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한(안재모)의 당당함에 매료된 종로2가 야시장의 왕초 쌍칼(박준규)은 자신 밑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두한은 자신은 만주에 가서 독립군이 될 거라며 주먹패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쌍칼은 자신들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는 거리의 독립군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쌍칼을 만나고 나온 두한은 한 중국인을 찾아가 밀선을 통해 만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중국인은 일본인들의 경비가 삼엄해서 어렵다고 도리질한다. 두한은 생각 끝에 최동열(정동환) 기자를 찾아가지만 역시 어려운 만주 사정을 전하며 경성에서 일자리를 마련한 후 천천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만주 갈 생각을 일단 접은 두한은 쌍칼을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한다. 두한을 데리고 종로 야시장을 돌던 쌍칼이 일본인들이 종로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자신들이 지키고 있어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고 설명하자 두한은 감동을 받는다.
하야시패의 중간 보스 한 명이 구마적(이원종)을 찾아가 종로와 혼마찌의 장래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는 하야시(이창훈)의 생각을 전한다. 구마적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들은 하야시는 자신들도 종로에 사업장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쌍칼과 신마적이 자신들의 일을 방해할까봐 걱정한다.
한편 쌍칼을 따라 명월관에 간 두한은 기생 설향(허영란)을 만나게 되는데….
# 1 쌍칼의 사무실 안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쌍칼이 계속 웃고 있다. 김영태도 보고 있다.
쌍칼 이리 와서 앉아라.
그러자 두한이 박힌 칼 밑에서 빠져 나와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쌍칼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사이) 어디서 왔어?
두한 ...............?
쌍칼 (사이) 이름은 뭔가?
두한 김두한입니다.
쌍칼 (미소 지으며 담배를 문다)...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두한 ...지금 알았습니다.
쌍칼 지금...? 하하하... 좋아, 헌데 왜 나의 아우들을 때렸냐?
두한 때린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싸운 겁니다.
쌍칼 (미소) 그래? 하지만 내 아우들이 많이 다쳤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두한 .......아직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쌍칼 그 정도 생각도 안 해보고 여길 왔단 말이야? 응?
두한 분명한 것은 아저씨의 부하들이 나쁜 짓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쌍칼 뭐... 아저씨?
하다가 그만 쌍칼은 폭소를 터뜨린다. 김영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한은 그렇게 보고 있다.
쌍칼 보아하니 너 아주 순둥이구나, 아직 어린아이야.
두한 나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쌍칼 (계속 웃으며) 허허허, 그래, 그래도 어린아이라는 말은 싫어하는구나, 응? 좋다, 피차 어찌했으면 좋겠냐? 너는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 아우들도 다치게 했고 말이야. 어쩔래? 여기를 무사히 나가려면 그만한 대답을 해야 한다. 뭘로 어떻게 할거야?
두한 ......당신을...이기면 되는 겁니까?
쌍칼 (싸늘해지며) ......뭐?
두한 ...........
쌍칼 지금 뭐라고 그랬어? 당신...?
두한 아저씨라는 말이 싫다면 당신이라는 말 밖에 없지 않습니까?
쌍칼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나하고 한 번 붙어보겠다 이건가? 이 쌍칼하고...?
두한 네......!
쌍칼의 싸늘한 눈빛이 두한을 쏘아보고 있다. 그러나 두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쌍칼과 마주 보고 있다. 김영태도 웃음을 거둔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 1-1 그 밖
양코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제 자리를 맴돌고 정진영은 침착하게 쌍칼의 사무실을 올려다보고 있다.
양코 쌍칼한테 걸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발목 하나는 부러져서 나올 거야. 아니...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정진영 ..............
양코 진영아... 지금이라도 우리가 쫓아가서 빌어보자.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말이야.
정진영 제발 설레발 좀 그만 치고 잠자코 있어. 두한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
양코 가만있지 않음? 대들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천하에 싸움꾼들 하구......? 너 완전히 돌았구나.
정진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 사무실 창 쪽을 노려본다.
# 1-2 다시 그 안
쌍칼 다시 말해 보아라. 나하고 싸우겠다고 했나?
두한 물론 당신이 칼을 들면 저는 죽습니다. 하지만 그냥 죽기보다는 싸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칼을 들지 않으신다면.... 싸워 보겠습니다.
쌍칼 ......그래?
두한 .......네.
쌍칼 (한참 보다가 미소) 좋다. 맞는 말이다. 가장 비겁한 것이 싸워보지도 않고 무릎을 꿇어 버리는 것이야. 그러나, 나와 너는 너무나 차이가 많다. 맞장을 붙기에는 말이다. 어른이라는 말은 아느냐?
두한 네....
쌍칼이 그런 두한을 뚫어져라 보다가 갑자기 또 크게 웃어제낀다. 그러나 두한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옆에 앉아있던 김영태도 미소를 짓는다.
쌍칼 너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두한이라고 그랬냐? 김두한?
두한 ..........?
쌍칼 영태가 잘 봤어. 무옥이하고 영철이가 맞을 만 했어.
두한 ..........?
쌍칼 근데 말이야, 너 배짱도 좋고 주먹도 좀 쓰는 것 같은데... 세상 물정을 그렇게 몰라서야 어디에 쓰겠어?
두한 ..........?
쌍칼 (안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내 탁자에 놓으며) 가져가! 다음부터는 털보 같은 놈한테 속지 말고..
두한 이게 뭡니까...?
쌍칼 니 돈이야. 털보 대신 갚아 주는 거야.
두한 ..........?
쌍칼 이봐, 영태.
김영태 예, 형님.
쌍칼 내가 낮술은 안 하지만 오늘은 좀 마셔야겠다. 종로 회관에 자리 하나 봐놓으라고 그래.
김영태 예, 형님..
쌍칼 두한이 너 술 마실 줄 알지?
두한 ......못 마십니다.
쌍칼 허허, 이런... 이런.... 이거 정말 순댕이네 이거...? 가자.
두한 예....?
쌍칼 가자구?
두한 아, 예...
그 어린애 같은 모습에 쌍칼은 또 다시 폭소를 터뜨린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 2 그 사무실 밖 길
두한과 쌍칼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들 뒤로 쌍칼의 수하들이 병풍처럼 함께 가고 있다. 그렇게 지나쳐 가면 근처 골목길에서 진영과 양코들이 보며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양코 다들 같이 나왔어. 어디로 가는 거지? 저기 종로 회관으로 가잖아?
정진영 조금만 더 기다려봐.
