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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들려줄 수 있다면...
땅꼬의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면 이런 불가능한 바램은 더 간절해지곤 했다. 고양이 위치 추적기라는 장치도 있다지만 풀숲을 헤치고 다니는 고양이에게 이런 번거로운 장치는 자칫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에... 최종적인 내 선택지는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덕에 안 그래도 성격 급한 내가 상실해가던 역량...믿고 기다리기... 그걸 배워갔던 힘겨운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킨텍스 공원에서 있었던 실종 사건에 이어 꽤 심각했던 실종은 일 년 반 정도 지난 봄날에 벌어졌다. 2년 정도 킨텍스 근처에 살다가 뒷산에 면한 예전 아파트로 이사한 다음 날, 땅꼬와 함께 이사 기념 이벤트로 2년 전처럼 함께 뒷산을 산책하기로 했다. 5월... 봄날의 절정...산이 좋은 계절이다. 땅꼬에게 예전의 영역을 상기시킬 겸 신록의 향연이 한창인 뒷산으로 총총히 향했다. 산길을 걷고 난 후 흡족한 걸음으로 방긋방긋 하산하던 중 익숙한 갈림길에 이른 순간 갑자기 땅꼬가 쏜살같이 골짜기로 내달렸다.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잘 아는 곳이니 곧 돌아오겠지, 시간이 지난 후 불러보자 생각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이삿짐 정리에 여념이 없는 사이 밤은 깊어 갔지만 땅꼬는 돌아오지 않았다.
2년의 시간 동안 땅꼬는 이곳을 잊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추위가 부쩍 매서워진 어느 겨울 저녁, 이곳 아파트 주차장 길냥이들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고양이 집이 마음에 걸렸다. 고양이 집을 손볼테니 버리지 말아달라고 관리실에 당부할 참으로 땅꼬와 함께 차를 타고 킨텍스 집을 출발, 이 곳 주차장에 도착했었다. 차문을 나선 땅꼬는 휘둥그레 주변을 둘러보다가 익숙하게 주차장을 지나 중정으로 향했다. 기억력이 뛰어난 땅꼬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자신의 영역을 잊었을 리 없다. 이 사실을 나는 좀 더 분명히 믿었어야 했다. 이번 실종 동안 이 믿음이 흔들렸고 그래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지만 일단락 된 후 땅꼬의 기억력에 대한 내 믿음은 굳건해졌고 실종에 대처하는 분명한 수칙을 결정할 수 있게 었다. 수칙은...무조건 기다리기.
땅꼬가 실종된 일주일 동안 우리 아파트에서는 땅꼬 수색대가 결성되었고, 고양이 탐정이 다녀갔다. 예전처럼 전단지를 인쇄해 관리실의 허락을 구해 현관마다 게시하고 뒷산을 오르는 골목길과 등산로, 인근 동네 골목에도 촘촘하게 붙였다. 이번 사례금은 5만원이었다. 사악한 손길의 가능성은 지웠으니까... 대신 두려웠던 가능성은 멀리 이동하는 트럭 짐칸에 올라타 잠든 경우다. 외출냥이 집사라면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악몽 중 하나일 것이다. 동네에서만 찾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고양이 실종 관련된 사이트에도 촘촘하게 사연을 올렸다.
전단지가 불러온 반향은 꽤 감동적이었다. 얼굴도 알지 못할 이웃들에게서 위로 문자가 쇄도했다.
“이렇게 예쁜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걱정이 많으세요. 나도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걱정이 됩니다. 열심히 살펴볼께요. 힘내세요!!!”
땅꼬야~~~ 부르면서 돌아다니는 내게 다가와 자세히 묻고 격려하는 이웃들. 그리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앳되지만 똑부러지는 여자 어린이의 목소리.
“저희 친구들이 땅꼬 수색대를 결성했어요. 저희가 꼭 찾아드릴께요.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리셨어요? 저희가 흩어져서 찾으려면 집사님 목소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땅꼬를 부르는 소리 녹음 파일을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땅꼬 수색대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땅꼬 수색대가 활동하는 동시에 나는 나대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뒷산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또 무서움을 잊었다. 이사 뒷정리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강의 준비를 하고 덤불 틈새 하나 놓칠 새라 먹고 자는 일을 잊으며 체력이 바닥이 났다. 4일이 지나갔다. 불길하다. 더 큰 도움이 필요했다. 고양이 탐정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큰맘을 먹고 의뢰 전화를 눌렀다.
