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불교를 만나다] <4> 최희준의 ‘하숙생’
우리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가는 나그네길
왜 하숙생인가?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학창시절 배웠던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녁놀이 붉게 물든 어느 시골 길을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시다.
흔히 우리네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하곤 하는데,
최희준의 ‘하숙생’ 역시 이를 노래하고 있는 곡이다.
아마 ‘나그네’라는 검색어로 빅데이터 조사를 하면 이 곡이 상위권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은 나그네 길~”로 시작되는 ‘하숙생’은 오래전 발표된 곡이지만,
중후하면서도 구수한 저음으로 인생을 노래한 가사와 멜로디는
아직까지 우리의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이 노래를 부른 최희준은 당시 연예계에서는 쉬이 찾아보기 힘든 엘리트 출신 가수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지만, 법조인이 아니라 가수의 길을 걷는다.
미8군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라는 곡을 히트시키고 ‘맨발의 청춘’과 ‘하숙생’ 등을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한때 가요계를 떠나 사업가의 길을 걷고
정치권에 입문해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독특한 이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가수 활동을 재개한 그는 가요계의 발전을 위해 애쓰다
2018년 8월 82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드라마의 OST를 부르면 자연스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 노래 역시 1965년 KBS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하숙생’에 삽입된 곡이다.
당시 드라마와 함께 이 노래가 크게 성공하면서 최희준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이 노래로 1966년 열린 제1회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을 차지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하숙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데,
주인공을 맡았던 김지미는
제16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 노래는 남진, 나훈아, 문주란, 설운도 등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여 오늘까지 부르고 있다.
이번 글을 쓰면서 ‘하숙생’이란 드라마와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을 새롭게 알게 됐다.
이 곡은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쓴 김석야가 작사하고 김호길이 작곡했다.
김석야가 어느 날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주 동학사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 쓰레기장에서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보았다고 한다.
아마 출가하면서 삭발한 머리카락인 것 같다.
이 장면을 보고 김석야는 그 안에 담겼을 수많은 사연들을 떠올리면서
드라마 시나리오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들어온 곡이어서 입으로 중얼거릴 정도로 익숙하다.
그런데 예전부터 궁금한 점이 있었다. 왜 제목이 하숙생일까 하는 것이었다.
가수는 인생은 나그네 길이니 정이나 미련을 두지 말자고 노래했는데,
그것이 하숙생과 무슨 상관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하다 금세 잊어버렸는데,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야 단편적인 사유에서 벗어나
세계를 종합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혜안이 생기지 않나 싶다.
하숙집은 내 집이 아니라 정해진 계약 기간에만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대개는 학창 시절 시골집을 떠나 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하숙집은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주지만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갖다 놓고 지낸다.
그래서 들어갈 때도 가벼운 몸이지만, 나올 때 역시 몸이 가볍다.
영원히 머물지 않고 인연 따라 잠시 스쳐간다는 점에서
출가사문이 지내는 절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수는 우리의 인생을 잠시 왔다 가는 하숙생으로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가사를 음미해보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나그네 인생
1995년 MBC 라디오에서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요 100선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천 명의 가요계 관계자에게 노래에 담긴 역사성과 작품성, 대중성 등을 기준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최희준의 ‘하숙생’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대중뿐만 아니라 전문가에게도 이 노래는 의미 있는 곡이었던 것이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노래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의 누이가 지었다고 알려진
‘부운(浮雲)’이란 게송이 떠오른다. 일부를 인용해본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
삶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죽음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삶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네.
뜬구름 자체는 실체가 없듯 삶과 죽음, 오고 감 또한 그러하네
(空手來空手去是人生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
삶과 죽음을 하늘에 뜬(浮) 구름(雲)으로 묘사한 멋진 시다.
이 게송은 절에서 49재나 천도재를 지낼 때 자주 들을 수 있다.
생사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므로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의미로 독송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9재를 지낼 때
스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 게송을 듣고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묘하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아주 평온할 때 이 게송을 들으면,
생사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라 느껴진다.
마치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하지만 그것이 나의 현실로 다가오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진리를 깨친 도인이라면 모를까 우리가 중생인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일이 나에게 닥치면 그저 슬플 뿐이다. 진심 어린 따뜻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럴 땐 함께 울어주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위로는 한참 뒤의 일이다. 생각과 현실 사이에는 이처럼 엄청난 괴리와 간극이 있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키사 고타미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슬픔에 빠진 여인은 부처님을 찾아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테니
제발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부처님은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 톨을 얻어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여인은 희망을 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한 군데도 없었다.
불자라면 많이 들어봤을 겨자씨 이야기다.
부처님은 여인이 괴로워하는 근본 원인을 알고 있었다.
물론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서 그러겠지만,
실상 아들이 죽었다는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었다.
현실에는 죽고 없는데, 마음에는 살아있는 이 엄청난 간극이
아들에 대한 집착과 고통을 가져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서 아들을 보내지 않는 한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부처님이 여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실존적 메시지다.
하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마음으로 아들을 보내야지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것이 사람이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고 나서 이미 지나간 일이니
잊어버리자 다짐을 해도 자꾸만 생각나는 것과 유사하다.
현실에는 돈이 없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잃어버린 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만 돈에 집착하는 것이다. 생각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 이것이 집착의 작동 원리다.
가수는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길이니
정이나 미련일랑 두지 말자고 노래한다.
구름 같은 인생인데, 실체도 없는 구름에 집착할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저 구름과 강물이 흘러가듯 그렇게 살면 된다.
나옹선사도 물같이 구름같이 살다 가라 하지 않았던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내 집은 본래 없다. 우리는 모두 하숙생일 뿐이다.
그러니 하숙집 작은 방에 이것저것 가득 채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몸과 마음만 힘들 뿐이다.
가수의 노래와 게송처럼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사람이나 돈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현실은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인생이 본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것을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새겨질 때까지.
최희준의 아호(雅號)는 소헌(小軒)이다. 작은 마루라는 뜻이다.
인생이 잠시 머물다 가는 하숙집이라면 굳이 방이 클 필요는 없다.
나그네 인생을 노래한 가수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도 느꼈을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노래하는 자신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실존 사이의 간극을.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소헌이라 부르면서
스스로를 탁마한 것은 아닐까?
2023. 02. 24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불교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