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한 걸음- - 세족-
떵귀목장 이준엽 집사
조금은 피곤한 몸이 아이들의 손에 이끌리어 욕실로 딸려 들어간다. 좌변기에 걸터앉아 있노라니 아이들의 손이 바빠진다. 세수 대야에 물을 받아 발밑에 가져오더니 발을 담그라고 성화다. 아이들의 지시대로 세수 대야에 발을 넣으니 따스함이 발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감싸온다. 오른발은 딸이, 왼발은 아들이 한 짝씩 나눠가지고는 아빠 발을 씻어준다고 난리이다. 비누가 듬뿍 묻은 스무 가닥의 손가락이 발가락 사이에서 숨박꼭질이라도 하는 듯, 이리로 저리로 숨고 도망가고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이 녀석들이 씻기고 있는 것은 발일 뿐 인데 온몸이 씻기어 지는 듯 개운함을 느낀다면 조금은 오바스럽다 말할 수 있겠지만, 분명 주인잘못만나 하루 종일 쾌쾌한 신발 속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발이 호강에 겨워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게 행복이지 더 바랄게 있나 싶어 껄껄 웃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듯 녀석들은 무엇 그리 신나는지 ‘까르륵’이 끊이질 않는다.
달달한 웃음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아있는 녀석들이 내 자식들임이 너무나도 고마운데, 녀석들도 내가 자기들의 아빠 인 것이, 내 마음 만큼 이겠냐 마는 아마도 고마운 모양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 집안의 발 씻겨 주는 전통은 신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혼 초 어느 날 저녁 욕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기야!! 이리와 봐!"
그 시절 직장까지 다니고 있던 아내였기에 많이도 피곤할 터인데 그렇게 욕실로 불러서는 세수 대야에 물을 받아 내 발을 씻기어 주었다.
손으로 물을 훔치어 발목에서 찰박찰박 부어가며 발을 씻기어 주는 모습이 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그 순간이 왜 그리도 행복 하였던지...하지만 그 때는 그게 결혼 하면 누구나 다 받는 그런 일이라 생각 하였다. 더욱이 직장도 없는 남자가 직장 다니는 아내에게는 받기 힘든 사랑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언제나 받는 사랑에 익숙해 있었기에 주는 사랑이 선물하는 행복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였다. 부모님에게 그러하였고 아내에게 그러하였다. 철이 든다는 건,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더 행복한 일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며 그제서야 주는 사랑의 기쁨을 알아갔다. 먹기 싫다는 아이의 입에 밥 한 술 넣으려고 별의별 재롱을 다 떨고, 번개맨과 뚝딱이가 나오는 공개방송을 보여 주기위하여 수십 통의 사연을 방송국에 보내며, 그렇게 주는 사랑의 행복을 쌓아갔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삶이 고단하고 피곤할 때 세상 속에서 존재감이 약하다 느껴지는 순간이면 쪼그리고 앉아서 발을 씻겨 주던 그 날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직장 갔다 와서 피곤 할 텐데 종일 집에 있던 사람 발 씻어줄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직장도 없이 그러고 있으면서 기죽지 말라고, 남자가 기가 죽으면 안 되잖아!”
난 그 말을 ‘사랑했으니까’ 라고 알아들었다. 그 사랑을 전하고 싶어 아이들의 발을 가끔 씻겨 주고 아주 더 가끔 아내의 발을 씻겨 주었다.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하여 졌는지 이렇게 한 발씩 나누어 요란을 떨고 있다. 물론 이제는 아내가 내 발을 씻어 줄 날이 다시 돌아올까? 란 물음의 대답이 그리 긍정적이진 않지만, 힘들 때 부어주었던 농도 짙은 사랑의 이자가 복리로 내 맘에 가득 차있으니...
아내가 내 아내인 것이 아마도 고마운 모양새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첫댓글 적어도 아직까지는...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쭈욱~~이겠지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이네요.
서로를 사랑하고 세워주고 끌어주는 모습이
천국의 영화 한 편 같습니다.
늘 달달하고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