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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자법칙
지금부터 이자법칙을 연구하려는데 다음 두 가지는 명심을 하여야 한다. 즉
첫째- 자본이 노동을 고용(雇傭)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자본을 고용한다.
둘째- 자본은 고정되어 있는 양이 아니라 (1) 노동을 대소 간에 자본생산에 투하함으로써 (2) 자본은 일정한 방법으로 적용한 부에 불과하며, 부는 보다 광의적이고 포괄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부를 자본으로 전환시키거나 혹은 자본을 부로 전환시킴으로써 항상 증감(增減)한다.
자유스러운 상태 하에서는 자본사용에 대하여 부여되는 최고상한은 자본이 초래하는 증가일 것이며 최저하한이나 혹은 0은 자본의 대체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상한점 이상인 경우에는 자본의 차용이란 손실을 의미할 것이며 하한점 이하가 되면 자본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고상한을 결정하는 것은, 무정견(無定見)한 일부 저술가들의 언명과 같이 자본을 특수한 형태나 사용으로 적응시키므로 노동에 부여하는 증가된 능률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본에 귀속되고 있는 평균적인 증가력이라는 것을 재삼 명심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익이 있는 형태로 자본 자체를 적용시키는 힘은 자본이 자본으로서 배당을 요구할 수 없는 일종의 노동력인 것이다. 화살과 활만 가지고 있으면 인디언은 매일 야우(野牛)를 죽일 수 있으나 장작과 돌만 가지고서는 일주일에 한 마리 잡는데도 곤란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서 부족의 무기제조가는 활과 화살의 사용에 대한 보상으로 살해된 야우 7두 중에서 야우 6두를 포수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방적공장에 투하된 자본으로 생산한 생산물과, 이 공장에 투하된 노동량과 같은 노동량으로 물레나 수제방적기를 사용하여 생산한 생산물과의 차액을 자본가가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을성이가 갑성으로부터 대패를 차용하였다는 사실만으로서는 목판을 조개껍질이나 수석(燧石)으로서 밋밋하게 할 때 얻는 노동능률과 목판을 대패를 사용하여서 반듯하게 함으로서 생기는 노동능률과의 차이 즉 노동능률의 증가에서 오는 이득을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식이 발달하므로 인하여 대패의 사용에서 오는 이득은 일반소유로 되었으며 노동력으로 되었다. 을성이가 갑성으로부터 획득한 것은 1년이라는 요소 때문에 대패와 같은 자본을 소유하므로 획득할 수 있었던 이익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요소에 이익을 부여하는 생동하는 자연력이 이자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면, 최고이자율은 생산에 사용되고 있는 자연력의 강도나 정도에 의하여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재생력(再生力)은 수없이 산란하는 연어와 수년간에 한 마리를 낳는 고래와의 사이나 토끼나 코끼리 간이나 엉컹퀴나 거대한 미국 적송 간과 같이 변화가 심하면서도 자연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아서 자연의 재생력과 파괴력(破壞力)은 균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증가의 원리가 결과적으로 일정한 점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균형에 대하여 인간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방해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자연조건을 수정함으로 자연에 있어서의 재생력의 강도를 임의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 한다면 인간의 광범위한 욕망으로 인하여 부를 증가시킬 때에 상이한 생명형태들이 자연에서 형성되고 있는 균등이나 균형과 유사한 균등과 균형을 가져오는 다른 원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균등은 가치(價値)를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다. 토끼사육에나 말사육 등 양면에 적합한 국가에서, 갑은 토끼를 사육하고 을은 말을 사육한다고 한다면 갑의 토끼는 자연의 한계가 도달될 때까지는 을의 말보다는 더 빨리 증가하는 것이나, 갑의 자본은 변동하는 증가율의 효과로 인하여 말과 비교한 토끼의 가치를 저하시키며 토끼와 비교한 말의 가치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빨리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생동하는 자연력의 변동하는 정도가 이렇게 하여 균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상이한 사회의 발전단계에 있어서는 부의 총생산에서 이러한 생산력이 가담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서 비례적인 상이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첫째로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부의 총생산에서 공업부분은 농업부분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것은 대부분 정치와 지리의 분야에서는 진리가 될 것이나, 산업계(産業界)에 있어서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계는 정치적 분계(分界)나 대양이나 산맥에 의하여서 제한을 받지 않고 교환정도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 산업경제에서 농업과 주식(株式)조달이 공업에 대해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아이오와, 일리노이와 균형이 되며,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와 균형이 되며, 캐나다와 인도와 균형이 되고, 퀸즈랜드와 발틱 지방과 균형이 되는 것으로서, 한마디로 한다면 영국의 세계적인 교환이 미치고 있는 각국과 균형된다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문명이 발달하는데 따라서 농업에 비하여 공업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자연의 재생력에 비교적 적게 의존을 하게 된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교환의 이와 상당한 확대를 수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교환의 확대는 막중한 증가력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경향은 대부분 완전하게 균형되는 것이며, 평균적인 자본증가 즉 정상적인 임금률을 고정시키는 균형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수익에 대한 필연적 최고액과 필연적 최저액 간에 존재하는 이자의 정상점(定常點)은 어디에서 결정되던 간에 모든 사정(안정감이나 축적욕망 등)을 고려한다면, 자본보상과 노동보상이 균등한 점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환언하면 