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우리역사를 왜곡시킨
'심상소학 역사보충 교재'(1)
瓦也 정유순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한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 1858년~1932년) 선생은 서간도로 망명한 후인 1913년 대동역사를 집필하여 학생은 물론 우리 민족의 민족정신을 고취 시키고자 하였으며 신흥무관학교 역사 교과서로 사용하였다. 석주의 대동역사 집필은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동산 류인식(柳寅植, 1865~1928) 등이 활발하게 역사서를 집필한 목적과 같이한다.
<석주 이상룡 선생>
이에 조선총독부는 이들의 역사책이 조선 민족에게 널리 읽혀질 것이 두려워 부랴부랴 조선사편수회를 설립하여 단군 역사를 포함한 우리 고대사를 말살하고 신화로 둔갑 왜곡시킨 조선사 36권을 편찬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1920년부터 우선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尋常小學歷史補充敎材)>와 <교사용 심상소학일본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를 만들어 어린이부터 우리 역사를 수직 강압식 교육으로 강제 주입 시킨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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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심상소학(尋常小學)은 1895년에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1896년 조선의 학부에서 편찬된 교과용 도서로 <국민소학독본>·<소학독본> 등과 함께 개화기 교과서의 초기적 특징을 담은 아동용 교과서다. 간행 목적이 아동들에게 국문 사용의 필요성 및 각국의 형세를 깨우치게 하는 데 있음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인 보좌원의 참여하에 편찬된 것으로 보아 일제의 대한 식민지화 교육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만든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의 내용은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 조상들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는 교육시책에 맞춰져 있었다. 현재까지도 우리 역사교과서에 실린 관련 내용들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상소학보충교재 아동용(좌)와 교수참고서(우)>
우리는 1910년 한일병탄을 통해 우리 손으로 역사를 기술할 수 없는 식민지(植民地) 신세가 되었다. 일제는 전 세계 어떤 제국주의보다 악독했다. 조선을 영원한 식민지로 삼기 위해 조선시대 수서령(收書令)을 뛰어넘는 악독한 불칼을 휘둘렀다. 이때 조선의 역사, 문화가 담긴 20만 권의 서적이 불태워졌다. 이 땅에 남아있던 소중한 대한사관의 책들도 다수 사라졌다.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두 손을 묶고 눈을 가린 채 ‘일본식 조선사’를 기술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소위 서양에서 배워 온 실증사학을 앞세운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편찬사업이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수백억에 달하는 거금을 들여가며 일제는 대한의 역사를 난도질했다. 대한의 역사를 자기들이 원하는 틀로 규정했다.
결론적으로 일제는 한민족 역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좁히고, 북쪽은 중국 식민지, 남쪽은 일본 식민지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에 맞는 사료를 일반화하고, 유물을 스스럼없이 조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평양 한사군설과 임나일본부설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사는 일제의 입맛에 따라 주물러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광복 1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도 그들이 어떻게 대한의 역사를 난도질하고, 왜곡 날조했는지 제대로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너무 많다.
<남북으로 나누어진 고조선 지도 - 한성백제박물관(2022.2.2)>
그리고 일제가 유독 ‘반도(半島)’라는 용어를 강조한 것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10년까지의 우리 역사는 한번도 ‘반도’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일제는 의도적으로 ‘반도’를 유달리 강조하여 우리의 역사를 반도 안으로 꾸겨 넣으면서 ‘조선은 독자적인 역사문화나 문명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특히‘반도조선’은 우리에게 시나브로 식민사관을 심기 위한 교묘한 꼼수였는데, 속셈을 모르는 우리는 지금도 아무 거리낌 없이‘반도’를 즐겨 사용한다.
<조선경성철도호텔-1920년대>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일제가 뿌려놓은 역사 왜곡 바이러스를 찾아내 치료해야 한다. 악독한 식민사관 바이러스가 이 땅의 자손을 좀비로 만들기 전에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역사와 정신을 말살하려 한 식민사관의 정체와 그 역사관에 눈떠야 한다. 우선 일제강점기 교과서를 분석해 보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규정한 교수지침과 주요발언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이제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의 뿌리를 찾아 떠나보자.
