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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4:1~2(322) 주 안에 굳게 서라 2024.10.27
오지에서 활동하던 미국 선교사가 한국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한국에 있는 몇 교회를 돌면서 선교집회를 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집회가 다 끝나고 난 뒤에 자신을 초청한 한국선교단체 대표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전 세계 어디를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교회당과 열정적인 성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한국 교회 교인들의 표정이 왜 그렇게 다들 어두운가요? 제가 몇 교회 밖에 돌아보지 않았지만,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의 요정이 너무 어둡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바깥에서는 너무나 명랑하게 얘기하고 웃다가도 교회에 들어서기만 하면 왜 갑자기 어둡고 우울해집니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둘러 댄다는 말이 ‘한국 교회 크리스천들은 모두들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있기에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다들 심각한 표정’이라고 답변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미국인 선교사는 크게 웃으면서‘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의 십자가만 생각해서 무거운 표정이라면,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은 잊어 버렸나 보군요’라고 애둘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난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도 중요하지만, 사망 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기쁨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고난만 묵상하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생활할 때도 있지만,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이 경직되어 있었던 이전 세대에 비하여 현재 한국교회 예배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고, 개선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교회의 예배가 무겁고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바뀌어져야 할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에도 항상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감사하는 모든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고 싶어도 내가 우울해서 그 은혜를 거부해 버린다면,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비록 세상 근심 걱정이 한 주간 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주일날 교회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마음껏 찬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지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강건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인가요? 이 해답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주 안에 서야 합니다.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기를 소망하는 성도, 항상 하나님만 찬양하고 섬기며 따라가기를 소망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1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준 바른 가르침 위에 서라. 이 바른 가르침은 주 안에 곧게 서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라(헬, 스테케테)’는 ‘진실 되게 서다, 굳게 서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표현은 병사가 전쟁 중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게 위하여 뒤로 물러서거나 후퇴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굳게 서서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라’는 단어가 주는 기본적 표현은 목숨을 걸고 사명을 완수해야 할 전투적 용어입니다. 만약 내가 전쟁터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라고 가정해 봅시다. 적군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다른 군인들이 편하게 잠을 자는 그 시간에 불침번을 쓰고 있는 나를 쓰러뜨리고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불침번의 자리에 서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도록 나를 해꼬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을 지척에 둔 군인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항상 정신을 잘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적군이 야심한 밤에 끊임없이 예의주시하며 바라는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병사가 초소를 떠나거나, 초소에서 졸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순간 방심하여 경계가 허물어진 그 찰라의 순간에 기습하여 전세를 뒤집어 엎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경계를 서는 군인은 절대 그 자리에서 물러서거나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항상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서 있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게 만들고, 어려움과 역경을 주어서 신앙의 자리에서 물러서도록 유혹합니다.
신자들의 죄와 사단과 치열한 영적 전투 속에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포기를 모릅니다. 성도들을 유혹하고 믿음에서 추락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서스럼 없이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항상 주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가 굳게 서 있으되 ‘주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돈 위에 굳게 서 있고, 세상의 욕심 위에 굳게 서 있고, 정욕과 헛된 것 위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서 있는 내 발판과 내 바탕이 어떤 것인지 내가 의지하고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굳게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언제 어디서나‘주 안’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안에 서 있을 때에 주님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내가 주 안에 서 있을 때에 주님이 나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내가 주안에 서 있을 때에 나에게 영원한 기쁨이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찬 442장(저 장미꽃 위에 이슬) 후렴,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서 있는 성도에게 주님이 동행하시면서 친구 삼아 주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쁨과 은혜를 주신다는 고백의 찬양입니다. 이런 놀라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과 찬양이 되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영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꿈을 갖고 중국 오지에 들어가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어려움이 닥쳐와 사역이 무너지고 있었으며,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육체에 심한 질병까지 찾아오게 됩니다. 중국에서 선교하는 것을 그만 두고 포기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성경 말씀을 읽다가 께달음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듭니다. 테일러 선교사는 자신이 포도나무라 생각하고, 자신이 중국선교의 모든 것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가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가지가 할 일은 그냥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부리처럼 생각해서 어디에서 영양분을 끌어 모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영양분을 공급받게 되고, 그리고 열매까지 맺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테일러선교사는 이 말씀에 깨달음을 받고, 진정으로 주님 안에 서 있는 모습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서 있는 것을 거부합니다. 자신이 만든 계획안에 머무는 것을 멀리합니다. 오로지 예수님 안에 서 있는 것으로 삶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버립니다.