노력이나 희생에 대하여서는 동등하게 구체적이고 만족한 결과를 부여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은 관습적으로 양으로 측정되는 것이며 이자는 비율로서 측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을 공식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나 부의 일정량이 일정한 시간에 자본의 일정량과 협업을 하면서 일정한 노동량의 생산물이 된다는 것을 상상한다면 노동과 자본으로 구분되는 비례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자율이 결정되어야 하는 일정한 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균형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노동이 자본의 사용을 용납하지 않거나 자본은 노동이 사용하도록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은 인간노력이라는 같은 사물에 대한 상이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자본은 노동이 생산하는 것이나, 석탄에 저장된 태양열이 난로에서 발산되는 것같이, 물질에 압축(壓縮)된 노동 즉 물질에 축적(蓄積)된 노동이 요구하는 대로 재발산(再發散)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에 있어서의 자본사용은 노동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자본은 소비됨으로써만 사용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자본사용은 노동의 지출이 되는 것이며, 자본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노동이 하는 자본의 생산은 노동을 보조하는데 있어서의 자본소비와 상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경쟁 하에서는 임금을 공통적인 표준으로 되게 하며 이윤을 실질적인 균형이 되게 하는 원리가 작용한다. 즉 인간은 최소의 노력으로 욕망을 충족하려는 원리는 임금과 이자 간에 이러한 균형을 설정하며 유지하기 위하여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와 임금 간의 이러한 관계 즉 동일한 노력에 대하여 동일한 보상을 표시하는 이러한 균형은 반대관계를 시사하는 형태로서 언급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다만 외견상의 반대에 불과한 것이다. 이씨와 박씨의 공동경제에 있어서 이씨가 이윤의 일정비례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박씨의 이윤부분은 이씨의 부분이 크고 적음에 따라서 적어지거나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와 같이 각자는 다만 공동기금(共同基金)에 첨가(添加)되는 것만을 취득한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부분이 증가하였다고 하여서 다른 사람의 수취분(受取分)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결정된다면 이자와 임금은 함께 상하(上下)하는 것과 이자는 임금의 증가없이는 증가되지 않는 것이며, 이자가 하락하지 않는다면 임금도 하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임금이 하락하는 경우에 이자도 비례적으로 하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가 않다면 노동을 직접 투하하는 것보다는 노동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보다 유리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자가 하락한다면 임금도 비례해서 하락하여야 하는 것이니 그렇지가 않다면 자본의 증가가 저지될 것이다.
임금이나 이자를 말하는 경우에, 특정임금이나 특정이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임금률과 일반적인 이자율을 말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이자는 자본이 획득한 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험이나 감독자임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경우나 혹은 특정한 고용에 있어서는 임금과 이자가 균형이 되려는 경향은 저지당하는 것이나, 일반적인 임금률이나 일반적인 이자율에 있어서는 이런 균형경향은 항상 작용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특수한 생산분야에 있어서는,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과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 간에 명백한 선을 그을 수 있지마는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회에 있어서도, 이 두 계급은 서로 명백하게 의식되지 않으면서 혼합(混合)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두 계급이 동일한 사람들로 형성되고 있는 극단적인 경우에 있어서 균형을 회복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방해를 방지하고 있는 상호작용은(노동의 구별이 완전한 곳에서는 장애물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장애를 받지 않고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 언급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자본이란 부의 일부분이며, 적용되고 있는 목적에 의하여서만 일반적으로 부로부터 구분되었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노동과의 관계에 대하여서 전체의 부는 속도조정 바퀴가 기계운동에 대한 것과 같은 균등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보석상인이 보석재고량이 극히 풍족할 때에는 자기부인에게 금강석을 주겠지만 재고량이 감소될 때에는 부인에게서 반지를 찾아서 진열장에다 장식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자가 임금과의 균형점 이상으로 상승하려는 경향도 동일한 방법으로 자본의 생산으로부터 노동을 전환시키는 경향뿐만 아니라, 자본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의 부를 생산적인 사용으로부터 비생산적인 사용으로 전환시키므로 자본을 비례적으로 감소시키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상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즉 임금과 이자 간에는 일정한 관계 즉 비율이 있다는 것, 그런데 이 관계 즉 비율은 절대로 영구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완만하게 변하는 원인에 의하여서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이 점에서 노동은 자본을 공급하기 위하여 자본으로 전환이 된다는 것, 그 자본은 지식정도나 기술상태나 인구의 조밀도나 직업의 성격이나 교환의 변화 정도 속도 등으로 보아서 생산하는데 있어서 요구된다는 것, 그리고 노동과 자본의 상호관계는 이러한 관계 즉 비율을 계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 그리하여 이자의 상승과 하락은 임금의 상승과 하락과 동등하다는 것이다.
