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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장소:연수구 청학동산5-25 일송정음식점(032-821-1390)
1. 선학동(연수동.송도)방향에서 오시는 길
선학사거리(선학역)에서청학동(송도역)방면으로 청학(문학터널)사거리 직전, 지하차도로 진입하지 말고 4차선
으로 주행하며 지하차도 시점 약50m 지점 도로우측(럭키슈퍼-소망부동산)사이 길 표시판(청학사&일송정)을 따라 300m정도
올라 오시면 됩니다.
2. 동인천(용현동)방향에서 오시는 길
인천방향(송도역)에서선학사거리(선학역)방면으로
청학지하차도로 진입하여 1차선으로 주행하며 지하차도 빠져 나와 300M 전방 함박 초등학교 앞 에서 신호에 의해 U턴 후 4차선
으로 주행하며 지하차도 시점 약50m 지점 도로우측(럭키슈퍼-소망부동산)사이 길 표시판(청학사&일송정)을 따라 300m정도
올라 오시면 됩니다.
3월28일(토) 등반 일정
봄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즐거운 3월 첫 산행입니다~
1. 산행 목적지 : 문학산
2. 집결 시간 및 장소 09:50일송정음식점주차장 연수구 청학동산5-25
1) 교회 출발 경우 : 09시 20분 인성초등학교 운동장 출발
2) 개별 출발 경우 : 일송정(청학사입구) 주차장에 09:50까지 도착
3. 회비:1만원
4. 준비물 : 가벼운복장,등산화,장갑,개인생수
*산 바람이 세게 불어 올 수 있음으로 잠바(바람막이) 준비 요함
5. 등반 코스: 일송정출발(10:00)→팔각정(10:20)→문학산정상(10:50)
→동쪽봉우리(11:15)→일송정(12:00)도착
※ 등반시 주의 사항 : 안전을 최 우선으로 하며, 체력에 맞게 천천히 등반 합니다.
봄철해빙기 낙석주의, 미끄럼 주의, 추락주의..
6. 점 심 : 12시 일송정에서 닭도리탕과 백숙,도토리묵
7. 해 산 : 13시30~
연락처 : 강승원 010-2454-0084
문학산 [文鶴山]
위치: 인천 남구 문학동 높이 213 m 문화재 문학산성, 문학 문묘, 학산서원지 요약 인천 남구 문학동(文鶴洞)에 있는 산.
문학산의 유래는 산기슭에 서원이 있는데 문인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산의 형상도 학(鶴)과 같다 해서 문학산이 되고 또
문학산서원이 이 산 북서쪽 기슭에 있었다. 그리고 인천부의 남쪽이라서 남산(南山)이라고도 했다. 이 일대에서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支石墓]를 비롯하여 돌도끼 ·돌화살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고 신라 때의 유적인 문학산성이 남아
있다. 또 고려시대의 문학사지(文鶴寺址), 조선 전기 건물인 문학 문묘(文廟)와 인천부청사(仁川府廳舍)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밖에 학산서원지 ·안관당지(安官堂址) 등이 있다. 문학산 정상에 있는 정자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인천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소래산은 물론 송학산과 인천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학산 자락엔 옛적에 두루미가
찾아 들었다고 해서 문학, 승학을 비롯한 산 이름과 청학, 선학, 학익 등 학(鶴)자가 든 동네 이름도 많다.
☞ 인천 알아 가기
인천 사람들은 인천을 단순히 인천이라고만 부르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인천 사람들은 인천을 백제의 옛 도읍지
'미추홀(彌鄒笏)'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인천 사람들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인천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결부되어 그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땅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溫祚)왕조에 "주몽의 두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가 하남(河南)의 땅을 택하고, 비류는
미추홀에 가서 살았다."고 하였다. 역시 『삼국사기』에 따르면 미추홀은 바닷가여서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사람이
잘 살 수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헌상에 나타난 것이 이 무렵이지, 선사 유적 등의 유물들을 살펴보면 인천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태고적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은 역사가 깊은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곳이다. 부평구 십정동과 간석동 사이에 있는 원통이 고개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은 인천의 태생이 어떤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조선 태조가 무학(無學) 대사를 시켜 새 도읍지를 물색하게 하였는데, 무학대사가 부평땅에
이르자 들이 넓고 기름진데다 멀리 한강까지 끼고 있으므로, 조선의 도읍지가 될만하다 여기고, 근방의 골짜기
하나하나까지 세어 보았다. 예로부터 나라의 도읍지가 되려면 골짜기가 100개가 되어야 한다고 전해져 오는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99개밖에 안 되었으므로 "아, 원통하도다. 산봉우리 하나가 모자라는 구나!"라고하여 그곳이
원통이 고개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인천은 한 나라의 도읍지가 되려다 안타깝게 놓친 셈이다.
인천!~ 그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 도시라는 해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