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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48구간 제3부
서당골입구-염장마을-거곡마을-서원마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권진사댁-만산고택-
춘양초등학교-억지춘양시장-춘양면사무소
20260806
1.서동리 동·서 삼층석탑과 억지춘양시장을 가다
지난 7월 2일 동서트레일 47구간을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물미마을 황터1교에서 출발하여 역방향으로 탐방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 다시 도심3리 물미마을에 왔다. 이번에는 황터1교에서 출발하여 동서트레일 48구간을 탐방한다. 그런데 동서트레일 47구간과 48구간의 시종점이 불분명하다. 도심3리마을회관 앞 47구간 안내도에서는 47구간을 도심3리마을회관-오전약수관광지, 거리 14.8km로 소개한다. 그런데 애당리 수진교 앞에 설치되어 있는 동서트레일 47·48구간 안내판에서는 47구간을 오전약수관광지-수진교, 48구간을 수진교-춘양면사무소라고 안내한다. 어느 안내판이 정확한 것인가? 어느 한 안내판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을 수진교 앞에 설치된 안내판에서는 이렇게 안내한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은 수진교에서 시작하여, 신기교, 서동리, 한국산림과학고를 지나며 숲과 농촌 마을의 정취를 따라 걷는 구간입니다. 조선시대 고가옥인 권진사댁과 만산고택, 전통시장인 억지춘양시장을 지나며, 춘양면사무소에서 마무리됩니다. 문화와 일상이 살아 숨쉬는 마을길로, 옛 정취와 지역 공동체의 삶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이 안내판에 따른다면 수진교-도심3리마을회관 3.4km는 47구간에 속하게 되어, 47구간 거리는 현재의 14.8km에서 18.2km로 늘어나며, 48구간은 현재의 13.3km 거리에서 9.9km로 줄어든다. 48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3부(서당골입구-춘양면사무소)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서당골 입구에서 동서트레일 48구간을 이어간다. 지금까지 숲길을 따라 춘양면의 자연 풍경, 그리고 사과농장과 고추밭 풍경이 중심을 이루는 탐방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자연 풍경과 더불어 이 지역 주민들이 삶의 흔적인 문화 유적과 주거지 문화재, 현재의 일상생활 공간이 탐방의 중심을 이룬다.
서동길 옆으로 흐르는 소하천에 이름이 없다. 서북쪽의 문수지맥 능선 동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춘양면 서동리 서당골을 거쳐 운곡천에 합수하는 이 소하천에 서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동서트레일은 서동천과 함께 동행하여 염장마을로 내려간다. 이 지역에는 사과농장, 고추밭과 더불어 담배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담배밭에는 연홍색 담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길손의 마음을 흔든다.
담배꽃에 취하였을 것이다. 한여름 땡볕에 착시현상이 생겨서였을까? 동서트레일 진행 방향인 거곡마을 갈림길의 이정목을 지나치고 말았다. 서동길을 따라 서동천과 동행하여 서동교를 건너 권진사댁 출입구 낙천당길 갈림목에 이르러서 동서트레일 이정목과 서동천 건너편의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건물을 확인하고서야 동서트레일을 벗어나 곧바로 내려왔음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갈까? 엎질러진 물, 허둥거렸다. 땡볕 때문인지 길동무는 그대로 진행한다고 한다.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뜰의 보물 동·서 삼층석탑이라도 살피고 갈까? 한 가지 일이 뒤틀려서 모든 게 헝클어졌다. 길손 또한 그르침을 만회할 생각을 버리고, 길동무와 함께 권진사댁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초가을 9월 15일 동서트레일 48구간을 다시 탐방하게 되었다. 염장마을 경로당을 지나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갈림길의 이정목 앞에서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드넓은 담배밭의 흐드러진 담배꽃은 자취도 없이 모두 사라졌다. 달포 전 담배꽃의 요염한 모습에 취했던 여름 땡볕의 모습이 담배밭에 아롱거린다. 자취 없는 담배꽃의 환상을 소환한다. '그대 있어 외롭지 않네', '잊히지 않는 향기', '은밀한 사랑' 등 어여쁜 담배꽃의 꽃말들을 중얼거렸다. 그대 있어 외롭지 않고, 그대는 잊히지 않는 향기로 내게 은밀한 사랑을 전하네.
