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사구게 해설 2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基心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그 다음 두 번째 사구게 장엄정토분에 있는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라고 했는데 응당히 어떤 사물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고 또 소리 향기 맛 촉감 법 이런데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고 응당히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그렇게 했어요.
육조 혜능 스님이 가난한 집의 출신으로 낫놓고 기역도 모르는 나무장사였는데 나무 팔러 어느 여관집에 나무를 져다 주고 나오는데 여관 방에서 이 금강경 소리를 듣게 됩니다.
마침 이 대목을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이대목을 듣고는 그냥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게 뭐 견성인지 깨달음인지그것도 전혀 모르고 그런 명자를 부칠 그런 지식도 준비 되어 있지 않은 그런 상태인데 깨달았어요
지식이 있고 없고는 깨닫는 것하고는 관계없는 거죠. 뭐 이런 용어를 잘 안다고 해서 깨닫는 게 가까운 것도 아니고 용어를 모른다고 해서 깨달음의 조건이 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만은 어쨌든 육조 혜능스님은 그렇게 이 말씀에서 그만 깨달았습니다.
이건 이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 자유로운 것입니다. 어디에도 머물 것이 아니고 어디에도 집착할 것이 아니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의 어떤 아집과 욕심과 내 나름의 잣대와 내 나름의 가치관과 내 나름의 판단, 내 나름의 만들어놓은 틀 이런 것 때문에 집착을 한다고요. 우리 마음은 그렇게 머물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 됨됨이가 본래 그런 거예요.
그런데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집착합니까? 내 마음에 들거나 내 마음에 무슨 깊은 관계가 있거나 그러면 그만 집착하고 거기에 눌러앉고 눌러붙고 그럽니다.
이게 인간사에요. 그래서 이 대목에 보면은 '불응주색생심' 어떤 사물에도 마음에 머물지 말고 마
음을 써라. 또 '성향미촉법' 그 어디에도 머물지말고 마음을 내라.
마음을 내서 분별하고 활용을 하되 거기에 머물지 말고 눌러 앉지 말고 그렇게 마음을 써야 제대로 쓰는 거죠. 딱 집착하고 눌러앉아서 마음을 쓰면 온전한 용심이 안 되죠.
그리고 우리가 내 자신에게는 정말 아무리 올바른 판단을 하려고 해도 올바른 판단이 안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애착심 때문이지요. 근데 남의 집 일은 정말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잘 판단하죠.
그게 남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내 일은 그렇게 판단 못합니다.
그게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어디에 머물지 말고 나다, 남이다 하는 데에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면은 정말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그렇게 이제 마음을 쓸 수 있을 텐데 그렇지못하니까
그래서 금강경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 어디에도 절대로 머물지 말고 '응'자가 응당히 꼭, 절대로, 이런 뜻이죠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머물지 않게 되어있는 마음이 머무니까 우리의 인연관계 때문에 머물게 되니까 그래서 거기에 온갖 고통이 따르고 정확하지 못한 판단이 거기에 따르게 되고 그렇게 되는거지요.
제2사구게는 또 우리 마음의 마음 됨됨이는 그렇게 되어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마음 됨됨이대로 활용을 못하니까 그 점을 또 꼬집어서 확연하게 경전에서 설명하고 있으니까 그 참 대단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구게든 저 사구게든 하나만 제대로 지녀도, 이해를 해도 금강경 전편을 다 공부하는 그런 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