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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남면- 운남산- 절골산- 오봉저수지- ★제석봉 - 대성지- 구미역 1 - Daum 카페
호수는 아닌데
호수 분위기를 풍기는 곳
무슨 꽃일까? 붉은 상사화??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인명구조함 로켓발사기"
생태 다리 뒤로
"오봉대교", "제석봉" 능선
목교를 건너가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
함께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데크길
■ ~ ~
■ ~ ~ ~
2분 후
이 곳에서
우측으로 간다.
♠ 직진하여
"오봉대교" 를 건너가도 된다.
봉우리 뒤로
"금오지맥" 능선
1분 후
의자 쉼터를 지나면서
◐ 동영상 ◑
잠시후
정자 앞에서
"Happy together 김천"
"오봉대교" 를 바라보며
시계 방향으로 ~
"제석봉" 방향 ~
■ ~ ~ ~
"금오지맥" 봉우리들 ~
"금오산 ~ 두꺼비전망대 ~ 부상" 방향 능선 ~
지나온 방향 ~
■ ■ ~ ~
한바퀴 둘러보았다.
당겨본 "현월봉"
당겨본
"두꺼비전망대"
당겨본
"두꺼비전망대, 삿갓봉"
잠시 걸어가며
"오봉대교"
생태 다리를 건너오면
좌측으로 간다.
김천8경
오봉저수지 둘레길
조형물들이 있으나
너무 단조롭게 보인다.
2분 후
"오봉대교, 정자" 를 조망하고
2분 후
정자로 들어간다.
잠시후
한적한 정자에서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면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절골산" 인 듯 하다.
"오봉대교" 방향
5분 후
"오봉대교" 에 도착
"버스정류장" 이 있으나
버스는 자주 오지 않는 곳이다.
대교라고 하기에는
폭이 좁은 다리이다.
뒤돌아 보며 ~
시계 방향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지나온 방향 ~
이 길을 따라 가면
"오봉저수지 2.5km" 이정표가 있던
갈림길로 갈 수 있다.
저수지의 분위기는
너무도 평화롭다.
둑방 뒤로 보이는
"봉화산" 라인
2분 후
고즈넉한 분위기의 쉼터
아래 쉼터가 하나 더 보인다.
여기서
"달반물반카페" 를 거쳐
"제석봉" 으로 올라갈 것이다.
주변 쉼터를 둘러본다.
하트 그네 쉼터
"오봉대교"
물오리들도 촐삭이고
아래 둑방까지 가보려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 같다.
"하트 포토존"
단조로운 조형물
"달반물반카페"
옆길로 들어간다.
잠시후
좌측 갈림길에서
우측 직진 →
1분 후
★★
앞에 갈림길이 보이는 곳
노란 리본이 매여있고
좌측 산길로 들어간다.
▶ 4분 후
묘지를 하나 지나면
경사가 더해지고
▶ 5분 후
좌측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올라간다.
잠시후
돌탑을 지나고
7분 후
바위들을 지나면
지능선에 합류하여
(묘지 하나 있음)
좌측으로 꺽어
빡세게 올라간다.
(가파릉오름- 9, 오름- 3)
12분 후
"금오지맥" 에 합류하여
좌측으로 간다.
♠ 뒤돌아 본 모습
1분 후
암반릉을 올라가며
잠시후
좌측에 보이는 조망터
위에 같은 풍경을 보이는 곳이
한 군데 더 있기에
여기는 패스!!
잠시후
두 번째 조망터
아래 바위군
비스듬한 암벽에서 자라는
굳센 한 그루!
"달반물반카페" 에서 올라온 능선
"오봉저수지" 뒤로
"절골산 ~ 운남산" 라인
능선 뒤로
"봉화산" 라인
이 쪽 능선에
등로가 있다는 것 같았는데??
당겨본
"오봉저수지"
당겨본 "운남산"
당겨본 "봉화산"
2분 후
"제석봉/ 512.2m"
제석봉 (帝錫峯)
해발고도 512.2m
김천시의 아포읍 제석리, 대성리, 남면 오봉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제석봉은 수도산에서 염속산, 백마산, 금오산을 거쳐
제석봉으로 다시, 선산의 백마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81.4km의 산 줄기인「금오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제석봉은 국사봉과 함께 아포읍의 진산으로
고대 삼한시대의 "아포소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이다.
이를 뒷바침 하듯이
제석리 일원에는 고인돌과 고분군이
산자락 밑에 산재해 있다.
"SBS 세상에 이런 일이 621회" 때
방영 되었다는
제석봉 돌탑의 사연!!
