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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노파
계 용 묵
1
그러다가 모습을 몰라보고 혹 지나쳐 버리지는 않을까, 거의 20 년 동안이나 못 뵈온 덕순 어머니라,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가면서도 나는 그게 자못 근심스러웠다.
그러나 급기야 차가 와 닿고 노도처럼 복도가 메어 쏟아져 나오는 그 인파 속에서도 조그마한 체구에 유난히 커다란 보퉁이를 이고 재빠르게도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한 사람의 노파를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덕순 어머니일 것을 대뜸 짐작해 냈다. 어디를 가서 단 하룻밤을 자더라도 마치 십 년이나 살 것처럼
이것저것 살림살이 일습을 마련해서 보퉁이를 커다랗게 만들어 가지고야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에 시골 있을 때 얻어들었던 기억이, 그 노파의 머리 위의 보퉁이를 보는 순간, 문득 새로웠던 것이다. 출찰구를 다 나와 바로 내 옆으로 새려는 것을 나는 어깨를 꾹 눌러 붙들었다.
“덕순 어머니시죠?”
“아아니 ! 네 네레 세켠댁 준호가?”
받는 대답이 틀림없는 덕순 어머니다.
그리고는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는 게 준호라면 그렇게도 몰라볼 수가 있느냐는 태도다.
“절 잘 모르시겠죠?”
“모르다니 ! 아, 그렇게두 어릴 적 모습을 몰라볼 법이 세상에두 있네? 네레
날 알아보구 찾았게 그르디, 난 널 한나투 모르갔구나. 그래, 네 처두 잘 있구,
아덜두 공부 잘 허디?”
반가움에 못 참는 듯이 덕순 어머니는 내 손목을 꽉 붙든다.
“그럼요. 자라나는 애들을 그럼 알아보시겠어요?”
이렇게 대답은 했으나 실상인즉 늙어 가는 모습도 자라나는 모습에 지지 않게 변하는 것 같다. 그 보퉁이 생각으로 짐작해서 붙들었게 그러지 어렸을 때 대하던 그 모습의 상상만으로서는 도저히 찾아 낼 수 없을 뻔했다. 그 작은 키
와 아장거리는 걸음만을 그저 의구하게 그대로 지니고 늙었을 뿐, 그렇게도 풍
만하던 피육은 다 빠져서 눈을 속인다.
“거저 내레 길을 알문 펜지 없이 차에서 척 내려 걸어 들어가련만, 괘니 새벽 통에 남 잠두 못 자게 널 나오래서 미안허다.”
“천만에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 머 밤새껏 다리 뻗고 잤는데요. 참, 아주머닌 차에서 퍽 곤하섰겠습니다.”
인사와 같이 나는 우선 그의 머리를 내려 누르고 있는 보퉁이를 받으려고 머리 위로 손을 내밀었더니,
“건 내리놨다 엣다 하믄 멀 하갔네. 집이 어디멘디 그대루 들어가자군.”
“그 짐을 이군 못 들어가십니다. 지게꾼을 시켜야죠. 어서 인 내리노슈.”
하고, 다시 손을 보퉁이로 가져갔더니 덕순 어머니는 눈이 둥그래진다.
“지게꾼을 시키문 또 돈을 주야디 않나! 요걸 멀 못 개지구 들어가서 돈을 또 새기갔네. 집에서 덩거당으루 나올 적에두 20 닐 내레 이구 나왔는데.”
“그러나, 그 짐을 가지구야 사람 많은데 어떻게 전차를 탑니까?”
“전차를 타! 아, 집이 얼마나 멀기?”
멀어야 장안일 겐데 서울이 얼마나 넓어서 그러노 하는 듯이 사방을 한 번 죽 둘러 살핀다.
“머지야 않습죠. 바루 저 산 밑이니까요.”
나는 손가락으로 금화산 기슭을 가리켜 보였다. 했더니 덕순 어머니는,
“아아니, 거길, 머, 요걸 못 이구 걸어 들어가서 지게꾼을 시키구, 전차를 타구 해! 성성한 다리들을 뒀다간 멀 하갔네. 어서 앞세라. 내 걱정은 말구.”
