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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런웨이》
제36회 ― 순자 씨, 처음 무대에 서다
며칠 뒤.
K예술대학교 의상디자인과 실습실.
창가 쪽 마네킹에는 하늘색 무명 가봉복이 걸려 있었다.
아직 단추도 없고.
안감도 없고.
치맛단도 시침실로만 고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옷의 모습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어깨선.
몸을 억지로 조이지 않는 허리.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치맛단.
그리고 걸을 때마다 편안하게 벌어지도록 만든 작은 주름.
순자 씨가 기다려 온 아침 바다를 닮은 원피스였다.
미송은 가봉복 앞에서 마지막으로 치수를 확인했다.
강인은 작업대 위에 펼쳐진 패턴을 살폈다.
"옆선이 조금 넓은 것 같습니다."
미송이 물었다.
"얼마나?"
강인은 자를 대 보았다.
"양쪽에서 반 치 정도."
미송은 가봉복을 바라봤다.
"줄일까?"
강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순자 선생님이 입어 보신 다음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미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때.
실습실 문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돼요?"
미송이 활짝 웃으며 돌아봤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오순자 씨가 문 앞에 서 있었다.
평소처럼 남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오늘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작은 핀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손에는 하늘색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그 뒤로 장혜린이 들어왔다.
혜린의 팔에는 낮은 굽의 구두와 작은 거울이 들려 있었다.
"제가 모시고 왔어."
미송이 놀라 물었다.
"둘이 같이 왔어?"
혜린이 대답했다.
"복도에서 만났어."
순자 씨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내가 실습실을 못 찾고 있었는데 이 학생이 데려다줬어요."
혜린은 순자 씨에게 말했다.
"학생 말고 혜린이라고 부르세요."
"그래도 학생인데."
"오늘은 제가 걷는 선생님이에요."
순자 씨의 눈이 커졌다.
"벌써 걸어야 해요?"
혜린이 미소 지었다.
"오늘은 옷부터 입어 보고요."
순자 씨는 마네킹에 걸린 가봉복을 바라봤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저게 정말 내 옷이에요?"
"네."
"생각보다……."
말끝을 흐렸다.
미송이 긴장했다.
"마음에 안 드세요?"
순자 씨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시 가봉복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예뻐서."
미송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직 완성도 안 됐는데요."
"그래도 보여요."
순자 씨가 하늘색 천을 손끝으로 살짝 만졌다.
"내가 이런 옷을 입어도 되나 싶어서."
이번에는 미송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입으셔야 해요."
"왜요?"
"선생님이 골라 주신 색이고."
미송은 가봉복의 긴 치맛단을 펼쳐 보였다.
"선생님이 편안하다고 하신 길이로 만들었으니까요."
순자 씨는 말없이 옷을 바라봤다.
강인은 탈의 공간의 가림막을 바로 세워 주었다.
"입어 보시죠."
순자 씨의 얼굴에 긴장감이 번졌다.
"나 혼자 입을 수 있을까요?"
미송이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혜린도 구두를 내려놓았다.
"천천히 하시면 돼요."
세 사람은 가봉복을 들고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
강인은 시선을 돌리고 패턴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윤이 실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양손에는 자투리 원단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강인아."
"왜."
"왜 혼자 벽만 보고 있어?"
"순자 선생님 가봉 중이야."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리고 강인 옆에 똑같이 벽을 보고 섰다.
강인이 물었다.
"너는 왜 이러고 있어?"
"예의."
"바구니부터 내려놔."
도윤이 그제야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 소희가 들어왔다.
"원단 가져왔어?"
"전부 가져왔습니다."
소희는 바구니를 살폈다.
"분홍색 바이어스는?"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도 가져와야 했습니까?"
소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박도윤."
"네."
"내가 분명히 제일 먼저 챙기라고 했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같기도 하고?"
"지금 가져오겠습니다."
도윤이 돌아서려는 순간 소희가 그의 팔을 잡았다.
"됐어."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났습니까?"
"조금."
"어떻게 하면 풀립니까?"
"분홍색 바이어스 가져와."
"다녀오겠습니다."
도윤은 바람처럼 실습실을 빠져나갔다.
강인이 중얼거렸다.