20kg 정도의 돌을 짊어지고 올라
4년 여에 걸쳐 쌓은 돌탑이라고 한다
새벽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
날이 밝아져야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아저씨의 사연은?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다.
그가 출몰한다는 김천의 한 야산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때!
등 뒤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타난 오늘의 주인공 박순대씨(63세).
산을 오르면서 이곳저곳에서 돌들을 찾아 배낭에 가득 담는데...
제법 묵직해진 배낭을 메고 가파른 산길을
30분 동안 올라 도착한 제석봉 정상!
날이 밝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거대한 돌탑들이었다.
4년 동안 버려진 돌을 지고 올라와
매일 탑을 쌓은 아저씨.
돌탑을 쌓고 내려갈 때는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고.
허리 디스크로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이었던 아저씨가
무게만 20kg에 달하는 돌을 지고 산에 올라
돌탑을 짓게 된 사연은?
2007년 부터 돌을 쌓아다고 하니
제석봉 신령님도 감응 하시고 그분의 병도 완쾌되었다는 후문입니다.
제석봉은 금오지맥(金烏枝脈)의 산으로
구미 금오산(977m)과 가까운 이웃이며
약 81.5km의 금오지맥(金烏枝脈)은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분기한 수도지맥이
수도산에 이르러
다시 곁가지를 형성한 산줄기이라고 한다.
제석봉(帝錫峯)을 제석궁(帝錫宮)이라고도 하는데
제(帝)는 임금을 뜻하며
또 주변의 관리봉(官吏峰국사봉)은
관아의 벼슬아치를,
삼태봉(三胎峰)은
옛날 제석궁 왕자의 태가 묻혀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고 한다.
산자락의 제석리와 국사리는
제석봉과 국사봉의 이름을 따서
1914년 지명을 바꾼 마을이라 한다.
김천시청 김천의회
1914년 3월 1일 설치된 지방행정기관,
당시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김산군, 지례군, 개령군 등을 통합해
김천군이 출범했다.
1931년 김천면이 김천읍으로 승격,
1949년 8월 15일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
김천군은 금릉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5년 5월 10일 김천시와 금릉군을 통합해
도농(都農)복합시인 김천시가 설치됐다.
김천시의 면적은 1,009.5㎢로
경상북도 전체 면적의 5.3%이다.
'역동의 혁신도시, 희망! 김천' 이라는
시정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활력있는 지역경제, 균형 있는 도시개발,
함께 하는 복지사회, 품격 있는 문화 교육 등
4대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
김천시를 상징하는 동식물은
왜가리(새), 소나무(나무), 자두꽃(꽃)이다.
사회ㆍ경제ㆍ교육ㆍ문화ㆍ복지 등
전 분야에 걸쳐 노력하고 있으며,
KTX 역사건립 및 개통(2010년), 혁신도시건설(2012년),
신산업단지조성 등
미래발전의 새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김천 혁신도시
김천시 율곡동에 조성된 김천혁신도시는
115만평의 면적에 8,676억원을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투입하여 조성하였으며,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과
지역의 산업ㆍ대학ㆍ연구기관ㆍ지방자치단체가
서로 긴밀히 협력하여 새로운 성장을 촉진하는
최적의 여건과 쾌적한 정주환경을 갖춘
친환경 미래형 도시이다.
현신도시내에는
KTX김천(구미)역과, 한국도로공사를 비롯한
12개 공공기관과, 고2개교, 중2개교, 초3개교,
유치원3개원이 설립되고,
김천시에서 운영하는 녹색미래과학관이 건립되었다.
공공기관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기술(주), 교통안전공단,
한국건설관리공사, 농림축산업검역본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국립종자원, 우정사업조달사무소, 조달품질원, 기상청 기상통신소,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금오산" 을 바라보며 ~
"오봉저수지" 뒤로
"절골산 ~ 운남산" ~
"운남산" , "봉화산" ~
"봉화산" ~
너른 들판 뒤로
"구봉산, 대양산" 뒤로
희미한
"난함산, 백운산" 산군들
아래에서 보는 조망이 아쉬워
초소에 올라 조망한다.
금오지맥에 얽힌 이야기들을 보면
선비 강혼과 기생 은대선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扶桑館裏一場歡(부상관이일장환)
부상역의 한바탕 즐거움이여
宿客無念燭燼殘(숙객무념촉신잔)
나그네 이불도 없이 촛불은 재만 남았네
十二巫山迷曉夢(십이무산미효몽)
열두 무산선녀 새벽꿈에 어른거린다
驛樓春夜不知寒(역루춘야불지한)
역루의 봄밤은 추운 줄도 몰랐구나
선비 강혼은 경상감사로 지방을 순행하다
성주의 관기(官妓) 은대선(銀坮仙)과 정이 들었다.
