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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4:3의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연합과
4:13의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는 성령께서 이루신 연합을 지키는 것이고,
후자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Ⅰ. 11절 —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주심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핵심 주제: 교회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선물에서 시작된다.
1) 본문의 구조
11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사람들을 네 가지 범주로 제시합니다.
헬라어 본문은 반복되는 표현을 통해 각 사람의 역할을 구분합니다.
마지막의 ‘목사와 교사’는 앞의 직분들과 표현방식이 다르며, 두 사역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2) 주석
① 사도 — ἀποστόλους (아포스톨루스)
사도는 파송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의 문맥에서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 사도적 사역과 연결됩니다(엡 2:20;3:5).
신약의 사도직을 오늘날의 모든 교회 지도자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② 선지자 — προφήτας (프로페타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에베소서 2:20과 3:5에서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의기초를 이루는 역할과 관련됩니다.
③ 복음 전하는 자 — εὐαγγελιστάς (유앙겔리스타스)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입니다.
복음 전도는 교회 내부의 양육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사명과 연결됩니다.
④ 목사와 교사 — ποιμένας καὶ διδασκάλους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스칼루스)
‘목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목자’를 의미합니다.
목양과 가르침은 구별되지만 서로 긴밀히 연결됩니다.
3) 해설
이 절에서 주목할 점은 바울이 직분자의 권위나 지위를 먼저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어는 그리스도이며, 직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Ⅱ. 12절 — 직분자의 사명과 성도의 봉사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핵심 주제: 직분자의 사명은 성도를 준비시키고,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돕는 것이다.
1) 본문의 구조
12절은 목적과 결과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함
καταρτισμός — 준비시키고 갖추게 함
봉사의 일을 함
ἔργον διακονίας — 섬김의 사역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οἰκοδομὴ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2) 주석
①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 καταρτισμός (카타르티스모스)
이 단어는 준비시키다, 갖추게 하다, 필요한 것을 보완하여 제대로 기능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온전하게 함’은 성도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성도를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②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ἔργον διακονίας
봉사는 특정한 직분자만 담당하는 일이 아니라, 준비된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에 따라 수행하는 사역을 가리킵니다.
12절의 헬라어 문장 구조를 어떻게 구두점으로 나누어 읽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직분자들이 성도를 준비시켜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고,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세우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건축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3) 해설
12절은 본문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 사이의 역할을 이해하는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적 적용: 건강한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역량에 의존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씀으로 훈련받은 성도들이 각자의은사와 책임에 따라 함께 사역하는 교회입니다.
Ⅲ. 13절 — 교회 공동체가 도달해야 할 성숙의 목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핵심 주제: 교회의 사역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 안에서 성숙하도록 이끈다.
1) 본문의 구조
13절은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이 세 표현은 서로 분리된 목표라기보다 교회의 성숙을 점진적으로 설명합니다.
2) 주석
① ‘우리가 다’
헬라어 πάντες(판테스)는 ‘모두’를 뜻합니다.
이는 특정한 소수의 지도자만 성숙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 전체가 성장의 목표에 참여합니다.
②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여기서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며,
‘아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성경적 지식은 단순한 정보 습득과 다릅니다.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알고 신뢰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③ ‘온전한 사람’ — ἄνδρα τέλειον
직역하면 ‘성숙한 사람’ 또는 ‘온전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문맥상 한 개인의 완벽함보다는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공동체로 자라나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④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그리스도는 교회의 성장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교회의 성숙은 단순히 교인 수가 늘거나 조직이 커지는 것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진리, 사랑을 얼마나 반영하는가가 중요합니다.
3) 해설
13절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은 ‘하나’와 ‘성숙’입니다.
성도들이 같은 믿음과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모든 문제에서 똑같은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공통된 신앙과 진리 안에서 하나의몸으로 자라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성숙은 개인적인 신앙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공동체 전체를 주어로 삼아 교회가 함께 성숙하는모습을 그립니다.
목회적 적용: 교회의 성장은 행사와 프로그램의 증가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진리를 분별하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으로 성장하는지가 중요합니다.
Ⅳ. 14절 — 미성숙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 굳게 섬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핵심 주제: 성숙한 교회는 거짓 가르침과 기만적인 영향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1) 본문의 구조
14절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성숙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13절이 성숙의 긍정적인 목표를 제시한다면, 14절은 성숙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위험을 보여 줍니다.