서동길에서 서동길 228-105를 따라 춘양면 서동리 갓골 지역으로 들어간다. 길은 염장마을 경로당 뒤쪽으로 굽이돌아 양반 팔자걸음 발자국이 조성되어 있고,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양반걸음걷기 쉼터를 지나 고개를 넘는다. 쉼터의 외씨버선길 양반걸음걷기 안내판의 문구 "느릿느릿 걸어가 보자. 양반걸음이 따로 있나?"라는 문구가 목에 걸린다. 지난 시절 양반들의 여유는 사라졌다. 거들먹거린다는 양반 팔자걸음은 비난받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문명시대에는 모두가 바쁘게 움직여야 시대에 뒤떨어지는 루저가 되지 않는다. 경제가 나아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뛰면서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느림의 삶이 오아시스처럼 찾아왔다. 양반걸음걷기는 그 느림을 체험해 보는 현장이다.
고개를 넘어 서동리 거곡마을 갈림길로 내려간다. 이 일대는 큰골이며,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어느 스님이 마을 입구의 바위에 '봉강동천(鳳岡洞天)'을 새겨 놓았다. '봉강(鳳岡)'은 봉황(鳳)이 머무는 언덕(岡)이고, ‘동천(洞天)’은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다. 뒷날 이 암각 바위에 강산정(姜山亭)과 권춘산(權春山)이 "今我重刻(금아중각) 史新古迹(사신고적)(姜山亭). 鳳岡一區(봉강일구) 千古生色(천고생색)(權春山). 壬寅仲春(임인중춘) 太古村(태고촌) 開雲坮(개운대)"를 새겼다. 풀이하면, "내가 지금 거듭 새겨서 옛 자취를 다시 새롭게 하네. 봉강의 한 구역은 천고에 빛이 난다. 임인년 한창 봄 오래된 마을에 구름대를 열었네."
햇볕에 익어가는 고추 냄새가 풍겨오는 큰골을 지나 서동리 서원마을로 들어가 춘양중학교·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운동장 옆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을 살폈다. 이곳에 남화사(南華寺)가 있었는데, 원효대사가 각화산 아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남화사는 폐사되고, 그 옛터에 동·서 삼층석탑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삼층석탑 양쪽 기단의 받침돌이 많이 깨져 있고,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있을 뿐이며, 동쪽 탑은 모두 없어졌다.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을 살피고 서동천의 서원교를 건넜다. 달포 전에는 의양리 낙천당마을 출입구에서 낙천당길을 따라 권진사댁, 낙천당, 태고정을 살피고 영동선 춘양천(원곡천)2철교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서원교에서 서동길을 따라 운곡천으로 나가 봉화자동기상관측소를 거쳐 춘양천2철교 앞으로 나갔다. 이곳에서부터 달포 전 탐방한 동서트레일 48구간과 재회하여 춘양성당, 만산고택, 춘양초등학교, 중조천, 억지춘양시장으로 이어갔다. 춘양면의 면소재지 의양리 중심지에는 만석봉이라 불렸던 감의산이 우뚝 솟아 있다.
춘양면 면소재지 의양리(宜陽里)는 감의산 동쪽 자락에 자리하여 봄볕이 마땅히 내리쬐는 지역이다. 춘양초등학교 정문 뒤에 이 지역에서는 벼슬나무라 불리는 비술나무가 품위 있게 자란다. 춘양초등학교는 옛 봉화군수 관사터였고 광성학교 터였다고 한다. 1910년 8월 춘양면 유지들이 사재를 들여 사립 광성학교(光成學校)를 설립하여 같은 해 11월 개교하였고, 1914년 공립으로 개편되어 봉화공립보통학교로 개칭하고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고 한다.
의양리를 동서로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이 중조천이다. 중조천은 춘양면 학산리에서 발원하여 의양리에서 운곡천에 합수한다. 춘양면 학산리 중새목(中鳥)마을을 흘러내려서 중조천(中鳥川, 중새목천)이라 불리는 것 같다. 중조천의 중조2교를 건너 의양로를 동쪽으로 따라가면 중조천이 운곡천에 합수하는 남쪽에 한수정(寒水亭)이 자리한다. 한수정(寒水亭)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 석천공(石泉公) 권래(權來)가 1608년(선조 41)에 건립하였고, 1741년(영조 17)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한수정은 출입이 통제된다.
