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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림호텔 요리점 KARIM Hotel's 卡瑞姆餐厅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의 큰거리를 벗어나 자마마스지드 남문 맞은편 골목길 안에 있다.
자마 마스지드(Jamma Masjid)의 남문 골목길을 따라 도보로 2~3분 걸어 들어가면 델리
(Dehli) 제일의 무굴전통 요리전문점의 하나인 카림호텔요리점이 나온다. 1913년에 개점
하여 지금은 델리(Dehli) 시내와 구르가온(Gurgaon) 등지에 7개의 분점이 있다고 한다.
▲ 카림호텔요리점(KARIM Hotel Restaurant)이라는 간판만 보고도 세계인이나 인도사람이 찾는다.
▲ 골목길 입구에 붉은 글씨로 카림호텔요리점(KARIM Hotel Restaurant)이라고 써 두었다.
▲ 식사시간에는 골목길 안에 오른쪽에 보이는 부스에 먼저 등록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미국의 Times지를 비롯한 BBC World Guide,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세계 유수의 레스토랑
리뷰 잡지에 빠지지 않고 등재되는 맛집 중 하나이다. 필자는 그 음식을 처음 맛보았는
데, 우리 한국 사람 입맛에도 그냥 괜찮은 편이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탄
두리 치킨(Tandoori Murgh)이 있다. 양다리를 통째로 구워내는 캐시미르식 호화정찬인
탄두리 란(Tandoori Raan)이 이곳의 핵심 메뉴 중의 하나이다. 무굴제국의『악바르』황
제가 즐겨 먹었다고 하는 치킨커리(chicken Curry)인「악바리 무르그 마살라 (Akbari
Murhg Masala)」인도식 치즈가 든 길쭉한 커리인「빠니르 삭(Paneer Saag)」등이 인기
메뉴다.
▲ 음식점 안은 1층홀은 6팀 정도 앉을 수 있고, 2층은 전체가 홀로 되어있어 10팀 정도 앉을 수 있다.
▲ 바깥의 부스에 등록하고 있는 인도여성 - 한 음식점에 15팀 정도 받을 수 있는 점포가 삥둘러 있다.
끼니때에 가면 바깥 부스에 미리 등록하고 줄을 길게 서서 한참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
비고, 아무래도 서비스가 좀 부족하다. 그리고 이슬람신자들의 단식기간인 라마단시기
에는 해가 진 이후에만 영업을 한다고 한다. 필자가 먹어본 바로는 카림음식은 그냥 현
지 음식으로 먹어볼 만한 정도이고, 명성처럼 그렇게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다. 필자는
음식문제는 세계 어디로 가더라도 무난한 편인데, 가격은 인도음식으로는 무척 비쌌다.
▲ 인도식 밀가루 빵인 난을 카레소스에 찍어 먹는다.
▲ 닭다리 바비큐 형태에다 볶음밥을 합해놓은 "치킨 탕그리 케밥"
▲ 인도전통의 향신료에 하루동안 재운 치킨을 인도식 화덕에 구운 "탄두리치킨" 닭다리요리
◆ 자마 마스지드 Jama Masjid - 迦玛清真寺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앞 마당 끝에서 정면으로 찍은 사진이다.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란 이슬람의 휴일인 금요일에 이마무가 집단예배를 실시하
는 도시 중추의 모스크(Mosque)에 주어지는 이름이다. 이곳은 1656년 오늘날의 델리를
일컫던 그 당시 이름인 샤 자하나바드(Shah Jahanabad)에 있던 본사로 인도 최대의 규모
를 자랑한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남문은 찬드니초크쪽인데 출입이 옛날 경찰서보다 더 어렵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남문에서 바라본 모스크 건물과 계단.
▲ 자마 마스지드의 남문으로 들어가니 배낭여행을 온 한국젊은이를 만나 같이 사진 한장 촬영.
입구는 3곳인데, 남북과 동쪽의 돌계단을 올라간 곳에 문이 있다. 1857년「세포이」난
때는 반란군이 이곳에 집결해 시내를 제압한 영국군에 대해 마지막 돌격을 시도했으며,
이 돌계단은 시체로 가득했다고 한다. 정면 왼쪽에 위치한 미나레트(Minaret)라고 부르
는 뾰족탑은 그 높이가 무려 40m에 이르는데, 전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자마 마스
지드의 대형 돔을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고, 랄 퀼라(Lal Qila)의 전모를 바라볼 수 있으
며, 델리의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건물을 돌아 북쪽방향에는 마당도 넓고 그늘속에 휴게시설도 있다.
