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륜스님 인솔하에 길상사를 향해 가는 길,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서로서로 인사를 했습니다. 고조자 관장님은 700년만에 고향땅을 찾은 고려불화에 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 해 오셔서 소개를 해 주실 정도로 열성적이셨고, 다른 분들도 이번 탐방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과 감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해서인지 아침 10시경 드디어 길상사에 도착했습니다.
전혀 서울같지 않은 깨끗한 공기와 정갈한 분위기에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현장에 계신 현장스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길상사 뜨락에 법정스님의 친필서한 작품들을 전시하느라 분주하셨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동안 공을 많이 들이신 도록 <법정스님 선묵> 출판기념회를 하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법정스님께서는 생전에 현장스님등 여러스님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친분을 나눈 이해인수녀님등 이웃들과 친필로 서한을 주고 받으셨습니다. 더불어 편액이나 도자기에도 기념이 될 만한 친필을 써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당신의 친필을 두고 애써 ‘붓장난’이라고 겸손한 표현을 하셨지만, 이제 스님의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시점이 되어 버렸습니다. 카페지기도 현장스님으로부터 처음 친필 서간문을 보았을 때 전율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활자화된 책을 보는 것과는 분명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책보다 훨씬 법정스님의 향기가 강하게 와 닿아서 였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서간문에는 개인적인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법정스님이 수필에서 공개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인간적인 내면의 뜨락이 작지만 애틋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나에게도 스님이 말씀을 건네는 듯한, 나의 고민을 들어주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요법회를 마치고 역시 정갈한 비빔밥으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일요일 오후였지만 길상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 복잡한 도심을 떠나 가족과 나들이를 하기에도 그만한 장소가 없을 듯 싶었습니다. 커피자판기에는 종이컵을 대신해 머그컵들이 놓여져 있었고 다 마시면 개수대에서 깨끗이 씻어 다음사람이 마실 수 있게 되어있었습니다. 생활속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법회에 새로 오신 신도님들은 등록을 하고 예절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불교 자체가 좀 어렵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그것들을 알아보는 것보다 이렇게 사찰에서 신경을 써서 알려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영한 여사와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인연으로 유명한 길상사가 주지스님이하 여러 신도님들이 노력을 해서 더욱 아름다운 절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단풍이 들어가는 빛 좋은 가을날, 한가하게 법정스님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오후 2시, 맑고 향기롭게 이사이신 변택주님의 사회로 출판기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단풍잎 사이로 바이얼린 선율이 스며들어 가던 발길마져 붙잡고 기념회 자리가 천상인듯 싶었습니다. 마리아관음으로 유명하신 최정태 교수님께서도 소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현장스님께서는 시간이 자꾸 흐르며 이 소중한 스님의 작품들이 유실되거나 잊혀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듯 합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원도는 물론 멀리 미국까지 연락을 취하셔서 자료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도록 서두에 인사말에서 현장스님은 아마도 법정스님께서 “현장법사! 내 성질 알지, 끝장이야!” 라고 경책하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단면을 각오하시더라도 카페지기같은 미욱한 중생들을 위해 마음 내어 주신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가을날 한가로운 오후 마음은 계속 길상사에 머물고 싶었으나 다음 탐방 계획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식순에 따라 용산에 있는 국립 박물관을 향해 이동을 했습니다. 국립박물관 이전 5주년 기념으로 일본, 중국, 프랑스등 외국에 있는 고려불화 70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전이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고려불화의 종교적, 예술적 경지를 따로 수식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려한 색채와 세심한 터치들로 수행하는 불심이 아니라면 왕성하지 못했을 경이로운 작품들 앞에서 카페지기도 시간을 잊었습니다. 고려불화만의 특징이라는 수월관음보살님의 너울 장식을 유심히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너울은 안이 들여다 보일만큼 투명한 천으로 보관에서부터 발치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라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수 없어서 그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번 탐방에서도 보시는 계속되어서 무루심 보살님은 서울에 손님들이 오신다고 과일과 떡등을 한아름 준비해 주셨고, 길상사쪽에서 음료수까지 보시해 주셔서 내려오는 길은 먹을 것까지 한껏 풍성했습니다. 새롭게 참가하신 분들도 좋은 날이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해 달라고 하셔서 진행을 하는 대원회 자비성 보살님도 흐뭇한 하루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