양코 근데 저 쌍칼은 웃고 있잖아?
정진영 ........?
초조한 표정으로 그렇게 들 보면 그들은 종로 회관으로 들어들 간다.
# 3 그 안 어느 방
두한과 쌍칼이 마주한 테이블에는 맥주와 안주가 놓여 있다. 쌍칼이 맥주병을 집어든다.
쌍칼 자 한 잔 받아라..
두한 ....난 술을 못 마신다고 했습니다.
쌍칼 ....? 정말이야? 짜식... 보기보다 쑥맥이구나. 그래두 형님이 한 잔 주는 거는 받는 거다. 어서..
두한이 잔을 든다. 쌍칼이 미소 지으며 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라 준다.
쌍칼 마셔..그리구 나두 한 잔 줘야지..
두한이 단숨에 술잔을 벌컥벌컥 비운다. 그리고 쌍칼에게 잔을 건네고 맥주를 따른다. 쌍칼 역시 단숨에 잔을 비운다.
쌍칼 근데 너 싸움은 어디서 배웠냐?
두한 ........?
쌍칼 어디서 놀았냐구?
두한 ...혼자서... 운동만 했습니다.
쌍칼 (굳어지며) 정말이야? 난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
두한 정말입니다.
쌍칼 ....그래?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걸.. 실전 경험도 없이 혼자서 운동만 한 녀석이 싸움판에서 잔뼈가 굵은 무옥이와 영철이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이지...
두한 ..........
쌍칼 운동과 싸움은 달라.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진짜 싸움꾼에는 당하지를 못하지. 넌 내가 보기에 싸움꾼이야.
두한 ..........
쌍칼 고향은 어디냐?
두한 경성입니다.
쌍칼 경성이야? 집은...?
두한 ......없습니다.
쌍칼 없어...? (보다가) 좋아. 그만 하자. 하긴, 이 종로통이나 경성에 사연 없는 놈이 어디 있겠나? 세상이 이 지경인데 말이야. 당분간 내 밑에서 일하도록 해라.
두한 .........
쌍칼 왜 대답이 없어?
두한 주먹패가 되라는 말입니까?
쌍칼 왜, 싫어?
두한 ...전 할 일이 있습니다.
쌍칼 만주에 가는 거 말이냐?
두한 ........?
쌍칼 털보에게 중국으로 가는 밀선을 부탁했다고 들었다. 헌데, 만주에는 뭣 때문에 가려고 하는 거냐? 돈 벌러 가려고 그러냐? 설마 독립군이 되려고 가는 건 아니겠고...
두한 맞습니다.
쌍칼 ......뭐?
두한 만주에 가서 독립군이 될 겁니다.
쌍칼 ..(한참 보다가)..하하하, 너 정말 재밌는 아이구나. 응? 독립군이 되겠다. 만주에 가서...?
두한 ......애 웃으십니까?
쌍칼 좋아, 좋아. 독립이란 좋은 말이지. 하지만 말이다, 두한아.. 독립군은 만주에만 있는 게 아니야.
두한 ........
쌍칼 우리가 너 보기에는 그저 무식한 주먹쟁이들로만 보인 모양이로구나.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 총을 들고 싸우는 독립군도 있지만, 우린 주먹을 쓰는 거리의 독립군이다.
두한 ........?
쌍칼 왜놈들로부터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는 거리의 독립군이란 말이다. 거리의 독립군. 알았냐? 하하하하..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런 정신만 있다면 독립 운동은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거야.
두한 .........?
쌍칼 자, 마셔라. 일단 쭉 한잔 마셔봐.
두한 예..
그렇게 또 단숨에 들이키는 두한의 모습에서...
# 4 동 밖
여전히 정진영과 양코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두한이 술에 취해 약간 비틀거리며 나온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쓴다. 진영들이 다가 간다. 두한의 눈에는 그들이 술이 취해 겹쳐 보이며 빙빙 돈다.
양코 두한아...?
두한 (취해서)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여기 언제 왔어?
정진영 궁금해서 뒤 따라 왔어. 어떻게 된 거야? 얘기는 잘 됐어?
두한 (끄덕이며).......
정진영 너 술 마셨냐?
두한 응, 조금.. 취하는 것 같아. 어지러워. 취해....
그렇게 두어 발자국 걷다가 두한은 그냥 스러진다. 그런 두한을 그들이 받으며 부축한다.
정진영 두한아, 왜 이래 정신 차려.
두한 취해, 너무 취해.... 너....무....
양코 힛히히히히.....그예 너두 술이 뭔지를 아는구나....좋지? 술 마시니까 정말 좋지? 기분이 어때?
두한 좋은 것 같애.
양코 야호. 술친구 하나 생겼다. 그래, 술은 좋은 것이더라구. 기분이 그만이야. 그렇지 두한아? 나도 그랬어. 한 잔 들어갈 때마다 기가 막히더라구. 너도 그랬냐? 너도 그랬어?
두한 응...
정진영 그만해. 자, 어서 가자. 두한이가 많이 취한 것 같다. 자, 어서....
그들 그렇게 두한을 부축해 간다.
# 5 다시 종로 회관 안
김영태가 쌍칼에게 술을 따르고 있다.
김영태 어떠셨습니까?
쌍칼 기분이 좋구만. 간만에 사내다운 녀석을 만났어.
김영태 그런데 왜 그냥 보내셨습니까?
쌍칼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잡을 필요까지는 없잖아?
김영태 ............
쌍칼 애들 퇴원은 언제쯤 하지?
김영태 무옥이랑 영철이 말씀이십니까? 의사가 한 일주일은 입원하라고 했는데, 곧 나올 겝니다. 그 아이들 성격에 오래 못 있거든요.
# 6 병원 외경
김무옥 (E)뭣이여? 쌍칼 성님이 그 자식하고 술을 마셨다고?
# 7 병실 안
김무옥과 문영철이 갑갑한 듯 병상에 걸터앉아 있다. 삼수가 와 있다.
김무옥 그것이 뭔 말이여? 아, 싸게 싸게 말해보드라고. 어디서 어떻게 마셨냐?
삼수 종로 회관에서 맥주를 드셨다니까요.
김무옥 뭐여? 맥주야?
삼수 형님과 그 녀석이 함께 술을 마시고 뭔가 얘기를 하시는 것 같더니 두한인가 뭔가 하는 놈을 그냥 보내시더라구요.
김무옥 그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여?
문영철 글세... 뭔가 이유가 있으셨겠지..
털보 ...........?