하면서 버쩍 내 앞으로 나선다.
그러니, 나는 늙은이에게 더욱이 나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짐을 그대로 이우고 뒤에 달려들어가기가 미안도 하려니와 인사로도 그럴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짐은 짐꾼을 주고 전차를 타고 가자고 하였건만 종시 짐은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고 곧장 그대로 이고 서서 자꾸 걸어 들어가자고만 재촉이다.
처음 어려서 시집을 올 때에는 겨우 채농 한 바리를 해 가지고 온 것이 세간의 전부였던 가난한 살림으로 근처 집 논을 몇 마지기 얻어서 농사를 지으며 추수를 하여 가지고는 왕복 70리나 되는 가깝지도 않은 산골길을 남 타는 기차 한 번 타는 일 없이 장이면 장마다 목이 줄어들도록 벼를 찧어 이고 들어가선 국수 그릇도 안 사 먹고 선 자리로 또 좁쌀을 팔아서 여 내다가 그것도 아깝다 죽을 끓여 먹으며 푼전을 아끼고 뜯어 모으기 무릇 몇 해에 논마지기까지 10여 두락을 잡아 놓았으니, 오죽한 여자가 아니라는 소문을 동네에 남기었던 덕순 어머니인 줄을 나는 잘 안다. 더 말을 해야 듣지도 않을 것 같고, 내 시간도 바쁘고 해서 미안한 대로 나는 그의 옆에 서서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들어오면서 뒤에 쫓아오는 덕순 어머니의 동작을 가만히 살펴보니 말로는 그 보퉁이가 헐한 것처럼 이야기는 해도 환갑이 넘은 노인에겐 그것이 결코 헐한 짐 이 아니었다. 짐작 몸에 마치는 모양으로 갈수록 숨소리는 거세 가고, 거리는 점점 멀리 떨어지며 쫓아오질 못한다.
그 보퉁이를 받아서 내가 좀 가져다 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지도 않았으나 그렇게 하자면 역시 그것을 이는 수밖에는, 아름이 넘는 그 큰 짐을 옆에다 낀다든가, 손에다 든다든가 하게는 도저히 생 겨먹지를 않았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쓴 채비의 내 머리에다는 그걸 이는 수가 없어서 그대로 눈을 감고 모르는 체 나는 그저 수굿이 길잡이 노릇만을 하면서 집까지 모시고 들어왔다.
2
밤새도록 차 안에서 뜬눈으로 새우고 그 무거운 보퉁이를 또 이고 시달리고 노인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손,
“나 물 좀 주지.”
해서, 거의 한 주발이나 냉수를 꿀걱꿀걱 들이켜고 나더니,
“이전 늙어서!”
하고 방으로 들어오자 누울 자리부터 보기에 베개를 내려다 드렸더니 베기가 바쁘게 잠이 맥시근이 들어 버린다.
대체 이 노파가 무엇을 보퉁이 속에다 이렇게 많이 넣어 가지고 서울로 올라 왔을까? 전에부터 보퉁이로 유명한 덕순 어머니라, 나는 무던히도 그 속이 들여 다보고 싶었다.
손으로 꾹 찔러 보았다. 솜밖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물큰한다. 그러나, 서울 행장에 솜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들어 보니 솜도 아닌 것 같다. 맛즐하게 무겁다.
“그게 다 머래요?”
하도 큰 보퉁이라, 아내도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으나, 찔러는 보았다고 해도
거기엔 나 역시 대답할 자격이 없다.
“글세…….”
“무얼까……?”
아내까지도 괜히 호기심이 그 보퉁이 속으로 끌려들어갔으나, 남의 짐에 임의로 손을 댈 수가 없고 해서 한참이나 돌아가며 아내도 나도 찔러 보고 만져보고 하다가 시간이 좀 바빠서 그만 나는 궁금한 대로 집을 나왔다가 오후 두 시쯤 해서 돌아와 봤더니 덕순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잠이 든 채 깨지 아니하고 있었다.
아내는 점심을 지어 놓고 덕순 어머니를 깨울까? 그러나, 곤히 잠든 노인을 깨우기도 뭣 하고 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멀, 깨워야지, 다 식지 않나?”