다음날, 고양이 포획틀, 수색 도구, 허름한 침구와 옷, 식기로 빽빽한 대형 SUB 차량에서 검게 그을린 작업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내렸다. 막연히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고양이 탐정이라는 직업. 그러나 전국을 오가며 사람의 길이 아닌 고양이 길을 작업장 삼는 일의 동선이란... 결코 녹녹치 않은 일이었다. 20만원 정도의 의뢰비를 선납하고 동네와 뒷산을 함께 둘러보았다. 탐정님의 결론은...
“이 동네는 외출냥이가 살기에 적격이네요.”
그 후, 내가 익히 짐작했던 곳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아파트와 붙어있는 뒷산 아래 다세대 후미진 공간들은 혼자였다면 차마 문을 열 용기를 낼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수색은 허탕이었다.
“왠지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문제는 이사를 해서 이 곳을 기억할지가 걱정이예요.”
“그럼 일단 기다려 보고요, 대장 고양이가 있다고 했죠? 아마도 그 고양이한테 당했을 가능성이 큰데... 혹시 모르니 포획틀을 빌려드릴게요. 포획해서 아주 멀리 보내는 게 앞으로도 좋을 겁니다.”
“예? ... 그래도 될까요?”
우리 동네에는 까만 대장고양이가 있다. 대장은 위풍당당했다. 이 동네 새끼냥이들은 대부분 대장의 후손들이어서 턱시도와 카오스 냥이가 많았다. 어느날 동생 가족이 방문했을 때, 주차장에 앉아서 차를 비켜주지 않고 지켜보던 대장의 기세와 품위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장은 뒷산에 살면서 우리 아파트 주차장 밥자리로 찾아와 배를 채우고 새끼들과 놀아주곤 하다가 한 달 정도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아마도 관리할 영역이 이곳만은 아닌 듯했다. 그 당당하고 노련한 대장을...일단은 포획틀을 받아 두었지만 포획을 감행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고양이 수색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비장한 결의로 수색은 계속되었다. 방과 후 아파트 중정에 집결해서 입구를 빠져나가는 일단의 아이들. 나는 수색대의 건승을 기원했다. 저 아이들의 선의와 모험이 해피 엔딩이기를... 더불어 5만원의 사례금도 저 아이들의 몫이기를... 하지만 이 사건의 끝은 어이없게 마무리 되었다.
일주일 되던 날 아침, 전화가 걸려 왔다. 한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찾으시는 고양이를 봤어요. 102동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네요.”
황급히 달려 나가니 우리 공동현관 앞에 주차한 차 밑에서 서성이고 있는 땅꼬.
“땅꼬야, 이리 와, 이리 와.”
땅꼬는 나를 확인하고 울 것 같은 얼굴로 달려왔다. 땅꼬를 안아 들고 아주머니에게 감사를 전했다. 사례금 5만원은 아주머니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짐작하고 있었다. 땅꼬는 발견된 것이 아니라 돌아왔다는 것을... 돌아와 문 앞에서 서성이는 땅꼬를 본 아주머니는 운이 좋았다.
고양이 수색대원들의 모험도 종료되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후회가 남는다. 수색대원들에게 회식을 위한 금일봉이라도 전할 걸. 경황이 없는 중이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내 얄팍한 속내를 탓할 밖에... 내 기억의 갈피에 고양이 수색대는 서울 변두리 동네에 피어난 한 송이 들꽃처럼 간직되어 있다. 지금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수색대원들의 어린 시절 추억의 한 갈피에도 땅꼬라는 이름의 삼색의 고양이가 새겨졌으리라. 그리고 한 고양이의 안녕을 지켜주려 결의했던 친구들과 자신의 선량한 동심과 연대감까지...
귀환한 땅꼬 몸 이곳 저곳에 앉은 딱지를 확인했다. 이전과 같은 패턴이었지만 조금 더 지체되었을 뿐이다. 땅꼬는 공격을 당한 후 은신해 있다가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온다. 이날 이후 몇 차례 크고 작은 실종에도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땅꼬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땅꼬의 역량에 대한 믿음은 굳건해졌고 땅꼬는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을 입증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베란다 한구석에는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포획틀이 남겨졌다. 어떻게 할까? 대장 고양이의 짓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 설혹 그렇다 치더라도 그건 고양이 세계의 일이고 질서 아닌가. 먹고 사는 중대사도 아닌 내 고양이 산책의 안전을 지키자고 용맹하고 지혜로운 고양이가 평생의 분투를 통해 일구어온 생존의 영역을 빼앗는 일은 온당한가? 하지만 대장 고양이가 있는 한 땅꼬와 나의 평화를 장담할 수 없을거야. 위험 요소... 예방적 차원이라고 해두면 어떨까? 너무 힘들게 겪어낸 실종 후유증으로 나는 진절머리가 나 있었던 것이다.