김무옥 그래도 그렇지. 그 놈이 어떻게 무사히 나왔단 말이여? 야그가 안되지 않는가벼.
# 8 거지촌 외경(늦은 저녁)
# 9 동 정진영의 방안
두한과 양코, 정진영이 함께 있다. 정진영이 찬물을 먹여 준다. 벌컥벌컥 마시는 두한, 아직도 그냥 취해 있다.
정진영 쌍칼이 술까지 사주고 보냈다는 것은 기적이다. 기적이야.
두한 (취해) 응....괜찮은 사람..같았어.
정진영 그건 그래. 쌍칼 그 사람이 무섭기는 하지만, 시장 사람들은 다들 좋아한다구.
두한 아무튼... 이제 다시 만주로 갈 수 있게..됐어. 나는 갈 거야.
양코 하지만, 만주는 어렵다고 하잖아?.... 아쉽다. 쌍칼의 부하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정진영 그렇지 않아. 독립군 대장의 아들이 거리의 주먹패가 될 수는 없는 거잖아? 잘했어, 두한아.
양코 무슨 소리야? 들어 온 복을 찬 거라구. 쌍칼 형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넌 잘 몰라서 그러냐? 정말 아쉽다 두한아.
두한 양코야.... 난 주먹패에 관심 없어...독립군이 될 거야.
양코 독립군이 그렇게 쉽냐? 넌 좋은 기회를 놓친 거야. 나 같았으면 (흉내내며) 예, 고맙습니다, 쌍칼형님. 형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랬을 텐데..
정진영 앞으로는 어떻게 할거냐? 만주도 당장은 그렇고....
두한 기다려야지....갈 때까지....기다려야지.....
정진영 우리가 차라리 직접 그 진서방이라는 사람을 만나보는 게 어떻겠니? 물어 물어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두한 일단 그렇게 하자. 그래도 일이 잘 안되면 별수 없지. 한 번 더 신세를 지는 수밖에...도저히 안되면 최기자 아저씨를 만나야겠어. 난 어떻게든지 만주로 갈 거야. 꼭 갈 거야...
두한은 그렇게 잠에 떨어진다. 난감한 그들의 표정에서...
# 10 신문사 외경(밤)
국장 (E)자, 밤이 늦었어. 이제 그만 일어들 나지?
# 11 동 안
국장과 기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을 서두르고 있다.
국장 고생을 했네.. 다들 출출할 텐데 순대국에 탁주나 한 잔씩 하고 갈까?
기자1 아 좋죠.
국장 최기자도 그만 일어나지.
최동열 (계속 뭔가를 정리하며) 전 괜찮습니다. 먼저들 가십시오.
국장 아니 원고 마감했는데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
최동열 박헌영씨 공판 사건이 정리가 덜 되어서요.
국장 그 기사는 어차피 총독부의 검열이 심할 거야. 적당히 쓰라구.
최동열 ......(미소)....적당히가 됩니까? 그 사람도 엄연히 독립운동주의자의 한 사람이 아닙니까? 특히나 우리와 같은 기자출신이구요.
국장 허허허, 사람 하구는....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알아서 하게. 우린 먼저 가네.
그들이 빠져나가고 최동열은 기사문을 보며 생각이 많다.
최동열 (소리) 나는 이 암울한 시대를 기록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모두들 독립을 운운하며 싸울 때에 나는 펜을 들고 싸우겠다고 한 사람이다. 기록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운 이들은 모두 기록해야 한다. 그것은 내 의무다.
그렇게 담배를 피워 물고 계속해 기사문을 작성해 나가는 최동열의 표정에서.....
# 11-1 종로서
미와와 형사들이 들어선다. 그들 모두 지치고 짜증스럽다는 표정들이다.
미와 피곤하구만... 너무 피곤해. 도무지 끝이 없어. 불령선인이고 사회주의자들이고... 우리들이 처리해야 할 적들이 너무 많아. 그것도 하나 같이 선선한 놈들이 없단 말이야.
오무라 그렇습니다, 경부님. 오늘 공판만 해도 그렇습니다. 재판정에 서면 얼어붙을 만도 한데, 박헌영 그 자는 되려 눈을 똑바로 뜨고 판사에게 대들지 않았습니까?
미와 ...........
문달영 솔직히 저는 청산유수처럼 지껄여대는 박헌영의 최후 변론을 들으면서 온몸에 털이 곤두설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자의 선동에 안 넘어갈 조선인이 누가 있겠습니까?
미와 음.... 맞는 말이야. 어쨌거나 오늘은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모두들 쉬도록 해.
형사들 예.
미와 아... 참 김형사....만주에서 온 김좌진 일가들 말이야... 물론 꼼꼼하게 감시를 하고 있겠지?
김태서 틈이 나는 대로 동향을 살피고 있습니다. 요사이 형편이 어려워져 두 여자가 먹고살기에도 급급해 보였습니다. 크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실 듯 싶습니다.
미와 그래? 하지만 왠지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항상 불길해....
# 11-2 삼청동 외경
# 11-3 동 부엌
오씨가 저녁을 준비하려고 들어와 쌀통을 연다. 그러나 이미 쌀은 바닥이 나 있다. 오씨는 난감한 듯 보다가 남은 쌀이나마 긁어모은다.
# 11-4 동 안방
오씨가 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그런데 상위에 밥그릇은 하나뿐이다.
오씨 드세요, 어머님.
조모 왜 네 밥은 없느냐?
오씨 저는.... 먼저 들었습니다.
조모 먹었다니.....? 언제 그럴 틈이 있었다고....
오씨 제가 좀 시장해서....죄송합니다.
조모 아니다. 전에 없이 그랬다니 해본 말이니라.
조모가 수저를 드는데......
오씨 저 그리구.... 내일 잠시 친정엘 다녀올까 합니다.
조모 친정엘....? 갑자기 친정에는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오씨 ........예.
조모 무슨 일인데.......?
오씨가 선 듯 대답을 못하자 조모는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는 듯 밥상을 옆으로 밀어둔다.
조모 말해보거라. 쌀이 떨어진 게냐? 그래서 친정에 도움을 청하러 가려는 것이야?
오씨 ..........
조모 그랬구나....그랬어. 요사이 삯바느질 거리가 시원치 않는가 싶었는데.. 친정에 가는 것은 그만두거라.
오씨 하지만 어머님.......
조모 만주에서의 생활을 벌써 잊는 게냐? 아직도 그곳에서는 우리 독립군들이 며칠씩 굶어가며 왜놈들과 싸우고 있느니라.
