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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24일 / 고난주일 밤 예배 설교 +
+ 제 목 :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찬양으로 영접하라!”
+ 본 문 : 누가복음 19장 28절 - 40절 (신약성경 128쪽)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역입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1년 교회 절기 중, 가장 은혜로운 절기가 고난 주간과 부활절 기간입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안타까운 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그런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으레히 맞는 행사로, 습관처럼 맞이하고 보내고 맙니다.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십자가 순교자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간 이민아목사님! - 이민아목사의 아버지인,
이어령박사는 말했습니다.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졌고 부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적의 축복을 받고도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찬송도 없습니다.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종려 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은 구원자요. 만왕의 왕이라!” 는 찬양으로 고백하였던 일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종려주일은 고난 주간과 그 분위기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예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참예하여 죄 사함을 받는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종려주일에 제자들처럼, 주님을 향한 뜨거운 환영과 찬양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여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의 부활에 참예하여 영생을 얻기를 바랍니다.
사실 종려주일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대단히 초라한 입성이었습니다.
찬양은 구원자 예수님께서 받으실 찬양이었지만, 정작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안장도 카펫도 없어 제자들의 겉옷을 깔았습니다. 왕의 행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다 예수님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행렬을 노려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바리새인들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제자들을 조용히 시키라.” 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아주 강하게 책망하시면서,
아주 충격적인 표현을 쓰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아멘!
예수님께서 그렇게 반응하신 것은, 이런 믿음이 아니고서는 앞으로 닥칠 십자가 고난을 통과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셨지만, 마음은 울고 계셨습니다.
그 날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으로 인함이라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미리 내다보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민족, 모든 열방의 문제들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시면서 통곡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예수님께서는 지금 인류 구속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사람들이 지금 환영하고 찬양한다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잡히시고 죽으심으로 다 도망갈 만큼, 무서운 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서는 주님을 뜨겁게 찬양하며 진심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십자가 고난의 시련을 지나 부활의 주님을 뵙는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먼저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고전 15:6)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도 따라가고, 부활의 주님도 따라갈 수 있는 마음에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고, 환영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도 유별나게 믿습니다. 딱 봐도 예수쟁이로 표시가 나게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믿습니까? 유별나게! 딱 봐도 예수쟁이로 표시가 나게 확실하게 믿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심지어 교회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어도,
유별나게 믿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딱 봐도 예수쟁이로 표시가 나게 확실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지는 시험의 때가 올 것입니다. 고난의 때만 아니라 일이 잘 될 때도,
신앙적으로는 더 위기의 때가 옵니다. 여러분은 어떤 순간에도 주 예수님을 붙잡으실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0장 37절 - 38절 말씀을 보면, 예수 믿는 우리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을 읽고 숨이 탁 막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로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까?그런데 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 이 말씀 앞에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멘 하시지 마십시오. 부모보다, 자식보다 하나님 더 사랑하다가 순교하라는,
말씀입니다. 집안 식구와 원수가 되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아멘입니까?
이 말씀이 진실로 이해가 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예수님의 고난을 진짜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의 가장 극적인 말씀은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칩니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칼로 찔러 죽여서 하나님께 재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브라함만 아닙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처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그 모리아 산이, 바로 골고다 언덕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을 모든 죄와 허물에서 구원하시려고! 사망과 저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부모와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살다가,
순교하라는 말씀에 순교도 합니다. 집안 식구와 원수가 되더라도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원자력의 전문가요. 과학기술부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했던 정근모장로,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조기입학하여 졸업하고, 미국 풀로리다대학의 학생보다 더 어린 꼬마교수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교만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그런 그가 10살 된 아들이 죽을 병이 들었을 때에, 병을 간호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네 아들 때문에 감사해라.” - 그에게 아들의 고난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예수 믿지 않을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고 죽으신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분이시다.
내가 위대한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 된 것이 더 위대한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의 고난도 넉넉히 이기고, 부활의 주님을 만날 사람은 마음 자세부터 다릅니다.
우리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만 말씀합니다. “네 마음만 다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뜨겁게 환영하였던 사람들과 제자들처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뜨겁게 환영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만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매는 형편에서, 구원받는 길이고 살 길입니다.
제자들은 어린 양이고 마귀는 이리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무슨 수로 마귀를 이기겠습니까?
오직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만이 마귀를 이기는 길입니다. 그래서 주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지식에! 돈에! 명예에! 권력에! 사람에게 두셨습니까?
엉뚱한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 되지 마십시오.
끔찍한 것, 더러운 것, 심히 악한 것이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지 않도록 성령 충만으로 채우십시오.
우리가 받는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우리가 성령 받은 것이요.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고, 예배와 섬기는 삶도 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내 안에 영접한 예수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 신약학 교수 한 분이, 예배시간에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른 적이 없답니다.
강의할 때면 그처럼 말을 유창하게 하던 분이, 찬송 시간만 되면 입이 철문만큼 굳게 잠긴답니다. 그런데 어느 예배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 교수님이 큰소리로 찬송을 부릅니다.
예배 후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꿈에 천국을 갔는데, 그 곳에서 천사가,
자기에게 천국에는 신학 잘하는 사람은 필요 없소. 우리 천국에는 찬송하는 사람이 필요하오.”
우리도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항상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느혜미야 8장 10절 말씀이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안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환영하고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하시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써 주시옵소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의 주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뜨겁게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과 마음으로 종려주일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부터 고난주간 한 주간 동안의 특별새벽기도에 참예하십시오.
고난주간의 특별 금요기도회에 참예하십시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교회에 들려 기도하십시오.
특별히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금식기도를 하고, 미디어 금식기도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 스마트폰, 인터넷, 신문, 방송 등, 모든 미디어를 일절 끊는 것이 미디어 금식기도입니다.
24시간, 아니면 12시간이라도 작정하여 모두 끊고,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고 주님을 만나십시오.
이렇게 맞이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죄 사함 받습니다. 구원받습니다.
영생 얻습니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치유됩니다. 복을 받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복음의 능력을 가진 성도가 되어, 불신 영혼들을 건져내는 복음 전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은 고통스러운 주간이 아니라, 주님과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는,
가장 은혜로운 주간,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하늘의 은혜와 사랑, 땅의 모든 축복을 받으시고,
무엇보다도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의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잠시 침묵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