이별을 앞두고 금오산 아래 부상역까지 함께 왔지만
덮고 자야 할 이불은 벌써 개령역으로 보낸 뒤라
이들은 이불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
객사에서 마지막 회포를 푼 후
강혼은 이별의 아쉬운 마음을 담아 3수의 시를 남겼다.
'부상역의 봄밤'은 그중 하나로
지금도 '묵계집' 등에 실려있다.
은대선은 부상역을 지나
상주까지 강혼을 따라갔으나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다.
강혼은 조령을 넘어 도성을 향하다
성주 서생을 만나 함께 술잔을 나누던 중
은대선 생각에 즉석에서 사모하는 마음의 시와 편지를 써
서생을 통해 은대선에게 보냈다.
은대선은 이를 병풍으로 만들었다.
당시 성주를 지나는 선비들이 일부러 객관에 들러
병풍을 구경하고 지났다는 얘기도 전한다.
송계 권응인(權應仁)이 강혼이 세상을 떠난 뒤
훗날 은대선을 만났는데 이미
여든이 된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다가
이제는 흰 머리카락이 흩날리네로 변했습니다"라고
강혼이 써준 시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순애보가 전한다.
제석봉 (帝錫峯)
한반도의 진산은 물론 백두산이다.
이 백두산에서 태백산이 이루어 졌고
또 다시 소백산으로 죽령을 거쳐
추풍령을 지나 힘차게 뻗어내려
금오산을 형성할 때
김천의 곡창지대인 원창들을 보호라도 해 주려는 듯
솟아난 산이 제석봉이다.
제석봉은 높이가 512m에 불과하지만
아포의 진산이며
또한 전설 속 아포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이다.
제석봉은 아포읍 제석리와
국사리, 송천리, 대성리등을
산자락에 거느리고 있으며
아포국의 전설과 제석리 길지(吉池)의 사연,
한 총각이 처녀를 사모하다
세상을 하직했다는 전설이 담긴
달랑고개, 현못의 유래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유래와 전설등을 들어보고는
모두 다 애틋한 사연에 머리를 숙이며
회상에 젖어들곤 하는 산이 바로 제석봉이다.
아포국
고대 삼한 시대에 개령을 중심으로 한
이 지방의 일대를 지배하던 소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소국이 감문국, 아포국, 어모국, 문무국 등인데
그 중 하나가 아포국이다.
길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국력이 극도로 쇠진했을 때
개령현 제석동에 살던 길운절(吉雲節)이
제주도에서 역모를 꾀하다가
미수로 끝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길운절은 고변자로서
다행이 목숨을 건졌는데
집터는 당시 법도에 따라 헐고
연못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의 아포읍 제석리 길지가
바로 그 못이다.
그 역모로 인하여
길운절의 거주지인 개령현이
일시 폐현(廢縣)되었다.
폐현된 개령현은 8년만인 1609년에
이여림등 유생들의 상소로 복현되었다.
달랑고개
달랑고개는
제석마을에서 국사마을로 넘어가는
조그만 야산의 고개를 말한다.
옛날 제석마을에
한 총각과 처녀가 있었는데
총각이 처녀를 마음에 두고 짝사랑을 하여 왔었는데
이 총각은 성격이 내성적이라 시름시름 않다가
상사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부모는 총각을 마을 옆 야산 고개옆에 묻어준 후
처녀에게 아들이 남기고간 마지막 말을 전해주게 되는데
처녀는 왜 진작 말하지 않고 떠나 갔느냐고 원망하면서
총각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처녀의 이 광경을 보고 달려고개라 했고
세월이 변하면서 달려가 바뀌어
달랑고개로 바뀌어 불렀다.
진행 방향의 이정표
이 능선에 등로가 있나??
"무작정쉼터" 를 찾아
무작정 내려갔던 능선
"국사봉" ~
"국사봉, 백마산(효자봉)" ~
"금오지맥" 봉우리들 뒤로
"금오산"
높이가 있으니
확실히 조망도 괜찮다.
당겨본
"국사봉 ~ 백마산(효자봉)"
당겨본 "금오산"
◐ 동영상 ◑
쉼터 의자를 지나 내려간다.
♣ 나머지 사진은 3페이지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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