오씨 ............
조모 몇 끼 굶는다고 죽지 않는다. 이만한 일로 남에게 의지하다 보면 계속해서 구차한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다. 그리 살수는 없는 일이다.
오씨 송구스럽습니다.
조모 앞으로 이런 일이 있거들랑 솔직하게 말하거라. 굶주리는 것은 송구스러울 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라를 빼앗기고도 제 배만 불리며 호의호식하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일이고 부끄러운 것이다.
오씨 .............
조모 네 밥그릇도 가져오거라. 나눠 먹자꾸나.
오씨가 일어나 나간다. 조모는 가슴이 아픈 듯 지긋이 눈을 감는다.
# 12, 13 (결)
# 14 중국인 거리(낮)
두한과 진영, 양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느 낡고 허술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 15 동 안
진서방과 두한들이 마주해 있다.
진서방 (묘하게 두한을 보다가) 만주...? 만주로 보내 달라?
두한 네. 꼭 부탁합니다.
진서방 (도리질하며) 요즘은 어렵다 해.
두한 돈은 더 마련해 올 수도 있습니다.
진서방 돈이 아니야. 일본 놈들 경비가 너무 심해. 철도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도무지 길이 없어.
두한 어선을 타고 나가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서방 그게 바로 밀선이야. 그것도 어렵다 해. 출항하는 배들 마저 어느 포구든 간에 샅샅이 수색을 해서 말이야. 다음에 와.
두한 지금 가야 합니다.
진서방 나는 못한다 했어. 다음에 와. 너 하나 보내주고 내가 죽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음에, 다음에 와. 어서들 나가. 어서...
두한 ........(답답하고)
난감한 두한의 표정 위로......
# 15-1 병원 진찰실
임동호가 바쁘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간호사 벌써 다 도셨어요?
임동호 근데.... 3호실 환자들 보이질 않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간호사 3호실 환자라면......
임동호 싸우고 들어왔다는 그 사람들 말이에요.
간호사 그게 저... 퇴원했는데요..
임동호 퇴원.....? 그 몸으로 병원을 나갔다는 거예요?
간호사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만류해 봤지만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임동호 제 정신들이 아니구만.. 아직 뼈도 채 붙지 않았을 텐데....
간호사 움직이는 걸로 봐선 멀쩡하던데요.
임동호 허... 그거 참........
임동호의 황당한 얼굴 위로.......
쌍칼 (E)어떻게 된 거야? 왜 벌써 퇴원을 했어?
# 16 쌍칼의 사무실
김무옥과 문영철, 털보가 와 있다. 쌍칼과 김영태가 자리해 있다.
김무옥 인자 괜찮습니다. 다 낫어부렀습니다.
쌍칼 그래?
문영철 면목없습니다, 형님...
쌍칼 됐어. 그 일은 이제 털어 버려.
문영철 ..........
김무옥 헌데 성님,
쌍칼 말해 봐.
김무옥 그 두한이라는 아이는 어떻게 하신 것이라우? 상철이한테 들으니께 성님께서 술을 사주셨다고 들었지라우.
쌍칼 만나보니까 아주 쓸 만 했어. 그 녀석이 다시 오면 너희들이 형으로 모셔야 할거야.
김무옥 뭣이요? 형님이라고 했어라우?
쌍칼 그래. 우리 세계의 법은 냉정한 것 아니냐. 선후는 따져야지.
김무옥 아이고, 형님이라고요? 갸가 형님이요? 야, 영철아, 갸가 형님이란다. 어매, 죽겄네, 이걸 어쯔끄냐?
문영철 ............
쌍칼 그리고 너 털보.
털보 예.. 예, 오야붕.
쌍칼 모든 일은 다 너 때문에 벌어진 거야. 그 대가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겠지?
털보 예? 예....
쌍칼 돈은 왜 삼켰어?
털보 잘못했습니다, 형님. 용서해 주십쇼.
쌍칼 그래도 벌은 받아야지. 데리고 가.
털보 아이고, 형님, 용서해 주십쇼. 한 번만 용서해주십쇼.
쌍칼 ............
주먹들이 애원하는 털보를 그렇게 데리고 나간다. 무표정한 쌍칼의 표정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 17 동 어느 창고 안
털보가 곤장을 맞듯 엎드려서 곡괭이 자루로 '빳다'를 맞고 있다. 털보가 죽어라 비명을 지른다. 김영태가 보고 있고, 다른 주먹들이 길게 서서 보고 있다.
털보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좀 살살 때리시오. 살살 때려요.
김영태 앞으로도 한참 남았다. 백대를 채우려면 아직도 멀었어. 계속 해.
병수 예, 형님. (힘 주어 계속 팬다)
털보 살살 좀 해라. 아이고, 형님 잘못 했습니다. 아이고....
김영태 계속... 계속 쳐.
털보 아이고, 아이고, 이 털보 죽네. 아이고....
바라보는 김영태의 표정에서..... 계속 되는 비명소리....
# 18 종로 거리
시바루가 오고 있고 마주쳐 지나가는 두한과 양코, 정진영. 모두들 시무룩한 표정들이다.
정진영 아무래도 정말 만주는 안 되는 모양이다. 너 최기자님을 만나 볼 거야?
두한 .........
정진영 진서방도 저렇게 손을 내젓는데, 최기자님도 어렵지 않을까?
양코 아이고, 배고프다. 어쨌든 일단 밥부터 먹자. 저기 팥죽 집이 있는데..
정진영 그래, 일단 뭐라도 좀 먹자.
그들 팥죽 집으로 그렇게 들어가는데, 쌍칼패의 삼수가 그들을 보고 어디론가 급히 달려간다.
# 19 어느 다방
삼수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김무옥, 문영철 있는 곳으로 급히 다가온다.
삼수 무옥이 형님!
김무옥 뭐여? 어디서 싸움이라도 났어?
삼수 그게 아니구요.. 그 자식들 있잖아요.. 형님들을 때려눕힌... (아차 싶다).... 그, 그 촌놈 말입니다요.
김무옥 (인상을 찌푸린다) 뭣이야?
문영철 김두한이 말이야?
삼수 예, 그 자식들이 나타났어요.
문영철 그래.. 지금 어딨어?
삼수 팥죽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어요. 요 앞에 팥죽 집 말입니다.
# 20 팥죽 집
두한들이 팥죽을 말끔히 비웠다.
정진영 한 그릇 더 먹어. 그것 갖구 되겠냐? 아주머니, 좀 더 주세요.
