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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임받은 대리인'이 위임을 지우는 세 가지 방식 — 그리고 이를 바로잡는 길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2026-07-06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대리인들이니, 국민을 중심에 두고 현재 우리가 할 최선을 다하면 된다." 새 정부의 이름도 '국민주권정부'로 공식화됐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 말이 스스로를 어떻게 구속하느냐다. 대리인은 위임받은 자이고, 위임은 언제나 철회와 갱신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위임자가 물을 수 없고, 멈출 수 없고, 고칠 수 없다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사실상의 양도다. 문제는 지난 1년여 동안 정부 운영 곳곳에서 바로 그 철회의 경로가 하나씩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방식은 세 가지로 드러난다. 정체, 형식의 대체, 그리고 절차의 위장이다.
첫째, 정체하고 있는 검찰개혁
첫째는 정체다. 검찰개혁은 대표적이다. 수사·기소 분리라는 오래된 공약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좀처럼 분명한 설계와 충분한 숙의를 갖추지 못했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논의가 진행돼 왔지만, 핵심 쟁점인 보완수사권과 권한 배분 문제는 여전히 결정에 이르지 못했다.
대통령이 "국회에 맡기겠다"는 태도를 취하더라도, 충분한 시간과 공개된 논의 구조 없이 던져진 위임은 실질적 위임이 아니다. 형식만 국회로 보냈을 뿐, 정작 국회가 숙의할 물리적 시간조차 확보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책임의 분산이지 민주적 숙의가 아니다.
둘째, 실질이 보이지 않는 경찰개혁
둘째는 형식이 실질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경찰개혁의 겉모습은 오히려 순조로워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부활시켰던 행정안전부 경찰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다시 폐지됐고,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와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은 123대 국정과제에 정식으로 담겼다. 지난해 말 경찰청은 국가경찰위의 법적 권한을 강화하는 경찰법 개정을 예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겉모습 아래에 있다. 경찰국이 사라진 뒤에도 행정안전부의 개입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경찰 내부에서 나온다. 검찰개혁으로 커지는 경찰의 수사권을 실제로 견제할 국가경찰위원회의 법적 권한, 행안부장관의 경찰 통제 범위, 국가수사본부의 지휘 체계—이 핵심 사안들은 여전히 "입법 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미뤄져 있다. 상징적 조직 하나를 없애는 일은 신속했지만, 그 조직이 쥐고 있던 실질적 견제력이 어디로 재배분되는지는 누구도 분명히 답하지 않는다.
정체는 미완일 수 있지만, 이것은 완결의 외양을 두른 미완이다. 개혁이 일어났다는 인상을 남기면서, 정작 물어야 할 질문—누가 비대해진 경찰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은 공론의 중심에 서지 못하게 만든다. 겉모습으로 답을 대신하는 정치는, 아예 답하지 않는 정치보다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셋째, 절차를 위장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
셋째는 절차의 위장이다. 에너지 정책이 그 전형을 보여준다.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 1기 건설 계획은 본래 전임 윤석열 정부가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긴 것이었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무탄소 발전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2030년 원전 31.8%·재생에너지 21.6%, 2038년 원전 35.2%·재생에너지 29.2%를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가 한 일은 이 계획을 백지화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취임 100일 회견에서 "원전을 지을 데가 없다"며 회의적이던 대통령의 태도는, 이후 여론조사에서 원전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 80%를 넘자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이 결정에 앞서 두 차례 정책토론회와 두 차례 여론조사를 거쳤다고 밝혔다. 형식만 보면 검찰개혁이나 경찰개혁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절차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 위장이 있다. 여론조사는 숙의가 아니다. "원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찬반으로 답하는 것과, 에너지저장장치의 비용,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긴장 관계에 있는 계통 안정성의 기술적 트레이드오프를 놓고 충분히 들은 뒤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정부가 연 것은 전문가 토론회였지 시민 숙의가 아니었고, 최종 근거로 제시한 것은 결국 단순 찬반 수치였다. 절차를 갖추었다는 형식이, 숙의를 생략했다는 실질을 가리는 데 동원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현재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에 대응해, 기존 원전 부지에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확정된 계획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결정이 확정되는 경로를 눈여겨봐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법률이 아니라 행정 문서다. 국회의 의결 없이,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형식적 동의만으로 확정될 수 있다. 검찰개혁이 국회로 위임되되 시간을 받지 못했다면, 이 결정은 애초에 국회로 위임될 필요조차 없이 완결되는 구조다.
