 나아가야만 한다. 안그러면 우리 모두 사라지거나 다 쓸려가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