의양로에서 의양로2길을 따라 억지춘양시장 북쪽 출입구로 들어갔다. "억지춘양시장으로 불리는 춘양시장은 1920~1930년대 보부상들이 주축이 돼 시장 면모를 갖추기 시작, 1960~1970년대 성황을 이뤘다. 쌀을 매매하는 미(米)시장과 함께 우시장도 형성, 한때 200~300 마리가 동시에 거래되기도 했다는 것. 5일장(4, 9일장)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산채는 물론이고 춘양 딸기, 토종 약대추, 호두, 사과, 고추 등 각종 임산물을 판매하고 특히 춘양목 아래서 자생하는 송이는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안내판) 억지춘양시장의 중앙 통로를 따라 여러 풍물을 구경하며 내려가다가 운곡식육점 앞에서 춘양시장을 빠져나가면 춘양면사무소 신청사 공사 현장을 지나 춘양 봄볕지역아동센터 앞쪽에 이른다.
춘양면 의양리 지역은 고택과 누정이 지난 역사의 얘기를 들려주고, 일상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연 풍경과 인간 풍경이 부단히 조화하고 움직이며, 새것을 창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길손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춘양면사무소 임시청사 뒤쪽 동서트레일 48·49구간 시종점에 동서트레일 48·49구간 안내판과 이정목 등이 설치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안내판 앞에 서서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았다. 걸어온 길들과 풍경, 이야기들이 안내판에 그림을 그리고 소리를 울려온다. 50구간에서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춘양을 떠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0km
전체 탐방 시간 : 4시간 16분
서당골 입구에서 서동길을 따라 소하천과 동행한다. 오른쪽 뒤의 골짜기는 서동리 불미골이다.
춘양면사무소 4.6km, 수진교 6.3km 지점, 서동길을 따라 불미골 출입 다리를 지나간다. 소하천을 서동천이라 불러 준다.
서동길을 따라 노실골 출입 다리 앞으로 내려간다. 서동천 건너편 오른쪽의 멍애밭골을 가늠한다.
왼쪽 뒤 골짜기는 노실골, 오른쪽 집 한 채가 자리한 곳이 불미골이다.
서동길을 따라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염장마을 지나간다. "염장(鹽莊)마을은 서당골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옛날 소금장수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염장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염장에서 본서동과 거포 사이 모퉁이에 황씨의 열녀비가 있었다고 한다."(봉화군청)
서동리 염장경로당이 사과농장 앞에 자리하고, 그 왼쪽 옆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으며, 오른쪽 골짜기는 갓골이라 이른다.
왼쪽 농산물 저장 창고가 있는 곳을 갓골, 오른쪽 아래는 염장골이라 이른다.
춘양면사무소 4.0km 지점, 동서트레일은 왼쪽 서동길 228-105를 따라가고, 직진 서동길은 서원교 앞으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서동길 228-105를 따라 춘양면 서동리 갓골 지역을 통과하여 거곡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동길 228-17 농가를 지나 서동길은 굽이돌아 이어진다.
양반 팔자걸음 발자국이 조성되어 있고,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양반걸음걷기 쉼터를 지나 고개를 넘는다.
양반걸음걷기 쉼터 위쪽에 외씨버선길 게시판과 '양반걸음 걷기' 안내판이 서 있다. "느릿느릿 걸어가 보자. 양반걸음이 따로 있나? 느릿느릿 여기저기 둘러보며 나무도 자세히 구경하고 새 울음소리도 흉내내 보고, 냇물 흐르는 소리도 귀기울여 들어보고, 막걸리 한 잔 하기 좋은 곳, 아이들이랑 하고 싶은 이야기 할 수 있는 곳도 찾아보며, 느릿느릿 휘적휘적 걸어가 보는 거다. 이정록 시인은 "사람들아 왜 그리 바쁘냐?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라고 썼다. 바쁘게 사는 사람이 외씨버선길을 왜 찾겠냐마는! 에헴!"(안내판)
서동길을 따라 바로 앞쪽 거곡마을 갈림길로 이어간다. 오른쪽 골짜기를 큰골이라 이른다.