팥죽 주인 그래라. 한창 때인데 들 먹어야지.
주인 아낙이 큰 대접에 팥죽을 가져다준다.
팥죽 주인 많이 들 들어요. 그만한 나이 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법이야.
양코 헤헤헤, 사실이 그래요,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자, (나누어 덜며) 더 먹어라. 많이 먹어, 두한아.
두한 아냐, 됐어. 이제 배가 부른데...
정진영 왜 더 먹지 않구.. 돈은 걱정 마. 나한테 좀 있어.
두한 됐어. 나도 팥죽 값은 있어.
두한이 계속 먹고 있는데, 김무옥들이 들어선다. 갑자기 모두들 표정들이 굳어진다. 한동안 시선이 오고 간다.
김무옥 여그 있었냐?
두한 .....(경계)....?
김무옥 아이고 출출한디 나도 팥죽이나 묵어 볼끄나.. 여그요.
두한 나한테 볼일이 더 남았어?
김무옥 뭔 소리여? 아녀, 아녀... 싸우자고 온 거 아녀.
두한 그럼 뭐야?
김무옥 여기 있다고 해서 그냥 왔어. 형님한테도 니 얘기 들었고, 팥죽보다는 어떠냐? 어디 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마시는 게. 지난 일도 있고, 앞으로 잘 좀 지내자.
두한 ............?
김무옥 그려, 팥죽보다는 맥주가 낫겄제. 나가더라고, 두한아. 우리가 근사한데 가서 한 잔 살텡께. 어여, 일어나드라구. 아, 어여.
두한 ..........?
두한이 어쩌지를 못하고, 정진영과 양코를 본다.
정진영 우리는 괜찮아. 가봐, 두한아. 저녁에 보자.
양코 헤헤헤, 가봐.
두한 그래. 그럼 먼저 갈게.
김무옥 가더라구. 오늘 한 잔 묵어 보더라구. 헤헤헤, 동무들 미안하더라구. 우리끼리 야그가 있어갖구 말이시.
양코 아, 예, 예.... 그럼요, 그럼요. 어서들 가세요.
김무옥 (돈 한 장 내며) 아줌니, 여기 팥죽 값인데 받으시오잉. 잔돈은 나둬뿌쇼.
그들 그렇게 나간다. 거구들이다. 양코가 보다가 기가 죽인다. 도리질을 한다.
양코 저 등치들 좀 봐. 역시 싸움패들이여. 히야, 거 참... 두한이도 그럴 듯 하다. 안 그러냐, 진영아? 영락없는 싸움패야, 두한이도.
정진영 .............
# 21 종로거리
김무옥과 문영철과 함께 오고 있다. 그들 어느 비어홀 앞에 이르러
김무옥 여기야.. 들어가자.
두한 난 술을 마시지 못해.
문영철 그냥 마시면 되는 거야. 지난번에도 마셔봤다면서? 자, 들어가자.
그들 그렇게 들어가면...
# 22 동 비어홀 안
두한들이 들어온다. 웨이터가 나와 그들을 맞으며, 허리를 꺾는다.
웨이터 어서 오십쇼, 형님들.
김무옥 야, 좋은 자리로 안내혀봐라.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응께.
웨이터 헌데, 형님. 저.....
김무옥 왜 그러는겨? 왜 그려, 임마?
웨이터 저기.. 구마적 형님이 와 계시는데요.
김무옥 뭐? 구마적 형님이...
문영철 안되겠다. 다른 데로 가자.
김무옥 기왕 들어 왔는디 워치케 나간다냐? 그냥, 들어가자.
김무옥과 문영철, 두한이 구마적이 있는 테이블로 간다. 구마적은 어느 신사(시바루)와 술을 마시고 있다. 상하이가 한쪽에 앉아 있고 이름 없는 부하 두 명이 병풍처럼 뒤에 서 있다.
김무옥 안녕하신게라우, 형님?
문영철 안녕하십니까, 형님?
구마적 응 그래 그래... 술 마시러 왔냐?
김무옥 예, 형님.
구마적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한판들 붙었냐?
김무옥 아, 예... 그런 것이 아니고라우, 그냥 째께 아픈 데가 있어 갖고라우.
구마적 어, 그랬어. 저 아이는 누구야? 처음 보는 아인데...
두한 ...........
문영철 두한이라구.. 저희들 친굽니다. 두한아, 인사 드려.. 구마적 큰형님이셔.
두한 (인사를 꾸벅 한다)......
구마적 그래, 그래, 오냐 오냐... 허, 그 녀석 몸집 한 번 좋구나.
문영철 그럼 저희들은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구마적 그래, 그래.... 조용히 마시고 가거라. 시끄럽지 말고...
문영철 예, 큰형님.
두한들이 다른 쪽 테이블에 가면, 구마적은 시바루에게 웃으며 말한다.
구마적 아.. 아... 미안하오. 잠시 아우들의 인사를 받느라.... 이름이 시바루라고 했던가?
시바루 그렇습니다.
구마적 자, 시바루 아우님, 한 잔 더 하시게.
시바루 ..........(잔을 받는다)
구마적 그래... 하야시 그 사람이 나와 만나고 싶다는 말이지?
시바루 보내주신 선물에 대한 답례 차원만은 아닙니다. 구마적 오야붕과 허심탄회하게 종로와 혼마찌의 장래에 대해 의논을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구마적 종로와 혼마찌의 장래....?
상하이 .............
시바루 화해와 평화 말입니다.
구마적 화해와 평화라....? 참 좋은 말이로군. 좋은 말이야. (돌아보며) 그렇지 않나, 상하이?
상하이 예, 형님.
시바루 ...............
# 23 그 일각
김무옥과 문영철, 두한이 앉아 있다. 술을 마시고 있다.
김무옥 저 사람이 종로의 (엄지손가락 세우며) 오야붕이랑께. 앞으로 보면 허리를 그냥 땅바닥까지 팍 꺾어부러라. 안 그러믄 잘못하다가 인생 끝나부러. (웨이터를 손짓으로 부른다)
두한 .........
문영철 (계속 구마적 쪽을 보며) 그런데 무옥아 저기 저 사람... 어디선가 본 거 같지 않냐?
김무옥 응.... 어디....? (보면)
구마적과 이야기하고 있는 시바루의 모습이 보인다.
김무옥 글씨....
문영철 어디선가 봤는데..... 어쨌거나 기분 내기는 다 틀렸다. 적당히 다른 데로 가는 게 낫겠다.