“글쎄요.”
아내는 그래도 꺼리는 것을 나도 시장해서 같이 상을 받,으려고 덕순 어머니
를 흔들기로 했다.
“아주머님!”
말없이 눈을 겨우 떴다 다시 감는 걸 보니 잠이 덜 깨는 모양이다.
“퍽 곤하시죠? 점심이 다 되었는데요, 일어나슈.”
한 번 더 몸을 흔들었더니,
“아이구 점심은 와! 내레 구만 참 잘래기 잊었구나.”
하고, 부스스 일어나며 발 길카리에 놓았던 보퉁이를 당긴다.
밥이 너무 뜬다고 서둘던 아내도 그의 손이 보퉁이로 가는 것을 보.자 돌아서면 발길을 다시 돌려 세우고 눈을 그리로 쏟는다.
보를 여미어 둘러싼 그 가장자리마다 굵은 실 두 겹으로 꼼꼼히 훔친 실밥을 덕순 어머니는 끊어질세라 채근채근 골라 뽑는다.
“점심을 잡수시구 보시죠?”
“아니 여기 내레…….”
하면서, 덕순 어머니는 그냥 실밥을 뽑아내더니 보퉁이를 푼다. 푸르스름한 무명 이불 한 자리가 비죽이 드러난다. 덕순 어머니는 보. 귀를 활짝 풀어젖히고 말았던 이불을 들어내어 드르르 편다. 베개만큼씩한 보퉁이가 또 그 안에서 둘이 나온다. 그는 그 가운데서 좀 길쭉한 놈을 골라 들어내더니,
“아마 굳었을걸. 섭섭해서 떡을 뒤 되치 해 개지구 왔구만.”
하고, 그 보를 또 푼다. 당즉이 나온다. 샛노란 콩가루 속에 무친 찰떡이다.
“아, 아주머니두! 떡은 그렇게…….”
“아니, 얼마 되나 머, 섭섭해서 거저 그르디. 자 하나씩 들자우? 김치나 있
유 좀 딜오람?”
하고, 허리춤에서 장도칼을 뽑아내더니 그 떡을 썩썩 벤다.
나는 그 떡에 구미보다 남은 보퉁이에 구미가 더 동했다. 그것은 또 무엇일까가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덕순 어머니는 거긴 무슨 비밀이나 담긴 것처럼 떡을 들어 내 놓고는 남은 보퉁이는 다시 먼저 모양으로 이불 속에다 꽁꽁 말아 놓는다.
3
눈을 좀 붙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나자 그적에야 정신이 드는 듯이 덕순 어머니는,
“서울 와서 구경은 안 하구 잠만 자다니!”
하면서 마당으로 내려선다.
“집이 무던히 초라하죠?”
상을 들고 뒤로 쫓아나가던 아내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마당은 어드메 있노?”
하고, 덕순 어머니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사방을 휘이 둘러 살핀다.
하도 마당이 좁으니까, 마당이 마당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마당 한복판
에 서서 마당을 찾는다.
“서울 집 마당이야 그저 대개 다 이렇죠.”
“아아니 그럼 저건 채원이구!”
하고, 물독 옆에 파가 두어 포기 서 있는 걸 턱으로 가리킨다.
아닌게아니라, 그게 우리 집 채원이었다. 어디다 무어 풋나물 같은 것 한 포기 심어 먹을 데 없고, 가게에서 사다가 먹자니 며칠씩이나 묵었는지 생기라고
는 하나도 없는 시들은 것이 늘 손에 들어오기 쉬워서 아내는 항상 파라든가, 배추라든가, 이런 것을 사다가는 기껏 꽃아야 열 포기를 더 넘기지 못하는 그 물독 옆에다 흙을 약간 호미로 헤집고는 뿌리를 묻고, 물을 주어 며칠씩 살리어서 먹곤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그 파도 사실은 그런 것이라고 설명을 해 드렸더니,
“세상에 푸성귀가 그렇게 귀해서 어떻게 살갔네. 서울선 일습을 그저, 돈 주구 사다 먹는대기 펜한 줄만 알았는데……. 우리겐 지금 한참 흔한 게 시금치라, 산나물이라, 이거야 돈인덜 주나! 가서 뜯어 오믄 되는 거디.”