"저럴 때만 빠르네."
소희가 웃음을 참았다.
그때 가림막 안에서 미송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입으셨어요."
모두의 시선이 가림막 쪽으로 향했다.
천천히.
오순자 씨가 밖으로 나왔다.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하늘색 가봉복.
아직 무명천과 시침실이 보이는 미완성 옷이었다.
그런데도 순자 씨는 평소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어깨는 편안하게 내려와 있었고.
허리선은 몸을 조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형태를 잡아 주었다.
긴 치맛단은 움직일 때마다 발목 주변에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순자 씨는 어색한 듯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있었다.
"이상하죠?"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순자 씨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안 어울리나 봐요."
미송이 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강인도 조용히 덧붙였다.
"잘 어울립니다."
순자 씨가 강인을 바라봤다.
"정말이에요?"
"네."
강인은 옷의 선을 살폈다.
"다만 어깨가 조금 뜹니다."
미송이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
강인이 순자 씨의 오른쪽 어깨 뒤쪽을 가리켰다.
"여기요."
미송은 손가락으로 천을 집어 보았다.
작은 주름이 생겼다.
"패턴을 줄여야 하나?"
강인은 고개를 저었다.
"어깨를 줄이면 팔을 움직일 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순자 씨가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보았다.
"지금도 조금 당겨요."
미송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진동을 더 넓혀야겠다."
강인이 물었다.
"소매산도 낮추시겠습니까?"
미송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순자 씨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팔을 많이 움직이세요?"
순자 씨가 웃었다.
"하루 종일 움직이죠."
빗자루질.
걸레질.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
순자 씨의 하루는 팔과 어깨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미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예쁘게 서 있는 것보다 편하게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해요."
혜린이 말했다.
"무대에서도 팔을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훨씬 좋아 보여."
미송은 바로 스케치 옆에 수정 내용을 적었다.
진동 넓히기.
소매산 낮추기.
팔꿈치 여유 추가.
김태석 교수가 실습실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 뒤에는 이영숙 교수도 함께였다.
김태석은 순자 씨의 가봉복을 바라봤다.
"첫 가봉인가?"
미송이 자세를 바로 했다.
"네."
"문제는?"
미송은 대답했다.
"오른쪽 어깨 뒤가 뜨고, 팔을 들 때 소매가 당깁니다."
"해결 방법은?"
"진동을 넓히고 소매산을 낮추겠습니다."
김태석은 순자 씨에게 물었다.
"옷은 편합니까?"
순자 씨는 잠시 망설였다.
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영숙 교수가 부드럽게 말했다.
순자 씨는 자신의 배 부분을 살짝 만졌다.
"여기는 조금 신경 쓰여요."
미송이 가봉복 앞부분을 살폈다.
"배 부분이요?"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서."
혜린이 거울을 순자 씨 앞에 세웠다.
"제가 보기에는 괜찮은데요."
순자 씨는 거울 속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그래도 나는 자꾸 여기만 보여요."
김태석이 미송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미송은 잠시 생각했다.
허리선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감추면 오히려 옷 전체가 무겁고 커 보일 수도 있었다.
강인은 아무 말 없이 미송을 바라봤다.
도움을 주되 대신 결정하지 않았다.
미송은 원단을 손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옆선에서 앞쪽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작은 주름을 잡았다.
하늘색 천이 배를 감추는 대신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하면 어떠세요?"
순자 씨는 거울을 바라봤다.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훨씬 편해 보여요."
미송은 미소 지었다.
"그럼 이 선을 살릴게요."
김태석 교수는 잠시 가봉복을 바라봤다.
"하미송."
"네."
"감추는 것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은 다르다."
미송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네."
"모델의 불안을 그대로 옷으로 덮어 버리면, 그 불안까지 디자인에 남는다."
미송은 순자 씨를 바라봤다.
김태석은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숨기고 싶은지만 듣지 말고."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지도 물어."
미송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순자 씨에게 물었다.
"선생님."
"네."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드세요?"
순자 씨는 뜻밖의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 몸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많이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한참 뒤.
순자 씨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요."
미송이 놀랐다.
"손이요?"
"예쁘지는 않지만."
순자 씨는 거칠어진 손을 펼쳐 보였다.