▲ 자마 마스지드의 북쪽 마당에는 사람도 많고, 무슬림인지 아닌지 몰라도 그늘에 사람들이 쉬고 있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이쪽 문은 아무 규제도 없이 그냥 개방되어 있었다.
문 앞에는 작은 상점과 기념품점 및 부적 등을 판매하는 노점이 늘어서 있고, 거리의
연예인이나 거지들로 떠들썩하다.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 방면으로도 빠질 수 있
다. 필자는 남쪽 문으로 들어갔더니, 들어가는 과정에도 경찰처럼 정장을 한 무슬림들
이 뭐라고 요구사항이 많았는데, 못 들은 척하고 들어갔다. 먼저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간섭이 많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인도식으로 하란다.
▲ 필자가 들어간 문만 경찰복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고 험악한 인상에 규제하는 주문이 많다.
▲ 자마 마스지드의 동쪽문은 지키는 사람도 없고,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반쪽만 열려있었다.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돌계단을 딛고 올라가는데, 바닥이 너무 뜨거웠다. 발바닥을 델
정도로 뜨거웠고, 반바지나 민소매 또는 슬리퍼차림의 사람들은 출입을 금지 시킨다. 북
문이 나있는 방향의 마당으로 가니 외국에서 온 반바지나 핫팬츠 혹은 민소매차림의 방
문객을 위하여 옷을 빌려주는 곳이 한켠에 있어 역시 수익을 올리는 것 같았다. 마침 참
배가 끝나는 시간이라 지켜보니 무슬림이 아닌 외국인이 나오고 있다.
▲ 자마 마스지드를 방문왔던 여행객이 이렇게 긴 옷을 빌려입고 맨발로 참배하고 나온다.
▲ 자마 마스지드의 북쪽에는 그늘에 자유스럽게 앉아 쉬기 좋게 대리석을 깔아둔 그늘이 있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북쪽으로는 이렇게 대리석 바닥 그늘에 눕기까지 하여 쉬고 있다.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를 둘러보고 구내에서 사람들이 쉬면서 한담하고 있는 장면
도 보았다. 여행으로 이곳을 왔던 사람들이 오후 예배당에 들어갔다 시간이 끝나니 빌려
입은 옷을 입고 모두 나오는 장면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북쪽문은 그냥 자유롭게 통
행하도록 개방되어 있다. 이 문으로 거리에 나오니 정숙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전
형적인 인도거리 풍습대로 시끄럽고 혼잡스럽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문밖만 나서면 종교시설이 있는 정중한 거리라는 생각이 없다.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를 나온 바로 앞 깥 거리의 모습
▲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의 주위에 있는 델리의 일반 가정 주거용 아파트
시장골목을 돌아보면서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이 근방은 숙소에서도 비교적 가까워 뉴
델리역에서 메트로로 2구역밖에 되지 않는 곳이라 언제든지 올 수 있다. 이제는 천천히
걸어서 찬드니초크(Chandni Chowk)역으로 가서 2호선인 옐로우 라인을 타고가서 꾸뜹
미나르(Qutb Minar)를 구경하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 자마마스지드(Jama Masjid)、붉은성(Lal Qila)、찬드니초크(Chandni Chowk)를 중심한 델리지역
▲ 시장골목의 풍광을 담은 여러 모습들.- 맨 마지막 사진은 전깃줄이 너무 위험스러워 보인다.
◆ 꾸뜹 미나르 Qutb Minar or Qutub Minar 库图米纳尔 or 库图布塔(回教光塔)
▲ 꾸뜹 미나르(Qutb Minar) 전체를 내부에서 보는 것은 일단 가슴이 탁 트인다.
① 메트로 2호선인 옐로우라인을 타고 <꾸뜹 미나르(Qutub Minar)>역에서 하차
② 뉴델리역(메인바자르는 반대쪽 카무라마켓 앞에서 승차)이나 코넛 플레이스
(스파바자르앞에서 승차)에서 505번 버스를 타고 <꾸뜹 미나르>에서 하차.
③ 오토릭샤를 탄다.
▲ 꾸뜹 미나르(Qutb Minar)전체를 담장 바깥에서 본 모습.
▲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입구를 알리는 간판 모습
▲ 메트로 꾸뜹 미나르(Qutb Minar)역에서 내려 오토릭샤를 20루피를 주고 이곳 입구에서 내린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입장권 사는곳 - 이곳에서 입장권을 사서 건너편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입장권 - 인도인 10루피, 외국인은 250루피이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입구 - 입장권을 구입한 사람은 이곳으로 들어간다.