서동길은 이곳에서 끝나고,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거곡길을 따라 내려간다. 왼쪽 거곡길은 거곡마을로 올라간다.
춘양면사무소 3.5km 지점, 거곡마을 갈림길에서 위쪽 춘양면 서동리 거곡마을을 올려보았다.
걸싯골·거곡(巨谷)은 춘양중고등학교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학교로부터 약 2km 떨어진 집단부락으로서 음지마을과 양지마을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성씨는 안씨라고 한다. 골 입구 도로 옆에 둥근 바위가 있는데 그 당시 스님이 새겨놓은 '鳳岡洞天(봉강동천)'이 적혀 있다. 후에 인가가 들어서고 사람이 살면서 거싯골 또는 거곡이라 한다. - 봉화군청
큰골에 한우축사가 있고, 앞의 축사는 현재 축사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한우축사 맞은편 골짜기 언덕에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거곡마을 갈림길에서 거곡길을 따라 오른쪽 거곡길 112호 민가를 지나왔다. 중앙 맨 뒤쪽의 산줄기는 거포재능선일 것이다.
거곡마을 출입구 왼쪽에 '봉강동천(鳳岡洞天)' 암각 바위가 있으며, 중앙 뒤에 한국산림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거곡마을 입구의 '봉강동천(鳳岡洞天)' 암각 바위 옆면에 새겨진 강산정(姜山亭)과 권춘산(權春山)의 암각 글씨를 살폈다.
今我重刻(금아중각) 내가 지금 거듭 새겨서 史新古迹(사신고적) 옛 자취를 다시 새롭게 하네. 강산정(姜山亭). 鳳岡一區(봉강일구) 봉강의 한 구역은 千古生色(천고생색) 천고에 빛이 난다. 권춘산(權春山). 壬寅仲春(임인중춘) 임인년 봄 가운데 太古村 開雲坮(태고촌 개운대) 오래된 마을에 구름대를 열었네.
'봉강동천(鳳岡洞天)' 글씨는 어느 스님이 새겼다고 한다. '봉강(鳳岡)'은 봉황(鳳)이 머무는 언덕(岡)이라는 뜻이고, ‘동천(洞天)’은 하늘과 통하는 신선이 사는 세계, 즉 산과 내(川)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다. 왼쪽에는 강산정(姜山亭)과 권춘산(權春山)의 암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중앙 앞쪽에 춘양면 서동리 서원마을이 자리하고, 그 왼쪽에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가 보인다.
한국산림과한고등학교 뒤쪽에 춘양면 서동리 서원마을 경로당이 자리한다.
서원마을 경로당을 지나 서원마을 삼거리에서 왼쪽 서원촌길을 따라 한국산림고등학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원마을·상촌리·서원촌은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覺華寺(각화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석현공수골로 이전되었다. 당시 절 유적인 보물 제52호 삼층석탑이 춘양중고등학교 교정에 있으며 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설에는 진성 이씨 서원이 있었다고 하여 서원마을이라는 촌명이 생겼다고 한다. - 봉화군청
서원촌길을 따라 한국산림고등학교 담장을 돌아서 춘양중학교·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정문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쪽에 춘양면 서동리 낙천당마을과 권진사댁이 보인다.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담장에 2026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입학자 명단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춘양중학교·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자리한 서동리 동서삼층석탑을 살피고 나온다.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奉化 西洞里 東·西 三層石塔)이 왼쪽에 나란히 서 있고, 그 앞에 설명안내판이 서 있다.
춘양중학교 안에 동·서로 마주 서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형식을 띤다. 이 곳은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사南華寺의 옛터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 문무왕 16년(675년)에 원효대사가 여기서 서북쪽으로 6㎞ 정도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이다. - 안내판
동쪽에서 보물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을 바라보았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어 뚜렷한 체감률을 보인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있을 뿐이며, 동쪽 탑은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안내판
삼층석탑을 살피고 학교 밖으로 나와서 춘양중학교·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를 돌아보았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 위치안내판이 거곡길에 설치되어 있다.
서원교(書院橋) 북단에 상서로운 서동마을을 뜻한 서향서동(瑞鄕西洞) 표석이 서 있다.
서원교에서 서쪽의 낙천당마을과 그 뒤쪽의 권진사댁을 바라보았다.
