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묘사¹
묘사의 특성
시를 쓰는 사람이 만약 묘사description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그것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데생이 미술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것과 유사하다. 그만큼 묘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조금 복잡하지만 수사학적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자. 묘사란 물론 수사학에서 말하는 언술 형식forms of discourse의 하나이다. 한 이론가는 수사학에서 언술 형식을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² 설명(說明)·논증(論證)·묘사(描寫)·서사(敍事)가 그것인데, 이것들은 각각 독자적인 성질을 가지며 서로 관련된다. 설명은 비교 · 대조 · 실례 · 분류 · 정의 · 분석 등을 통하여 주제를 밝히는 형식이며, 논증은 증거에 의한 객관적 논리로 우리를 확인시키는 형식이다. 설명과 논증 사이에 설득(說得)이 있는데, 이는 우리들의 태도 · 감정 · 정서의 공통적인 바탕에 호소하여 발화자의 의도를 현실화시키는 형식이다. 위의 세 가지 언술 형식상의 차이는 설명은 설득이 아닌 이해가 그 목표이며, 설득은 감정적인 호소로, 논증은 논리적인 호소로 어떤 주장이나 진리를 궁극적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현실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논중에 보다 접근해 있는 이 설득을 독립시킨다면 다섯 가지의 언술 형식이 되는 셈이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언술은 그러므로 대체로 설명의 형식이고, 신문의 논설은 설득이며, 어떤 명제를 논리적으로 실증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언술이 논증에 속하는 셈이다.
묘사와 서사는 위의 형식들과는 좀 다른 성질을 지닌다. 묘사란 사물이나 현상이 지닌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술 형식이며, 서사는 사건의 의미 있는 시간적 과정을 제시하는 형식이다. 설명·설득·논증이 이론적 성향의 언술인 데 비해, 묘사와 서사는 감각적 · 암시적 성향이다. 시가 묘사를, 소설이 서사를 그 주된 표현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는 것도 이들 언술과 문학 양식의 특성이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³
시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느낌feeling을 직접 제시하는 언술 양식이고, 소설이란 느낌을 스토리로 제시하는 양식이다. 느낌을 직접 제시하는 시는 필연적으로 지배적인 인상dominant impression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묘사를 적극 수용하게 되고, 스토리를 제시하는 소설은 인물과 행위와 시간적 과정을 구성적으로 제시하는 서사와 만난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지배적 인상의 구체적 모습인 이미지 image라고 하기도 하고, 소설을 서사적 허구narrative fic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러니까 스토리는 'narrated event'이다).⁴
드물게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김주연의 「시의 인식의 문제」⁵에 보면 "시는 묘사되는 것Geschreibende" 이라는 파이퍼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시가 힘을 가지게 되는 근원을 "추상적인 상상이 아닌 구체적으로 그려본 본질"에 있다고 한다면, 그 구체적으로 그려본 본질은 묘사에 의해 획득된다. 이 묘사에 관한 인식 부족이 시에 자주 나타나는 비시적 표현의 근간을 이룬다.
--------------------------------------------------
1 시적 묘사는 다른 유형의 언술 행위에 나타나는 묘사와 그 성격이 다소 차이가 난다. 설명이라는 언술 형식이 묘사를 차용하면 설명적 묘사expositional description가 되고, 서사가 차용하면 서사적 묘사narrative description가 되어, 설명이나 서사적 언술 형식의 특성에 종속되듯, 시적 묘사 poetical description는 시의 장르적 특성상 심상적 특질을 드러낸다. 시에서 묘사가 갖는 중요성을 주목한 글로는 김주연, 「시의 인식의 문제」, 『상황과 인간』 (박우사, 1969)이 있다.
2 C. Brooks and R. P. Warren, Modern Rhetoric,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9, pp. 39~216 참조.
3 언술과 표현: 이 책에서의 '언술'은 의사 표현 행위로서의 말하기discourse를 총칭할 때 사용된다. 그리고 그런 말하기의 종류를 구분할 때도 사용된다. 이와 달리 '표현'은 수사적 측면이 강조될 때 사용된다. 그러니까 '시적 언술'이라고 할 때는 다른 언술(설명. 논증 등)과 형식상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깔고 있으며, '시적 표현'이라고 할 때는 다른 언술 형식과는 구분되는 수사적(묘사. 비유 등) 특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4 S. Rimmon-Kenan,, 「소설의 시학Narrative Fiction: Contemporury Poetics」, 최상규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85, p. 11,
5 김주연, 앞의 책, pp. 12~26.
『현대시작법』 오규원
2024. 11. 1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