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없는 「애버크롬비&피치」는 상상할 수 없다? 「애버크롬비&피치」 회장 겸 CEO 마이클 제프리(Michael S. Jeffries)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 브랜드를 연매출 33억달러(약 3조700억원), 970개 매장의 미국 10대 패션 대표 브랜드로 만든 주인공이다. 태닝한 피부에 너더너덜한 진과 플립 플롭을 즐겨 신는 그는 올해로 62세를 맞이했다. 그가 「애버크롬비&피치」와 인연을 맺은 것은 92년으로, 이후 그는 1930년대 명성을 날리던 아웃도어 스포츠 전문용품점을 가장 핫한 미국 젊은이들의 대표 브랜드로 변모시켰다.
「애버크롬비&피치」는 115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로 193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각종 스포츠와 관련된 용품과 남성 의류를 판매하는 회사로서 미국 및 유럽에서 명성을 떨쳤다. 사격, 테니스, 농구, 캠핑 등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 용품 및 남성의류를 주로 취급했고 스포츠 마니아들 사이에서 디자이너 남성복으로 인기를 끌었다.
클라크 게이블, 캐서린 햅번, 아이젠하워 대통령, 루스벨트 대통령이 고객으로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구입한 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70년대 사냥으로 인해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함에 따라 주요 고객층이 사라졌고 결국 77년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78년 오시만스(Oshman’s, 현재의 스포츠 오토리티)가 인수해 스포츠 전문용품들을 판매했고 88년 의류 리테일러인 리미티드(Limited)사가 다시 인수하면서 의류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미국 10대 대표 패션 브랜드 성공 주역
92년 리미티드의 CEO 레슬리 웩스너(Leslie Wexner)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 「애버크롬비&피치」를 회생시키기 위한 인물을 찾던 중 마이클 제프리를 사장으로 채용했다. 마이클 제프리는 연간 손실액 600만달러(약 56억원)였던 브랜드를 단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고 94년까지 49개였던 매장수는 95년 1월 67개로 증가했다. 이후 2004년 20억2100만달러(약 1조8800억원), 2005년 27억8500만달러(약 2조5900억원), 2006년에는 33억1800만달러(약 3조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에이지 에드워즈(A.G. Edwards)의 애널리스트 로버트 버캐넌(Robert Burchanan)은 2001년 3분기를 제외한 52분기 연속 매출신장 기록을 두고 “미국 리테일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록”이라고 평가했으며 제이 피 모건(J.P.Morgan)의 리테일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터닉(Brian Tunick)은 “매출 및 매장면적에서 지난 10~15년 동안 가장 크게 성장한 리테일러”라고 평가했다.
92년 「애버크롬비&피치」를 맡으면서 마이클 제프리가 설정한 타깃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유스 마켓. 품질, 전통적 아메리칸 스타일, 영룩을 바탕으로 마이클 제프리가 전면에 내세운 전략은 ‘섹시함’이었다. 「애버크롬비&피치」에 ‘섹시함’이라는 이미지를 입혀줄 적임자를 찾던 중 남성 누드 포토그래퍼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브루스 웨버(Bruce Weber)와의 작업을 결정했다.
반나체 상태의 남성 모델을 찍은 브루스 웨버의 흑백 사진들이 매장 입구에서부터 스토어 벽면을 한가득 메웠고 사진에 등장하는 완벽한 헤어스타일에 운동으로 다져진 멋진 몸매의 남성은 미국 틴에이저들의 우상이 됐다. 「애버크롬비&피치」 옷을 입었다는 사실은 또래 사이에서 ‘멋진 남성 클럽(cool boy club)’에 속한다는 무언의 암시로 작용했고, 사진 속 섹시한 남성과 동일시되는 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젊음, 에너지, 멋있는 외모, 재미 등이 함께 어우러져 「애버크롬비&피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고, 랄프 로렌의 컨추리 클럽 프리피 스타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섹시함’을 내세운 전략은 적중했다. 당시 젊은 남성을 타깃으로 한 대부분의 의류는 힙합과 어번 브랜드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
연간 손실 600만달러를 3년만에 흑자로
라이프 스타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한 남성 브랜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틈새를 뚫고 「애버크롬비&피치」는 젊은층을 공략하는 럭셔리 캐주얼 브랜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남성패션 전문지 ‘DNR’은 ‘애버크롬비 효과(The Abercrombie Effect)’라는 제목 아래 “80년대 랄프 로렌의 성공 이후 남성복에서 「애버크롬비&피치」와 같이 라이프 스타일에 근거를 두고 성공한 브랜드는 없었다”라고 극찬했다.
