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 달거북님과 둘이서 . 날씨 : 오전 비오다 개임, 산행중 보슬비 조금.
아랫글은 함께한 달거북님의 카카오 스토리 글을 옮겨 놓았다
산은 수행하고 나는 길을 찾는다!
- 백화산 우중산행
2017.10.11. 원래는 설악산 요델능선(용아장성)을 넘으려 했다. 하지만 전날밤부터 낮까지 비가 온다니 무모하고 위험하다. 하여, 밤차 타고 내려가서 지리산을 종주할까 하는데, 피노키오 김흥수 화백께서 연락하셨다. 충북 영동의 백화산을 가자 하신다. 대전서 10시20분차 타고 황간 들어가 반야사 들어가면 완벽하다.
아뿔사, 대전에 비가 세다. 터미널서 1시간도 넘게 기다리며 행선지를 정치 못했다. 통영은 오전에 괜찮지만 시간이 맞지 않고..., 그 외엔 전국에 비 안 오는 데가 없다. 계룡산 자연성릉 넘고 갑사 가서 맛난 음식 먹을까. 그 사이 난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혹시 찾을까 하여 여기저기 찾아다니지만, 숨어버린 카드귀신은 나타나질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심히 불편한데, 밖으로는 비가 그쳤다. 화백과 난 김천 가는 버스를 탔다.
황간서 내려 택시로 반야사 들어가는데... 안개와 구름이 짙다. 입산하면 금방 득도헐 분위기다! 반야사 아래서 보니 백화산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여간 좋지않다. 계곡 물길이 자그마치 10km는 될까. 반야사 들어가니 대웅전 아래 500년 넘은 배롱나무가 서있다. 풍경 소리 들으며, 부처님 곁에서 긴 세월을 살아왔다. 대웅전 뜰의 삼층석탑은 한 눈에 봐도 통일신라 시대 양식이다. 절간의 큼직한 삽살개는 너무 순해 짖지 않는다. 보살칭호도 아깝지 않다.
깎아지른 절벽 위 문수전을 올랐다. 오르며 돌아보니 반야사 뜰이 너무 예쁘다. 문수전엔 사람이 없고 부처님만이 우두커니 암자를 지킨다. 행객은 오히려 그게 좋다. 어느 봉오리를 보든 구름에 휩싸여, 이 또한 도의 세계에 가찹다. 어라? 나같은 속인도 금세 성불허것네? 애써 평정심을 모셔들고 문수전을 내려왔다. 물길 따라 반야사 아래로 걷는 길이 나는 너무 좋다.
반야사다리 건너 우회전하고 물길 따라 계속 올라갔다. 우릴 어느 세계로 인도하는가. 모든 길이 너무 예쁘다. 산은 깊고 분위기가 그윽하다. 가을빛은 아직 이르지만, 자연의 빛은 찬연하다. 가만, 가랑비 내리니 청개구리 한 마리가 튄다. 이 놈을 잡느라 큰 나무를 몇 바퀴 돌았다. 보호색이 완벽하여 미물일지라도 자연의 색으로 완전히 수렴된다. 물길 따라 오르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어딜 가도 사람이 없다. 정녕 득도세계로 인도하는 길일까.
반야사옛터 지나 임천석대 앞엔 정자가 하나 있다. 우린 호젓하게 도시락을 까먹었다. 백화산 정상까진 2.7km라는데, 2시간 30분 걸린다고 이정표에 써있다. 길 따라 오르니, 트랭글 지도와는 달리 계곡 옆으로 오른다. 기상청 약속을 깨고, 백화산엔 비가 내린다. 레인카버로 배낭을 씌웠다. 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길이 없어진다. 눈앞의 득도세계도 사라진다. 우측으로는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온다. 그러나 정상은 좌측에 있다. 좌측으로 오르면 부드러운 흙길일 것 같다.
좌측으로 올랐다. 안개구름이 더욱 짙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앞서가는 김흥수 화백이 흠뻑 젖은 낙엽 아래 한 떼의 가지버섯을 발견했다. 뜯고 보니 크게 한 봉지는 족히 된다. 조금 더 진행하니 이번에는 영지버섯이다. 내 인생 최초의 약초산행이다. 우리 가는 길은 노다지 같은 버섯을 채취하고 행운을 수확하는 축복의 길이다....
그런데, 아뿔사! 이 길이 지극한 고난의 길이 될 줄이야~. 더 이상 길은 어디에도 없다. 경사는 너무 가파르다. 어딜 밟아도 흙은 무너진다. 나는 스틱도 없다. 몸의 균형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리 어려울 수가.... 우리 걸음이 시속 500미터도 안 된다. 화백님은 앞서 오르며, 오늘 산행이 너무 되네~ 진짜 되네~ 하며 되뇌신다. 하지만, 내 보기엔 진짜로 되는 게 없다. 득도할 분위기? 노다지 버섯? 횡재? 내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화백님, 앞으로는 백화산 가실 때 절대 연락 마슈~!