서원교 남단에 마을 위치 안내판이 서 있고, 동서트레일은 서동길을 따라 낙천당길 출입구로 올라간다.
낙천당길 출입구에서 서동길 아래의 서원교 남단을 내려보았다.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낙천당길로 이어간다.
낙천당마을은 현마 북쪽에 있는 마을로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임진왜란 이전부터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이곳에 김장군, 강장군, 곽장군 셋이서 피난하여 왜란이 끝나 한양으로 돌아갈 때 평안하고 즐겁게 지냈다고 하여 정자를 짓고 樂天(낙천)이라 하였고 마을도 함께 樂天堂(낙천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 봉화군청
낙천당길에서 춘양중학교·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를 돌아본다. 학교 뜰에 봉화 서동리 동·서삼층석탑이 있다.
춘양면사무소 1.5km, 수진교 9.4km 지점, 낙천당길을 따라 권진사댁 앞으로 이어간다.
권진사댁 9칸의 대문채 중앙에 솟을대문이 솟아 있고, 굴뚝 옆에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이 집은 성암(省菴) 권철연(權喆淵, 1874~1951) 선생이 살던 집으로 1880년경 건너마을인 운곡(雲谷)에서 이곳으로 정착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만석봉(萬石峯)을 뒤로 두고 동향(東向)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9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의 좌측에는 3칸의 서실(書室)이 있으며 대문채와 마주하여 'ㅁ'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쪽 허리부분에는 토담을 좌우로 뻗어 내외마당으로 공간부분을 하고 있으며 동향(東向) 건물임에도 툇마루를 설치하는 등 남측면(南側面)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평면 구성이 돋보이는 주택이다. - 설명안내판
만석봉을 뒤로 하고 동향하고 있는 권진사댁은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사랑채의 중앙 벽면에 '태화야벽(太華夜碧)' 현판이 걸려 있다. '태화야벽'은 당나라 시인 사공도(司空圖, 837~908)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중 제5품 '고고(高古)'에 나오는 '태화야벽 인문청종(太華夜碧 人聞清鍾)'에서 인용한 것으로, '태화산에 밤 깊으니 사람 귀에 맑은 종소리 들린다'는 내용이다. '高古'는 세상을 초월하여 고상하고 고풍스러움을 뜻한다.
사랑채 남측면에 '산천실(山天室)' 현판이 붙어 있고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서실(書室) 앞뜰에 2005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권상경(權相經)의 독립유공자표창장이 서 있다.
권상경(權相經, 1890. 9~1958.7. 호 석당, 성암 권철연의 장자) 1919년 파리평화회의 '독립청원서'의 대표 면우 곽종석의 수제자로 '독립청원서' 서명운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였으며, 1926년 유림단 사건시 심산 김창숙의 독립자금 모집시 거액을 제공하고 김창숙 선생을 은익하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하므로써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 감옥에서 장기간 옥고를 치름. - 안내판
서실(書室)에 '감개헌(鑑開軒)' 현판이 붙어 있다.
사랑채 앞에서 사랑마당과 대문채를 바라보았다. 사랑채 옆에 안채로 통하는 문이 양쪽에 있다. 대충 살피고 솟을대문으로 나간다.
권진사댁에서 나와 낙천당길을 따라 낙천당마을을 지나간다. 황토들에 나무들이 멋지게 자란다. 폐농가들을 정리한 것일까?
오른쪽에 낙천당이 있고, 낙천당길을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굽이돈다. 왼쪽의 나무도 우아하다.
낙천당마을을 뒤돌아본다. 빈 터에 무엇인가를 조성하려는 것 같으며, 중앙 뒤에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가 눈길을 끈다.
낙천당마을 지명을 유래한 낙천당(樂天堂)이 낙천당길 서쪽에 자리한다.
김람(1601~1677)의 호는 수복, 본관은 안동으로 사선대부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까지 인조를 호종하였고, 이후 노부모를 모시고 봉화 춘양에 낙향하여 낙천당을 지었다. 어려운 가운데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고 하여 낙천당이라 불렀다. 돌과 흙으로 담을 치고 하부에는 다듬지 않은 사괴석을 놓고 문은 중앙에 두고 사주문 형식이다. 지붕은 작아도 서까래와 부연을 모두 사용한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안동 김씨가 낙천당을 지은 뒤 마을 이름을 낙천당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 봉화군공식블로그 유중천.