세 사례를 관통하는 것
세 사례를 관통하는 것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다. 의지는 마음의 문제이므로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다. 세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절차의 설계다—위임자가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하나씩 좁혀가는 설계.
국회로 떠넘기되 숙의할 시간을 주지 않고, 상징적 조직 개편으로 실질적 견제력 배분의 답을 대신하고, 논의를 연 것처럼 보이되 그 논의를 찬반 여론조사로 대체한다. 정체, 형식의 대체, 절차의 위장은 서로 다른 현상이 아니라 모두 철회 가능한 위임을 철회 불가능한 통치로 바꾸는 기술이다. 이것이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과 '위임받은 대리인'이라는 대통령 자신의 언어 사이에 낙차를 만드는 이유다.
국회의 한계와 '추첨숙의형 시민의회' 제안
문제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남용된다는 명제는 국회 내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동시에 자신에게 불리한 개혁의 규칙까지 정하는 구조에서는, 스스로를 충분히 견제하기 어렵다.
국민동의청원 제도가 그 한계를 잘 보여준다. 22대 국회 들어 접수된 청원 다수가 소관 상임위에 계류된 채 처리되지 않고 있으며, 앞선 20대·21대 국회에서도 채택으로 이어진 청원은 사실상 없었다. 국민이 목소리를 낼 통로는 열어두되, 그 목소리가 실제 의사결정으로 연결되는 회로는 막혀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청원 활성화'가 아니다. 국회가 응답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의사가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만드는 제도적 우회로다.
그동안 그 장치로 추첨숙의형 시민의회가 제안되어 왔다. 기존의 선거 중심 국회를 하원처럼 두고 일상적 입법·예산·감독을 맡기되, 장기간 방치되거나 정당정치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시민의회가 개입하는 이원 구조다.
이런 제도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범 적용됐다. 아일랜드는 추첨 시민의회의 권고를 국민투표로 연결해 낙태·동성혼 관련 개헌을 이끌어냈고, 프랑스의 기후시민공회는 150개 권고안을 냈지만 정부의 입법 반영률이 낮아 '자문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스트리아는 2022년 기후위원회를 통해 시민 권고안을 정책 논의에 투입했으나 구속력은 없었다. 성공과 한계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권고안에 국회가 응답할 의무를 법으로 못박느냐에 달려 있다—아일랜드가 실효를 거둔 것도 권고를 국민투표라는 구속력 있는 다음 단계로 자동 연결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자동 발동이다. 국민동의청원이 일정 기준을 넘었음에도 상임위가 정해진 기간 내 심사에 착수하지 않거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그 사안은 자동으로 시민의회에 회부되어야 한다.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성별·연령·지역·직업 비례를 반영해 구성되고, 충분한 시간 동안 전문가의 상반된 의견을 들은 뒤 숙의를 거쳐 권고안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그 결론은 국회에 자동 상정되고, 국회가 다시 거부할 경우 더 넓은 국민적 판단 절차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같은 원리는 전력수급기본계획처럼 국회 의결 없이 확정되는 행정계획에도 적용할 수 있다—법률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민의 개입 없이 완결되는 결정일수록, 오히려 시민의회 회부의 우선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왜 하필 시민의회인가
왜 하필 시민의회인가. 지금의 문제는 정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4년 또는 5년에 한 번의 포괄적 위임일 뿐, 개별 사안에 대한 실시간 통제 장치가 아니다. 여론조사는 찬반을 잴 뿐 숙의를 대신하지 못한다. 조직 개편은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지만 실질적 권한 배분을 대신하지 못한다. 청원은 의사를 표시할 수 있지만, 국회가 무기한 미루면 그 자체로 막힌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정당과 정부가 회피할 수 없는, 시간과 절차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는 공적 숙의 장치다. 시민의회는 완전한 해법은 아니지만, 적어도 위임자의 의사가 제도 안에서 다시 등장할 수 있는 문을 만든다.
국민주권의 해지 조항
국민주권정부가 진정한 국민주권을 증명하는 길은 거창한 수사에 있지 않다. 가장 확신할 수 없는 결정일수록, 가장 넓은 문을 여는 데 있다.
위임에는 반드시 해지 조항이 있어야 한다. 해지 조항이 없는 위임은 위임이 아니라 양도다. 추첨숙의형 시민의회는 그 해지 조항을 제도적으로 복원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국민을 주권자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이 실제로 멈추게 하고, 되묻게 하고, 다시 결정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권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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