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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그룹
2010.08.20
내가 스쳐 본 앙드레 김
지난 12일 앙드레 김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나는 그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하얀 넥타이를 매고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복장도 검은 색 대신 평상복 차림으로 하리라고 미리 작정을 한 터였습니다. 그런 차림으로 문상을 가기는 나 역시 처음이었으나 왠지 고인이 좋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앙드레 김의 브랜드 색깔은 흰색입니다. 그의 흰색에 대한 집착은 한국의 ‘불가항력’ 중의 하나였습니다. ‘검정색 예복차림으로 문상하는 앙드레 김을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는 흰색을 자기의 색깔로 선택한 것에 대해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에서 영감을 찾았다고 했더군요.그의 패션쇼의 메인 색조는 언제나 흰색이었고,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흰 꽃가루 같은 것이 흩날렸습니다. 그가 가고 난 지금 나는 흰색과 흩날림이 모두 눈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나는 대개의 사람들처럼 앙드레 김을 이름과 사진, 그리고 세간에 떠돌던 아리송한 루머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서울경제신문 사장을 맡으면서 신문사가 주최한 문화예술행사와 다른 행사장에서 그를 대면할 기회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문화예술행사는 물론 웬만한 문화예술 전시공연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관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그의 관람 자세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무대의 맨 앞줄 중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대의 열기를 가장 가까이에서,온 몸으로 느끼고자 하는 열망 때문일 것으로 생각됐습니다.앙드레 김 정도의 유명인사라면 공연 주최 측에선 모셔다가 앉힐 수 있으면 영광입니다. 그래서 주최 측이 티켓을 보내 초청을 합니다만 그는 무료 티켓은 절대 사절이었습니다. 게다가 자기 혼자만 오는 경우가 없이 자신의 주요 고객들에게 구매한 티켓을 보내 동반관람하기를 좋아했습니다.미술전람회나 미인선발대회 같이 미를 소재로 하는 행사에는 주제에 맞춰 패션쇼를 열기도 했습니다. 거액이 들어가는 그런 행사의 경비는 자기가 댔습니다. 국내의 열악한 공연전시 환경 속에서 그의 후원은 문화예술 행사를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요란했던 옷로비 국회청문회가 유일하게 밝혀낸 것은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우스개가 있었습니다. 그를 청문회 증인으로 불러낸 것은 정치인들의 폭거였으나 그 덕분에 사업이 더 번창했다고 받아넘기는 여유가 있었습니다.그가 앙드레라는 프랑스 식 예명을 택했을 때부터 그의 시선은 해외를 향했다고 하겠지요. 젊어서는 구미 쪽에, 만년 들어서는 중국과 동남아시 쪽의 한국 패션시장을 개척하기위해 애를 썼지요. 그의 시장감각도 예술감각 못지않게 탁월했습니다.국내에서 그의 주 고객은 연예인과 외교관이었습니다. 그의 패션쇼는 연기자들에겐 등용문이었고, 주한 외교관들에게는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이 융합된 패션의 세계를 만나는 창구였습니다.그는 연기자라고 아무나 자신의 패션쇼에 등장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스캔들의 연기자나 노출이 심한 연기자는 멀리했습니다. 사금융이나 담배 등의 디자인을 하지 않은 것과 맥이 같습니다.그는 디자인을 특수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특허청에 등록된 앙드레 김 상표만도 화장품 의류 도자기 보석 가전제품 등 17건, 전체 브랜드의 매출액이 1,000억원 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천의 한 고속버스 기사들의 제복을 디자인해 주기도 했습니다.앙드레 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영어구사력입니다. 그의 영어는 많은 코미디언들에 의해 패러디됐듯이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했습니다. 몇 개의 키워드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그의 영어는 아름다움을 설명하기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영어라 한들 그의 영어보다 예술적이진 않았을 것입니다.그의 영어를 '40-word-speech'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는 당당했고, 외국인들은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가장 경제적인 영어로 가장 아름다운 외교를 펼친 민간 외교관이었습니다. ‘국가적인 손실‘이라는 말에 내가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는 앙드레 김의 죽음입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