춘양면사무소 1.3km, 수진교 9.6km 지점, 태고정 출입구에서 왼쪽 낙천당길을 따라간다.
태고정 출입구에서 왼쪽 낙천당과 걸어온 낙천당길을 돌아보았다.
태고정 출입구를 지나 앞쪽에서 낙천당 옆에 자리한 태고정(太古亭)을 돌아보았다.
태고정은 통정대부, 중추원의관, 도산서원장을 지내던 만산 강용(1846~1934)이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흙 돌담에 기와를 얹은 정자이다.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태고정을 세우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후배를 양성하며 보낸 곳이다. 바로 옆으로 낙천당이 있으며 몇 미터 거리에 권진사댁 후손 사는 고택과 권진사댁이 자리하고 있다. - 봉화군공식블로그 유중천.
오른쪽에 영동선 철망울타리가 이어지고, 왼쪽에 소나무숲이 펼쳐지는 낙천당길을 따라간다.
의양3리 낙천당마을을 권진사댁으로부터 한 바퀴 돌아왔다. 오른쪽 뒤에 서동리 서원마을과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가 보인다.
낙천당길에서 서동길로 나가 오른쪽 운곡천2철교 아래를 통과한다. 건너편 왼쪽에 모아글로벌시티 아파트가 보인다.
춘양천2교라고 적혀 있지만 이 다리는 영동선 운곡천2철교일 것이다.
낙천당길에서 서동길로 나와 운곡천2철교 아래를 통과했다. 중앙 뒤에 운곡천의 의양교가 보인다.
춘양면 의양3리 현말(현동, 현리縣里)에 춘양성당이 자리하고 앞쪽은 주차장과 목재문화공원이다. "고려 충열왕 때에 護軍(호군) 金仁軌(김인궤)의 유공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의양리의 일부로 내려오다가 1907년 순종 1년 봉성에 있는 관가가 소실되어 이 마을에 설치되어 있다가 1913년 교통문제로 봉화에 이전될 때까지 현(縣)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현말이라 한다. - 봉화군청
서동길의 현마1길 출입구에 춘양성당 표석이 서 있다.
중앙에 춘양성당 출입구가 있고, 오른쪽에 주차장과 목재문화공원이 있다. 안내판의 시설들을 살피면, 주차장, 완충녹지, 단풍나무원, 사색의광장, 목재전시광장, 유실수원, 목재가공체험장(쉼터), 편의시설, 춘양목도원, 송원지 등이 표시되어 있는데, 무언가 어수선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다.
※봉화 목재문화공원(국토부 지역개발 공모사업) : 목재문화공원은 목재가공체험장과 다양한 목재를 직접 보고 느껴볼 수 있는 힐링 장소로 현대인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한 휴식공간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세요!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 공원 내 흡연금지/ 쓰레기 투기 금지/ 위험한 행동 금지/ 음주 및 고성방가 금지/ 수목 보호 및 화재 예방/ 공공시설 깨끗이 이용/ 반려동물 목줄 및 배변봉투 지참/ 서로 배려하며 시설 이용 - 안내판
춘양성당 출입구에서 서동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봉화 만산고택 출입구가 있다. 만산고택을 찾아간다.
만산 고택(晚山 古宅) 대문채가 길게 이어지고, 소나무 앞에 만산 고택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 만산(晚山) 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만산(晚山) 강용(姜鏞, 1846~1934) 선생이 고종 15년(1878)에 건립한 집이다. 선생은 중추원 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다. 1910년 이후에는 망국의 한(恨)을 학문으로 달래면서 마을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그곳에 올라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이 고택은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가 있고, 가운데에 솟을대문이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정면에 측면출입형의 'ㅁ'자형 사랑채가 있다. 사랑마당 왼쪽으로 서실(書室)을 두고, 오른쪽에 토석 담장을 두른 별당인 '칠류헌(七柳軒)'이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만산(晚山)'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서실(書室)에는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는 영친왕의 친필 현판도 걸려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선생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본채와 서실, 별당, 대문채처럼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주택 구성을 고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북 북부 지방의 건축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설명안내판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람마당 뒤에 사랑채가 동향하고 있다.
