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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앗시리아 사람들은 전쟁에서 포획한 포로들의 가죽을 산 채로 벗겨 도시의 성벽에 걸쳐 전시를 했다. 처형 방법에서 사람의 머리를 잘라 성벽에 걸어 효수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는 근대까지 이어져 왔다. 그런데 더욱 잔인한 것은 인간의 피부를 생활도구로 사용한 것이라 할 것이다. 책의 장정을 인피로 했던 관습은 중세시대 때까지 이어져 왔고 13세기에는 특히 성경책과 교황의 교서도 인간의 가죽에 씌여졌다는 기록이 있다.(there are some historical reports of a 13th century bible and a text of the Decretals (Catholic canon law) written on human skin.)
http://www.hlrecord.org/media/paper609/news/2005/11/10/Opinion/Books.Bound.In.Human.
Skin.Lampshade.Myth-1054759.shtml?norewrite&sourcedomain=www.hlrecord.org (두 줄의 주소를 하나씩 웹주소란에 카피해 이어 올려야 함)
가장 신빙성 있는 인피 제본의 예는 17세기에 들어와서이지만, 프랑스혁명 때가 가장 악명이 높다. 1793년 프랑스 헌법의 인간 권리에 대한 내용이 인피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영향은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나타나고 1차대전과 2차대전에도 남아 있었다.
인피제본의 책들의 그 인피가 저자의 피부로 된 것도 있고 애인의 피부로 된 것도 있어 인피제본 책의 역사는 그 동기가 더욱 흥미롭다. 19세기의 인피제본은 귀족계급 사회에서 로맨틱한 한 방법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마치 우리나라 전통에서 연분을 나눈 기생에게 어금니를 뽑아준 것이나 피부는 아니지만 여자의 치마에 일필휘지 연정의 시귀를 써준 것과 같은 의미랄까.
1818년 프랑스 도서관에서 판매한 책들 가운데 시선을 끌었던 것은 그 중 두 권의 책이 여자의 피부로 장정한 것이었다. 알벗 버켓(Albert Bouckaert)의 책 <Sexology>(1949)의 480-2쪽의 "Bookbindings of Human Skin"에 세인트 애그니스 백작부인은 아름다운 어깨를 가졌는데 그 어깨피부가 그녀의 연인에게 주어졌다. 그녀의 뜻에 따라 프랑스의 유명한 천문학자인 카밀로 플라마리온(Camille Flammarion)은 그 여성의 어깨 가죽으로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이라는 책을 장정했다. 이 책은 그녀의 어깨에 그 천문학자의 얼굴이 타투로 새겨 그로 하여금 잊혀지지 않는 여자가 되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에는 그 인피를 제공한 사람이 여자란 것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쥬비시(Juvisy Observatory) 도서관에 아직도 남아 있다.
2-3세기전까지만 해도 살인자의 가죽으로 살인 재판 기록을 제본하거나, 해부학책을 해부 대상 시체의 피부로 제본하기도 했던 것은 단두대에 공개적으로 목을 자르던 잔인함과 어딘가 통해 있다.
영국의 서폴크(Suffolk)의 버리 세인트 에드문즈 박물관(The museum of Bury St Edmunds)에는 1827년에 마리아 마틴(Maria Martin)의 'Murder in the Red Barn'의 내용에 나타나는 윌리암 코더(William Corder)의 인피 제본이 소장되어 있다.
19세기 인피 제본은 특히 해부학 교과서에서 자주 보인다. 같은 시기 사형수들의 피부를 사용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사무엘 쟌슨 사전(Samuel Johnson's dictionary)을 1818년에 사형된 제임스 쟌슨이라는 사형수의 피부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피로 된 책은 미국에서도 여러군데 희귀본 저장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멤피스 대학의 특별 콜랙션부인 Ned McHgerter 라이브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인피제본 책도 그 하나이다. 이 책의 카버는 1608년에 제본된 것으로 인피제본(anthropodermic binding)으로 된 것이다.
The title page of the Lidolatrie Huguenote,
a 400-year-old book bound in human skin.
브라운 대학(Brown University)의 쟌 해이 도서관(John Hay Library)에도 인피제본의 책이 있다. 필라델피아의 의과대학 도서관(College of Physicians of Philadelphia)에는 4권이 소장되어 있고 그 중 하나는 타투까지 새겨져 있다. 이들 책들은 대부분 18-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하버드 대학이나 보스턴 지역의 여러곳의 창고에 인피제본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책들이 인피제본으로 존재하는지는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까지 수백권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하버드 라이브러리 경우 의과대 도서관에 두 권이 있고 희귀본 도서관인 휴턴(Houghton) 도서관에 한 권이 있다. 17세기초의 인피로 된 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1632년 8월 4일에 살아 있는 사람의 가죽을 벗겨 만든 인피제본이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The bynding of this booke is all that remains of my deare friende Jonas Wright, who was flayed alive by the Wavuma on the Fourth Day of August, 1632. King btesa did give me the book, it being one of poore Jonas chiefe possessions, together with ample of his skin to bynd it. Requiescat in pace." (The Wavuma appear to be an African tribe, possibly in current Zimbabwe.)