"이 손으로 아이 둘을 키웠고."
"일도 했고."
"내가 먹을 밥도 벌었으니까."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이 싫지는 않아요."
미송의 눈빛이 달라졌다.
순자 씨가 무대에 설 때.
그 손이 옷 속에 감춰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송은 소매 끝을 접어 보았다.
손목이 드러나도록 길이를 조금 줄이고.
커프스를 넓게 열었다.
순자 씨의 손이 하늘색 원단 밖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렇게 할게요."
순자 씨가 거울을 바라봤다.
"손이 보이네요."
"네."
미송은 말했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부분이니까요."
순자 씨는 한동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이영숙 교수도 미소 지었다.
김태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가기 전 미송의 스케치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오후 수업이 끝난 뒤.
학교 강당.
혜린은 순자 씨의 첫 걷기 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당 바닥에는 흰 분필로 곧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끝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
순자 씨는 하늘색 가봉복 대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낮은 굽의 구두는 그대로 신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 발이 어색한 듯 자꾸 바닥을 더듬었다.
혜린이 말했다.
"평소처럼 걸으세요."
순자 씨가 첫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이 점점 작아졌다.
어깨는 굳었고.
두 손은 몸 옆에 딱 붙어 있었다.
혜린이 말했다.
"멈춰 보세요."
순자 씨가 멈췄다.
"내가 잘못 걸었죠?"
"잘못 걸은 건 아니에요."
혜린은 순자 씨 앞에 섰다.
"다만 지금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본다고 생각하면서 걷고 계세요."
순자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볼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러니까 더 무서워요."
혜린은 잠시 순자 씨를 바라봤다.
그리고 강당 한쪽에 있던 의자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도윤이 물었다.
"왜 치워?"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긴장하시잖아."
혜린은 의자를 모두 벽 쪽으로 밀었다.
"오늘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순자 씨가 주변을 둘러봤다.
미송.
강인.
도윤.
소희.
현우.
세나.
그리고 두 교수까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요?"
도윤이 손을 들었다.
"저는 나무라고 생각하십시오."
소희가 말했다.
"말하는 나무가 어디 있어?"
"1978년에는 있을 수도 있죠."
"없어."
혜린이 도윤을 바라봤다.
"조용히 해."
"네."
미송이 순자 씨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아 보세요."
순자 씨가 눈을 감았다.
"선생님이 아침 바다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침 바다요?"
"네."
미송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파도 소리만 들리고."
"하늘도 바다도 전부 하늘색인 곳이요."
순자 씨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미송이 말했다.
"그곳에서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늘색 원피스를 입었어요."
"누가 보는 사람도 없어요."
"선생님 혼자 걷는 거예요."
순자 씨는 천천히 눈을 떴다.
혜린이 말했다.
"이제 걸어 보세요."
첫걸음.
조금 전보다 컸다.
두 번째 걸음.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세 번째 걸음.
두 손이 몸 옆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순자 씨는 분필선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구두 소리가 강당에 울렸다.
또각.
또각.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흉내를 내지 않는 순자 씨만의 걸음이었다.
혜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걷게 두었다.
순자 씨가 거울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남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등이 펴져 있었고.
고개도 내려가지 않았다.
순자 씨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내가 이렇게 걷는 사람이었나?"
미송이 웃었다.
"원래 그렇게 걸으셨어요."
"아닌데."
"우리가 몰랐던 것뿐이에요."
순자 씨의 눈가가 붉어졌다.
혜린이 조용히 말했다.
"무대에서도 방금처럼 걸으시면 돼요."
"모델처럼 안 걸어도 돼요?"
"네."
혜린은 미소 지었다.
"오순자 씨처럼 걸으세요."
순자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당 한쪽에서는 현우와 세나도 자신의 졸업작품을 점검하고 있었다.
현우는 검은 종이로 만든 건물 모형을 무대 바닥에 배치했다.
「서울 1978」.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 젊은이들을 표현하기 위해, 모델들이 건물 사이를 걷는 무대를 구상하고 있었다.
도윤이 모형 하나를 들었다.
"이게 뭐예요?"
현우가 대답했다.
"서울역."
도윤이 뒤집어 보았다.