사랑채 앞벽에 '만산(晩山)', '정와(靖窩)', '존양재(存養齋)', '차군헌(此君軒)' 등의 현판이 붙어 있다. '만산(晩山)'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 글씨로 흥선대원군이 강용 선생에게 '대기만성하는 큰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호를 지어주고 글씨를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존양재(存養齋)'는 오세창의 글씨이며, 본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마음을 기른다는 의미이다.
사랑채 남쪽 끝의 현판 '차군헌(此君軒)’은 조선 후기 서예가 권동수의 글씨로 ‘차군(此君)’은 대나무를 이르며, 대나무의 곧음을 강용 선생의 강직함에 빗대어 대나무의 곧음을 빗댄 것이라고 한다.
서실(書室) 처마 밑에 '서실(書室)'과 '한묵청연(翰墨淸緣)' 현판이 붙어 있다. '한묵청연(翰墨淸緣)'은 '글과 먹을 통해 맺은 맑은 인연'이라는 뜻으로,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은)이 8세 때 쓴 친필 글씨라고 한다.
장독대 옆 사랑채와 별채를 이어주는 문을 통해 별채로 나가본다.
독립된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채인 '칠류헌(七柳軒)'은 영친왕을 비롯해 구한말의 수많은 문인·학자들과 시를 읊고 학문을 교류하던 격조 높은 소통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처마 아래 '칠류헌(七柳軒)' 현판, 앞벽에 '어약해중천(魚躍海中天), '칠류헌(七柳軒)', '사물재(四勿齋)', '백석산방(白石山房)' 등의 현판이 붙어 있다.
별채에서 나오며 사랑채와 건너편의 서실(書室)을 살폈다.
만산고택을 살피고 서동길을 따라 춘양초등학교 앞을 지나간다.
춘양초등학교 정문 뒤에 비술나무가 우뚝하고, 춘양초등학교 정문 오른쪽 건물의 '솔빛채' 이름이 예쁘다.
춘양초등학교 비술나무 표석에 비술나무(벼슬나무), 1907~1914 옛 봉화군수 관사 및 광성학교터(1910 개교)가 새겨져 있다.
소현서당 벽에 그려진 훈장님과 학동들이 공부하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소현서당은 현재도 운영하는지 궁금하다. 벽화에 적힌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천도(天道)의 네 가지 덕(德). 원(元)은 봄에 속하여 만물의 시초로 인(仁)이 되고, 형(亨)은 여름에 속하여, 만물이 자라나 예(禮)가 되고, 이(利)는 가을에 속하여, 만물이 이루어져 의(義)가 되고, 정(貞)은 겨울에 속하여, 만물이 거두어져 지(智)가 된다는 이론이다." - 다음사전
오른쪽 길은 춘양면 학산리와 이어지는 학산길이고, 오른쪽에 솟은 산은 예전에 만석봉, 지금은 감의산이라 부르는 듯.
학산로와 중조천의 중조2교를 건너고 의양로를 가로질러 CU편의점 앞으로 이어간다.
중조2교에서 걸어온 서동길의 춘양초등학교와 소현서당을 뒤돌아본다.
춘양면 의양리의 중심도로 의양로가 남북을 이어 CU편의점 앞을 거쳐 동쪽으로 이어진다.
춘양면 의양리 중조2교에서 중조천이 운곡천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중조2교 남단에서, CU편의점 앞을 거쳐 동쪽으로 이어지는 의양로를 바라보았다. 오른쪽에 억지춘양시장 출입구가 있다.
춘양면사무소 0.5km 지점, 의양로가 굽이도는 곳의 CU편의점 앞에서 중조천의 중조2교와 왼쪽 뒤 감의산을 확인한다.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억지춘양시장 출입구로 이어간다. 의양로를 따라 동쪽 춘양교 방향으로 내려가면 한수정이 있다.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은 조선 선조 41년(1608) 권래(權來)가 그의 조부인 충재(沖齋) 권벌(權橃)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권벌은 조선 전기 성종 9년(1478)~ 명종 3년(1548)의 문신으로 한성판윤, 예조판서, 병조판서, 우찬성 및 원상 등을 지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동남향으로 위치한 T자형 평면의 건물은 중앙에 4칸의 대청을 두고 좌, 우 양측에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둔 구조로 와룡연(臥龍淵)이라는 연못이 정자의 3면을 둘러싸고 있고, 연못과 정자 사이에는 초연대(超然臺)라는 바위가 있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고 하여 '한수정(寒水亭)'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며, 독특한 평면구성과 건축 구조 및 연못과 조경 등으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 설명안내판
2019년 보물로 지정된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은 현재 출입할 수 없어 밖에서 잠깐 살펴보았다.