일단 함 시도해보자. 께름직한 가책을 짊어진 채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천을 덮은 포획틀을 차에 싣고 보는 눈이 없는지 살피면서 바로 옆 골목길을 올랐다. CCTV가 신경 쓰이던 그 날의 나는 딱 범죄자였다. 고양이들이 출몰하는 산책로 입구 야트막한 축대 위, 몇 년 전 겨울 내 손으로 만들어 놓아둔 고양이 집 옆에 포획틀을 설치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무슨 모순인가?
길고양이는 맛볼 수 없는 고급 습식사료를 미끼로 놓아두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동안 심장이 요동쳤다. 땅꼬의 실종 때처럼 이번엔 뒷산을 향한 베란다 창을 시도 때도 없이 염탐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뒷산 축대 밑 텃밭에서 한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살피면서 포획틀 근처를 맴돌고 있는 광경이 포착됐다. 혹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르며 뒷산에 올랐다. 얕은 축대 위에 놓였던 포획틀은 축대 밑에 떨어져 있었고 그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대장 고양이가 아니었다. 피투성이 된 얼굴에 사색이 된 아직 앳되보이는 카오스 냥이 한 마리. 임신 중이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으면 무거운 포획틀이 축대 밑으로 떨어졌을까. 포획틀을 열어주는 손이 덜덜 떨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중얼거리는 나를 공포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던 카오스는 마른 몸을 내달려 도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이왕 시작된 일 끝을 보자 싶어 다시 한번 미끼를 놓고 돌아왔다. 밤새 울부짖은 카오스 냥이의 비명소리가 아주머니를 이끌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혹시나 오래 고통받을 엄한 고양이가 걱정되어 2시간 간격으로 산을 올랐다. 철없는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미끼를 맛있게 먹고 난 후 생글거리며 풀려났지만 대장 고양이는 걸려들지 않았다. 대신 미끼 맛을 본 어린 냥이가 빈번하게 갖혔다 풀려났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괜히 대장이 아닌 것이다.
포획틀은 다시 베란다로 돌아왔다. 미안한 마음에 맛있는 사료를 들고 근처를 배회하다 카오스 냥이를 마주치곤 사과의 마음으로 멀직이 사료를 놓아주었다. 미안하다. 사과 할께. 무사히 몸을 풀고 안전하기를... 다행히 카오스 냥이는 출산 후 새끼들과 함께 골목 언저리를 오가며 살았고 그 후로도 대장고양이와의 사이에서 많은 새끼들을 낳았다.
대장 고양이는 어찌 되었느냐고? 그 일이 있고난 다음 해 겨울 무렵 대장 고양이는 은퇴했다. 주차장 캣맘의 정보에 따르면 대장은 15년을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쭈글쭈글해진 여윈 몸을 끌고 밥자리로 돌아와 지내다 사라졌다고 했다. 땅꼬는 대장한테 당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중정 놀이터의 밤, 밥자리로 향하던 대장과 산책 중인 땅꼬의 눈이 마주쳤지만 대장은 흘깃 시선을 던지고는 유유히 사라졌고 땅꼬도 평온했다. 현명한 대장은 땅꼬가 위협적인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 세계에서 우뚝 서서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패자의 권위를 누린 대장.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의 생에 도달하기 까지 그가 겪어냈을 역정을 상상해보곤 한다. 어떤 생명도 그렇게 살아내는 일은 간단치 않은 것이다.
내 고양이의 한갓진 산책을 위해 길냥이의 생존을 박탈하려는 얄팍한 이기심. 겨울이면 길고양이 집을 만들면서 포획틀을 설치하는 이중성. 집사가 된 후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부끄럽지도 않으냐?’ 대장냥이의 부릅 뜬 눈을 하고 베란다에서 날 노려보던 포획틀은 한 달 후, 고양이 탐정에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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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길냥이들과 영역을 공유하며 더불어 살려면 크고 작은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산책냥의 숙명이다. 그 숙명에 순종하면서 견뎌내는 우리의 비법은 믿고 기다리기. 사실 이 수칙을 먼저 실천한 건 땅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