하면서, 마치 우리 집 구경이나 온 것처럼 부엌으로부터 광이라, 변소라, 넘석넘석 구석마다 돌아가며 살펴보구 나더니,
“어물은 어드메 있네?”
하고 아내를 바라본다.
“우물이야 여기 어디 있나요. 수돗물을 지게로 대 먹죠. ”
“그럼 서답질(빨래)은?”
“건 삯 주구요.”
“머, 서답질을 다 삯을 줘!”
“빨아단 대림질까지 삯을 준답니다.”
“아아니, 대림질두? 고롬 넘잰, 서답질두 안 하구, 대림질두 안 하구, 거저 밥허는 거밖엔 허는 일이 없갔구만.”
“그럼은요― 살긴 그저 편하죠. 밥두 식모가 나가서 지금은 제가 짓게 그러지 밥이나 짓나요.”
하는 대답이, 아내는 서울 살림에 그것 한 가지가 그저 자랑이라는 듯이 빼는 눈치다. 그러나 덕순 어머니는,
“편안이라니! 아니 그게, 어드메, 편안이와?”
하고 아내의 의사를 거스른다.
이 소리에 아내는 비위가 좀 틀리는 듯이 약간 표정이 달라지는 것 같더니,
“그림, 머, 시굴서처럼 돼지 노름만 하구 살겠어요? 서울 왔음 호강두 좀 해
봐야지요.”
하고 어성이 좀 거칠어진다.
“난 그른 호강은 호강인 줄 모르갔습데 여부시! 제 입에 넣구, 제 몸에 걸치는 건 제 손으루 허구 앉았으야 호강이디, 그게, 멀, 호강이갔슴마? 마당 귀에
어물두 한아 없시!”
“아주머니처럼 그럼 한평생을 일만 하다가 없어야 그게 호강이겠어요? 시골
사람은 참, 생 각험 불쌍해.”
하고 비웃는 눈치를 보이니,
“애개개 불쌍두 쌔해라!”
하고, 무엇을 잊은 것처럼 새삼스럽 게 하늘을 쳐다보며,
“해레 이전 볼세 반저녁이 됐다! 물레 없음마?”
하면서 마루로 올라선다.
“물렌 해선요?”
“멩디실 올렬 걸 좀 개지구 올라왔더니……. 글쎄 내레 물렌 없을 줄 알아서. 고롬, 꾸리나 게르야갔군. ”
하고 혼자말을 주고받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보퉁이를 풀어 이불을 젖히고 남은 보퉁이 하나를 또 들어낸다.
푸는 데 보니, 그 보 안에는 전부 명주실을 올린 가랍사리 뭉치요, 꾸리를 겯는 데 쓰는 도구들이다.
“그거 보세요. 아주머니 잠깐 서울 구경 와서두 좀 편히 앉아 계시지 못하구? 그건 일이 아니라, 일에 노예에요 노예.”
“아니, 머, 달나 그름마. 글쎄 메느리레 멩딜 짜기 시작했는데 걸, 내레 꾸릴게레 주야디 누구레 게레 주갔슴마? 그래서 가랍싸릴 좀 개지구 올라왔더니 참 짐만 되웨.”
하고, 빈 자리가 없이 헝겊으로 몇 겹이나 발라 낸 밑 빠진 채 바퀴를 내서 막대기로 가랍사리를 꿰어 걸어 놓더니, 남이야 무어라건 자기 할 일은 그저 그것이라는 듯이 덜덜 꾸리를 겯기 시작한다.
4
이튿날은 덕순 어머니가 목적하고 올라온 창경원 벚꽃 구경을 마침 일요일이라, 내가 모시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는 화신만 들어가 보자는 걸 나는 진고개로 빠져서 미나카이·히라다·미쓰코시·조지야까지 구경을 시켜 드렸다.
“꽃이 인제 활짝 피었겠죠?”