델리에는 여러 곳에 유적지가 많은데, 그 중에서 최고의 볼거리로 특히 눈에 띄는 곳이
꾸뜹 미나르(Qutb Minar)이다. 12세기말에 델리를 정복한 노예왕조(Slave Dynasty)의 술
탄인「꾸뜹 웃 딘 아이바크(Qutb-ud-din Aibak)」가 세운 승전기념탑이라고 한다. ‘미나
르'는 탑이라는 뜻인데, 위의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에서 말한 '미나레트(Minaret)'
의 인도식 발음이다. 이 꾸뜹 미나르(Qutb Minar)는 델리중심부에서 남쪽으로 15km정도
떨어진 평원외곽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1993년 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과거에는 보통 "쿠트브 미나르“로 표기했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입구에 들어가서 오른 쪽을 보고 촬영한 사진
▲ 높이 72.5m의 주탑을 좀 더 가까이에서 다른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마음에 안든다.
탑의 기저부(基底部)의 직경은 14.5m인데, 5층 중 아래 3층은 적사암(赤砂岩)이고, 그
위는 대리석과 사암을 쌓았으며 코란의 문구를 도안화한 조각이 외벽에 새겨져 있다. 그
높이는 72.5m로 인도에 현존하는 탑 중에서 가장 거대한 편에 속한다.
▲ 입구 안쪽에 있는 기록들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외국인(서양인) 관광객.
오랫동안 인도를 지배하며 지속되어 온 힌두왕국을 멸망시킨 새로운 이슬람 세력은 이를
과시하며 기념하기 위하여 거대한 토목공사를 시행하였다. 탑의 바로 옆에는 파괴된 힌두
사원의 석재를 이용하여 지은 인도최초의 모스크인「쿠와트 울 이슬람 마스지드(Quwwat
ul Islam Masjid)」가 있다. 그래서 곳곳에 가네샤(Ganesha)상 등이 남아있다. 정원에는 높
이 7m정도의 쇠기둥(iron pillar)이 서있는데, 4세기경의 인도북동부의 마가다국을 지배한
왕조인 굽타왕조시대(Gupta dynasty, 4세기초~6세기말 오늘날의 비하르지방)에 건설된것
으로 추정하며, 순도가 100%에 가까워 아직까지 녹이 슬지 않았으니 당시의 높은 기술수
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의 건물은 가까이에서 살펴보아도 감탄할 정도이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의 건물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 꾸뜹 웃 딘 아이바크(Qutub-ud-din-Aibak)의 무덤
아마도 이를 계기로 힌두세력은 많이 무너지고, 새로이 힘이 실린 이슬람은 점차 그 세
력이 커져갔던 같다. 800년이 지난 그 시절에 어떻게 이렇게 높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
었는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들이 만끽한 승전의 기쁨을 그냥 혼자서 가늠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힌두세력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으며, 아직까지
도 인도에서는 종교적인 갈등 특히 힌두와 이슬람의 세력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 꾸뜹 미나르의 주탑을 확대하여 촬영
▲ 꾸뜹 미나르의 벽면 디자인 - (1) -
▲ 꾸뜹 미나르의 벽면 디자인 - (2) -
인도는 기차역이나 메트로가 모두가 사진촬영금지지역이란 것은 언급했지만, 중요유적
지도 어떤 곳은 보안지역으로 사진촬영금지다. 군경이 주둔하면서 테러에 대비하고 있지
만, 여행 중 사진촬영금지구역을 일일이 잘 몰라 멋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부리나
케 감시자가 뛰어나와 사진을 지우라고 큰소리치고 잘못되면 낭패를 당하고 끌려가는 일
도 벌어진다.
▲ 꾸뜹 미나르의 주탑
▲ 꾸뜹 미나르의 주탑 확대촬영
필자는 약삭빠르지 못한데다가 사진촬영기술이 빈약하여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렇게 높은 탑의 전체를 찍으려면 아무래도 너무 높아서 가까이에서는 어림도 없고, 멀리
서 광각으로 찍어야만 전체높이가 들어온다. 그냥 멀리 뒤쪽으로 뛰어간 것이 하필 초소
앞에서 카메라앵글을 맞춘 것이다. 젊은 군인이 소리소리 지른다. 찍은 사진을 지우라는
것이다. 그쪽 방향으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곳은 우리가 좋아하는 힌디무비 '빠나'의 주요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아주 흥겹고 즐
거운 노래와 춤이 이 멋진 배경과 합쳐진 훌륭한 영상이다. 필자는 손에 있던 작은 디카
를 그 초소 군인에게 내보이면서 찍지 않았다고 떼를 썼다. 그 군인은 그 카메라 속에는
사진이 찍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좋다면서 보내주었다. 그래서 약간 삐뚤어지고 핀
트가 맞지 않았다.