2006년 ‘살롱(Salo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섹스 혹은 섹슈얼한 매력, 다시 말해 감성적 경험은 우리 브랜드의 모든 것이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마이클 제프리는 소비자가 경험하게 될 모든 요소에 주의를 기울였다. 반나체 사진이 가득한 벽, 어두침침한 나이트클럽 같은 조명에 높은 볼륨의 음악들은 「애버크롬비&피치」만의 음울한 듯하면서 무디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부모들은 너무 어둡고 시끄럽다고 느끼는 데 반해 소비자들에게는 쿨한 장소로 받아들여진다).
‘섹시함’ 무기로 이상적 남성상 공략
매장 직원들은 매력적인 신체 조건을 갖춘 사람이 대부분이다. 멋진 외모의 사람(매장직원)이 멋진 외모의 사람(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스토어 매니저는 직원을 리크루트하기 위해 대학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프래터니티(fraternity; 남학생 사교클럽)를 방문해 대학생 연령대의 판매원을 뽑기도 했다.
이러한 ‘Sex Sells’ 전략은 최근 대도시 큰 쇼핑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어 모델’에까지 이어진다. 뉴욕 피프스 애비뉴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했던 2005년 가을,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셔츠를 걸치지 않은 채 스토어 입구에 서 있던 근육질의 남성이 바로 최근 미국 대학생들이 동경(?)하는 스토어 모델. 일반 매장 직원과 달리 매장에 서 있으면서 소비자들과 대화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이 스토어 모델의 역할이다. 「애버크롬비&피치」 모델은 대부분 브랜드의 스토어 모델 중에서 캐스팅된다.
매장 통해 소비자들에 감성적 경험 제공
오하이오주 뉴앨바니(New Albany)에 위치한 300에이커에 달하는 「애버크롬비&피치」 본사. 마이클 제프리가 생각하는 대학 캠퍼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건물 안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댄스 음악은 쉬지 않고 울리며 직원들은 모두 10~20대 복장으로 출근한다. 데스크가 놓인 오피스 대신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창이 달린 컨퍼런스룸이 마이클 제프리가 일하는 곳이다.
마이클 제프리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직원들을 ‘키즈(kids)’, 회사를 ‘캠퍼스(campus)’로 부르는 것을 즐긴다고 답했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스쿠터를 타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키즈(직원)들은 「애버크롬비&피치」 본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뉴욕 7번가가 아닌 오하이오에 본사를 두는 이유는 오피스에 앉아서는 실제 소비자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 모습 옮겨놓은 젊은 회사
따라서 마이클 제프리 자신도 타깃 소비자처럼 보이고 싶어하고 가능한 한 고객의 연령대에 가장 가까운 연령의 직원들을 고용했다. 매달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학생들이 무엇을 입고, 듣고, 읽고, 즐기는지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은 직원들의 업무 중 하나.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나일론 윈드 팬츠는 캠퍼스 방문 중 대학생들이 입고 있던 것을 보고 디자이너들이 재작업한 결과 탄생한 아이템이다.
「애버크롬비&피치」의 부사장이던 레슬리 오닐(Leslee O’Neil)은 “마이클 제프리를 처음 만났던 92년에 그는 스포츠 셔츠와 코듀로이 팬츠의 평범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62세를 맞는 그는 염색한 금발머리와 보기 좋게 태닝한 피부에, 너덜너덜한 진, 몸에 딱 맞는 폴로 셔츠를 즐겨입고 플립 플롭을 신는다.
마이클 제프리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은 어렸을 때 이미 시작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파티용품 스토어 체인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마이클 제프리에게 장난감 섹션의 제품을 선정하도록 했다. 이후 클레몬트 메케나(Claremont McKenna)대에서 경제학을, 콜럼비아(Columbia)대에서 MBA를 전공했다.