그러지 않아도 그제부터 창경원엘 가 보겠다고 벼르던 아내는 꽃 소식이 급한 듯이 마주 나오며 묻는다.
“구경이 거저 사람 구경 입데게레. 5월 수리 씨름판보다두 더 해. 에에게, 웬, 사람이 그렇게 많갔슴마 사람두…….”
덕순 어머니는 엉뚱한 대답을 하며, 마루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제, 밤에 한 번 더 가 보셔야죠. 아주 만개죠?”
“싫쉐 여부시. 밤에두 거저 거 같디 무슨 벨 꽃이 있갔슴마? 난, 꽃 구경 꽃구경허게 제법 훌눙한 줄 알었더니 거저 그르투만 머.”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다.
“글쎄, 어쩌문 야앵이라는데 밤에 한 번 더 가 보서야죠. 저녁 먹고 또 가실까요?”
“건, 무슨 구경이라구 이자 와서 또 가갔슴마. 난, 밤엔 꾸릴 좀 게르야갔쉐.
본래 내레 이번에 어디 서울을 올라올 길이와? 메느리레 베틀을 버레놓칠 않았나, 셋째레 젖끝에 매달레 제 에미 베 못 짜게 송활 안 시키갔나 하는 걸 거저, 그래서 난, 싫대두 야레(아들) 다자꾸 방금 죽기나 하갔는디 구끼기 전에
금년엔 어서 서울 구경이나 한 번 하시구 내로라구 너무두 그래서 말을 안드름 그것두 또, 어떻게 정성을 깨티는 것 같애서 올라왔디 서울이 머이와 다 내레.”
하고, 수건을 벗어 보이얗게 묻은 먼지를 턴다.
“그러믄요. 막 떠나야 구경을 올라오시지 어찌문 시골서 서울 구경이라는데.”
하고 나도 마루로 올라섰다.
“아니 여부시! 난 그까진 꽃 구경보다두 백아덤 〔百貨店〕 구경이 더 스럽습데 게레. 아이구 거, 천덜두 고훈 게 많기두 헙데. 사발이랑, 또, 댕가장 단대긴 얼마나 묘헌게 있구! 난, 거저 고게 탐납데.”
“그래서 조지야에서 아주머니 그저 그걸 들구 그리 만지적 어리섰군요?”
하고, 낯에 덕순 어머니가 그래서 그걸 놓지 못하고 만지고 섰더랬거니 하는 생각이 나서 히죽이 웃었더니,
“나, 고걸 한 개 사 개지구 올 걸 그랬나 봐. 손주놈 밥상에 놔 주게.”
하고 무던히도 아련해한다.
“그렇게 아련허심 요앞에서 사시지요. 그런 건 사기전마다 들입다 쌓인 게 그거 랍니다.”
했더니,
“응! 있어? 요앞에두 그게? 그럼 여부시! 나하구 좀, 또 나갔다 드릅세.”
하고 일어선다.
종일 돌아다녔더니 맥이 폭삭이 나는 게 조금도 움직이기가 싫은데 또 나가 보잔다.
“그맛 거야 그리 급하실 게 머 있어요?”
“급할 건 없디만 앉았음 멀 하갔음마. 살 건 사 놓야 마음이 쌔완해 난.”
하는 말이 곧 나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그래서, 앞 거리엘 또 모시고 사기 전으로 나갔더니 조지야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묘한 게 없다. 세 집이나 돌아다니며 보았으나 그런 게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적엔 나온 김에 또 조지야로 다시 가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벌써 다섯 시 반, 백화점들은 문을 닫을 때다. 내일 내가 회사에 갔다 오는 길
에 사다 드린다고 해서 안심하고 돌아 들어오던 덕순 어머니는 금물전 가게 앞애 이르러 문득 발을 멈추더니,
“여부시!”
하고 나를 찾는다. 돌아다보니 집게에 집어서 문 앞에 매달아 놓은 무슨 나무 판족 같은 것을 가리키며,
“우리 데거 한 개 살까?”
한다.
“그게 먼데요?”