2) 주석
① ‘어린아이’ — νήπιοι (네피오이)
어린아이는 여기서 나이 자체를 비판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신앙적으로 분별력이 부족하고, 쉽게 영향을 받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②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
바울은 거짓 가르침이 단순히 지식의 오류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사람을 속이고 그릇된 방향으로 이끄는 기만적인 방식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③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바울은 배를 흔드는 파도와 바람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교리적 기초가 약한 공동체는 시대의 유행이나매력적인 주장에 쉽게 휩쓸릴 수 있습니다.
3) 해설
14절은 13절의 성숙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진리 안에서 자라는 성도는 모든 새로운 주장에무조건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새로운 주장을 거부하는 것도 성숙한 분별은 아닙니다.
핵심은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가르침을 검증하고, 성경의 진리 안에서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구절을 특정 교회나 개인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모든 성도가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가르침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Ⅴ. 15절 —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핵심 주제: 성숙은 진리와 사랑이 함께 작용할 때 이루어진다.
1) 본문의 구조
15절은 14절의 부정적인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2) 주석
①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 ἀληθεύοντες ἐν ἀγάπῃ
헬라어 ἀληθεύοντες(알레튜온테스)는 문자적으로 ‘진리를 행하다’
또는 ‘진실하게 대하다’라는 의미까지 포함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지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실을 따라 행동하고 관계를 맺는 태도도 포함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와 사랑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방식으로 진리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②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범사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장을 가리킵니다.
신앙의 특정 영역에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말, 관계와 섬김 전반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③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교회의 성장 목표이실 뿐 아니라, 교회가 생명과 방향을 공급받는 근원이십니다.
3) 해설
15절은 교회의 성숙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올바른 교리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사랑 안에서 실천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목회적 적용: 교회 안에서 의견이 다를 때, 진리를 명확히 밝히되 상대를 존중하고 회복을 지향해야 합니다.
사랑은 진리를 약화시키는 타협이 아니라, 진리가 올바르게 전달되고 실천되게 하는 방식입니다.
Ⅵ. 16절 — 각 지체가 기능할 때 이루어지는 교회의 성장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핵심 주제: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모든 지체가 제 역할을 할 때 사랑 안에서 성장한다.
1) 본문의 구조
16절은 본문 전체의 결론이자 교회 성장의 원리를 제시하는 절입니다.
1. 그리스도에게서 공급받음
성장의 근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2. 온 몸이 연결되고 결합됨
지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협력함
3. 각 지체가 제 역할을 감당함
각자의 분량대로 기능함
4. 사랑 안에서 몸 전체가 성장함
교회 전체가 세워지는 결과
2) 주석
① ‘그에게서’
성장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성장은 인간의 조직력이나 프로그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생명과 공급을 받습니다.
②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몸의 각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필요한 도움과 공급을 주고받습니다. 교회 역시 서로 무관한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상호 의존적인 공동체입니다.
③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각 지체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은사와 역할에 따라 몸 전체의 성장에 기여합니다. 이는 모든성도가 중요하지만, 모든 성도의 역할이 똑같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④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외부의 강제만으로 세워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연결된 지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길 때 공동체 전체가 세워집니다.
여기서 ‘스스로 세운다’는 표현은 교회가 그리스도 없이 독립적으로 성장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장의 앞부분은 그리스도에게서 공급받는 것을 강조하며, 뒷부분은 그 공급 안에서 각 지체가 참여하는 성장을 묘사합니다.
3) 해설
16절은 교회 성장에 관한 바울의 관점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 줍니다.
목회적 적용: 교회에서 일부 사람만 일하고 다른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머물면 몸 전체의 기능이 약화됩니다.
반대로각 성도가 은사에 따라 참여하고 서로를 세워 줄 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본문 전체의 논리적 흐름
에베소서 4:11–16을 문법적·신학적 관점에서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본문 | 핵심 내용 | 신학적 의미 |
| 11절 | 그리스도께서 직분자를 주심 | 사역의 근원은 그리스도 |
| 12절 | 성도를 준비시켜 봉사하게 함 | 모든 성도의 사역 참여 |
| 13절 | 믿음과 지식의 연합 및 성숙 | 교회가 추구하는 목표 |
| 14절 |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남 | 교리적 분별과 안정성 |
| 15절 | 사랑 안에서 진리를 행함 | 성숙한 공동체의 태도 |
| 16절 | 각 지체가 기능하여 몸을 세움 | 교회의 성장 원리 |
이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11–12절이 성장의 사역적 토대를,
13–14절이 성장의 목표와 필요성을, 15–16절이 성장의 실제적인 방식과 결과를 보여 준다는 점입니다.