<단군조선 지도>
이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일제가 교육현장에서 활용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확인하는 길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시대별 교과서를 알 수 있는 ‘우리 역사넷’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제강점기 교과서의 원본도 공개했으며,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놓아 조금만 노력하면 큰 맥을 잡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소학교 역사 교과서는 아동용과 교사용 두 종류가 있다. (1920년에 발행한 1권 120쪽, 1922년에 발행한 2권 503쪽 분량임)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 아동용>
우선 심상소학(尋常小學)의 뜻부터 알아보자. 심상(尋常)은 ‘찾을 심尋’ 자에 ‘항상 상常’ 자로 ‘항상 찾아야 할 책’이라는 뜻이며, 배우는 학생의 머리와 가슴에 아로새겨야 하는 교과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동용은 <국사(國史)>, 교사용은 <일본국사(日本國史)>라 명명했다. 여기서 아동용 국사는 일본역사를 말한다.
교사용 책자의 정확한 이름은 ‘심상소학일본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조선총독부 교육시책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일제의 조선사는 일본국사 속 조선사다. ‘일본은 내지(內地)이고, 조선은 외지(外地)다’라고 칭할 정도로 영원한 지배를 염두에 둔 시책을 편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일본 국사를 배워야 할 일본천황의 백성들로 황국신민(皇國臣民)일 뿐이었다. 국민(國民)은 황국신민의 준말이다.
<심상소학일본역사보충교재교수참고서>
그럼 목차부터 살펴보자. 일제가 만든 역사 교과서의 목차를 보면 그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일제가 만든 교과서 목차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대한인의 역사 강역을 조선반도로 한정해 기술했다. 대목차가 ‘상고시대의 조선반도’이다. 일제는 한민족의 강역은 조선반도를 벗어난 적 없다고 각인시키고 있다.
둘째, 북부조선과 남부조선으로 나눴고, 일본부1, 2 단락을 강조해 고대 일본과 한국의 교류를 중점으로 기술했다.
셋째, 조선시대의 무능을 강조하고, 통감부 설치와 일한병합과 총독정치가 은총이라고 마무리했다.
한마디로 조선 상고사는 식민지로 시작해, 근대 일본에 의해 다시 식민지가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무능한 조선의 정치와 서양제국주의의 침략에 어려움을 겪던 조선의 백성들을 일본이 구해주고, 비로소 조선반도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심상소학보충교재 서언>
한마디로 일제의 조선병합은 고토회복이요, 은총이라는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멋대로 쓴 일제 교과서는 조선사를 매도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칼을 찬 일본인 교사들은 정치목적을 가진 조선총독부 문부성 교과서로 무섭게 교육시켰다. 그때의 우리 선조들의 조선사 시간은 ‘잘못된 역사관을 머리에 수혈 받는 고통의 시간’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심상소학보충교재 아동용 목차>
이 과정에서 일제가 친일 양성을 위해 1924년 탄생한 것이 경성제국대학이다. 특히 일제 식민사관을 주입하기 위한 학교였다. 해방 후 미군정 시절에는 경성대학으로 잠시 이름을 바꾸어 운영되다가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설립법령>이 공포되어 경성법학전문학교·경성경제전문학교·경성치과전문학교·경성이학전문학교·경성광산전문학교·경성사범학교·경성여자사범학교·경성공업전문학교·수원농림전문학교 등 9개 전문학교와 통합되어 지금의 국립 서울대학교로 바뀌었다.
<서울대학교 정문>
https://blog.naver.com/waya555/223135267839
첫댓글 교가 라는 소리을 얼마만에 들어보니
학창시절 교가가 기억이 가물가물~~~
교가는 항상 친근하고 정겹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