김무옥 간단하게 목만 축이고 2차 가잖께. (웨이터 오면) 야, 맥주 좀 서너 병 더 가져와부러라. 시원한 걸루 말이여. 알겄냐?
웨이터 예 형님..
두한 ...........
# 24 종로 거리
정진영과 양코가 오고 있다.
양코 괜찮을까? 그 자식들 비겁하게 두한이를 끌고 가서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정진영 걱정 마.. 그럴 녀석들은 아니야.. 그리고 쌍칼 오야붕과 이미 얘기가 다 끝난 거잖아.
양코 그건 그렇다. 자식들.. 그럼 우리도 함께 데려가지..두한이만 쏙 데려가냐? 나두 시원한 맥주 한 번 먹고 싶은데..
정진영 잊어버려. 거기는 우리 사는 세상이 아니야.
양코 아니, 쟤네들과 우리가 뭐가 달러? 우린 거지고 저것들은 건달 아닌가? 그게 그거지, 뭐. (폼잡으며) 야, 나도 그만 일찍부터 건달 세계로 가는 건데 말이여. 양아치가 뭐여, 양아치가.... 세상 참 불공평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멈칫 하며 한쪽을 본다. 병수와 털보가 함께 온다. 털보는 절룩거리고 있다. 이들은 서로 부딪친다.
털보 어이고, 니들 어디 가냐?
양코 (기가 죽어서) 저, 그냥....
털보 저, 혹시 무옥이 형님 못 봤냐?
정진영 우리 두한이하고 같이 갔는데, 저쪽으로....
털보 (아픈 듯) 아이고, 아이고, 엉덩이야. 엉치뼈가 다 부러진 것 같아. 야, 임마, 살살 치라니까, 왜 그렇게 세게 치냐?
병수 아, 형님, 안치면 내가 맞는데요.
털보 그래도 그렇지 이 자식아.... 아이고.... (하다가) 참, 너무들 하는구먼. 누군 엉덩이가 다 헤어졌는데, 누구는 맥주를 마시러 가고.... 어느 쪽이라고 했어?
양코 응, 저기 저쪽이야....
털보 알았다. 알았어. 아이고, 엉덩이야. 아이고..
# 24-1 비어홀 앞
구마적과 시바루가 밖으로 나온다. 상하이도 따라 나온다. 그 부근을 지나가던 신마적의 학생패들 몇이 구마적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시바루 오늘 환대는 감사했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구마적 살펴 가시게.
시바루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하 두엇과 발걸음을 돌린다.
구마적 우리도 그만 가자.
상하이 예.
구마적 그렇게 간다. 구마적의 주위를 돌아가던 학생패들은 뭔가 이상한 듯 구마적들을 보고 있다.
# 25 비어홀
술잔을 비우고 있는 김무옥.
김무옥 지난번에는 말이여, 우리가 잘못했당께. 다 들었당께. 털보 돈을 형님이 갚아 주셨다믄서? 아이고 참말로 너를 잘 보셨당게.
문영철 어쨌든 반갑다. 여태까지 또래에서 너같이 센 놈은 처음 만났어. 앞으로 우리 잘 지내보자.
김무옥 그래.. 나두 마찬가지랑께. 지난 일은 싹 잊구.. 우리 잘 지내보더라구.
두한 지난 번 일은 나도 미안하다. 다친 덴 괜찮냐?
김무옥 야야 말 말아라.. 지금도 온 몸이 다 쑤시는구먼. 의사 선상님이 며칠간 입원해야 한다고 그랬는디 좀이 쑤셔서 누워 있을 수가 있어야제..
두한 ......(미소)...
문영철 두한아, 너 우리랑 같이 있자?
두한 ........?
문영철 너 정도 주먹이면 할 일이 아주 많아.
두한 주먹패가 되라고?
김무옥 주먹패가 워뗘? 사내새끼로 태어나서 의리에 죽고 사는 것도 좋은 것이여...
두한 난 관심 없어.
문영철 니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보아하니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모양인데.. 너두 뭔가 해서 먹구살아야 할 것 아니냐?
두한 ............
문영철 말했지만 쌍칼 형님은 니가 무척 마음에 드신 모양이야. 그 형님은 다른 건달들하고 달라. 의리도 있고, 경우도 밝지. 또 왜놈들을 무척 싫어하신다구. 배운 게 없어서 그렇지 학교만 다녔어도 지금쯤 독립군 대장이 되셨을 거야. (목소리를 낮춰) 너 김좌진 장군이라고 들어봤어? 모르긴 해도 그 분 정도는 되셨을 거야.
두한 .......? 그래도, 나는 주먹패는 싫어. 나는 만주로 갈 거야.
김무옥 그건 이미 물 건너갔다고 않혔냐?
두한 (벌떡 일어나며) 잘 마셨다. 가볼 곳이 있어.
김무옥 야, 야, 워디 가는겨? 갑자기 워디가? 야, 두한아...?
문영철 .........?
그렇게 술집을 빠져나가는 두한.....
# 25-1 선술집
구마적과 거리에서 마주쳤던 학생패들 몇이 신마적과 마주해 있다.
신마적 (막걸리 잔을 든 채) 그게 정말이냐?
학생패1 예, 선배님. 분명 하야시 패거리의 중간급 보스였습니다.
신마적 뭘 잘못 본 거 아니야?
학생패1 저 혼자라면 모를까... 상식이와 철민이도 함께 봤습니다.
신마적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은) 뭔가 일이 있었나보지.
학생패2 사실 요즘 우미관 돌아가는 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소문도 그렇구요. 종로서에서 구마적을 빼준 게 하야시라는 소문 말입니다.
신마적 (심각해진다) 그건 나도 들었어.
학생패2 구마적 형님과 하야시간에 모종의 협의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학생패1 에이, 설마......
신마적은 뭔가를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신마적 구마적의 성격으로 봐서는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만약 그랬다간 내가 가만있지 않아.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신마적의 눈빛이 무섭다.
# 26 쌍칼의 사무실
쌍칼과 김영태가 마주해 있다. 김무옥과 문영철도 와있다.
문영철 저... 형님.... 계속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쌍칼 뭐가?
문영철 여기 오기 전에 종로 회관에서 구마적 형님을 봤습니다. 그런데 함께 앉아 있던 자가 혼마찌패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들 ............?
문영철 혼마찌패라곤 미처 생각도 못하고 그저 꽤나 낯이 익다고만 여겼었는데.... 언젠가 수표교 싸움에서 본 자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김무옥 듣고 보니 그러네. 그려... 그 놈이구만잉.. 보기에도 솔찮허게 쪽발이 냄새를 풍긴다 했었는디......