"이건 왜 이렇게 생겼어요?"
"종이니까."
"기차는 없습니까?"
현우가 도윤의 손에서 모형을 빼앗았다.
"만지지 마."
도윤이 소희에게 말했다.
"현우 선배가 예민해졌습니다."
소희가 대답했다.
"졸업작품이니까."
현우는 무대 모형을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시는 계속 움직여야 해."
"모델들이 서로 스치고."
"다른 방향으로 걷고."
"때로는 부딪칠 듯 지나가야 해."
강인이 물었다.
"옷도 움직임이 많습니까?"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트와 넓은 바지를 쓸 생각이야."
"그러면 모델이 방향을 바꿀 때 옷자락이 서로 엉킬 수 있습니다."
현우의 손이 멈췄다.
강인은 모형 위에서 손가락으로 동선을 그렸다.
"여기에서 반걸음 늦게 출발시키면 피할 수 있습니다."
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괜찮네."
"하지만 무대가 좁아지면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현우가 강인을 바라봤다.
"도와줄래?"
강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우는 웃었다.
"경쟁할 때보다 편하군."
강인이 대답했다.
"저는 아직도 경쟁 중입니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로?"
"옷으로요."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그리고 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졸업하고도 한번 붙어 보자."
강인도 아주 조금 웃었다.
"네."
반대편.
세나는 투명한 얇은 판과 반짝이는 구슬을 작업대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유리정원」.
차갑고 아름답지만 쉽게 깨질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
세나는 투명 소재를 옷의 어깨에 세웠다.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판이 서로 부딪치며 딱딱한 소리를 냈다.
딱.
딱.
세나의 표정이 굳었다.
"이 소리 싫어."
소희가 다가왔다.
"고정하면 안 돼?"
"고정하면 움직임이 없어져."
"그럼 연결 부분을 부드럽게 만들면?"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투명한 구조가 무너져."
소희는 소재를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그리고 얇은 투명 실을 꺼냈다.
"완전히 고정하지 말고."
투명 판 사이에 실을 느슨하게 연결했다.
판들이 서로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서도 움직일 수 있었다.
세나가 옷을 흔들어 보았다.
사각.
아주 부드러운 소리만 났다.
세나의 눈빛이 밝아졌다.
"괜찮다."
소희가 말했다.
"깨지지 않게 붙잡는다고 너무 세게 묶으면 움직이지 못하잖아."
세나는 잠시 소희를 바라봤다.
"지금 옷 이야기야?"
소희가 웃었다.
"둘 다."
현우가 멀리서 말했다.
"좋은 말인데."
세나가 그를 노려봤다.
"엿듣지 마."
"다 들렸어."
"안 들은 척해."
"왜?"
"그냥."
세나는 다시 투명 소재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편.
소희는 도윤에게 수정한 가봉복을 다시 입혔다.
분홍색 바이어스가 서로 다른 자투리 천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감추지 않은 봉제선.
서로 다른 천들을 연결하는 선.
도윤은 거울 앞에서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찢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두 팔을 완전히 올렸다.
몸을 돌렸다.
한 걸음 크게 내디뎠다.
옷은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였다.
도윤이 말했다.
"안 찢어집니다."
소희가 봉제선을 확인했다.
"응."
도윤은 일부러 팔을 몇 번 더 흔들었다.
소희가 급히 말했다.
"그만해."
"튼튼한지 봐야죠."
"그러다 또 찢어져."
"이번에는 안 찢어질 것 같습니다."
도윤은 분홍색 선을 손끝으로 따라갔다.
"이 선 좋습니다."
소희가 물었다.
"왜?"
"서로 다른 천이 어디에서 만났는지 보이잖아요."
"응."
"그런데 보기 싫지 않아요."
도윤은 거울 속 소희를 바라봤다.
"오히려 이 선 때문에 하나의 옷처럼 보여요."
소희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정말?"
"네."
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선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소희의 손이 멈췄다.
"내가 뭐?"
"사람들 사이를 이어 주잖아요."
"내가?"
"미송 선배가 힘들 때 옆에 있고."
"강인이와 제가 싸우면 말리고."
강인이 말했다.
"우리 싸운 적 없어."