의양로에서 의양로2길로 들어와 억지춘양시장 북쪽 출입구로 이어간다.
의양로2길을 따라 억지춘양시장 북쪽 출입구로 이어간다.
억지춘양시장 중앙 통로 의양로2길을 따라가며 억지춘양시장을 구경한다.
춘양면사무소 0.2km 지점, 억지춘양시장 제일수퍼마켓 앞에서 운곡식육점 앞 왼쪽 의양로1길로 나간다.
억지춘양시장에서 의양로1길로 나와서 출구를 뒤돌아보았다.
의양로1길을 따라 벽화거리 출입구를 지나서 왼쪽 걸어온 길과 오른쪽 벽화거리 출입구를 돌아보았다.
의양로1길을 따라서 춘양면사무소 신청사 공사 현장 뒤쪽으로 이어간다.
춘양면사무소 신청사 공사 현장을 지나 임시 청사 뒤쪽으로 이어간다.
춘양면사무소 임시청사 뒤쪽, 춘양봄볕 지역아동센터 앞쪽에 동서트레일 48·49구간 시종점이 있다.
오른쪽에 외씨버선길 10·11길 시종점종합안내판, 왼쪽에 현동삼거리 11.9km, 수진교 10.9km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동서트레일 48·49구간 시종점에 동서트레일 48·49구간 안내판과 이정목 등이 설치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48구간은 수진교에서 시작하여, 신기교, 서동리, 한국산림과학고를 지나며 숲과 농촌 마을의 정취를 따라 걷는 구간입니다. 조선시대 고가옥인 권진사댁과 만산고택, 전통시장인 억지춘양시장을 지나며, 춘양면사무소에서 마무리됩니다. 문화와 일상이 살아 숨쉬는 마을길로, 옛 정취와 지역 공동체의 삶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동서트레일 49구간은 춘양면사무소를 출발하여 춘양역을 지나 고려시대 불교문화재인 의양리 석조여래입상을 만나게 됩니다. 이어서 구영재와 부개재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이 고개들은 예로부터 지역 간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던 옛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홉사리봉 능선을 따라 걸으며 현동삼거리에 도달합니다. 능선에서는 봉화군 일대의 산악 경관을 조망할 수 있어 트레킹의 묘미를 더해줍니다. 역사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구간으로, 고즈넉한 옛길의 매력과 함께 선조들의 삶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구간입니다.
춘양면사무소 신청사 건축현장 앞쪽에 '한국천하명당 십승지 춘양' 표석에 조선 후기의 봉화 출신 유학자 경암(敬菴) 이한응(李漢膺,1778∼1864) 선생이 지은 '춘양구곡(春陽九曲)'의 서곡과 팔곡이 새겨져 있다.
序曲 : 太白鎭南淑且靈 (태백진남숙차령) 태백산 남쪽 산수 맑고도 신령하니/ 發源寧不潔而淸 (발원영불결이청) 발원지 물이 어찌 청결하지 않으리오/ 春陽平野逶迤去 (춘양평야위시거) 춘양 땅 들판으로 구불구불 흘러가서/ 曲曲成區世有聲 (곡곡성구세유성) 골골마다 세상사 뱃노래 들려오네. 八曲 : 八曲寒亭際野開 (팔곡한정제야개) 팔곡이라 한수정 가 넓은 들판 열리고/ 仙臺超忽俯澄洄 (선대초홀부징회) 신선대 우뚝 솟아 맑은 물을 내려보네/ 遊人莫歎遺芳遠 (유인막탄유방원) 나그네야 선경이 없어졌다 한탄 말게/ 秋月潭心夜夜來 (추월담심야야래) 가을달이 못 가운데 밤마다 오는 것을. 번역 : 신두환(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2016. 6.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