핵심 신학적 주제 세 가지
1) 직분자 중심의 교회에서 온 성도가 참여하는 교회로
11–12절은 직분자의 사역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분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직분자는 성도를 준비시키고,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하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직분자와 평신도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구조를 제시합니다.
2)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숙이다
13–15절에서 성장의 기준은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성숙은 규모나 외적 성과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깊어지고,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며, 진리와 사랑을 함께 실천하는 것이 성숙의 핵심입니다.
3) 교회의 연합은 각 지체의 참여를 통해 드러난다
16절에서 연합은 단순히 갈등이 없거나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갖는 상태가 아닙니다.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자신의역할을 감당하고, 다른 지체를 돕고, 사랑 안에서 몸 전체를 세우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연합은 다양성을 없애는 획일성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지체들이 협력하는 유기적 연합입니다.
설교와 성경공부를 위한 구조
이 본문을 설교나 성경공부에 활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습니다.
제목: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교회
1.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선물을 주셨다 (11절)
교회의 직분과 사역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시작된다.
2. 모든 성도가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12절)
직분자의 역할은 성도를 준비시키고, 모든 성도가 몸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다.
3.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를 닮아 성숙해야 한다 (13–14절)
성숙은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진리를 분별하며,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4. 진리와 사랑 안에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 (15–16절)
각 지체가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 전체가 성장한다.
결론: 본문을 관통하는 중심 명제
에베소서 4:11–16의 중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직분자들을 주셔서 성도들을 준비시키시고,
모든 성도가 봉사에 참여하여 진리와 사랑 안에서 성숙하며, 각 지체가 협력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신다.
본문의 시작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중간은 성도의 성숙이고, 마지막은 사랑 안에서 세워지는 교회입니다.
특히 12절과 16절을 연결해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절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목적을 말하고, 16절은 그 몸이 어떻게 실제로 세워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사이에 있는 13–15절은 그러한 성장이 지향하는 성숙의 목표와 그성장에 필요한 진리와 사랑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결국 이 본문은 교회를 단순히 유지해야 할 조직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모든 성도가 함께 자라 가는살아 있는 몸으로 제시합니다.
모두가 주인공인 교회
본문: 엡4:11–16
핵심 메시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는 몇 사람만 일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신의 은사로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입니다.
서론: 교회에는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 오실 때 어떤 마음으로 오십니까?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기 위해 오십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교제하기 위해 오십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자라며, 성도의 교제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더 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기도 합니까?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공연장에 관객은 가득한데 무대에 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두가 다른 사람이 노래하고 연주하기만을 기다린다면 공연은 시작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준비하고, 몇몇 성도만 봉사하고,
나머지 성도들은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교회는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기 어렵습니다.
물론 교회에 오는 모든 성도가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은사가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도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에베소서 4장 11–16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어떻게 건강하게 성장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여러 직분자를 주셨고,
그들을 통해 성도들을 준비시키시며, 각 지체가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 전체가 성장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함께 붙들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는 몇 사람의 헌신으로만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서로를 세워 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모두가 주인공인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1. 모두가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바울은 교회에 다양한 직분과 사역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사도도 있고, 선지자도 있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으며, 목사와 교사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할 것은 모든 직분과 사역의 근원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사람들을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사역은 사람의 자랑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나오는 직분자들만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2절은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직분자들을 세우셔서 성도들을 준비시키시고,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목회자와 지도자들만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함께 사역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예배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외로운 이웃을 찾아가 손을 잡아 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앞에서 말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뒤에서 묵묵히 돕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잘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줍니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로 공동체를 든든히 받쳐 줍니다.
눈에 잘 띄는 은사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봉사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사랑으로 섬기는 모든 일은 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불편해.’ ‘교회 일은 잘하는 사람들이 하면 되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똑같은 일을 하도록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와 형편을 주셨고, 그 자리에서 서로를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작은 미소 하나가 낙심한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처음 교회에 온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드리는 기도가 공동체를 지탱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은사와 기회를 받았습니까?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생각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쓸모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기회를 따라 섬길 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소중한 지체가 됩니다.
모두가 같은 주인공일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받은 역할을 감당하면 됩니다.
