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보는 아이큐가 13이면 남을 보는 아이큐는 1억 3천
[최진석 교수 '인문학 특강' /ebs]
자기가 좋은 일을 해놓고 그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것은 자기가 한 그 공을 계속 빛나게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갑자기 사업에 실패를 했을 때..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운 형편을 보고 아무도 모르게 500만원을 줬다.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그 500만을 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참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내가 500만원을 준 그 친구가
어디 가서도 내가 500만원 도와줬다는 얘기를 안 해주는 거야..
처음에 줄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했지만 그래도 한두 명한테는 얘기할 줄 알았는데.. 안 하고
그리고 자기한테도 아무 말도 안 해..
그렇게 한 두세 달이 지났는데..
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거기 모인 친구들이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안 해.
그러니까 그 친구가 말을 안 한 게 분명해.
그러면 도와준 이 친구는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자기 내공의 호흡이 바닥이 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은 안 해야 하는데.." 하면서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안 해야 되는데' 하는 이야기는 평생 안 해야 한다.
"안 해야 하는데.. 내가 꼭 고맙다는 말을 듣자는 게 아니라.."
꼭 이 말도 붙인다. ㅎㅎ
"걔가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
교묘하게.. 마치 그 친구를 걱정하는 것처럼..
그 친구 인격에 문제가 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을 걱정해 주는 것처럼..
그러나 내심은 무엇인가? 자기가 빛이 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여러 가지 미사려구를 붙인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부터 시작해서
"꼭 인사를 받자는 게 아니라.. 걔가 그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런데 세상에 이런 원칙이 있다.
어떤 사람 아이큐가 130이면 자기를 보는 데는 아이큐가 한 13정도 되고..
그런데 남을 보는 데는 아이큐가 한 1억 3천 정도 된다. ㅎㅎ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말할 필요 없다.
그 친구가 하루 이틀만 더 기다렸으면 정말 빛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 공을 자기가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공이 사라져 버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한다.
"자기라고 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는 물러나야 한다."
"자기가 물러날 때 너는 앞서게 된다."
리더는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듣는 사람인데
아이큐가 1억 3천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내공이 발견되는 것이다.
"잘 살게 해 주고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는다."
(生而不有 도덕경 2장)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 위에 자리잡지 않는다."
(功成而不居)
"천지 자연은 장구하다." (天長地久 도덕경 7장)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不自生 부자생)
"성인은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앞서게 된다." (後其身而身先)
"그 자신을 도외시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보존된다."
(外其身而身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