‘쿨-키즈’ 대상 유니크 라이프 스타일 완성
패션과의 인연은 68년 백화점 체인 ‘Federated Department Stores’의 계열사였던 ‘에이브러햄 & 스트라우스(Abraham & Straus 이하 A&S)’의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제이크루의 CEO 밀러드 드렉슬러(Millard Drexler), 제이시 페니의 알렌 퀘스트롬(Allen Questrom) 등과 같이 현재 미국 패션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물들이 같은 시기 A&S에서 일했던 동료들이다.
마이클 제프리가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80년 커리어 우먼을 타깃으로 하는 「앨콧&앤드루(Alcott&Andrews)」를 런칭, 초반에는 잘 운영되다 과도한 확장으로 의해 83년 파산했다. 이후 미드웨스트 여성복 체인 「폴 해리스(Paul Harris)」에 입사해 머천다이징을 담당했지만 머지않아 다시 부도처리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마이클 제프리에 대한 동료들의 공통된 평가는 창조적이면서 경영적인 감각을 두루 갖추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부적인 면까지 관리하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격은 「애버크롬비&피치」 운영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상점에 아이템을 배치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에 대해 마이클 제프리가 직접 최종결정을 내렸다. 마이클 제프리가 「애버크롬비&피치」의 경영을 맡은 이후 줄곧 함께 작업해 온 사진작가 브루스 웨버는 “마이클 제프리는 사진에 찍힌 모든 모델들을 직접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소비자처럼 입고 소비자처럼 생활하라
판매원들이 어떤 차림새를 해야 하는지에서부터 몇개의 스웨터가 진열대에 놓여야 하는지, 그리고 스웨터를 접는 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을 세세하게 기입한 29페이지에 이르는 책은 마이클 제프리의 완벽주의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마이클 제프리는 아이템의 최종 결정을 내리고, 오하이오주 본사에 위치한 모델 스토어에서 마네킹에 옷 입히는 방법을 직접 지시하고, 전국 스토어에서 사용할 음악을 선정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애버크롬비&피치」의 가장 큰 결점은 모든 업무가 마이클 제프리에게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2005년 마이클 제프리의 과다한 연봉을 줄이려는 주주 소송이 진행된 결과 2008년까지 CEO의 보너스 금액을 기존에 받던 금액의 반인 1200만달러(약 110억원)로 삭감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2005년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는 마이클 제프리에 관한 기사를 다루면서 “「애버크롬비&피치」처럼 논쟁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공을 이룬 브랜드는 없었다”라고 표현했다. 97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A&F 계간지(A&F Quarterly)’는 끊임없이 논쟁의 여지를 제공했고 선정적인 문구가 새겨진 아동용 텅(thong: 끈 팬티)은 부모들과 가족옹호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공격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인 티셔츠 문구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2003년에는 대규모의 불매운동을 겪었다.
결국 소수인종에 대한 고용거부나 직장내 차별에 대한 소송 합의금으로 4000만달러를 지불했고 A&F 계간지는 2003년 12월 발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버크롬비&피치」에 언제든지 용돈을 쓸 준비가 돼 있는 충성고객층을 확보한 덕분. 마이클 제프리는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은, 쿨한 감각을 지닌 이른바 쿨-키즈만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일관된 시각을 지켜왔다.
7~35세 커버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여기에 타깃 연령대가 세분화된 브랜드를 런칭함에 따라 브랜드의 타깃에 해당되지 않는 소비자층에 무심하다 못해 ‘차단’해 버리는 듯한 디자인의 스토어 외관을 전개한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우리가 쇼핑하고 있는 게 맞나요? 이게 스토어예요?”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실었다.