이상을 예증한다면 다음과 같다. 밀가루의 가격은 밀가격과 제분비에 의하여서 결정되는 것인데, 제분비는 완만하게 극소부분만이 변화할 뿐이어서 장기간을 관찰하더라도 거의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인데 반하여 밀가격은 아주 광범위하게 변동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밀가루의 가격은 밀가격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명제를 전술한 것 같은 형태로 한다면 다음과 같다. 밀가치와 밀가루의 가치 간에는 일정한 관계 즉 비율이 있는데 제분비에 의하여서도 결정된다는 것이며, 또한 밀가루에 대한 수요와 밀에 대한 공급 간의 상호작용이 이 관계 즉 비율을 계속적으로 유지하여서 밀가루의 가격은 밀가격과 같이 오르며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추리하기 위하여서 밀가격이라는 관련점(關聯點)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밀가루가격은 계절의 양호(良好), 전쟁 등에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같이, 일반이자율은 자본이 자유스럽게 투하될 수 있는 최열등지의 자본수익 환언하면 지대를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최우수지의 자본에 대한 보상에 의하여서 일반이자율이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자법칙은 지대법칙과 더불어 밀가루 가격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형태로 형성할 수 있다. 이자법칙은 지대법칙의 계측(系則)이 되는 형태로 작성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결론을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임금이 제거되는 경우 이자는 지대가 증가하는데 따라서 감소되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법을 사용하려면 우주가 전혀 상이한 원리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상하여야 한다. 그러니 또한 칼라일의 바보의 천국(天國)도 상상하여야 한다. 거기서는 부의 생산이 노동의 보조없이 순전히 자본의 재생력에 의해서만 계속되고 있다. 양들은 기성복을 입고 있으며, 암소는 버터나 치즈를 제공하고 있으며, 황소들은 적당하게 비만해지기만 하면 비프스테이크나 요리된 갈비로 절제(切除)되며, 가옥은 파종을 하여서 자라나는 것이며, 땅에 떨어진 과도는 뿌리가 박히어서는 적당한 시기가 지난 후에 여러 가지 칼이 수확된다는 것이다. 몇 사람의 자본가가 독점형태의 자본을 가지고서 그러한 장소에 이동하였다고 상상하여 보자. 이 자본가들은 생산물이 지대로 요구되지 않는 한 생산된 부의 전량을 자본에 대한 수익으로서 취득할 것임은 명백하다. 지대가 발생한다면 자본생산물에서 발생할 것이며, 또한 지대가 증가한다면 자본소유자의 수익은 필연적으로 감소될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섬과 같이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노동의 보조없이 자본이 부를 생산하는 생산력을 소유하고 있는 장소를 생각해 보자. 섬이 자본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까지 자본이 증가하자마자 자본에 대한 수익은 상각(償却)할 수 있는 정도의 최저점을 간신히 초과하기까지 하락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자본가가 자본을 바다에 투입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주는 전 생산을 지대로 취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섬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경우 자본에 대한 수익은 다른 지역에서의 수익률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자는 다른 지역보다 높거나 낮지 않을 것이다. 지대는 막대한 이익의 전부를 취득할 것이며 이 섬의 토지는 대단한 가치를 소유할 것이다.
이자법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과 이자와의 관계는 재생형태로 사용할 때의 자본의 속성인 평균적인 증가에 의하여서 결정되는 것이다. 지대가 증가하는데 따라서 이자는 임금과 같이 하락하는 것이다. 즉 경경(耕境)에 의하여서 결정되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검토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연구의 필요성 이상으로 현재용어와 사고형태를 검토하면서 이자법칙을 연구하며 설명해보고자 노력하였다. 분배에 있어서 실제로 부의 제일차적인 구분이 3분 된 것이 아니라 2분 된 것이다. 자본은 노동의 일(一) 형태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과 자본과의 구분은 노동의 구분이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으로 구분되는 것과 같이 실제에 있어서는 재분(再分)됨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검토로서 우리는 자본이 노동의 일 형태에 불과하며 생산물을 지대와 임금으로 구분하고 있는 법칙 환언한다면 두 요소의 소유자를 자연적 물질 및 자연력과 인간노력으로 구분하는 법칙을 발견하려고만 한다면 도달할 수 있는 지점과 같은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되기만 하면 모든 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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