“그게 쥐창애 아니와? 우리게선 지금 그걸 살래야 살 수가 없습데게레. 그래서, 광이두 없구 지난 겨울엔 고노무 쥐새끼덜이 벨 얼마나 축낸는디 가마니란 가마닌 모주리 돌아가맨서 쏠구……?”
하면서 올려다보다가,
“데거 얼마요?”
하고 묻는다.
그래, 15 전이라니까 그럼 둘을 달래 가지고 들어오다가 아내를 보더니,
“참 서울은 서울이구만. 우리게선 살 수 없는데. 내레 작은메느리네두 한 개 개지다 줄라구 그래서 둘을 사서.”
하고 자랑처럼 이야길 한다.
“그래 서울 오셨다 작은며느리 비단 치마 저구리 감이나 한 불씩 끊어다 주시지 아주머니두 원, 쥐창애가 뭣이에요.”
하고 웃으니,
“혼나갔쉐 여부시! 비단 초매 조고리 입구 김을 어떻게 매갔음마! 니불감 뵈 가멘서 발을 페야디.”
하고 방으로 들어가 보자기 속에다 그걸 꽁꽁 싸 넣는다.
그리고는 내일 저녁 차로는 집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부지런히 꾸리를 겯는다.
밤에도 몇 시에야 잤는지 열 한 시쯤 해서 우리 내외가 이불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는 드르릉 드르릉 그저 꾸리만 겯고 앉아 있었다.
5
이튿날 아침 아마 여덟 시는 되었을까 어쨌든 그러한 시각이었다. 전에 같으면 이맘때이면 벌써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밥상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시각이언만, 어제. 종일 돌아다닌 것이 몸에 마치었던 모양인지 그때까지 나는 잠을 깨지 못하고 있다가 아내의 부르는 소리에야 겨우 눈이 뜨였다.
“여보! 어서 일어나서 밖에 좀 나가 보세요.”
아내는 무슨 민망한 일이 있는 듯이 미닫이를 방섯이 열고 이른다.
전에 같으면 어서 일어나서 상을 받으라고 할 것인데 밖에 나가 보라는 것이 이상해서,
“왜 그래 밖엔?”
하고 나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아니 아까 난 일어나기두 전에 덕순 어머니가 부스릭거리구 일어나 나왔는데 어딜 갔는지 뵈지를 않아요!”
아내는 이상도 한 일이라는 듯이 눈을 약간 크게 뜬다.
그렇다면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리엘 나갔다가 혹 집을 잃은 것이 아닌가. 그러지 않으면 못 잊어 하던 그 고추장 단지를 사러 조지야엘 혼
자 간 것인가, 어쨌든 나가 보기로 옷을 추려 입고 막 마당으로 내려서려는데 대문이 찌걱 하고 밀리기에 내다보니 덕순 어머니는 물이 남실남실 담기운 바께쓰를 들고 숨이 차서 들어오다가 문턱 안에 겨우 들어 넘겨 놓고는 후우 하고 한숨과 같이 허리를 뒤로 젖힌다.
“아니, 아주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아내가 마주 달리어 나가니,
“후우, 님잔 어서 밥이나 지으시. 내 걱정은 말구.”
하면서 바께쓰를 들어다 물독에 붓는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또 바께쓰를 들고 대문을 향하여 나가려고 돌아선다.
“여보 아주머니! 물은 왜 긷누라구 그르세요? 근처에서 흉들을 보게……!”
아내가 바께쓰를 붙드니,
“흉은 내 손 발 개지구 내레 물 긷는데 어느 누가 봄마! 벨소리 다 마르시.”
비웃는 태도로 뿌드친다.
“누가 물이 바르대기 아주머니 그르시우? 칠십 노인이 그 칭칭대 길을 물 바께쓰를 들구…….”
나도 마주 나가 말리었다.
가만히 보니 어제 아침 물장수하고 아내가 말다툼하는 걸 덕순 어머니가 들은 모양이다.