가장 선두주자격인 「홀리스터」의 캘리포니아 해변가 통나무집을 연상시키는 기와지붕의 스토어 디자인은 초반부터 소비자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여기에 나무 덧문으로 윈도가 닫혀 있고 컴컴한 매장 내부에 들어서면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통로의 형광불빛이 해변가의 햇빛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다. 소비자들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홀리스터」에서 굳이 윈도 쇼핑을 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
이와 같이 「홀리스터」가 성공을 거두면서 「애버크롬비&피치」도 뒤따라 스토어의 유리 윈도 위에 두꺼운 나무 덧창을 대고 내부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철창 펜스와 입구가 있는 맨해튼의 브릭하우스처럼 보이는 「루엘」 매장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 「애버크롬비&피치」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톰 레녹스(Tom Lennox)는 “우리는 중년 남성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다. 만약 그 남성이 스토어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아는 사람만 오라’ 차단된 윈도 디스플레이
현재 전개하는 4개 브랜드의 고객 연령대는 7~35세. 「애버크롬비」는 주니어 마켓 또는 7~14세의 연령대를 타깃으로 「홀리스터(Hollister Co.)」는 급속도로 성장하는 틴에이저 마켓인 14~18세를 타깃으로 한다. 「애버크롬비&피치」가 18~22세의 대학생층을 겨냥하는 반면 2004년 런칭된 「루엘(Ruehl)」은 대학 졸업 이후 22~35세 연령대의 영 프로페셔널을 타깃으로 한다.
「애버크롬비&피치」에 비해 30% 저렴한 가격대의 「홀리스터」는 2006년 13억6300달러(약 1조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갭」과 「올드 네이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애버크롬비&피치」와 「홀리스터」의 소비자층이 실제로는 겹친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루엘」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확장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전년대비 기존점포 매출비교에서는 4개 브랜드 중 가장 높은 증가율(14%)을 나타냈다. 이밖에 ‘컨셉 5’라는 프로젝트명 아래 지난 2년간 준비해온 새로운 브랜드를 내년 1월 런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컨셉 5’의 내용은 현재까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 전문가들은 액세서리, 란제리와 슬립웨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 진출 ‘럭셔리 글로벌 브랜드’ 목표
최근 「애버크롬비&피치」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분야는 해외 마켓으로의 진출. 「갭」이나 「폴로」 등과 같은 다른 리테일러들에 비하면 해외 진출이 늦은 편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하게 확장해 간다는 방침이다. 「애버크롬비&피치」는 미국 내에서는 몰-중심 리테일러지만 순차적으로 미국 내외에 걸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다.
지난 3월에는 런던의 새빌로(Saville Row)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고, 도쿄에 오픈할 지역을 물색 중이다.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은 소비자들이 미국에서와 같은 경험을 일본매장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 플래그십 스토어들은 2005년 11월 뉴욕 5번가에 오픈한 「애버크롬비&피치」의 첫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프로토 타입으로 삼아 전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마켓으로는 가장 첫발을 내디딘 캐나다의 경우 현재까지 3개의 「애버크롬비&피치」 스토어와 3개의 「홀리스터」 스토어가 오픈됐고 미국보다 3배 높은 스토어 평방피트당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15년 동안 「애버크롬비&피치」를 이끌어온 마이클 제프리의 향후 목표는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것이다. 내년 발표될 다섯번째 브랜드와 함께 내년 유럽 및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 계획에 귀추가 주목된다.
「애버크롬비&피치」 타임라인
·1892년 Scotsman David Abercrombie가 로어 맨해튼에 캠핑 도구를 판매하는 스토어 오픈. 변호사 Ezra Fitch가 조인하면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아웃도어용품 판매 업체로서 입지를 굳힘 ·1930~1960년 가장 번성했던 시기 ·1977년 파산 신청 ·1978년 스포츠 리테일러 Oshman's이 「애버크롬비&피치」 인수 ·1988년 의류 리테일러 리미티드가 bargain-basement로 4700만달러(약 430억원)에 인수, 의류 쪽에 중점을 두기 시작 ·1992년 마이클 제프리가 대학생들을 위한 아웃피터 브랜드로 전환 ·1995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 ·1998년 「애버크롬비」 런칭 ·1999년 리미티드로부터 독립 ·2000년 「홀리스터(Hollister Co.)」 런칭 ·2001~2002년 인종 차별적인 직원 고용, 티셔츠 문구, 선정적인 아동용 언더웨어, 선정적인 계간지 발행 등으로 인해 대규모의 불매운동 및 소송에 휘말림 ·2003년 계간지 발행 중단 ·2004년 「루엘(Ruehl)」 런칭 ·2005~2006년 일본 자회사 ANF 설립, 뉴욕 5번가 첫번째 오프몰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캐나다에 6개 매장 오픈 ·2007년 런던 새빌로에 첫 해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2008년 ‘컨셉 5’ 런칭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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