그 결과 놀라운 것은 그 후로부터 중국 선교 사역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중국선교에 큰 업적을 남기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저는 성공적인 사역을 얻고자 내 생각과 매 고집에 서 있었으나 결론은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내가 주님 안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성령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라고 간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1절의 말씀처럼 ‘주안에 서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 서 있을 때만이 나의 연약함은 주님의 전능하심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날마다 주 안에 머물면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안에 굳건하게 서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들 역시 항상 주안에 굳게 서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다가오는 11월의 모든 시간 속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주 안에 굳게 서서 하나님에게 칭찬을 듣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2.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본문에 보면 두 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사람입니다. 성경 사전을 찾아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 교회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사도 바울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던 여성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고 봉사와 섬김으로 선한 소식을 내던 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성경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이 두 여성 간에 불화가 발생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신앙생활을 하던 두 여성이 등을 돌리면서 서로에게 험담을 합니다. 비난이 난무하면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서로를 대합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서는 이 두 여성의 다툼과 갈등을 봉합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에게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불화하면서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바울은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에서 쓴 빌립보 서신 속에서 서로 화해할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한글 성경에 번역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말은 ‘주님 안에서 서로 뜻을 합하라’는 헬라어의 뜻이 있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의 뜻을 합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단체 생활을 저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따로 생활하며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단체 생활이 가장 강조되는 군대 생활 중에서도 전체와 함께 어울리지 못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군대라는 독립된 기관과 장소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 행동하는 것을 따라하지 못하는 사병은 결국 문제 사병으로 분류되어 따로 교육을 받든지, 아니면 정말로 적응하지 못하면, 불명예 강제 제대를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 정병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아래 하나로 뭉쳐서 사탄과 싸우며 어두운 세상과 싸워서,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고 말씀을 전해야 하는 십자가 군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 마음을 합하여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뜻을 품으면서 그리스도가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탄은 항상 성도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라가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방해합니다. 사탄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교회 안의 성도들을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비록 상대방과 생각이 다르고, 주장이 달라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각은 접어 두고, 내 고집은 뒤로 물리고, 내 체면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모습으로 같은 마음을 품고 행동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 외로움을 메꾸고자 애완 동물가게에 찾아갑니다. 반려견으로 선택할 예쁜 강아지도 살펴보고, 반려묘로 귀여운 고양이도 살펴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계속 선택하지 못하자, 가게 주인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앵무새가 있으며, 이 똑똑한 앵무새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기에 곧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비싼 앵무새 가격이지만, 앵무새와 새장까지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 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앵무새에게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앵무새가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하루를 지나 말을 걸고 이틀이 지나 말을 걸어도 앵무새를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게로 전화 하니 가게 주인은‘이상하네요. 그렇다면 앵무새가 거울을 좋아하니 새장 안에 거울을 넣어주세요. 자기 얼굴을 보고 행복해진 앵무새가 곧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새장 안에 거울을 달아주어도 계속 반응이 없습니다.
‘앵무새가 운동을 좋아하니까 새장 안에 앵무새가 매달릴 수 있는 그네를 달아 주면 된다’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그네를 달아 주었지만, 앵무새는 한 두 번 그네를 타더니 그냥 새장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가 죽어 버립니다.
앵무새가 말을 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가게 주인의 말에 사기 당하고 속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걸음에 가게로 달려가서 큰 소리로 항의 합니다. 가게 주인은 ‘정말로 앵무새가 한 마디도 안 했습니까?’라고 질문했더니, 이 사람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한마디는 했다고 합니다. 앵무새가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면 ‘밥을 줘야 말할 기력이 있지’하더랍니다.
앵무새를 비싼 가격에 산 이 사람은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 줄 요량으로 앵무새가 말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지, 앵무새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먹이를 먹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이 이 이야기 안에 있습니다. 아무리 말 잘하는 앵무새라고 하더라도 먹이를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앵무새를 산 사람의 가장 첫 번째 목적은 앵무새와 대화하는 것이었지만, 앵무새가 가장 원하는 것은 먹이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목적과 방향이 다르면 종종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주 안에 있을 때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를 의지해서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는 싸우고 분열하고 증오하며 시기하는 자들에게는 주시지 않는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립보교회 모든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험한 세상과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주 안에 굳게 서라’고 말하였고‘다투고 싸우지 말고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오늘 서울 광화문에서 10/27 대집회가 열립니다. 이 집회를 놓고 일부의 교회와 목사님과 사람들이 온갖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참 잘못된 모습입니다. 오늘 광화문 집회는 정치집회가 아니라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고, 말씀을 보존하고, 자라는 후세대의 교육이 올바로 서도록 하기 위해 모이는 집회입니다.
집회장소가 너무나 먼 관계로 우리는 참여는 하지 못하지만, 한 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성도가 주안에 굳게 서야 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도록 노력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