문영철 분위기가 무척 좋아 보이던데요.
쌍칼 그래.....?
김영태 이건 그저 제 생각입니다만... 혹시 하야시가 구마적 형님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비단 구마적 형님과 하야시의 속내가 단순하지만은 않겠지만 최악의 경우 우미관과 혼마찌가 손을 잡을 수도......
쌍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우리 조선 건달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야.
김영태 하지만 왠지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형님..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게 분명합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쌍칼 아닐 거야.. 아니어야 돼. 쪽발이들과 손을 잡다니....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야.
# 27 신문사 앞(밤)
두한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때 최동열이 나온다.
최동열 두한아...?
두한 안녕하세요?
최동열 웬 일이냐? 뜻밖이로구나. 나를 다 찾아오고... 어쨌든 잘 왔다. 저녁이라도 먹자.
두한 예...
최동열 참, 오랜만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이 궁금했어.
# 28 어느 식당
두한과 최동열이 마주해 있다.
최동열 만주라, 만주에 가고 싶다고?
두한 .......?
최동열 너는 경성을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두한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최동열 어떻게 알아보면 방법은 나오겠지만, 그보다도 지금 만주의 사정이 좋지가 않아.. 만주국이 들어선 이래 만주 일대는 왜놈들의 천지가 된 지 오래다. 독립군들도 대개 중국 본토나 소련 땅으로 물러나 있는 형편이고 활동도 거의 없는 편이지.
두한 .......?
최동열 네가 만주에 가도 갈 데가 없다는 얘기다. 중경에 임시정부가 있고, 여러 독립 단체들이 활동 중이지만 두한이 네가 가서 할 일이 없을 게야.
두한 ..........
최동열 내 생각엔 만주에 가는 건 일단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마땅한 일자리를 마련해 보마.
두한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동열 그래.. 잘 생각해 보자. 우리 자주 만나자꾸나, 음? 자, 어서 먹어.
두한 예.........
# 29 거지촌
두한과 정진영, 양코가 모여 있다.
정진영 최기자님도 그렇게 말을 하셨다면, 만주는 정말 당분간 어렵겠다.
두한 (끄덕이며) 그런 것 같아.
정진영 ......그럼 우리와 함께 살면서 살길을 찾아 봐.
두한 아니야, 너한테 얹혀 있을 수는 없어. 뭐라도 내 스스로 일을 해야지.
양코 쌍칼한테 가라니까 그러네? 어려울 때 찾아 오라 그랬다면서?
두한 ..........?
양코 너를 좋아한다면서? 쌍칼이라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줄 거다.
두한 ..........?
그런 그 모습 위로 쌍칼의 음성이 스쳐 지나간다.
쌍칼 (E)좋아, 좋아. 독립이란 좋은 말이지. 하지만 말이다, 두한아.. 독립군은 만주에만 있는 게 아니야. (사이) 우리가 너 보기에는 그저 무식한 주먹쟁이들로만 보인 모양이로구나.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 총을 들고 싸우는 독립군도 있지만, 우린 주먹을 쓰는 거리의 독립군이다.
# 30 쌍칼의 사무실 외경(낮)
쌍칼 (E)하하하하.. 그래 난 니가 다시 올 줄 알았다.
# 31 동 안
쌍칼과 두한이 마주해 있다. 김영태가 비서처럼 서 있다.
쌍칼 넌 다른 일은 못해. 주먹패가 딱 적성이지.
두한 주먹패가 되겠다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쌍칼 .....? 그러면...?
두한 일자리를 부탁 드리려고 왔습니다.
쌍칼 일자리? 취직을 시켜달라는 말이야?
두한 예..
쌍칼 허 그 자식... 정말 엉뚱한 놈일세.. 그래, 무슨 일을 하고 싶냐?
두한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습니다. 막일이라도 시켜만 주십쇼.
쌍칼 막일이라... 음.... 좋아, 그렇다면 일단 내일부터 여기로 나와.
두한 .........?
쌍칼 아냐, 뭐 내일까지 갈 것 있냐? 지금 야시장을 둘러보려던 참이었는데 함께 가보자.
두한 .........?
# 32 종로 야시장
쌍칼이 그 곳을 돌아보고 있다. 그 뒤로 김영태와 김무옥, 문영철, 그리고 두한이 따르고 있다. 쌍칼이 지나치면 상인들이 인사를 한다. 쌍칼도 미소를 지으며 답례를 한다. 한 고깃집의 주인이 뛰어나와 쌍칼의 팔을 잡아 끈다.
주인 어이 쌍칼, 일루 좀 와봐. 오늘 기가 막힌 고기가 들어왔는데 한 점 들어보라구.
쌍칼 아 아닙니다. 오늘은 좀 바빠서요.
주인 아이 그러지 말고..잠깐이면 되는데 뭘..
쌍칼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꼭 들르겠습니다.
주인 (실망해) 그렇게 바빠..? 그럼 할 수 없지 뭐.. 하지만 나중에 꼭 들러야 하네...
쌍칼 예..
쌍칼이 그렇게 간다. 두한은 그런 쌍칼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쌍칼 두한아.
두한 예..
쌍칼 이 곳이 바로 우리 조선의 심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먹을 것을 사고 입을 것을 사고.. 그렇게 해서 세상을 살아가지.
두한 ........
쌍칼 나라는 빼앗겼지만 최소한 우리는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일본 놈들도 이곳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거야.
두한 ........(감동 같은).......
쌍칼 하지만 오래 전부터 쪽발이 패들이 이곳과 종로를 넘보고 있다. 걔네들은 돈도 많고 순사들도 뒤를 봐주고 있지. 지금까지는 이 곳을 잘 지켜왔지만 앞으로는 정말 어려워질 거야.
두한 ........?
쌍칼 왠줄 아냐? 우리 조선 주먹패들이 나약해졌기 때문이다.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라 머리가 텅텅 비어서 그런 거야. 쪽발이 놈들하고 손을 잡고 어떻게 종로를 지키겠냐? 한심한 일이야.
두한 ..........?
# 33 하야시 구미(조직)
미닫이문이 계속해 열리면서 거기 끝에 하야시가 앉아 있다. 수많은 부하들이 좌우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하야시 제군들, 그 동안 고생들이 많았다. 여러분들의 노고로 이제 우리는 종로에도 우리의 사업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아직 확답을 얻은 건 아니니까.