▲ 꾸뜹 미나르의 경내는 넓고 녹지대도 많아 인도인들은 이렇게 가족나들이로도 많이 찾아온다.
▲ 꾸뜹 미나르에 가족나들이로 나온 인도사람들.
1193년 건설 당시에는 4층으로 지었으나, 1326년 투글라크 왕조(Tughlaq Dynasty ;
1320~1412)의「페로즈샤(Feroz Shah)」가 새로운 수도 피로자바드(Firozabad)를 건설
하며, 5층으로 개축했다. 당시에는 지붕에 둥근 돔이 씌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1829년
델리에 엄습한 지진으로 인하여 돔은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후 영국식민지시절에「잭
스미스(Jack Smith)」라는 영국군장교가 무굴양식의 돔을 새로이 올렸지만, 탑의 모양
과 어울리지 않아 얼마 뒤 다시 철거했다.
▲ 꾸뜹 미나르의 내부 보존 상태
▲ 꾸뜹 미나르의 정원내부를 몇 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내역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탑의 웅장함과 함께 기단 가운데 새겨져 있는 아라비아 문자를 보
게 되는데, 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코란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엄격한 이슬람교에서
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장식이 코란의 내역이다. 1982년까지는 내부 계단을 통하여 정상
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는데, 좁은 통로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압사사고가 빈발하여 폐쇄
하였다고 한다.
▲ 과거에는 이 문을 통하여 꾸뜹 미나르의 탑꼭대기까지 갔으나 지금은 폐쇄
▲ 꾸뜹 미나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임을 표시한 표지석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전체를 촬영.
이슬람의 힘이라는 뜻이 담긴 인도 최초의 이슬람사원이다. 델리를 점령한「꾸뜹 웃 딘
아이바크(Qutb-ud-din Aibak)」는 무려 27개나 되는 힌두사원을 철저히 파괴하여, 파괴된
힌두사원에서 나오는 쓸 만한 잔해를 모아 모스크를 세웠다고 한다. 완벽한 이슬람의 지
배를 위하여 기존의 힌두교사원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종교와 사상이란
외형적인 탄압과 파괴만으로 내면적인 지배가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건축기술을 볼 수 있는 기둥.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천장디자인.
이렇게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이슬람 이외의 종교인 힌두교탄압과 외형적인 힌두사원의
섬멸로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기둥에는 모든 우상을
새기는 것조차 거부하여, 이슬람교사원답지 않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즉 힌두사원의 잔
해로 지은 건물이라 이슬람사원이면서도 힌두교적인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동편정원
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북서쪽에는 무덤처럼 벽돌을 쌓아
올린 다른 승전탑인「알라이 미나르(Alai Minar)」가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탑이라는 생
각이 들지 않는다. 투르크계의 술탄국인 킬지왕조(Khilji dynasty)의 2대왕인 알라 웃 딘
(Allah-ud-din : 재위 1296~1316) 이 고작 1층만을 완성시키고 암살되어,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현재 남아 있는「알라이 미나르(Alai Minar)」의 1층 부분의 지름은 꾸뜹 미나
르가 14.5m인데 비하여 무려 25m나 되니 얼마나 큰가? 만약 이것이 완성되었다면 꾸뜹
미나르는 쳐다보지도 않을 뻔 했다.
▲「알라 웃 딘」왕이 기초공사만 시작하다가 완성하지 못한「알라이 미나르(Alai Minar)」탑
▲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안에 있는「알라-웃-딘(Allah-ud-din Khilji)」왕의 무덤.
● 오파츠(OOPATTS)는 Out of Place Artifacts 의 약자인데, 현대과학으로도 설명이 잘
되지 않는 고대 출토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꾸뜹 미나르(Qutb Minar)의「쿠와트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안뜰에 서있는 쇠기둥도 이런 오파츠
에 속한다. 신기하게도 1500년간이나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서 있었는데도
녹이 슬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현대과학으로도 이 문제의 해명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이 쇠기둥을 양손으로 껴안고 깍지를 끼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어, 소원을 이루려는 엄청난 인파가 줄을 서서 일대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지금
은 보호망에 싸여 있어 아예 이런 소원을 시도할 수도 없다.
▲ 꾸뜹 미나르(Qutub Minar)의 정원에 세워져 있는 오래된 쇠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