화백님이 천신만고 끝에 먼저 금돌산성에 올랐다. 따라 오르니, 거친 돌무더기 위로 용신의 폭이 좁다. 나뭇가지 우거지고 당최 길이 없다. 무엇보다도 걷기에 너무 위태롭다. 그런 한계상황에서 화백님은 득도수행하듯 곡예를 거듭한다. 난 그 짧은 시간에 바위에서 미끄러져 와장창 넘어졌다. 다행히 벼랑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친 데도 없다. 겁에 질려 난 바로 산성의 돌무더기를 내려갔다. 우측으로 내려가 밀림 같은 숲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화백님은 금돌산성 돌무더기 위로 곡예하며 나아가고, 나는 그 아래에서 수풀을 헤치며 간다. 모두가 힘든 산행이다. 백화산? 백 가지 화를 부르는 산인가 보다....
화백님, 여기 길 잇쓔~. 나는 운 좋게도 정상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길을 찾으니 산행이 쉽고 진행이 빠르다. 정상에 닿으니 멋진 표지석이 세 개나 된다. 사람 없는 백화산에서 우리 둘이서 정상석을 세 개나 차지했다.
아, 정상에 서니 모든 산, 온 하늘이 안개와 구름으로 자욱하다. 가만, 백화는 지금 수행중이다! 그리고 난 길을 찾는다! 세상의 그 어떤 속인도 백화 세계에선 수이 득도할 분위기다. 최고의 조망과 최고의 풍경은 짙은 안개구름 너머에 있다. 안개와 구름 너머로 절세의 풍경을 보는 자, 그가 과연 최고의 산꾼이다.
화백님 왈, 여기선 칼날능선 지나 주행봉으로 주행하는 게 정석이란다. 거기서 보는, 벼 익는 들녁이 황홀하단다. 하지만, 오늘은 워낙 안개구름이 짙으니 가봤자 암껏도 볼 수가 없단다. 젠장, 돌아보니 난 짙검은 안개구름 너머로 아름다운 산과 세상을 보는 득도의 눈이 없다. 비는 속절없이 내린다. 산은 전신이 젖어있다. 더욱이 내 낡은 신발이야 오늘처럼 젖은 바위에서 너무 미끄러워 사고의 위험이 크다. 시간도 부족하고.... 결론은? 결론은 하나, 하산이다.
반야사 아래 백화정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최단거리 하산길이다. 이 길도 오르던 길만큼이나 급경사다. 조심, 또 조심~.... 속도를 줄이고 조심히 내려가다, 아뿔사~ 넓고 매끈하며 경사진 바위에서 난 또 한 번 미끄러지고 말았다! 백화산은 너덜지대도 많고, 위험한 돌길 구간도 많다. 우라질 산, 백화산~....
이후, 조금 완만해진 부분부터는 엄청 속도를 냈다. 지도를 보니, 어느덧 백화정사가 가깝다. 택시 탈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계곡물은 명경처럼 맑다. 저 좋은 윗탕은 화백님께 드리자. 나는 이리 으슥한 아랫탕이 좋다. 이 깊은 산중에 나와 화백님 외에는 아무도 없나니~....
비 맞은 옷도, 고생한 기억도, 그리고 안 좋았던 감정도 다 벗자. 카드 잃고 불편했던 심경도 벗자. 그저 너울처럼 훌훌 벗자. 벗고서 우리, 우매리 맑은 물에 풍덩 빠져나 보자. 벗고서 우리, 완전한 알탕을 즐겨나 보자. 이 내 옷을 백화 선녀에게 빼앗길지라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씻자. 알몸 되어 영영 백화에 남을지라도, 아니... 그리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알탕에만 매진하자. 세상사, 시름, 한숨 너울처럼 벗는 자, 벗고서 수신수행하는 자 득도세계에 가깝나니~....
이렇게 가랑비 오는 날, 나는 사람 없는 백화산이 좋다. 화백님, 담에 시간 되시믄, 백화산 일정 또 잡으슈~!
반야사 가는길
반야사 삽살개
문수전 가는길~
문수전
보호색으로 위장한 개구리
금돌산성
가지버섯 수확
알탕한곳
왕복으로 이용한 택시(편도 10,000)
16:49 분차 이용.
대전역 까지 가서 부요한 님의 저녁 식사 대접 받고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