그들 ............
하야시 시바루.
시바루 하이, 오야붕.
하야시 우미관의 구마적이 호의적이라고 했던가?
시바루 하이, 오야붕. 이미 만날 약속을 해놓았습니다. 사전에 교감이 있었습니다.
하야시 그래도 모르는 거야. 그 자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위인이니까.
시바루 하이, 오야붕.
하야시 신마적이라는 엄동욱이는 술이나 퍼마시고 행패나 부리는 망나니 학생패이고.... 문제는 쌍칼이야.
가미소리 그렇긴 하지만 구마적이 움직인 이상 그 자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구마적은 조선 주먹계의 황제입니다.
하야시 황제라... 하하하, 그럴 듯한 말이군. 그러나, 조선의 주먹은 우리와 달라서 늘 변수가 많지.
모두들 ..........?
하야시 경우에 따라서 쌍칼이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이야..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 34 명월관 외경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삼수와 병수, 그리고 쌍칼의 수하들인 사내들이 밖을 경계해 서 있다.
# 35 동 어느 방안
쌍칼과 김영태, 문영철, 김무옥, 두한이 마주해 있다. 기생들이 가야금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쌍칼 두한이 너, 이런 데는 처음이지?
두한 .......예..
쌍칼 핫하하.. 이제 우리 식구가 됐으니 정식으로 인사들 나눠야지.. 여긴 김영태라구. 두한이 너보다 서너 살 위일 게야. 휘문고보를 나온 인테리지.
김영태 앞으로 잘 부탁하네.
두한 ...예.......
김무옥 형님, 이제 얘들 좀 들여두 되겠지라우?
쌍칼 음, 들어오라구 해.
문영철 뭐해? 얘들 들어오라고 해.
지배인 예,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권번에서 막 온 숫내기로 대기시켜 놨습니다. 지난번에 한 번 보셨을 겁니다. 그럼....
쌍칼 그래..?
지배인이 문을 열고 나가며 기생들을 부른다. 잠시 후 설향, 아이란과 더불어 기생 세 명이 더 들어온다. 그리고, 고수가 하나 들어와 앉는다.
쌍칼 어, 너로구나. 그래, 너희는 이리로 앉고, 그리고 너 설향이라고 했던가?
설향 예..
쌍칼 오늘 이 친구를 한 번 잘 모셔봐라. 아직 숫총각이니까 끝까지 책임지고 잘 모셔보라는 것이야.
설향 예.....
쌍칼 보아하니 너 정말 볼수록 숫내기로구나. 잘 됐다. 두한이 너하고 아주 잘 맞을 것 같구나.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서로 인사를 해봐.
두한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다. 설향이 곁에 앉으며 인사를 한다.
설향 설향이라구 합니다.
두한 예, 김두한입니다.
설향 (보다가 놀란다)....?
쌍칼 왜, 아는 사람이냐?
설향 ...길에서... 싸우는 것을 봤습니다.
쌍칼 그래? 하하하... 타고난 싸움꾼이지.. 정말 대단한 친구야.
두한 .........
쌍칼 지난번 내가 왔을 때 권번에서 막 왔다고 했었지. 오늘 어디 네 노래 한 번 들어보자. 기생 교육은 열심히 받았냐?
설향 ...........
김영태 형님, 먼저 흥을 돋구기 위해서 소리 한 자리 듣고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쌍칼 (마시며) 그렇지. 그렇게 시작을 해야지. 자, 무슨 소리를 한 자리 해주겠느냐?
아이란 (재촉하듯) 어서 말씀 드려.
설향 백발가를 한 소리 해 올리겠습니다.
쌍칼 좋지. 나도 그 소리는 아주 듣기 좋아한다. 자, 고수는 뭘 하느냐?
그러자, 고수가 고개를 꾸뻑하고는 북 장단을 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두 설향을 본다. 설향이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설향 (소리) 이 산 저 산, 봄이로구나. (계속) 봄은 찾아 왔건만은....
놀라운 창 솜씨다. 모두들 숙연하게 듣는다. 갈수록 설향의 소리는 좌중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 36 동 명월관 마당
지배인이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 쪽을 보고 있다. 북소리와 판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 37 다시 명월관 방 안
한동안 계속되던 설향의 한스러운 판소리가 시간이 흘러 매듭을 짓는다. 모두들 숙연하다.
쌍칼 너 아주 판소리 하나는 제법이구나. 한이 절절이 서려 있어. 그래, 누구나 만년을 살 것 같아도 곧 백발이 되지. 어쩌다가 기생이 되었느냐?
설향 ........(대답이 없다)
쌍칼 하긴 그렇다. 어디 너만 사연이 있겠느냐? 기생이나 건달이나 다 그렇고 그런 사연들은 하나씩 있지. 자, 오늘 밤 한 번 취해보자꾸나. 마시자구. 두한이 너도 그 새색시한테 술 한잔 따라 주려무나.
두한 예....
두한이 술을 따른다. 쌍칼이 잔을 들자 모두 든다.
쌍칼 마시자고. 오늘 새 식구를 환영하는 자리야. 모두 비뚤어지게 마셔보자구. 자, 애란아.
아이란 예.
쌍칼 니 애인 문영철이가 여기 와 있어. 서방님을 위해서는 네가 한 번 소리를 해봐야지.
문영철 얘도 참 잘합니다, 형님. 기가 막힙니다.
아이란 호호호, 서방님이 칭찬하시니 정말 잘해야겠네요. 춘향가 중에 사랑가를 한 번 해볼게요.
고수라 미리 북 장단을 쳐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아이란이 판소리 사랑가를 열창하기 시작한다.
아이란 (소리)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어어허 두둥 내 사랑이로구나. 저리 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를 보자.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찌 아니 다정하리...
판소리는 계속 된다. 모두들 술상을 치며 장단을 넣는다. 고수가 추임새를 넣으며 흥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두한은 거퍼 술잔을 들이킨다. 설향이 두한을 본다. 그들 서로를 본다. 그런 그들의 면면에서, 다시 술잔을 넘기는 두한의 모습을 잡으며 디졸브....
# 38 종로의 야경 인서트
# 39 관철 여관 외경
# 40 동 방 안
두한이 만취되어 쓰러져 있다. 설향이 다가와 두한을 흔들어 깨운다.
설향 이보세요.. 이보세요..
그러나 두한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설향. 그러다가 다시 두한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점차 더 가까이 두한의 얼굴을 보는 까닭 모를 설향의 그 미소에서......(*)