지게로 물을 대니 사실 물을 마음대로 풍족히 쓸 수가 없다. 그런데다 꼭 마흔 여섯 층계를 올라와야 하는 금화산 턱의 돌층대 길이라 맨몸으로 마음을 턱 놓고 올라오재도 어지간히 숨이 찬 지대이니, 이 지대를 새벽 다섯 시부터 물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는 물장수가 힘이 아니 들 수 없다. 눈치를 보아 가다가는 가끔 잡수를 한다. 어제도 아내가 뒷간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고는 세 지게를 가져와야 할 것을 두 지게만 가져오고는 다 가져온 듯이 시치미를 딱 떼고는 찌걱 하고 대문을 닫히고 나간다. 그래 물이 한 지게 오지 않았다고 채근을 해도 물장수는 곧장 다 왔다고 버티니 싸움을 못 할 바엔 하는 수가 없다. 이래서 한 번 물이 모자라면 일정하게 날마다 쓰는 물이라 날마다 그만큼씩은 물에 군색을 보게 되는 것이어서 밤에도 물 때문에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덕순 어머니도 듣고 앉았다가,
“늘 그래서야 거 어떡하갔음마!”
하고, 제 걱정같이 근심스러워하더니 그 모자라 돌아갈 물을 채워 줄 궁리이었던 모양이다. 그 정성에는 지극히 감복되는 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노인의 손에 물 바께쓰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어서 바께쓰를 놓고 들어오세요.”
나도 바께쓰를 붙들었더니,
“글세 내 걱정은 말래두 그래.”
하고 여전히 뿌리치면서,
“바루, 제대루 길었음 볼쎄 데 독은 다 채웠을 걸 거 참 훙축한 노릇이웨. 아 글쎄 님재네 물이 오늘 또 바르갔기에 물을 길어다 붓는다는 걸 이 앞 집 물독에다 세 바께쓰나 길어다 부었쉐게레. 아니 세상에 그렇게두 집 모양두 마당 모양두 물독 모양꺼지 같을 법이 어드메 있갔음마! 네 바께쓰째 들고 들어가서 부을내는데, 거 누구요 하고 방 안에서 나오는 낸(女人)을 보니께니 아 그게 님재레 아니구 낯선 낸이 아니갔음마! 그래서야 그게 님재네 집이 아니구 노무 집 인 줄을 알았음메게레.”
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듯이 웃는다.
우리도 이 소리를 듣고는 아니 웃을 수 없어 같이 웃고 나서,
“그러기 길도 서툴고 한데 그만 들어가십시다.”
했더니,
“난 생겨먹길 어떻게 생겨먹어 그른디 가만이 앉아 있으문 속이 쏴서 못 앉았갔습데게레. 사지를 놀리멘서 거저 돌아가야디……. 그래서 그르디 머 님재네 일 도와 주누라구 그름마 머 내레.”
하고, 부득부득 또 대문 밖으로 나간다.
“손님은 손님 체면을 차려야지 거 멀 그러세요?”
하면서, 좀 세게 말을 하여 보았으나,
“애개개! 체면이 사람 죽이는 줄 모름마?”
하고, 종시 듣지 아니하고 그 돌층대 길을 노인이 또 허덕허덕 내려간다. 그래 하는 수가 없어 하는 대로만 보고 있었더니 쉬임없이 연거푸 몇 바께쓰를 거듭해서 기어이 그 곯은 물독을 물이 남실남실하게 채워 놓고야 만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고 나서 아내더러 조지야에 가서 고추장 단지를 하나 사다 달래 가지고는 며칠 더 유해서 내려가시래두 듣지 않고 그날 밤차로 기어이 내려갈 채비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서울을 싱겁게 다녀가려고 뭐하러 그 지루한 차로 밤을 밝히면서 고생을 하고 올라왔느냐고 하였더니,
“고생인 줄이야 뉘가 모르나, 님잰 내 속을 몰라 그러디. 글쎄 어제 저녁에두 말했디만 얘가 그르케 죽기 전에 어서 하래는 서울 구경을 아니하구 죽으믄 것두 정성을 깨티는 것 같애서 올라온 거야. 정성은 정성으루 받으야 아니하갔음마? 그르케 하래는 서울 구경을 내가 안 하구 죽어 보시. 그르면 걔가 얼마나 섭섭해할 거와?”
하고 보따리를 꾸리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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