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상징, 뜻을 사물에 숨기자
3. 김수영의 상징
상징의 유형은 제도적 상징과 개인적 상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도적 상징은 인습이나 제도에 의하여 굳어진 것입니다. 아라비아숫자, 한글 자모, 화학 분자식, 기하학 도표, 국기, 상표, 학교나 기업 표장, 십자가 등을 인습적 상징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적 상징은 개인의 상상력을 통하여 시인이 창조하는 상징입니다. 이것이 문학적 상징입니다. 휠라이트는 개인적 상징의 특성은 긴장성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에서 십자가나 비둘기의 심상을 사용하면 관습적으로 이미 그 의미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러한 심상은 이미 그 의미가 고정적이어서 정서나 의미의 낯설음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시의 창조적 어법은 상징의 낯설음을 강조하게 되므로 관습적 상징은 피해야합니다.(홍문표, 382~384쪽 참조)
김수영의 시는 몇 편을 제외하고 난해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개인적 상징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독자가 창작자의 상징을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전문
인용한 시는 화자가 청자인 젊은 시인에게 말을 건네는 대화체 형식입니다. 젊은 시인을 2인칭화하여 마음 놓고 눈을 향하여 기침을 하자고 청유하고 있습니다. 야콥슨은 이러한 구조를 청자지향의 어조라고 하였습니다. 청자지향의 어조는 사동적, 명령적 기능이 우세하게 되며 전달 내용에 대한 청자의 반응을 요구하게 됩니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시나 참여시, 민중시 등 선동적이거나 주장적인 시에 걸맞은 형식입니다.(홍문표, 245쪽 참조)
여기서 눈과 기침은 상징입니다. 눈은 순결의 상징이 되고, 살아 있는 순결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눈의 반복을 통해 살아 있는 순결을 강조하고, 살아 있는 눈에 기침을 하자고 권유합니다. 기침은 상대에게 존재감을 의식하게 하는 관념의 상징인데, 자신의 존재를 청결하고 순결한 정신의 상징인 눈에게 기침으로 알려주자는 것입니다.
눈이 살아 있음을 계속 강조하고 있고, 젊은 시인에게는 기침을 하자고 계속 압박합니다. 이는 창작자의 순결의식이 화자에게 투영되어 시에서 계속 자신의 존재를 기침으로 인지하게 하여 각인시키고 인식시키자는 것입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전문
이 시는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논어』 「안연」편에서 착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울고, 일어난다는 반복에서 논리적 모순성이 보이지만, 시의 리듬이 어떤 주술성을 느끼게 합니다. 이 주술의 리듬 속에서 풀은 민중을 상징하고, 바람은 실존적 상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상징은 다른 관념을 암시하는데, 다의성과 연결됩니다. 하나의 상징이 여러 개의 원관념을 환기하는 것이죠. 그리고 상징은 명확한 의미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독자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풍유(알레고리)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관계가 1:1이지만 상징은 여럿 : 1입니다.
그러면 상징과 기호는 어떻게 다를까요? 기호는 확정적이며 지시내용이 직선적이고 정확합니다. 교통신호등이나 교통안내판을 상상하면 되겠죠. 상징은 암시적이라서 상상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상징과 은유는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면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요? 상징은 관념만을 사물 심상으로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관념을 꽃이라는 사물 심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은유는 사물을 다른 사물 심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람이라는 사물을 나무라는 사물로 표현하지요. 그런 측면에서 상징은 은유보다 상상력이 더 요구됩니다. 상징은 반복적이고 은유는 일시적이고 일회적입니다. 그래서 상징은 반복을 통해서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것이고, 은유는 시인이 독창적인 창조를 하여 독자 개인이 공감하는 것입니다.
2024. 3. 6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