1992년 이 책은 DNA 테스트를 했지만, 오랫동안 산화되고 빛에 바랜 이 책은 정확한 DNA 결과를 채취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버드 대학은 이 책을 1946년 2월 뉴올린즈에서 $42.50로 입수했으며 그것은 따로 상자 속에 넣어 희귀본으로 소장해오고 있다. 이 책을 보려면 하버드 대학에서 특별 연구허가를 받아 희귀본 소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소지품 등의 철저한 몸 수색을 받고 열람 폼을 작성한 후에 들어가서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피제본으로 유명한 것은 이른바 노상강도의 것이었다. 하이웨이맨 (The Highwayman)으로 알려진 조지 월톤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 인피책이다. 이 책은 그 책의 저자 자신의 피부로 제본된 케이스이다.
라틴어 제목을 단 이 책은 그가 죽었을 때 메사츄세츠주의 제네랄 하스피털 병원에서 죽은 자의 등 가죽을 벗겨 장정을 했는데 우선 보기에는 회색의 사슴가죽처럼 보인다.
조지 월턴은 은행털이 보석털이 대로변 강도 등으로 악명높은 강도였는데 1809년에 태어나 28세에 감옥에서 죽었다. 이 책은 겉 표지에 "HIC LIBER WALTONIS CUTE COMPACTUS EST" (This book by Walton bound in his own skin).라고 되어 있는데 월턴은 그의 생애 기록(memoirs)을 적은 이 책을 그 자신의 피부로 장정하여 그가 매사츄세츠주의 고속도로에서 강도행각을 벌였을 때 피해자였던 쟌 페노(John A. Fenno)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페노라는 사람은 월턴이 권총 강도행각을 했을 때에 순순히 응한 다른 사람들의 경우들과는 달리 강력한 저항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행동이 강도인 월턴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를 동기로 강도 월턴의 뜻에 따라 월터가 사형된 후 그의 생애 기록을 담은 그 책을 월터의 인체 피부로 장정하여 그의 강도 피해자였던 페노에게 전달되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나중에 보스턴 아테나움(Boston Athenaeum)에 기부되어 오늘날까지 소장되어왔다.
달드 헌터(Dard Hunter)라는 사람의 술회에 따르면 그가 고용한 한 젊은 여성의 경우 그녀의 죽은 남편을 위하여 편지들을 묶은 책을 그녀의 남편의 피부로 했다고 한다. 또 다른 경우 클리블렌드 퍼블릭 라이브라리에 있는 코란경이 있는데 한 신도의 뜻에 의하여 인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피장정의 책들은 자발적인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사형수가 자신의 피부를 제공했을 것이라는데는 부정적이다.
나찌 독일의 2차대전 시기에 인피로 된 램프 갓이라든지 사진 앨범 표지를 인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코스트에서 사람의 지방을 사용한 비누보다 그 사실의 증명이 불투명하다. 아래 사진의 전시품들의 경우 그 증거가 불확실한 것이다.
![]() Media Credit: none
Table with human remains from Buchenwald, including lampshade purportedly made from human skin. |
그러나 나찌스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칼라풀한 타투가 새겨진 피부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와싱턴 D.C.의 정부 기록보관소에는 8개의 이러한 타투가 새겨진 피부가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몽고병란 때에 오랑캐들이 고려의 처녀들의 유방을 구워먹었다는 야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의 하나일 것이다. 더더욱 인간의 지적인 활동이라 할 글자를 기록한다는 것은 갑골문처럼 동물의 뼈에 기록한 것이 더 오래된 것이지만, 인체의 일부를 사용하여 글자를 새긴다는 것은 징벌의 의미를 넘어 그 동기가 자발적이든 연정의 결과물이든 미개한 짓임이 틀림없다. 특히 더욱 살벌하게 느껴지는 산채로 인체의 껍질을 벗겨 책장정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전쟁의 광란으로서도 용납될 수 없다.
엇그제 영국에서 발견된 인피제본의 책을 '주인을 찾아주기 위하여'라는 그 의도는 대단히 모호한 태도로 보인다. 그것으로 인류의 후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현재 남아 있는 인피 제본의 책들은 마땅히 땅에 묻어 그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자신 스스로 자발적으로 바쳐진 그 어떤 좋은 동기로 만들어진 인피 제본의 책들은 그 내용은 다른 방법으로 제본되어 남길 수 있을지라도 그 인피로 된 자체의 책은 전시되거나 소장되어야 할 하등의 문화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인체의 일부를 가지고 놀거나 치장의 방법이나 소장품으로 삼는 것은 하등의 개화된 문명인의 할 짓이 못될 것이기 때문이다.
(04/09/06 오두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