본론2. 섬김은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12절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의 목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섬겨야 합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기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기 때문입니까?
누군가 내게 봉사를 부탁했기 때문입니까?
물론 직분에는 책임이 따르고, 공동체 안에서 맡은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섬김의 더 깊은 동기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섬김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거래가 아닙니다.
이미 받은 사랑에 감사하여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섬김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작은 일에도 불평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지고, 내가 한 만큼 보답받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 섬김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작아 보여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세우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섬기는 사람이 지치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는 봉사하는 사람의 형편을 살피고, 서로의 짐을 나누며, 쉼과 회복도 존중해야 합니다.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섬김은 강요와 소진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에서 나와야 합니다.
바울은 13절에서 교회의 목표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교회의 목표는 단지 봉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믿음 안에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14절에서는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섬김과 성숙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배우며 자라고, 자라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섬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섬기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섬기는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섬김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이 살아나고, 믿음이 자라며,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지금 내가 감당하는 섬김이 부담으로만 느껴진다면, 잠시 멈추어 내가 받은 은혜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내 섬김의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았기 때문에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수록 섬김은 억지로 짊어지는 짐이 아니라, 그 은혜를 나누는 기쁨이 됩니다.
본론3. 서로를 세워 줄 때 교회 전체가 성장합니다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고 16절은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몸이 자라고 사랑 안에서 세워진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하나의 몸에 비유합니다.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고, 각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지체도 몸 전체와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삶은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섬김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고, 한 사람의 격려가 낙심한 성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 무관심하면 공동체는 약해집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어도 모른 척하고, 누군가 실수하면 비난하며,
몇몇 사람만 계속해서 책임을 짊어진다면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5절에서 사랑 안에서 진리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진리 안에서 서로를 세워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잘못을 무조건 덮어 주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실하게 권면하고, 잘못된 방향에서 돌이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말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를 돌봐야 합니다.
교회에는 기쁨을 누리는 성도도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품고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마음이 지쳐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시 일어설 때까지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섬김은 대단한 재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16절은 각 지체가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몸 전체가 성장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지체’입니다.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자기 분량대로 기능할 때 몸이 자랍니다.
교회에서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 아픈 성도를 찾아가는 일,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일, 묵묵히 기도하는 일, 맡은 직분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일은 모두 공동체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어떤 섬김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집니다.
어떤 섬김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당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한 교회는 문제가 전혀 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기에 때로는 갈등도 생기고 오해도 생깁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는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를 버리지 않고, 진리와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이 달라져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내가 누구를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왜 나만 일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우리가 어떻게 함께 섬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누가 나를 알아줄까?’라는 질문에서 ‘내가 누구를 격려하고 세워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 동안 한 사람을 정해 먼저 인사해 보십시오.
힘들어 보이는 성도에게 안부를 물어보십시오.
고마웠던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를 하나 실천해 보십시오.
그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섬김이 모일 때 교회는 사랑 안에서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교회는 몇 사람의 힘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지체가 서로를 세워 줄 때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납니다.
결론: 내가 누군가를 세우는 주인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인 교회’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모두가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와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섬김은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에 감사하여 섬깁니다.
은혜를 기억할 때 섬김은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셋째, 서로를 세워 줄 때 교회 전체가 성장합니다.
각 지체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때 그리스도의 몸은 더욱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마음에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무엇을 받을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누구를 세워 줄 것인가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교회에서 위로받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지칠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하고, 어려울 때는 공동체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가 우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우리가 받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우리가 받은 도움으로 또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교회는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능력이 없어.’ ‘내가 하는 작은 일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일을 다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사랑으로 감당하라고 부르십니다.
거창한 일을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름 없이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을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섬김이 모여 교회를 세웁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은사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입니다.
누구도 불필요하지 않으며, 누구도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몇 사람만 일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신의 은사로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동역자로 여기며,
누군가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연약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일으켜 세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행복한 교회는 ‘누가 나를 섬겨 주는가’를 묻는 교회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세워 줄 것인가’를 묻는 교회입니다.”
이번 한 주, 우리 모두가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늘 제가 누구를 세워 주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을 품고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을 격려하고,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모든 성도가 주인공이 되어 서로를 세워 줄 때,
우리 교회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를 받고, 모두가 은사를 사용하며, 모두가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 모든 성도가 사랑 안에서 함께 자라가는 교회.
그러한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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