도윤이 대답했다.
"앞으로 싸울 수도 있잖아."
"왜 미리 말려?"
"예방입니다."
소희가 웃었다.
도윤은 말을 이었다.
"선배가 있어서 다 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윤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니까 제목 잘 지었습니다."
"「이어진 마음」."
소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입은 여전히 시끄럽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멋있었죠?"
소희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조금."
도윤의 얼굴이 환해졌다.
"조금이면 충분합니다."
늦은 오후.
순자 씨는 다시 한 번 강당 끝에 섰다.
이번에는 모두가 객석에 앉아 있었다.
혜린이 말했다.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걸어 보세요."
순자 씨의 표정에 다시 긴장감이 번졌다.
미송은 객석 첫 줄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강인이 있었다.
순자 씨가 미송을 바라봤다.
미송은 두 손을 모아 작게 말했다.
"아침 바다."
순자 씨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걸었다.
또각.
또각.
첫 번째 연습보다 더 천천히.
하지만 고개는 내려가지 않았다.
중간쯤 왔을 때 발이 살짝 흔들렸다.
순자 씨의 걸음이 멈출 듯했다.
그 순간.
실습실 식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미송.
강인.
소희.
도윤.
혜린.
현우.
세나.
이영숙 교수.
그리고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김태석 교수.
누구도 웃지 않았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순자 씨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끝까지 걸었다.
거울 앞에 도착한 순간.
작은 박수가 들렸다.
짝.
도윤이었다.
소희도 박수를 쳤다.
혜린.
현우.
세나.
이영숙 교수.
미송과 강인도 손뼉을 쳤다.
강당 안에 박수 소리가 퍼졌다.
순자 씨는 당황했다.
"아직 연습인데 왜 박수를 쳐요?"
미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끝까지 걸으셨잖아요."
순자 씨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러네요."
처음으로.
누군가의 무대가 아니라 자신의 무대 끝까지 걸었다.
김태석 교수가 짧게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김태석은 순자 씨에게 말했다.
"다만 마지막에 고개를 들고 관객을 보세요."
순자 씨가 긴장하며 물었다.
"사람들을요?"
"네."
"무서울 것 같은데요."
김태석은 대답했다.
"관객을 보는 게 아니라."
잠시 멈췄다.
"선생님의 옷을 보러 온 사람들을 바라본다고 생각하십시오."
순자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요."
김태석은 학생들을 바라봤다.
"첫 번째 합동 점검은 일주일 뒤다."
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세나가 물었다.
"네 작품을 모두 무대에 올립니까?"
"그렇다."
소희가 자신의 옷을 바라봤다.
미송도 하늘색 가봉복을 바라봤다.
"완성되지 않아도 무대에 세운다."
김태석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작업대 위에서 보이지 않던 문제는 무대 위에서 반드시 드러나니까."
도윤이 작게 중얼거렸다.
"또 밤새겠네."
소희가 말했다.
"당연하지."
"집에 가고 싶습니다."
"가."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왜?"
도윤이 웃었다.
"여기 있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소희도 웃었다.
창밖에는 늦가을 해가 저물고 있었다.
강당 바닥 위로 네 사람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서울 1978」
「유리정원」
「이어진 마음」
「당신을 위한 봄」
서로 다른 이야기.
서로 다른 옷.
하지만 그 옷들은 어느새 한 실습실 안에서 서로의 손을 빌려 조금씩 완성되고 있었다.
순자 씨는 낮은 굽의 구두를 벗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 미송에게 말했다.
"내일도 연습해도 돼요?"
미송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물론이죠."
순자 씨가 하늘색 가봉복을 바라봤다.
"다음에는 저 옷을 입고 걸어 보고 싶어요."
미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진짜 바다를 입고 걸으실 거예요."
강인은 미송의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하늘색 옷을 바라봤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원피스.
아직 서툰 모델.
아직 무대를 준비하는 학생들.
하지만 모든 첫걸음은 원래 서툴렀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걷는 것이었다.
그날.
오순자 씨는 처음으로 무대 끝까지 걸었다.
그리고 미송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옷을 입은 사람이—
디자이너에게 더 큰 용기를 준다는 것을.
― 제36회 끝 ―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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